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녀를 길러 본 친구들은 자녀들의 성격에 대해 하나같이 “같은 형제라도 어떻게 그렇게 다른지 모르겠다”고 감탄도 하고 한탄도 한다. 그래서 어떤 교육학자는 같은 환경에서 자란 형제자매라도 성격이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들어 인간 심성이 성장환경에 의해 형성된다는 주장을 부정한다. 그러나 다른 교육학자들은 한 형제자매라도 그들이 서로의 성장환경이 되므로 한집에서 자라는 형제자매도 각각의 성장환경은 다른 것이고, 따라서 ‘환경결정설’은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교육학자는 아니지만 형제가 서로서로의 성장환경의 요인이라는 말은 맞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세계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출생 순서가 그 사람의 가정 내에서의,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사회에서의 역할과 비중의 중대한 요인이 되므로 형이나 오빠·누나, 그리고 동생의 존재는 성격 형성의 중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요즈음은 그 차별이 대폭 줄었지만 전통적으로 장남은 부모의 재산의 큰 몫을 상속받으면서 조상에 대한 제사를 받들고 혈통을 이어갈 의무를 지녔고, 차남 이하의 아들들은 의무가 가벼운 반면에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재산이 적었다. 부모는 아주 어려서부터 장남에게 장차 맏아들·맏형 노릇을 할 의무를 주입하면서 한편 여러모로 맏아들을 우대했다.
서구에서도, 장자상속제가 확고했던 영국 같은 곳에서는 세도가의 장남과 차남의 위치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스페인 계승전쟁에서 영국을 승리로 이끈 군사적 천재 말버러 공작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공작 부인은 그 둘을 ‘the heir(상속자) and the spare(여분)’라고 불렀다고 한다. 공작의 아들이라 해도 ‘the spare’의 처지란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 ‘제인 에어‘의 남자 주인공 로체스터는 재산을 전부 큰아들에게 물려주면서 둘째 아들도 가난하게 살기를 원치 않았던 아버지에 의해 정신병자와 반강제적인 결혼을 하고서 음울하고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맏형은 대체로 책임감이 강하고 너그러운 반면에 권위의식이 있고 차남 이하의 아들들은 좀 도전적이고 상황 대처 능력이 강하고 자기 몫을 챙기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장남’이라든지 ‘차남’ 또는 ‘외아들’이라는 상황 자체가 어떤 사람의 성격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그 상황을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따라 불리해 보이는 상황이 축복이 될 수도 있다.
일본에서는 장자는 무조건 가업을 계승해야 했고 차남 이하는 자신의 진로를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차남 이하의 아들들이 새로운 사업을 개척해서 부와 명성을 획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영국의 귀족이나 상류 가문에서 차남 이하의 아들은 지참금이 많은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그러나 한편 귀족이나 상류 가문의 잘 교육받고 교양 있는 아들들이 (당시 사회적 위상이 낮았던) 법률이나 상업에 진출함으로써 크게 성공하고 그 분야를 발전시켰다. 그 결과 영국은 유럽에서 제일 계층 간의 이동이 활발하고 진취적인 사회가 됐다. 그러니까 영국 사회의 발전은 지극히 불공평한 장자상속제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으니 아이로니컬한 일이다.
우리나라도 재산 상속에서는 불공평했지만 과거시험에서는 장남에게 어떤 가산점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노후를 자식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사회가 됐고 자녀들의 수가 적어지면서 부모의 사랑도 장자 중심에서 벗어났다.
형제 간의 서열은 행복의 순번이 아니다. 행복의 순번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을 따지기보다 나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을 얼마나 잘 가늠하고 포착하느냐에 따라 매겨지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