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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광복 다큐를 만든 KBS의 PD 그의 머릿속을 스캔한다
조우석   |  2015-02-23 15:17:26  |  조회 2205 인쇄하기
문제의 광복 다큐를 만든 KBS의 PD

그의 머릿속을 스캔한다

 

- 조선시대로 돌아가려는 ‘한국인의 가난DNA’가 큰 문제



조우석 <문화평론가>

 

 

“가난은 한국인의 DNA다. 유전자는 회귀본능이 있다. 한국 근현대사는 이 가난한 DNA를 유지 보수하려는 세력(이게 이른바 ‘깡통 진보’다)과, 그것을 끊어내려는 세력의 싸움이었다.”


소설가 남정욱이 한 1년 반 전 조선일보 칼럼에서 했던 말인데, 한국인 심성의 하나를 드러낸, 설득력 있는 명제다. 우리에게는 지지리 궁상이던‘평등한 가난’에 갇혀 살던 조선왕조로 되돌아가려는 집단정서 혹은 문화적 충동이 존재한다는 통찰이다. 그래서 67년 전 건국 이후 이승만이 선택했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란 한국 풍토에선 지금도 이질적이다.


상황이 그러하니 박정희가 지휘했던 1960~70년대의 성공과 부(富)의 창출 또한 여전히 낯선 경험으로 남아있다. 그 결과 지식인 상당수는 시도 때도 없이 대한민국 건국을 무시하려고 하며, 어떤 바보스러운 야당 정치인처럼 박정희는 히틀러 같은 독재자라고 전혀 근거 없이 저주를 하곤 한다.


 

[이미지출처] '광복70주년 특집 뿌리 깊은 미래' / KBS 방송캡쳐 화면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인 KBS 다큐


그 신문 칼럼을 떠올린 건 KBS가 지난 2월 초 방송한 다큐멘터리 ‘광복 70주년 특집 뿌리 깊은 미래 1편 - 생의 자화상’ 때문이다. 이 다큐는 방송 직후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일제시대 이후 6•25전쟁까지의 다룬 프로가 대한민국 건국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평가절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 전체를 통틀어 ‘건국’이라는 표현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건국대통령인 ‘이승만’ 언급도 방송 전체를 통틀어 한 번도 나오지 않으며 '대한민국'이라는 표현도 없다. 비판은 KBS 내부에서 먼저 나왔다. KBS공영노동조합 성명서는 훌륭한 문제제기였다.


“우리 모두가 피땀 흘려 가꿔온 대한민국의 존재를 부정하고 비판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광복 70주년 특집’이란 타이틀 아래 방송한 의도가 무엇인지 이를 기획한 제작진과 게이트키핑(gatekeeping)을 담당해야 할 경영진에게 묻고 싶다.”


이 다큐의 스크립트를 검토해봤다. 놀랍게도 거의 매 한 줄 마다 ‘폭탄’이 있다. 전쟁 직후 한국군 작전권을 미군에게 넘긴 것에 대한 왜곡 비난, 흥남철수 때 미군에 의한 원폭 투하 소문이 대량 월남을 재촉했다는 거짓 선동을 포함해 반미, 반제, 반대한민국이란 코드가 방송 60분 내내 켜켜이 들어있었다.


지난 대선 때 등장했던 동영상‘백년전쟁’의 세련된 버전에 불과한 불량 프로그램이 전파를 타고 안방을 습격하는 구조가 실로 안타깝다. 존경 받는 역사학자인 이인호 KBS 이사장이 이 다큐에 조심스레 문제제기를 한 건 당연했다. 그런데도 이사장은 프로그램에 대해 간여하지 말라고 반박하는 방송국 내 좌파세력의 적반하장을 지켜보며 다시 억장이 무너졌다.


새롭게 선보인 좌파 감상주의의 끝판왕


누구는 이 프로그램을 보고 구역질이 났다고 했다는데, 필자가 그랬다. 이 다큐의 스타일부터 그랬다. 왠지 차가운 듯 개운치 않은 느낌의 여성이 내레이션을 맡고, 전체에서 고도의 심리전인 정서적 터치를 한 것은 시청자들의 눈과 귀에게 거부감 없이 스며들기 위한 장치인데, 그건 깡통 좌파의 새로운 변신이었다.


