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소사이어티

고귀한 정치철학, 보수주의 탄생을 꿈꾼다

- 대선을 앞두고 다시 생각해보는 대한민국 주류의 가치

박성현 칼럼니스트

2012년은 대한민국에서 보수주의 정치철학이 탄생한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까지 보수주의가 없었다. 이승만, 박정희라는 두 명의 걸출한 대통령의 정치리더십이 있었고 그들 밑에서 대한민국의 건국과 부국을 이끌어 온 주류 제도권의 전문성과 충직성이 있었을 뿐이다. 지금껏 우리는 보수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스스로 ‘보수’라는 명찰을 파서 달았던 것 아닐까?

보수주의는 옆집 강아지 이름이 아니다. 보수주의는 가장 고귀한 정치철학이다. 고귀하기 때문에 희귀하다. 전 세계에서 보수주의 정치철학이 자리 잡은 나라는 영국과 미국 둘 밖에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독일에 보수주의가 있었다면 나치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며, 일본에 보수주의가 있었다면 미카도이즘(Mikadoism, 침략적 천황주의)이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건국 60여 년 만에 보수주의 정치철학이 자리 잡는다면 이는 기적이다.

보수주의와 전체주의

우선 보수주의가 무엇인지 잠시 살펴보자. 보수주의는 인간과 생명을 존중하는 찬란한 전통에서 나왔다. 옛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번영을 지키는 것이 보수주의 정신이다. 따라서 정치철학으로서의 보수주의는, 정파로서의 보수냐 리버럴이냐라는 구분을 초월한다. 이는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아버지인 영국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의 행적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애초부터 그는 보수정파(토리. Tory)가 아니라 리버럴정파(휘그. Whig)였다. 왕실재정과 국가재정을 분리해서 왕실의 씀씀이에 자물통을 채웠다. 정당정치를 확립시켜 보스(Boss) 정치를 없애 버렸다. 미국(당시 영국의 식민지)에 획기적 자치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메리카에 대한 획기적 자치권 부여를 옹호한 버크의 논리는 이런 식이다.

“아메리카에서 세금을 걷으면 당연히 아메리카 주민들로 하여금 국회의원을 뽑아 런던으로 보내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아메리카의 인구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아메리카 국회의원 숫자가 점점 많아져서 결국엔 영국 정치가 아메리카에 의해 결정되는 상황이 된다. 그러므로 아메리카에 대해 아예 세금을 부과하지 말고 매우 자유로운 획기적 자치권을 부여해야 한다.”

버크는 또한 인도의 식민지 지배를 개선하기 위해 평생 노력했다. 우선,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가 된 것은, 영국이 무력으로 정벌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도 내부의 분열과 혼란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버크는 이런 취지로 말했다.

“신(神)은 우리에게 인도 통치권을 맡겼다. (인도 통치권은 무력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다. 무굴 제국이 약화되면서 사회가 극도로 취약해지자 인도의 지방 세력들이 자발적으로 영국에 통치권을 헌납했다—필자) 최선을 다해 인권을 신장하고, 인도 고유의 전통 및 관례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통치해야 한다. 인도 사람들이 우리 방식의 법률을 이해하지 못 한다고 그들의 재산과 삶의 터전을 빼앗는다면 이는 가장 야만적인 약탈에 다름 아니다.”

세계 최대의 아대륙(亞大陸—지금의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을 통치하게 된 영국의 최강 정치인 버크는 인도인들의 인권, 관습, 권리를 위해 늙어 죽는 순간까지 20년 가까이 싸웠다. 생명과 번영을 옹호하는 이 정의감, 사명감이 버크로 하여금 프랑스혁명(1789~1799)을 격렬하게 비판하도록 만들었다.

“인간은 실험대상이 아니고 사회는 엔지니어링 대상이 아니다”라고 부르짖게 만들었다. 프랑스 혁명의 반대말은 반혁명이 아니다. ‘에드먼드 버크’이다. 그래서 버크가 죽고 난 다음인 1820년대에 ‘보수주의’란 말을 만들어 버크에게 바쳤던 것이다.

미국의 보수주의 역시 자유당(휘그) 정치인이었던 링컨에 의해 확립되었다. 1840년대까지 미국정당은 휘그와 민주당이었다. 미국 휘그는 자영농과 지식인들이 주축이 된 개혁 성향의 정당이었고 민주당은 대지주들이 이끈 수구 성향의 정당이었다. 그런데 노예제를 둘러싸고 휘그가 크게 둘로 깨졌다. 하나는 기존의 노예제 실시 지역에서는 노예제를 유지시키되 새로 개척되는 지역(territories)만큼은 노예제를 두지 말자는 링컨 노선을 좇는 그룹이다. 또 하나는 노예제 자체를 철폐하자는 철폐론자들이다.

링컨은 풍비박산 난 휘그를 다시 수습해서 공화당을 만든 핵심 멤버였다. 그가 제시한 방식—기존의 노예제 실시 지역에서는 노예제를 유지하되 새로 개척되는 지역만큼은 노예가 없는 자영농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은 현실적인 온건 노선이었다. 이때 링컨이 사용한 논리적 근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추상적 원리 혹은 개인적 호불호(好不好)에서 이 같은 노선을 도출한 것이 아니라,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들이 노예제도에 대해 취했던 행적에서 자신의 노선을 도출했다.

