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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와 영화에서 재발견한 우리의 정체성
조우석   |  2015-01-22 13:28:37  |  조회 2449 인쇄하기

가요와 영화에서 재발견한 우리의 정체성 

 

- 영화 '국제시장' 1000만 관객 돌파 의미

 

조우석 <문화평론가>

 

 

"모든 시대는 저마다 신(神)앞에 선다."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랑케의 말이라는데, 어느 나라건 그 시대는 나름의 가치와 시대정신이 있으니 누가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 말을 좀 다른 맥락에서 패러디한 사람은 뜻밖에도 사회학자인 서울대 교수 전상인이다.


"모든 시대는 저마다 대중음악 앞에 선다."


무슨 말일까? 1827년 봄 비엔나에서 열린 베토벤 장례식에 몰렸던 20만 음악애호가들과, 앨비스 프레슬리를 못 잊어 30년 째 멤피스를 찾는 인파 사이에 질적 차이란 없다는 뜻이다. 또 있다. 우리 삶을 위로해줬던 가수 이미자와 남진, 그 이전의 고복수, 남인수, 현인 등이 들려줬던 대중가요야말로 근현대사의 증언으로 손색없다는 뜻인데, 필자 역시 그 말에 공감한다.


즉 개발연대를 두고 습관처럼 "어둡고 암울했던 그 시절'이라고 말하는 속류(俗流)지식인들이 허위의식보다 대중가요가 차라리 윗길이다. 자의식 과잉으로 몽롱해진 순문학의 소설-시보다 더 정직할 수도 있다. 난데없는 근현대사와 대중가요 사이의 상관관계를 더듬어본 건 영화 '국제시장' 때문이다.

 

 


덕수의 손녀가 불렀던 가요 '흥남부두 금순이'의 여운


13일 부로 그 영화가 1000만 관객 돌파를 기록했다. 부모 세대의 삶과 근현대사를 왜곡 없이 바라본 이 작품의 성공에 더없이 기쁜 마음인데, 필자에게 이 작품 이미지는 영화 말미 주인공 덕수(황정민)의 손녀가 부르는 '굳세어라 금순아' 하나로 각인됐다. 그걸 끈적거리지 않고, 마치 유치원 동요 부르는 걸로 처리한 절묘한 마무리가 여운이 남는데, 어쩌면 '국제시장'의 주제가가 그 노래다.


가수 현인의 1953년 히트작인 '굳세어라 금순아'(강사랑 작사-박시춘 작곡)는 6.25전쟁을 전후 탄생한 3대 명곡의 하나다. 3대 명곡은 '굳세어라 금순아'와 함께 남인수의 '가거라 삼팔선'(이부풍 작사-박시춘 작곡. 1948년 발표), 이해연의 '단장의 미아리 고개'(반야월 작사 1955년 발표)가 꼽힌다.'


그중 '굳세어라 금순아'만의 매력은 따로 있다. 그걸 정확하게 지적한 사람은 대중가요의 사회사에 그중 해박한, 멋진 단행본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2002년, 황금가지)의 저자인 이영미(54)다.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짚어내고 있다.


"전쟁의 이별을 노래한 '굳세어라 금순아'는 그 리얼리티와 구체성, 가사의 서사성(敍事性, 내러티브)이 마치 장편소설이나 극영화를 보는 것 같다."(66쪽)


당신이 무심코 불렀을 그 가요의 노랫말을 음미해보시라. 1절은 전쟁통 눈보라 치는 흥남부두의 생이별을 담고 있지만, 2절은 장면이 훌쩍 바뀐다. 국제시장 장사치로 사는 피란지 부산에서의 현실이 생생하다. 20세기 한반도 최대 사건을 이 짧은 노랫말에 속도감 있고, 입체적으로 담아냈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장편소설 못지 않은 그 노래의 입체적 이야기 구조


그래서 1절은 영화 '국제시장' 도입부의 장면과 완전히 일치한다. 아들 덕수가 혼란 통에 아버지, 여동생과 헤어지면서 어머니와 동생 둘의 가장이 되는 순간이다. 덕수는 "길을 잃고 헤매"다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1‧4) 이후 나 홀로" 부산에 정착하는데, '굳세어라 금순아' 2절 배경도 부산이다.


국제시장에 둥지를 차린 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바라보지만, 1절에 비해 정겹다. 노래가 그러하듯 영화 '국제시장'은 이후 펼쳐진 삶 속에서 "가족은 내가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지로 견뎌낸 덕수의 분투 가 작품의 몸통이다. 그건 전쟁과 가난 속에서 ‘내 가족은 내가 먹여 살린다’는 의지로 견뎌낸 억척의 시간이었다.


영화가 보여주듯 이역만리 유럽 땅에서 석탄을 캐야 했고, 큰 체구의 서양인 병든 몸을 돌보고, 남의 나라 전쟁터인 월남전 사지(死地)를 돌며 끝내 가난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낸 위대한 이야기는 덕수 개인의 스토리이자, 신데렐라 국가 대한민국의 장쾌한 스토리였다.


물론 영화 '국제시장'에 정치색은 없다. 우파 영화라고 규정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좌편향이 심한 대표적 문화장르인 영화계에서 부모 세대의 삶과 근현대사를 가감 없이 바라본 이 작품의 등장은, 이후 1000만 관객 돌파란 영화사적으로 각별한 의미가 있다. 투박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도 세대를 망라한 호응을 얻어낸 것은 분명 이례적 성취다.


하지만 현재 얘기로 끝나는 영화와 달리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다. 과거-현재를 뛰어넘어 미래를 말하는 3절이야말로 이 노래의 절창(絶唱)이다. 단행본 <흥남부두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의 저자는 3절이 반공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고 지적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386세대의 그런 생각과 달리 이 노래가 1~2절로 마무리됐을 경우 얼마나 뒷맛이 허전했을까? 


올해가 평화통일의 원년임을 암시하는 그 노래 3절


"철의 장막 모진 설움 받고서 살아간들/ 천지간에 너와 나인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다오 남북통일 그날이 되면/손을 잡고 울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보자."


어떠신지? 3절 때문에 이 노래는 피란민의 한탄을 뛰어넘어 현재적 의미를 지닌다. 올해가 북한급변 사태와 통일로 가는 원년이라는 관측도 많은데, 어쩌면 그렇게 이 노래의 여운이 절묘한지 모른다. '국제시장' 속편이 나온다면, 배경은 3절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마무리다. 지난해가 친노좌파 영화 '변호사'로 출발했던 것과 달리 '국제시장'의 대박이 2015년 새 출발의 모멘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하나 더. 이영미의 책 제목이 실은 또 다른 절창이다. 옛 가요를 패러디한 그 제목은 우리의 정체성을 되묻고 있다. 맞다. 흥남부두 금순이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 가긴 어디로 갔나. 모두 여기 이 땅에 두 발을 굳게 딛고 살고 있다. 즉 5000만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금순이가 아닐까? 찢기고 참담했으나 끝내 일어섰던 과거를 잊으면 우린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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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혜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과거를 잊으면 우리는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항상 좋은 글 올려 주셔서 넘 감사드립니다.   1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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