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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이후의 유럽인들에게 고대 그리스인은 인간의 경지를 넘어 반쯤 신의 경지에 들어선 경이로운 종족이었다. 그리스인들이 남긴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그들의 의식과 관념은 1000년 동안 기독교의 지배를 받아 온 유럽인들에게는 경이(驚異) 그 자체였다. 신의 뜻에 따라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라는 기독교는 수세기에 걸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에 수반한 전쟁과 살육에 지친 유럽인들에게는 구원이었다. 기독교의 힘으로 유럽에 평화가 정착되면서 ‘암흑시대’가 끝났고 사람들이 비로소 숨 쉬며 살 수 있게 됐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혜택은 생명 자체였다.
그러나 기독교는 (특히 중세 유럽의 기독교는) 인간의 육체를 죄악의 온상으로 보았고, 인간의 모든 욕망은 인간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데 방해가 되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욕망은 억제해야 하는 것이었고, 예술적 본능까지 대부분의 경우 종교적 영역 내에서 발휘가 허용됐다. 학문도 수도원의 전유물이다시피 했고 ‘파우스트’의 전설이 말해 주듯 과도한 지식욕은 죄악시됐다.
그런데 13∼14세기부터 재발견된 고대 그리스·로마의 학문과 문화는 중세 기독교 사회의 그것과 판이한 것으로 경탄을 금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스에서는 모든 시민이 완전한 지적인 자유를 누렸다. 그래서 온갖 정치 사상, 철학이 배출됐고 인생의 경영에 대해서도 극도의 쾌락주의에서 극단적인 금욕주의에 이르기까지 온갖 주의와 사상이 출연했다.
아테네는 또 민주주의의 발상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말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man is a political animal)는 ‘인간은 그 본성이 도시국가(polis)를 건설해서 사는 동물이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민주주의 도시국가 아테네는 모든 시민이 자신의 잠재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전시켜 그 능력을 공동사회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발휘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영예와 부를 얻을 수 있는 살 맛 나는 사회였다.
게다가 그리스에서는 인간의 육체를 죄악시하거나 억압해야 할 애물로 보지 않았다. 그 반대로 인간의 육체를 아름다운 것으로 보았고 육체의 힘과 아름다움을 최대한으로 배양하는 것에서 큰 기쁨을 느꼈다. 그리스의 조각은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재현했고 올림픽을 비롯한 여러 운동 경기는 인간 육체의 한계에 대한 부단한 도전이었다. 그리스인들이 육체를 얼마나 숭상했는가는 그들의 영웅들이 지략보다 힘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런 의식은 인간의 육체를 억압해야 할 악마로 보던 기독교적 가치관에 익숙한 유럽 사람들에게 얼마나 경이로웠겠는가? 그리고 어느 정도 평화가 정착되고 시민 사회의 기틀이 잡힌 후에 새로운 발전의 에너지, 발상 전환의 기폭제를 찾고 있던 지식인들에게는 너무나 가슴 벅찬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유럽 지성인들이 그리스를 찬미한 것은 당연했지만 고대 그리스 역시 많은 약점을 안고 있었다. 풍성한 지적 자유의 부산물인 궤변학파의 폐단은 컸다. 욕망의 자유로운 충족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지만 나의 욕망 추구는 남에게 피해나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아 발전, 실현의 권리가 윤리에 선행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육체의 힘과 능력의 배양 역시 지극히 바람직한 것이지만 사람에게는 육체와 욕망의 억압에 의해 배양되는 능력도 있다.
개인의 자아실현 욕구와 공동사회 성원으로서의 의무를 조화시키는 것, 그것이 인류의 영원한 과제다. 그 과제를 가장 잘 해결하는 민족이 당대 제일의 번영과 발전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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