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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이라는 불치의 한국병
조우석   |  2014-03-21 18:35:33  |  조회 2163 인쇄하기

386이라는 불치의 한국병

 

- <꾿빠이 386>(북앤피플 펴냄) 남정욱 著



조우석 <문화평론가>

 

 

소설가 남정욱(48. 숭실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은 누구나 인정하는 우파의 글쟁이인데, 그가 펴낸 새 책 <꾿빠이 386>(북앤피플 펴냄)을 읽다가 새삼 놀랐다. 그 책에 무려 9쪽에 걸쳐 인용된 장편서사시 ‘한라산’(1987년 발표) 때문이다. 20여 년 전에 발표됐던 시라고 하지만 섬찟함과 당혹감이 교차하는, 아주 복잡한 감정이었음을 고백한다. 내용이 하도 살벌해서 식겁 했고, 이렇게 졸렬한 걸 작품입네 하고 유통시켜온 어제 오늘 우리의 풍토에 다시 질렸다.


“한 손에 빵과 또 다른 한 손에 해방군의 탈을 쓰고/발톱까지 부장한 채 당당하게 상륙한 그들은/마침내/순결한 조선의 하늘과 푸른 산하를 두 토막으로 분질러 놓았다/그리고 다시 40여년 기나긴 세월이 흘렀건만/총독부가 대사관으로 바뀌었을 뿐/‘창살 없는 감옥’ 식민지 산하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


“돌려주자/오늘도 노란 유채꽃이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는/아! 피의 섬 제주도/그 4•3이여/우리의 심장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이 진달래꽃을/그 누가 꺾을 수 있으랴/돌려주자/기름진 지주와 자본가의 삶을 죽창에 꽂아/그들에게 돌려주자”


매우 수준이 낮지만 노골적이고 전투적인 반미 의식, 그리고 차원 낮은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단세포적인 선악 이분법…. 거칠고 숨 가쁜 격문(檄文)에도 못 미치는 신파조의 정서인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북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관변(官邊) 시도 이보다는 낫다. 되 읽은 ‘한라산’은 이렇게 실체가 쉽게 파악되는데, 더 놀란 건 따로 있다. “이보다 더 386의 반미정서를 정확하게 대변해 줄 수 있는 것이 없"(44쪽)다는 저자의 소개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인데, 이 참에 고백하자. 실은 이 시를 썼던 이산하와, 10여 년 전 철들기 이전의 나는 그런대로 만나고 어울리던 사이였다.

 

 


386의 반미정서를 대변하는 이산하의 시 '한라산'


그때 출판사를 운영하던 그가 새 책을 들고 오면, 나는 당시 내가 근무하던 일간지의 지면에 곧잘 소개해줬고,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곤 했다. 지금 제정신을 가지고 <꾿빠이 386> 지면에 인용된 이산하의 옛 작품을 읽으니 그때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심한 부끄러움부터 몰려온다. <꾿빠이 386>은 그런 책이다. 나의 경우 386세대보다 약간 빠른 유신학번 세대인데, 우리의 후배들과 우리들이 1980년대 어떻게 살았는지, 이후 어떻게 어울려왔는지에 대한 많은 정보를 포괄적으로 전해준다.


<꾿빠이 386>은 실은 그 이상이다. 사실 운동권 후일담 문학은 나올 만큼 나왔고 철도 지났다. 386 세대의 학생운동사를 다뤘거나, 그걸 객관적으로 분석한 단행본도 적지 않은데, 이 책은 좀 다르다. 그 자신이 386세대인데, 저자는 386을 남한 좌익운동사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논란의 여지는 좀 있겠지만, 기왕의 애매한 논의에서 한 걸음 더 나가는 시각인 건 분명하다. 


저자의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386은 유구한 남한 좌익 운동사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또 한 편으로 그 궤도에서 이탈하여 전혀 다른 형질로 등장한 기형적 돌출물”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해방 이후 최고조로 타올랐던 좌익운동”(20쪽)이 1980년대의 386이다. 반복하자면 이런 얘기다. 386은 소박한 민주주의 이념과 결별한 젊은이들이 동서양의 급진적 운동관을 가지고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고 설명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설명하는 게 다반사였지만, 그건 정확한 인식에서 한참 멀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이 책이 내리는 결론은 “386운동권은 남한 좌익운동의 절정”이라는 것이다. 공감이 가는 얘기가 아닐까? 대한민국 건국과정은 물론 그 이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절대다수에 의한 범국민적 합의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좌익-좌파들의 방해에 노출돼 왔다. 그 절정을 맞은 게 1980년대라고 봐야 한다는 논리가 <꾿빠이 386>이다. 때문에 이 책에는 좌익운동의 흐름이 살짝 들어있는데, 4•19 직후 이른바 혁신세력이란 이름 아래 좌익 고개를 든 것도 우연이 아니다.


