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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어제와 오늘
서지문   |  2005-10-14 13:02:42  |  조회 2150 인쇄하기
지난주에 외국인들과 함께 한국영화의 고전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를 관람하게 되었다. 작가 주요한의 동명(同名)의 단편소설을 1961년에 신상옥감독이 영화화한 작품인데, 고전적 미모의 당대 최고 인기스타 최은희가 주인공인 젊은 미망인으로 출연했다. 옛날에 보았을 때에는 그리 큰 감명을 받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21세기인의 관점에서, 그리고 외국인들의 시각을 의식하면서 보니 참으로 감회가 깊었다.

1935년에 발표되었던 원작은, 남편을 일찍이 여의고 유복자인 6살짜리 딸과 함께 조촐하게 사는 젊은 미망인이 생계에 보태려고 그 마을에 새로 부임한 학교선생을 사랑방에 하숙을 들이는 상황설정으로 시작한다. 외로운 미망인과 (그 때에는 최고의 인텔리라고 할 수 있는) 학교교사는 당시의 엄격했던 내외법(남녀가 한 자리에 있거나 대화를 해서는 안 되는 관습법)때문에 변변히 대면도 못하지만 서로 먼 발치에서 스친 모습을 가슴에 품고 남몰래 애모(愛慕)의 정을 키운다. 그러나 번민 끝에 남자가 편지로 사랑을 고백하자 여자는 행복에의 간절한 염원을 누르고 결별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이 여섯 살짜리 어린이의 눈을 통해 아기자기하면서도 애잔하게 펼쳐지는 아름다운 단편이다. 영화는 극적인 흥미를 더하기 위해서 시어머니, 식모, 계란장수 등의 인물을 추가했고, 주인공들의 대면과 직접 대화도 넣었지만 원작의 틀을 허물지는 않았다.

나는 최은희라는 배우를 지나치게 얌전하고 고답적인 것 같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보니까 순결하고 고상하고 외로운 젊은 미망인 역에 아주 잘 어울렸다. 영화에서는 남자가 편지로 청혼을 하고, 여자의 오빠가 적극적으로 재혼을 권하고, 처음에는 강경하게 반대하던 시어머니도 눈물을 머금고 재혼을 허가하지만 미망인은 절개를 지킨다. 같이 관람하던 외국인들은 도대체 시어머니의 허락도 떨어졌는데 왜 좋아하는 남자의 청혼을 거절하느냐고 이해할 수 없어했다.

그들이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에서 과부재가(再嫁)금지법은 1894년의 갑오경장에서 폐지되었지만, 한국동란 이후까지도 과부의 재가는 ‘체통 있는’ 집안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재혼한 과부는 정절을 지키지 못한 여인으로 사회적인 멸시를 받아야했고, 무엇보다도 재혼한 여자의 자녀는 지체 있는 집안과 혼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처럼 결혼 몇 달만에 상부(喪夫)한 여자도 딸의 앞날을 위해 일생을 혼자 사는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처럼 남녀가 대면을 해도 인사도 안하고, 피치 못해 말을 나눠도 얼굴을 돌리고 어색한 간접화법을 쓰는 것 또한 서양인들에게는 지극히 부자연스럽고 무례하게 보일 것이다. ‘내외’를 하는 두 사람의 태도는 마치 싸운 사람들 같이 보였다. 사실은 예의와 법도를 지키기 위한 뼈아픈 자제(自制)였는데 . . .

연애결혼! 이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백년동안 너무나 염원한 것이고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 때문에 무수한 비극이 일어났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연애결혼’은 행복추구의 의미 이전에 한 개인이 가문과 관습에의 예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의 주체, 자기 운명의 주관자 됨의 표상이었다. 그 무수한 비극의 댓가를 치르고 어렵게 획득한 사랑할 권리를 남용하고 악용하지 않는 것이 사람으로서 존엄과 품위를 지키는 길이다. 사람을 물건 고르듯 고르고, 조금 싫증나면 내팽개치고, 자기의 요구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에게도 행복할 권리가 있겠는가? 연애가 값싸고 너절해 지면 우리의 생도 값싸고 너절해 진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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