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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어서 좋은 것
서지문   |  2005-10-14 13:05:17  |  조회 2106 인쇄하기
흔히 사람들은 청춘을 예찬하고 영원히 젊음을 간직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나는 젊음이 앗아가는 것에 대해 세월은 충분하고도 남는 보상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마술에 의해서건 신의 은총에 의해서건 젊은 날로 되돌아갈 수 있다 해도 사절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젊은 날 유난히 바보스러웠기 때문이겠지만, 누구라도 충동과 욕망에 자신을 내맡기고 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젊은 날의 자신과 나이를 먹은 현재의 자신을 비교할 때 세월을 통해 배운 것, 얻은 능력이 크다고 느낄 것이다.

사람이 성숙하는 과정이라는 것은 가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 해소되고 가치를 몰랐던 중요한 것의 가치를 인식하고 소망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젊디 젊은 장병 여러분도 어렸을 때를 되돌아보면 그때는 내가 왜 그리도 하찮은 것을 갖고 싶어 했을까, 어떻게 그렇게 사소한 일을 가지고 귀중한 친구와 다투고 헤어졌을까, 하고 후회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또 그 때는 이 중요한 것의 가치를 그토록 모르고 피하기만 하려고 했을까, 하는 후회도 있을 것이다. 여러 해를 살다 보면 그런 후회는 더욱 쌓여 가지만 한편으로 부적절한 욕망의 대상을 배제하는 능력도 늘고 적절한 욕망의 대상을 선택하는 지혜도 늘게 된다.
부적절한 욕망의 대상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자기 설득의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역사상 위대한 인격자들은 거의 다 자신을 잘 길들이고 설득해서 자기의 ‘초자아’(superego)가 옳다고 판단하는 것을 순순히 따르게 만드는 기술을 터득한 사람이다. 나는 젊었을 때는 나 자신에게 무자비한 독재자 노릇을 했다. 그래서 두 차례의 너무도 힘겨운 유학 시절을 비롯해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기는 했지만 내면적으로는 불행하게 느낀 적이 많았고 내 인생이 고달프게 생각됐다.

젊었을 때는 나의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 사이의 괴리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렇게 변변치 못한 자신을 일생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참 한심하고 처량하게 생각됐다. 그러나 차차 나이를 먹어 가면서 못난 자신을 너무 억누르고 구박하기보다 달래고 타이르면서 협조를 얻어 내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것이 자아 분열에 이르지 않고 부족한 대로 나에게 가능한 최선에 도달하는 길일 것이다.

집안에서 막내로 늘 어린아이 취급을 받아서인지 나는 남의 앞에서 침착하고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한다. 젊었을 때는 그 정도가 매우 심했고, 나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있는 계제에는 특히 말을 못했다. 말하면 나를 돋보이게 만들기보다 나에게 불리한 인상을 주게 되는 것 같았다. 보통 상황에서도 눌변이었으니 심리적으로 당황하고 억울하거나 슬프거나 감격한 상황에서는 아예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젊었을 때는 어떤 오해를 받기 쉽게 된 상황에서 즉각 해명이나 변명을 하지 못하고 여러 날 잠을 못 자고 고민한 적이 많다. 또 무심코 한 말이 상대편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것 같은 때도 즉시 상황을 무마하지 못하고 미안하고 죄스러움에 몇 년씩 괴로워하곤 했다. 나는 그 당시 나만 그런 바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그리 희귀한 경우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이를 먹으니까 좀 둔감해져서 공교롭게 오해를 받을 만한 상황에 처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입이 열리지 않아 절망적인 심경이 되지는 않는다. 아직도 능란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아이, 오해하라지 뭐”하고 그냥 흘려보내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에 대한 오해로 인해 상대방이 괴로울지도 모른다 싶을 때는 억지로라도 해명한다.

자신을 누누이 타이르고 설득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손을 잡고 이끌면 조금씩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생의 주체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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