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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내면의 신대륙에 눈떠 무한한 깊이와 신비 느껴 ”
“문학은 인간 본질 규명”
내가 대학생이었던 60년대 후반에는 ‘지성인’이라면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 정도는 중요 대목을 술술 인용할 수도 있어야 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대학가 주점이나 청진동의 빈대떡 집에서의 심각하고 울분에 찬 대화에 낄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술집에는 근접도 못 했지만 그 암울하고 심각했던 시대의 분위기와는 무관할 수 없었다.
고약하고 인색하고 색정적이고 탐욕스러운 영감 표도르 카라마조프. 그가 살해되자 창녀 그루쉔카를 두고 아버지와 경쟁관계에 있었고, 유흥비가 절박하게 필요했던 맏아들 드미트리가 범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그의 무신론자 둘째 아들 이반과 그 집에서 하인처럼 살고 있는 그의 사생아 스메르디아코프에게도 살해 동기는 충분히 있었다. 성자(聖者)의 싹이 다분한 셋째 아들 알렉세이는 두 형 사이의 질시와 미움을 순화시키고 그들의 올바른 자아 인식을 유도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욕정에 떠는 남자들을 경멸하는 그루쉔카, 자존심 드높은 양갓집 규수로서 드미트리의 약혼자이지만 이반에게 끌리는 카테리나, 냉철한 이지주의자이지만 또한 지적인 회의와 영적인 고뇌에 시달리는 이반, 그리고 비굴함 속에 무한한 증오를 감춘 스메르디아코프, 이들의 욕망과 분노와 이성이 전방위에서 충돌하며 불꽃을 튕기는 인간드라마가 미묘한 범죄심리학적 법정공방과 함께 펼쳐지는 이 소설은 정말 나에게 ‘인간의 내면’이라는 새로운 대륙, 무한히 깊고 어둡고 음습하면서도 신비로운 대륙을 열어주었다. 이토록 숭고하면서도 비열하고, 그 사유가 우주를 관통할 수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은 주체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모순된 존재에 연민과 애착을 느꼈다. 아홉 살 때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읽고 인간 내면의 무한한 깊이와 무궁무진한 인간심리의 신비를 느꼈던 나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은 뒤 인간의 본질을 규명하는 문학이야말로 나의 일생을 아낌없이 바칠 대상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반의 악몽 속에 나타나서 구원과 파멸에 대한 토론을 벌이는 초라한 행색의 악마,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재림한 예수에게 인간은 ‘자유’를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법과 형벌에 대한 위협으로 겨우 야수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면서 예수를 추방하는 대심문관(the grand inquisitor). 그에게 다만 자비의 입맞춤으로 답하는 예수 등 등장인물의 환상 속의 인물들은 ‘신의 솜씨’라는 찬탄을 절로 우러나게 한다.
인간은 왜소하고 비겁하지만 거대한 시련을 통해 참자아를 발견하고, 고통의 용광로에서 정화되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메시지는 빈곤하고 암담했던 우리 세대에게는 진정한 복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문학의 미천한 종복으로 행복하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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