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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부분의 종교에서 신은 인간에게 도덕성을 요구한다. 기독교를 비롯한 세계의 주요 종교는 대부분 신의 또는 우주의 섭리에 따라 도덕적으로 삶으로써 구원을 얻으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신들은 완벽하게 도덕적이고 대개는 무척 근엄한 존재로 인식돼 있다. 그러나 그리스의 신들은 매우 자유분방하고 인간에게도 특별히 윤리적으로 살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신이 인간을 친자녀처럼 보살피고 인도하는 데 반해 그리스의 신들은 인간을 특별히 아끼지도 않고 인간에 대한 책임감도 없다. 그들이 총애하는 인간에게는 풍성히 특혜를 베풀지만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서는 몰라라 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그래서 신들의 장난과 기분의 희생양이 된다.
그리스 신화에는 올림포스 12신과 수많은 잡다한 신이 있는데 올림포스 12신 중에서 우두머리인 제우스신은 지독한 바람둥이였다. 사실 제우스를 필두로 거의 모든 그리스의 신은 바람기가 많고 행실이 별로 좋지 않았다. 많은 신이 인간의 여성에게 사랑을 느꼈는데 인간 여성들은 일단 신에게 찍히면 그들 정열의 애꿎은 희생양이 됐다. 그러나 신들은 자신은 기분 내키는 대로 무책임한 행동을 일삼지만 인간이 지나치게 부도덕하면 아주 밉게 보았고 징벌을 내렸다.
그리스 신화란 메마르고 척박한 토양에서 삶이 매우 고달팠던 그리스인들이 인생의 잦은 불상사를 신들의 유희와 변덕스러운 기분에 기인하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설명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신화를 받아들임으로써 인생의 많은 고난을 수용하고 체념했고, 한편으로 그들의 안전과 발전을 위해 서로가 지켜야 할 것을 신들의 명령으로 제시했다.
그중에서 그들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주신 제우스의 명령으로 설정했다. 그리스 신화는 제우스신이 맹세를 어기는 자와 나그네를 해치는 자, 그리고 시체를 훼손하는 자를 몹시 미워해서 반드시 징벌한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의사소통이다. 그런데 아무리 같은 언어를 쓴다 해도 상대편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면 동물적 생존을 넘어선 인간 사회는 성립될 수 없다. 우리가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다면 우리는 아무 일도 타인과 더불어 할 수 없고 신경 쇠약에 걸렸다가 미쳐 버리게 될 것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거짓말을 하게 되지만 상대편이 맹세하며 한 말까지 믿을 수 없다면 인간관계는 정복과 약탈의 단계에서 조금도 나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사회생활, 그리고 인간관계 정립의 가장 기본 조건이 되는 언어의 신뢰를 제우스의 엄한 명령으로 설정한 것은 공동사회·문명사회를 건설하려는 그리스인의 강렬한 소망에서 나온 것이다.
손님을 해치지 말라는 명령 역시 도시국가 내의, 또 도시국가 간의 사람의 왕래가 활발해질 수 있는 안전장치로 고안된 것이리라. 인간과 국가는 상호 교류를 통해서만 활기를 띠고 번영과 발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다양성과 발전적인 삶을 추구하는 그리스인들의 의지가 이 명령 속에 담겨 있다. 시체를 해치지 말라는 명령 역시 모험심 많은 그리스인들이 타지에 가서 생명을 잃게 돼도 내 시체가 욕보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주저 없이 여행과 모험 길에 오를 수 있도록 고안된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시대 이후 인간은 인생의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법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현대 한국인이 과연 고대 그리스인에 비해 발전적 삶을 이루어 내는 지혜가 낫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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