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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 중국을 관찰하다가 한국에 와서 국정감사를 통해 제기된 역사 교과서의 좌경화 문제를 접하게 되니 역사의 아이러니를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문제가 된 교과서의 필자들은 바로 이런 문제 제기의 가능성에 대비해서 남한이 ‘외형적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는 식의 안전장치를 넣기는 했지만 그들의 이념 편향은 명백해 보인다.
무엇이 2004년 오늘에도 많은 현역 교사들과 사학자들로 하여금 북한의 현실과 내막을 남한의 현실과 내막보다 호의적으로 보고, 더 민주적이고 우월하다고 믿고 싶게 만드는 것일까?
사회주의의 망령이 오늘날도 한반도를 휘젓고 다닌다면 그것은 오늘의 현실에 심각한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북한을 흠모하고 북한을 닮아감으로써 해결되거나 개선될 수 있는 바는 결코 아니다. 북한에서 어떤 대안이나 해결을 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현실 판단이나 역사적 안목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사람들임에 분명하다.
군사정권의 억압이 심할 때에,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정신적인 지주로서 사회주의 이론이 애용된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때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반감에서 ‘자생적’ 사회주의자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때 사회주의를 흠모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사회주의 국가의 현실이 그들의 환상과는 전혀 달랐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불완전한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도 많은 국민의 탄압과 억압이 행해졌지만, 그것은 사회주의 체제가 저지른 반국민적·반인류적 범죄에는 비할 바가 아니고, 그 차이는 바로 사회주의 체제가 민중을 철저한 피지배자로 만들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말인가?
1960년대에서 80년대에 걸쳐, 특히 1980년대에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목숨을 걸고 탐독하던 마르크스·레닌주의 서적들이 21세기 초 중국의 대학생들이 지겨워서 몸서리치는 강제이수과목 ‘마르크스·레닌 사상’ 강좌에서 억지로 읽어야 하는 책들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로니컬하다. ‘마르크스·레닌 사상’은 ‘모택동 개론’, ‘등소평 이론’ 등과 함께 모든 중국의 대학생들이 강제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 중의 하나이다.
이런 것을 일컬어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는 것이겠지만, 역사의 아이러니가 자아내는 쓴웃음 뒤에는 수많은 민중들의 피와 눈물과 수난의 현실이 존재한다. 중국에서는 아직 대학생들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중국작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중국의 대학생들은 아직도 1989년의 천안문사태에 대해, 그때 모종의 불행한 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 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모른다. 그리고 문화혁명의 회오리바람이 가라앉은 이후 한 세대 이상이 지났지만 아직도 중국인들은 문화혁명에 대해서 마음놓고 토론하지 못하고, 문화혁명을 다룬 영화나 서적도 제대로 상영 또는 발표할 수 없다. 문화혁명 당시 중국인들은 ‘족보’를 집에 갖고 있으면 회고주의적이라는 의심을 받았기 때문에 족보를 스스로 파괴했다고 한다.
구소련에서 유행하던 많은 자조적인 유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어느 날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공장에 시찰을 갔는데 어떤 여성근로자가 “서기장 동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라고 해서 브레즈네프가 “말해보시오” 하니까, 그 여성근로자가 “사회주의는 과학입니까, 철학입니까?”라고 물어서 브레즈네프가 “철학이지요”하고 대답하자 그 여성근로자가 “그렇지요? 동료들이 자꾸 사회주의는 과학이라고 해서 제가 ‘과학이라면 동물들에게 먼저 실험을 해 봤을 것 아니냐, 철학이다’라고 말해줬지요” 했다고 한다.
비과학적인 역사교육은 인간을 또다시 역사의 실험용 동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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