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나라에서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이 거론된 것이 벌써 오래 전입니다만, 그런 사정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왕적 대통령(imperial president)이란 말을 처음 꺼낸 것은 역사학자 슐레징거 2세입니다. 그가 자신의 책 <제왕적 대통령제>를 통해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이 휘둘렀던 막강한 권한을 그렇게 빗대어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 말의 본래 뜻은 이랬습니다. 3권 분립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권한이 다른 정부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막강해 거의 제왕의 지위와 비견된다는 것이고, 극단의 경우 독재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였습니다. 우리 현대사의 흐름에서도 그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1960년 4•19 이후 이승만 정부의 ‘제왕적 대통령’에 진력이 난 정치권과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내각책임제 헌법을 도입했습니다. 독재를 무너뜨리고 내각제를 하면 민주주의가 만개할 것이라는 우리들이 공유하는 믿음 때문이었는데, 현실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극도의 혼란 끝에 다시 3공화국이 등장했고, 다시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 경이로운 경제성장과 권위주의를 우리는 동시에 경험했으니까요.

이런 현대사의 경험 속에 1987년 6공 헌법을 제정하면서 대통령의 임기를 5년 단임으로 제한하고,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을 폐지하는 등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에 우리 모두는 조금씩 진력이 났던 셈입니다.

반면 국회엔 대통령 탄핵권을 부여하는 등 입법부 권한이 대대적으로 강화됐던 과정을 우리 모두는 잘 압니다. 대통령과 국회 간에 상생(相生), 화합을 통한 바람직한 민주주의 작동을 기대했던 게 벌써 지난 30년이 다 됩니다. 우리가 기대해온 것은 국회의 입법 권력이 강화된 만큼 국회가 국정의 동반자라는 책임감을 갖고 대통령의 국가 통치에 협조해야만 원활한 국정 운영일 것입니다.

세상은 돌고 도는데, 어느 순간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은 어느덧 사라지고 국회 독재(elective despotism)란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그게 요즘 우리 정치판의 뒤바뀐 권력관계인데, 권력의 중심이 청와대에서 국회로 옮겨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국리민복을 위한 정책을 펴고 싶어도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관련법 제정에 협조해주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회만 나면 경제관련 법안의 통과를 호소하는 것도 그런 배경입니다. 이렇게 힘이 세진 국회가 요즘 다시 도마 위에 올랐고, 때문에 이달 굿소사이어티 ‘이달의 이슈’에서는 이 문제를 조명할까 합니다. 즉 비대해진 국회가 현 정원(300명)까지 늘리자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국민들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던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여론이 매우 비판적이어서 8월 초 조선일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75%에 이르는 국민이 국회의원 정수 증원에 반대했습니다. 절반이 넘는 57%가 정수를 감축해야 한다는 적극적 반대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합니다.

이런 반응을 의식한 국회가 정원수 증원 움직임을 최근 멈췄습니다. 내년 총선에서 구성된 20대 국회에서도 현행 300명을 유지한다고 최근 여야가 합의했습니다. 천만다행입니다. 기회에 우리는 논의를 더 확장합니다. 국회개혁을 고민해보자는 것입니다. 이달 글을 써주신 한 원로 정치학자는 이 나라의 대의민주주의가 정당성을 상실할 위기라고 지적하면서 국민입법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설치를 제안했습니다.

획기적인 조치가 분명한데, 국회의원의 급여, 정원, 행동윤리, 징계, 회의진행 등에 대한 법규를 국회가 아닌 이 위원회를 통해 제정할 경우 여의도 정치에 대한 효과적인 감시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겠지만, 국회의 입법활동을 올바로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의 하나라는 점에서 일단 경청해 볼만 합니다.

회원 여러분, 아직은 더위가 여전합니다. 노염(老炎)도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아침저녁으론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니 오는 계절을 막을 순 없을 것입니다. 청명한 가을을 맞아들이기 위해서라도 오늘 우리의 할 일을 재삼 점검해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