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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 이대로 그냥 좋은 겁니까?
조우석   |  2014-12-23 14:13:57  |  조회 2259 인쇄하기

일본 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

이대로 그냥 좋은 겁니까?

 

조우석 <문화평론가>

 

 

민족주의 정서, 이게 문제다. 한국인의 정신세계에서 가장 넓은 공통분모를 차지하는 민족주의는 비유컨대 양날의 칼이다. 적절하게 사용할 경우 사회의 구심점이 되겠지만, 너무 강세를 보여 콘트롤이 안 될 경우 나치 독일의 경우처럼 맹목(盲目)으로 치닫는다. 그런 사회 풍토에서 창조적 지성이 숨 쉴 수 없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오도된 민족주의가 좌파 민족주의인 북한과 동질감을 갖게 하니 더욱 가관이다.


그게 ‘우리민족끼리’의 NL정서로 자리 잡은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일부는 얼마 전 극적으로 해산된 통진당 자주파와 닮은꼴의 집단심리로 이어진다. 민족주의에 대한 지적으로 인상적인 게 <대한민국 역사>의 저자인 경제학자 이영훈 교수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1980년대를 기점으로 민족주의의 성격이 바뀌었는데, 그 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중요하다. 즉 당초 민족주의는 건국과 부국에 필요한 정치적 동원의 이데올로기였다.

 

[저작자] 사이다맛나는세상  [이미지출처] http://blog.naver.com/bk85219?Redirect=Log&logNo=150182789635

 

 

눈먼 반일(反日)로 줄달음치는 민족주의, 그게 문제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의 일민주의(一民主義), 박정희 대통령의 조국근대화 구호가 나왔다. 이후 민족주의의 성격 변화는 좌파가 주도했다.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그들은 민족주의 바탕에 깔려있는 애국주의를 제거해버렸고,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존중도 내던졌다. 벌거숭이가 된 맹목의 민족주의 이념은 이내 북한에 대한 옹호로 연결됐다. "1980년대 이후 민족주의는 반일, 반미, 통일운동의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다."는 이 교수의 지적은 설득력이 높다.(송복 엮음 <통합, 누구와 어떻게 할 것인가> 33쪽)


반일, 반미, 통일운동의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민족주의 문제를 잠시 짚어본 것은 서울 종로구 일본 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을 둘러싼 한일간 외교 분쟁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27일 양국간 현안인 위안부 문제를 풀기 위한 국장급 협의에서 일본 측이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요청해왔다. 일본에서는 우파 성향의 시민단체에서 소녀상 철거를 제기해왔으나 정부가 공식협의 채널을 통해 문제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의 정서로는 말도 안 되는 요청이지만, 역지사지를 하자면 이해를 전혀 못할 것도 아닌 사안이다. 치외법권인 자국 대사관의 코앞에 반일의 상징인 동상을 세운 것을 저들 일본 당국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때만 되면 몰리는 피켓 시위대에도 마음 편할 리 없다. 문제는 우리 쪽이다. 반일 민족주의의 아이콘인 소녀상이 이렇게 국제적 파장을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우리는 마이동풍에 옹고집으로 일관한다.


그래서 동상이 담고 있는 일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다. 한국의 언론 역시 위안부 소녀상 문제 논란을 깔아뭉개기로 일관하거나 대중의 정서에 영합하는 보도를 반복한다. 당장 연합뉴스는 "경색된 한일관계를 정상화 시켜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국장급 회의에서 나온 일본측의 이런 요구는 억지를 넘어 우리 정부와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으름장부터 놨다. 조선일보도 같은 날짜(12월1일자) 보도에서 "일본 정치권이 이 문제에서 더욱 퇴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렇게 경직된 상황에서 위안부 소녀상 문제에 제3의 의견을 내거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는 목소리는 사회적 금기에 속한다. 심할 경우 매국노 소리를 듣는 사회적 불이익을 당할 지 모르는데, 이 글은 그런 걸 괘념치 않으려 한다. 목표는 소녀상을 둘러싼 우리사회의 통념이 과연 건강한가를 묻는 것이다. 우선 3년 전 설치된 이 동상은 미학적으로 쾌적하지 않다. 완성도 면에서 조야(粗野)한 이런 수준으로 인류 보편의 인권과 도덕을 말할 순 없다.


미학적으로 많이 부족하고, 고증도 꽤 수상한 소녀상


때문에 동시대의 국제 윤리를 상징하긴 역부족이며, 일본에 대한 도덕적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카드로 쓸모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피할 수 없는데, 편견을 배제한 채 유심히 보라. 소녀의 얼굴 표정이 편안하지 않으며 어딘가 경직돼 있다. 얼굴과 포즈에서 소녀다운 순수함이 배어있어야 하고, 최선의 경우 인간적 위엄과 함께 모종의 결연함이 풍겼어야 했는데, 소녀상은 이런 기준에서 멀다.


회화(繪畵)도 아닌 동상 작업에서 이런 걸 구현하기는 실로 어려운 게 사실이다. 미학에 치중하는 예술작품의 차원을 넘어서 최선의 경우 ‘성공한 환경조형물’이자 우리시대 기념비 반열에 올라서야 했다. 그래서 휴머니즘과 평화에 호소하는 한국민의 마음까지를 적절히 보여줘야 했어야 했다. 소녀상은 이런 기준에 현격하게 멀다.


