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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는 없다’
서지문   |  2005-10-14 13:03:59  |  조회 2060 인쇄하기
10년 이상을 건너편 동(棟)의 뒷면만 보이는 아파트에서 살다가 삼각산 자락에 있는 현재의 아파트로 이사 온 후 겨울에는 마른 잎사귀들만 달려 있는 나무를 보면서 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산다.

산자락이라서 봄에는 산에 꽃이 피려니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우리 집에서 보이는 산에는 아주 어린 진달래가 한두 그루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름에는 앞쪽의 작은 공터와 뒷산의 발치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들에 잎이 무성해 마치 바다 속의 집에서 사는 것 같은 환상에 젖는다. 그래서 시인 김영랑처럼 ‘모란이 피는 나의 봄’은 아니지만 아카시아에 새 잎이 돋기를 목을 늘이고 기다리게 된다.

그런데 지난해 3월 중순 좀 멀리 보이는 버드나무에 연두색 잎이 나오고 4월 중순에는 베란다 창문 바로 앞의 아카시아에 신록이 돋았는데 올해는 버드나무 잎이 3월 말에야, 그리고 아카시아 잎은 5월 초에야 제대로 돋아서 안타까운 기다림이 더 길었고 반가움도 더 컸다. 일곱 살 때부터 서울에서 자란 나는 ‘고향’이 없다. 그래서 고향에서 아기똥풀이나 패랭이꽃·유채꽃과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부럽기 한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에 선생님이 산으로 들로 데리고 다니면서 풀과 꽃들의 이름을 가르쳐 주고 물소리·새 소리·바람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고 해서 자연에 대한 사랑을 심어 주었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부럽다 못해 질투가 인다. 방학 때마다 시골의 할머니·할아버지 댁에 내려가서 잠자리와 가재를 잡고 놀았다는 사람은 나에게는 유년 시절이 없었던 것 같은 상실감을 느끼게 만든다. 잎사귀 모양을 보고 나무나 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을 보면 천재로 우러러 보이면서 둔재의 비애를 느낀다.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기적은 믿지 않지만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돋는 신록을 대하면 ‘이것이 바로 기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세상의 모든 색깔 중에서 아무리 봐도 싫증 나지 않는 색깔은 신록의 색깔뿐이 아닌가 한다. 신록이 주는 기쁨은 아름다운 꽃이 주는 즐거움과는 다르다. 여리고 보드랍지만 곧 시들어 민망스러운 추함을 보게 될까봐 불안하지 않고 싱싱하고 꿋꿋하게 뻗어 나가 우리에게 그늘을 드리워 줄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신록은 우리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내려진 축복이다.

우리는 너무 돈 되는 것, 가격이 붙어 있는 것만을 귀히 여기고 추구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톰 존스의 노래 가사에 나오는 것 같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공짜’가 아닐까. 어머니의 사랑이 그렇고 애정이나 우정, 아름다운 경치, 밝은 태양, 맑은 물, 신선한 공기, 재능, 감수성, 의지력, 이런 모든 것은 절대적 가치인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은 가격이 없고 무상으로 주어지지만 그 가치를 알고 귀히 여기는 사람만이 제대로 그 덕을 입을 수 있다.

가격이 붙어 있는 것은 우리가 생물학적인 생명을 이어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신체적인 생존이 생존 목표가 아니고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존재의 충일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무한 자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공짜’는 아니다. 그것들을 하찮게 여기고 아끼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에게서 멀어져 간다. 진정한 지혜란 가격표가 없는 재화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누리는 것이 아닐까.

군 복무 기간은 생의 많은 무상의 축복에서 강제로 분리돼 생활하는 기간이다. 한편 많은 새로운 능력의 배양을 강요받는 기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 복무는 대부분 장병들에게 몹시 힘들게 느껴지겠지만 군대생활을 통해 그 가치를 통감한 축복들을 일생 아끼고, 군대에서 습득한 능력들을 일생 잘 활용한다면 싱싱한 삶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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