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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자본주의 탓?
서지문   |  2005-10-14 12:56:31  |  조회 1660 인쇄하기
며칠 전 우연히 대학 졸업 후 처음 신문사에 취직했을 당시의 월급봉투를 발견했다. 1969년 3월 영자신문 코리아헤럴드사의 수습기자 봉급이 1만원인데 갑근세 520원과 국민저축보험료 250원을 공제하고 수령액이 9230원이었다. 그후 30여년 사이에 나의 봉급은 몇백 배가 올랐는데, 힘들게 유학을 하고 학위를 취득한 나의 노력이 몇 배를 올렸고 100배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으로 자연히 상승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그러나 ‘자연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일부 사람들이 먼저 부자가 되게 하라(讓 一部分人 先富起來)’는 것은 1978년 개혁개방을 실시하면서 한 덩샤오핑(鄧小平)의 유명한 선언이다. 당시 중국의 1인당 GNP는 50달러도 채 안 됐는데, 11억 인구의 생활수준을 골고루 향상시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기업을 일으키고 교역을 개척하도록 해서 고용 창출과 산업 발전의 견인차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공산주의의 기본원칙을 파기하는 이 선언 덕분에 중국은 맹렬한 속도로 경제성장을 해서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浮上)하고 있고, 또한 온갖 사회 갈등이 표면화되어 격랑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에서 ‘자본주의’ 하면 연상되는 말 1위로 꼽힌 것이 ‘빈부격차’였다고 한다. 정말 빈부격차는 자본주의의 고유한 산물일까?

가장 극심하고 고착화된 빈부의 격차는 봉건주의나 전체주의 사회에 존재한다. 봉건왕조에서 왕과 귀족들이 호화로운 궁궐과 성을 짓고 사치와 향락에 탐닉하는 동안 대다수 백성들은 굶주림에 허덕였고, 구 소비에트연방에서 공산당 간부들은 흑해 연안에 있는 그들의 다샤(별장)에서 비밀 연회를 즐겼다. 북한의 지도부는 극심한 식량난으로 주민들 수백만 명이 굶어죽는 동안에도 환락을 자제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빈부의 차가 심한 것처럼 생각되는 이유는 부유층과 서민의 생활 영역이 철저히 격리되어 있지 않아서 빈곤계층이 부유층의 소비 행태를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민중의 의식이 깨어서 계층 간의 경제적 차이를 부당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산국가의 빈부 격차는 더 극심하지만 생활고와 억압에 짓눌린 무력한 일반 백성들은 지배계급의 부(富)를 감히 문제삼지 못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체념 속에 억압되었던 욕구를 자극해서 의욕과 불만을 동시에 생산한다. 빈곤국이 경제개발을 하면 처음엔 급성장을 하지만 얼마 후에는 한계점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후발주자들에게는 기회가 적어지게 되고, 사회적 불만이 불어나게 된다. 이 시점이 정말 그 사회의 역량을 총집결해야 하는 시기이다.

운 좋고 능력이 있어서 먼저 부를 이룩한 사람들은 자기 보호를 위해서라도 부의 혜택이 사회전반에 파급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상대적인 빈곤계층 역시 성급히 자본가들을 무너뜨리려 한다면 경제기반의 붕괴로 그들은 다시 절대빈곤의 상태로 후퇴하게 되고, 절대빈곤은 다시 억압과 의식의 퇴보를 초래한다. 부유층과 상대적 빈곤계층의 상호의존 관계를 올바르게 인식시키고 계층 간의 화합과 공존 의식을 조성하는 것이 정부의 소임이다.
이해찬 총리가 교육부총리 선임과 관련하여 ‘국문과(國文科) 출신으로 세계와 경쟁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한 말에 대해서 격렬하게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서울대를 없애려 하고, 과거 경제성장의 공로를 모조리 죄로 간주하는 현 집권부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를 그에게 묻고 싶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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