“386운동권은 남한 좌익운동의 절정”


휴전 불과 6년만에 서울대 최초의 노동현장에 투신했던 김정강 등의 무리가 등장했는데, 그만큼 대한민국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환경은 취약했다. 1960년대 초반 이후 각종 사회운동 기록을 보면 바로 인혁당 사건이 등장하고 그게 이후 통혁당, 남민전 등으로 이어진다. “남한 좌익운동사에 단절은 없었다”(27쪽). 그게 진실이다. 거꾸로 말하면 이승만의 건국과 박정희의 부국은 지속적인 좌익정치세력의 위협 앞에 존폐 자체가 위협 당하는 와중에 이룩된, 아슬아슬한 과정이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좌익세력의 빅뱅이 이뤄진 건 1980년대이며, 2000년대 초입 한국사회의 혼란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남정욱의 지적이다. 이때 등장한 좌익세력은 학생운동권이라는 매우 우호적인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실체는 반미, 친북, 맹목적 민족주의 정서로 무장한 반 대한민국 운동이라고 봐야 한다. 흥미로운 건 저자의 386 분류법이다. 크게 '전기 386'이 있고, '후기 386'이 따로 있다. 전기 386은 1980년대 학교현장에서 반 전두환 시위를 하며 친북이념에 물들었던 세력이지만, 이후 대부분 개종을 했던 무리를 뜻한다.


문제는 후기 386이다. 이들은 당시 시위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으나 이후 죄책감과 부채의식 등이 합쳐진 채 1980년대 386세대보다 더 퇴행적인 정치 사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무리를 뜻한다. 그들은 반 대한민국, 친북의 마인드로 무장한 채 2000년대 초반을 살고 있으며, 강남좌파 내지 이념의 무임승차자로 변신해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런 후기 386은 나이와 굳이 상관없다. 이를 테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야말로 정신적 386임을 자부했는데, 때문에 전형적인 후기 396으로 분류돼야 한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전기 386이 됐건, 후기 386이 됐건 반(反)자유주의, 반(反) 대한민국의 열정을 아직도 가진 그 운동권의 마인드는 지금도 살아있으며, 이 나라의 아슬아슬한 집단정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어 문제다. 그 사례가 통진당 이석기임을 이 책은 뒷부분에서 규명한다.


"우리가 자주된 사상, 통일된 사상, 미국놈을 몰아내고 새로운 단계의 자주적 사회, 착취와 허위 없는 그야말로 조선민족의 시대의 꿈을 만들 수 있다. 그 꿈을 위해… 전국적인 범위에서 최종결전의 결사를 하자는 거다. 이 또한 얼마나 영예롭지 않은가!” “오는 전쟁을 맞받아치자. 어떻게? 빈손으로? 전쟁을 준비하자. 정치 군사적으로 준비를 해야 한다.” “현 정세는 조선민족으로 표현되는 자주역량이 힘에 의해서 승리로 가는 국면은 분명하다. 고난을 각오하라.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각오해야 한다.”


노무현, 이석기 등으로 이어지는 386 바이러스


'RO' 녹취록에서 이렇게 말했던 통진당 이석기는 또 한 명의 전형적 후기 386으로 지목돼야 한다. 그런 후기 386은 이석기 말고도 수두룩한데, 그걸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책이 <꾿빠이 386>이다. 후기 386은 교사, 공무원, 군인 등은 물론, 법관, 변호사, 저술가, 저명인사 등에도 수두룩하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는데, 다음은 유머 감각이 묻어나는 저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혼자서 좌익 신념을 불태우는 건 상관없다. 사상의 자유가 있으니까. 피씨방이나 치킨집을 하면서 주체사상을 성경 읽듯 매일 10페이지씩 읽고 묵상해도 좋다. 그런데 그 사람이 교사, 공무원, 군인 같은 직업을 갖고 있다면, 그건 문제가 달라진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수두룩하다. 정말 많다. 386의 일부가 과거와 결별하지 못하고 아직도 반 자유주의, 반 대한민국의 열정을 불태우는 중이다."


사족 = <꾿빠이 386>을 덮고서도 자꾸 어른거리는 게 이산하의 '한라산'이다. 굳이 족보를 따지자면, 이 시는 해방 이후 잠시 분출했던 임화, 이용악, 오장환 등의 정치적 격문시(檄文詩)의 변종이 안 될까? 하지만 격이 너무 떨어지고 철지난 구호 이상의 의미는 없다. 무엇보다 이 시를 지배하는 인식이란 실로 참담한 정치적 오류에 불과하다. 기회에 이산하에게도 "이제는 좀 그만하자"는 조언을 하려 한다. 세상이 바뀐 이제는 철이 들 때도 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게 거의 무망하다는 것도 조금은 가늠은 한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그는 지금도 호남 지역 등을 돌면서 문학특강 등을 하며 돌아다니고, 좌파정서를 가진 이들이 좋아하는 무슨 공동체 운동을 한다고 한다. 그게 어디 이산하 개인만의 문제일까? <꾿빠이 386>에서 말하는 후기 386정서의 문제이고, 그게 아직도 대세로 남아이는 우리 지식사회의 위태로운 현주소를 말해준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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