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회원칼럼
가장 확실한 투자
서지문   |  2005-10-14 13:01:16  |  조회 2031 인쇄하기
‘재테크’는 이제 우리나라에서 국민적 오락이고 집념이고 신앙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우리나라처럼 일간신문들이 주로 재테크 가이드인 경제면을 매일 12면, 16면씩 발행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돈을 번다는 것은 원래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기울여서 사회에 유용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었는데, ‘재테크’는 돈을 세균처럼 저절로 번식하게 만드는 기술 또는 요술이 아닌가 한다. ‘재테크’의 ‘테크’는 분명 ‘기술’일텐데 ‘재테크한다’는 요상한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재테크’는 무언가 비정상적인 ‘테크’인 것 같다.

투자나 재산관리에 관심을 갖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개개인이 재산관리를 현명하게 해서 여러 가정의 경제가 탄탄해지고 따라서 나라 경제도 튼튼해진다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그런데 다수의 국민이 왕성하고 열렬히 ‘재테크’를 한 결과 나라 경제가 매우 허약해졌다. 일부 사람들의 재산증식이 나머지 사람들의 빈곤화를 초래했기 때문이 아닐까? ‘재테크’가 때로는 단순한 재화증식의 활동을 넘어서 경제질서를 교란시켜서 국가나 사회의 경제기반을 부실하게 만드는 범인일 수도 있는 모양이다.

재테크가 국민적 관심사가 되는 것의 더 근본적인 폐단은 사람들이 재산증식에 관심을 가질수록 더 중요한 투자에 소홀하게 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1980년대에 연일 주가가 고공행진을 할 때 회사의 말단사원도 주식투자를 해서 몇 억씩 번 경우가 흔했는데, 이런 사람들은 주식시장에서 올리는 수익에 비해 직장에서 받는 월급이 너무 하찮아서 상급자의 지시도 무시하기 일수였고, 걸핏하면 사표를 내고 직장을 집어던지는 일도 빈번했다. 이들 중에 투기가 계속 적중해서 거부가 되어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나라처럼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이 부침(浮沈)을 거듭하는 곳에서는 일확천금의 꿈은 이루어진다 해도 허망하게 곧 꺼진다는 사실을 모두들 깨달았을 만도 한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투기와 재테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정말 재산은 많을수록 좋은 것일까?

외국에서 복권에 당첨된 사람의 당첨된 후의 삶을 추적해 본 통계나, 우리나라에서 어느 신도시 건설 때 농지를 높은 값에 팔아서 부자가 된 사람들의 그 후 생활을 추적한 결과를 보면, 갑자기 거액의 불로소득을 얻은 사람들은 대부분 향락과 방탕에 탐닉하게되어 이혼을 하고 손 댄 사업에 실패를 하고 건강을 해치고 아주 비참한 지경에 빠졌다고 한다.

현대는 금전만능의 시대라고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고귀한 것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돈이 많은 사람은 그 인성이나 인격이 훌륭해도 그 주위에는 그의 인격을 흠모하는 사람들보다는 그의 재산의 덕을 보려는 사람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잉여재화의 추구에 자기 인생을 투자하는 것은 자신을 외롭고 위태롭게 만드는 일이다.

인생에서 가장 현명한 투자는 자신의 실력과 인격을 배양하는데 들이는 투자이다. 실력이나 인격은 타인이 사기를 쳐서 빼앗을 수도 없고 강탈해 갈 수도 없고 물거품처럼 스러지지도 않는다. 실력은 어떤 사람의 일생에 가장 든든한 자산이고 벗이고, 실력이 확실한 사람들은 생계도 안정되고 마음도 안정되고 따라서 인간관계도 대체로 순탄하다.

남들이 ‘대박’을 터뜨려 신나게 돈을 뿌리고 다닐 때 말없이 실력을 연마하는 사람은 바보같아 보이지만 바보의 인내와 우직함이 없이는 아무리 힘이 세고 머리가 비상해도 인생의 마라톤을 완주(完走)할 수 없다. 웅녀(熊女)가 고행을 인내하고 얻은 것은 ‘대박’보다 무한히 고귀한 것이었다.
      
굿소사이어티
덧글쓰기 | 전체글 0개가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0/1200 bytes  
 
92 행복의 순번  서지문 05-10-14 2254
91 국군장병의 2004년 여름나기  서지문 05-10-14 2184
90 가장 확실한 투자  서지문 05-10-14 2031
89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서지문 05-10-14 2442
88 평화의 계곡  서지문 05-10-14 2114
87 진시황 美化가 노리는 것  서지문 05-10-14 2070
86 中國號 앞의 激浪  서지문 05-10-14 2042
85 中國의 발전과 인권  서지문 05-10-14 2037
84 전교조에 바란다  서지문 05-10-14 2017
83 우리 교육, 절망뿐인가?  서지문 05-10-14 1968
71727374757677787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