이 점을 지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앞으로 더욱 기승을 부릴 좌파정서 내지 좌파 감상주의가 어떤 식으로 모습을 바꿔 등장할 지를 미리 내다보려면 새로운 각도에서의 해석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이런 얼치기 신파에 낡은 해석과 가치를 담으려 한 PD의 꼴이 한 눈에 들어올 수도 있다.


즉, 그가 1980~90년대 어떻게 성장하고 대학을 다녔는지도 가늠된다. 옛 동영상 각종 이미지를 다시 주물러 시청자들에게 무얼 심어주려는 의중(意中)도 읽을 수 있고, 그 중간에 옛 가요 몇 개를 집어넣어 좌파 감상주의를 쥐어짜내는 태도에서 그 PD의 제작의도까지 읽어낼 수 있다. 즉 이 프로그램의 문제는 대본만큼 행간에 들어있는 셈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그것이야말로 앞에서 언급했던 ‘한국인의 가난 DNA’다. 증거는 많다. 즉 이 다큐는 시작하고 나서 30초 동안 서울 광화문의 야경과 세종로 주변을 스케치한다. 그러고 2분 가까이 시인 정지용의 시에 멜로디를 붙인 이동원-박인수의 노래 ‘향수’를 깔아주며 분위기를 조선왕조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극히 조선적인, 너무도 조선적인 풍경을 연속해 보여준다.


이게 이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정서라는 걸 놓치면 안 된다.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새참을 나르는 순박한 아낙네, 느릿느릿하면서도 평화롭게 도리깨질을 하는 농부…. 그건 시작에 불과하다. 구불구불 논두렁 사이로 논일을 하다가 곰방대 담배를 피우는 베잠방이 차림의 농부가 스쳐 지나간다. 멀리선 멍멍이 짖는 소리가 꿈결처럼 들린다. 그렇다. 이 프로그램은‘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그 옛날의 추억을 강요하는 것이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그 옛날의 추억


PD의 뜻은 이렇다. 미군이 없었고, 그래서 외세도 뭐도 없이 ‘우리민족끼리’ 살았던 그 시절은 얼마나 훌륭했던가를 은연중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물어보자. 한국사에 그런 ‘역사의 에덴시절’은 존재했던가? 정지용이 노래했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 있기나 했을까?


그건 시적 환상에 불과하다. 못난 PD의 머릿속에서 그게 '불멸의 한국사 원형'으로 자리 잡았다. 그건 좌파 이념이 만들어낸 역사의 판타지에 불과하지 않던가? 그걸 두고 김구 식 민족주의의 반영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지지리 궁상을 떨던 조선왕조 옛 시절로 돌아가려는 ‘한국인의 가난 DNA’의 필사적인 작동에 다름 아니다.


그건 수구적 옛 질서에 편입되려는 퇴행적 의식구조에는 알게 모르게 좌파식의 이른바 민중주의와 평등주의 이념이 가득하다. 건국과 함께 시작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의라는 신식의 이념을 내동댕이치고, 대원군 식의 시대착오적 쇄국주의(鎖國)의 맹렬한 재등장이다. 시민교육의 실패에서 만들어지는 그런 의식구조에서는 산업화 근대화의 성취는 모두 부정된다.


결국 이 다큐는 논란 끝에 본래 예정됐던 3~4회분을 못 채우고 2회 분을 내보내는 걸로 조기 종영됐다. 천만다행이지만, KBS 내부에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분위기는 크게 바뀐 게 아니다. 이 글의 주제인 조선시대의 가난 DNA가 사라진 것 역시 아니다. 필자의 이런 판단은 오버가 아니다.


조금 전 언급했던 이동원 박인수의 노래 ‘향수’ 직후 다큐의 성격을 알리는 코멘트가 이 PD의 의중을 반복해서 확인케 해준다. 이 다큐 제목이 ‘뿌리 깊은 미래’인데, 대한민국의 미래는 건국 이후의 성취를 모두 무효로 한 채 그 이전으로 돌아가야만 찾을 수 있다고 하는 좌파들의 세계관을 새삼 보여준다. 유치 찬란해서 마음 불편하시겠지만, 그걸 다시 들어보자.


“다시 걷고 싶은 시간 하나 있다. … 잊히지 않는 기억 하나 있다. 꽃구름처럼 아름답지만 닿지 않는 기억. 가슴에 박힌 사람 하나 있다. 투박하지만 하늘빛처럼 말간 마음 가진 사람. 가슴에 매달고 살아온 시간과 기억과 사람. 그것이 우리의 뿌리였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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