상식적으로 고증이 어색한 대목이 한두 곳이 아닌데, 우선 단발머리 차림이 걸린다. 당연히 소녀가 입고 있는 한복과 매치도 어색하다. 일제시대 젊은 여성들에게 단발머리는 그렇게 보편적이지 않았다. 1920년경 유래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오엽주(吳葉舟)가 1920년 화신상회에서 미장원을 개업하여 유행시킨 게 단발머리라고 하는데, 당시엔 전통적인 댕기머리가 압도적이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작품을 만든 작가는 다소 엉뚱한 부연설명을 하고 있다.


단발머리는 그 소녀가 부모와 고향으로부터 강제로 단절됐음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무릎에 꼭 쥔 두 주먹은 무례한 일본의 작태에 대한 분노라는 것이다. 그게 이 작품을 제작한 부부 조각가 김운성(51), 김서경(50)씨의 말인데, 어설프기 짝이 없는 군더더기 설명으로 들린다. 소녀상의 어깨에 내려앉아 있는 작은 새도 세상을 뜬 위안부 할머니들과 현재의 우리를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자유와 평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말도 견강부회이다.


즉 소녀상은 조각품으로 수준이 많이 떨어지는데다가 어설픈 정치의식이 스며든 '편치 않은' 조각이라는 게 필자의 움직일 수 없는 판단이다. 더 큰 문제는 시민들의 풍속이다. 일부 시민단체와 서울시민들은 날이 춥다고 털모자에 스카프 그리고 양말을 신겨주는 게 보통이다. 이런 모습이 잊지 않고 등장하면서 일간지에 등장하며 한국민의 민족주의 정서를 그때그때 자극한다.


명백한 외교적 결례,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하지만 그 자체가 우리네 풍속이 아니다. 경주남산 등 야외에 널린 게 부처상인데, 예나 제나 한국에서는 춥다고 옷 입혀주고 목도리를 둘러주는 일 따위가 없었다. 그건 정확하게 일본식 풍속일 뿐이다. 우리는 일제에 반대하기 위한 동상을 일본 식 헤어스타일로 장식해놓고, 추모도 일본 스타일로 하고 있는 셈이다. 결정적인 건 따로 있는데, 치외법권 지대인 외국 대사관 앞에 사전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서 이런 동상을 떡 하니 설치해놓은 것부터가 명백한 외교적 결례에 속한다.


사실 이 동상물의 설치 과정도 사회적 합의가 부족했다. 필자가 알기에 위안부 문제가 지난 10~20년 동안 계속해서 한국민의 정서를 자극하자 이 부부 조각가가 제작 의뢰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진해서 동상 제작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별다른 검증과정(작가와, 작품의 성격에 대한)이 없이 이 제안이 덜컥 받아들여졌다. 필자는 이 부부 조각가가 미술계에 적절한 대표성을 가졌는지도 거의 알지 못한다.


결국 설익은 조각 작품이 석연치 않는 과정을 통해 공공장소에 부적절하게 세워진 게 지금 문제의 시발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지금 위안부 소녀상은 확산일로다. 고양시 호수공원과 성남시청 공원, 수원 올림픽공원 등에 곧 등장할 전망이고, 대전에서도 세금과 시민 성금을 모아 만든 동상을 내년 3월 세운다. 각지는 물론이고 미국 글렌데일과 디트로이트 시(市) 등 해외에도 세워지고 있다.


소녀상과는 별도로 미국 뉴저지 버겐카운티와 뉴욕주 낫소카운티, 캘리포니아 가든그로브, 버지니아 페어펙스 등에는 미국 지방정부와 의회가 주도한 기림비들이 세워져 있다. 모두 일본의 인권유린 만행을 고발하고 피해자들의 넋을 기리는 차원의 기념물들이다. 안타깝다. 이런 것이 물리적 숫자를 마구 불리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앞서 필자의 문제제기에서 자유롭진 않다.  서두에서 밝힌 1980년대 이후 반미, 반일의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민족주의가 유독 지금 와서 맹렬하게 작동하는 모양새인데, 한 번쯤 이렇게 물어봐야 한다. 왜 위안부 문제에 항의하는 동상이 해방 직후가 아닌 70년이 다 된 지금 시점에서 속속 등장하는 거지? 그럼 미국에 세워지는 소녀상과 기림비는 무슨 연고일까?


내년은 한일수교 반세기를 맞는 역사적인 해


그건 큰 나라 미국다운 제스처이고 그게 인류 보편의 관심사일 수 있음을 확인해주는 일이다. 하지만 오해는 안 된다. 그렇다고 미국이 동맹국 한국이 하듯이 반일 외골수로 나가면서 자국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있다는 징후는 전혀 없다. 외려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 중시정책(Pivot to Asia)속에서 한일 간 우호 증진을 권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위안부 소녀상과 관련해 스스로 자문을 해봐야 한다. 옛 식민지 시절 피해자들이 고통을 사회적 기억으로 남기고 그들의 아픔과 함께 하는 것은 좋으나 그걸 외교적 결례를 무릎 쓰는 방식으로 하는 게 온당한가?


함께 물어야 할 건 또 있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사이에 한반도를 둘러싼 패권경쟁이 재현되는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이런 반일의 스탠스가 과연 현명한 일인가?‘묻지마 반일 드라이브’와 별도로 이 땅의 얼빠진 좌파들은 친중국 사대주의 모드 일변도인데, 지금의 반일주의가 아차 하면 큰일일 수 있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이 비상한 와중에 한국사회가 이렇게 나태하고(지적으로), 무책임해도(국제정치 전략으로)되는 걸까? 더구나 2015년은 한일 수교 반세기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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