링컨에 따르면 “건국의 아버지들은 노예제도를 가급적이면 제한해야 할 제도로 보았다”는 것. 링컨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는 독립선언서의 첫 문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통찰 깊은 해석을 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불평등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불평등을 확대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독립선언서의 첫 문장.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명제는 자명한 진실이다.” 토마스 제퍼슨의 글씨)

불평등을 한 방에 인위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또한 기회가 닿는 대로 불평등을 축소해 가는 것—이것이 링컨이 해석해 낸 ‘건국 정신’이었다. 생명과 번영을 위해, 조심스러우면서도 집요하게 개혁을 추구하는 태도가 바로 보수주의 정신이다. 노예제에 대한 링컨 노선은 보수주의 정신의 정화이다. 그러나 이 같은 온건한 현실주의적 개혁을 훼손하려는 도발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대응한다.

새로 개척되는 지역에서 노예를 둘 수 없게 되자, 궁극에 가서는 노예제 전체가 철폐될 것을 두려워한 남부가 분리 독립을 선언했다. 이에 링컨은 남부로 쳐들어가서 무려 4년에 걸쳐 60만 명이 죽어나간 참혹한 전쟁을 벌였다. 남북전쟁의 승기가 굳혀지자 ‘남부지역 노예해방령’을 내렸고,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미국 전역의 노예해방을 위한 헌법 수정’을 관철시켰다. 나아가 1865년에 암살되기 직전에는 흑인 남자에 대한 선거권을 밀어붙였다. 미국의 흑인 남자는, 미국 백인 여성보다 꼭 49년 앞선 1870년에 선거권을 획득했다.(헌법 수정을 기준으로 함. 미국의 경우 수정 헌법은 각 주 별로 다시 비준 받아야 함.)

온건한 현실주의적 개혁을 추구하되 상대방이 도발할 경우에는 가차 없이 철퇴를 내리는 것, 그 과정에서 보다 근본적인 개혁—링컨의 경우에는, 미국 전역에 걸친 노예 해방 및 흑인 선거권—을 관철시킬 수 있는 기회를 식별하여 사정없이 밀어붙이는 것. 이것이 바로 보수주의 정신의 다이내믹이다.

이 다이내믹은 한편으로는 엄청난 개혁성을 가진 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전통과 제도를 깊게 존중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이는 곧 공자가 말하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과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자세-과 다름 없다. 이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다. 생명은 시간 속의 존재이고 과거-현재-미래의 연관 속에서만 번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과거-현재-미래의 연관성 속에서만 번영할 수 있다는 진실에 대한 각성—이것이 바로 보수주의이다. 생명의 번영을 위해, 그 사회가 구현해 놓은 근본 가치를 계승해서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보수주의이다.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것이 전체주의이다. 전체주의는 사회를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한 엔지니어링 재료’로 보고 인간을 ‘신인류로 품종개량 해야 하는 실험 대상’으로 본다.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 “인간은 자의식이 있는 개인(sentient individual being)이다. 지금 프랑스에서 진행되고 있는 혁명은 개인을 벽돌이나 나무처럼 취급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날뛰는 피도 눈물도 없는 광기일 뿐이다.”라는 취지의 비판을 한다. 버크는 전체주의가 등장하기 120 년 전에 이미 전체주의적 태도의 본질을 꿰뚫어 본 것이다.

보수주의(conservatism)와 보수 정파(conservative party)는 다르다

생명의 번영을 온건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끈질기게 옹호하는 것. 이것이 보수주의 정치철학이라면 이 철학은 보수 정파와 리버럴 정파가 함께 공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유해야 마땅하다. 보수 정파와 리버럴 정파는 스타일의 차이만 있을 뿐, 보수주의 정치철학 자체는 공통분모로 삼는다. 과거로부터 유지되어 온 전통과 가치에 보다 큰 비중을 두는 것이 보수 정파이고 새로운 변화와 트렌드를 상대적으로 더 중시하는 것이 리버럴 정파이다.

한마디로 보수든 리버럴이든, 정신머리가 똑 바로 박힌 정치인이라면 보수주의를 따라야 한다. 보수주의를 만든 에드먼드 버크나, 미국에서 보수주의를 확립시킨 링컨은 모두 리버럴 정파—휘그였다는 점을 보아도 정치철학으로서의 보수주의는, 보수-리버럴 정파 구분과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주의 정치철학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정파 구분도 보수-리버럴이 아니라 보수-진보라는 해괴망측한 구분의 틀이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는 차마 웃지도 못 할 비참한 사정이 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이었던 1988년에서 1992년 사이에 국제적으로는 동구권이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되는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고,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분야에 걸쳐 민주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스스로 민족해방 세력(NL) 혹은 인민민주주의혁명 세력(PD)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은 명찰을 바꿔 달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진보’라 부르기 시작했고, 주류 제도권을 ‘보수’라고 불렀다.

그전에 그들은 상대방을 ‘파쇼 식민지 매판 세력’이라고 불렀다. 매판은 “식민지 지배세력에 봉사하여 부를 축적하는 자들”을 뜻하는 용어로서 중국 공산당이 만들었다. 평소 보수가 되는 것이 로망이었던 주류제도권은 ‘파쇼 식민지 매판 세력’에서 ‘보수’로 격상될 수 있는 기회가 오자 이 구분틀을 덜컹 받아들였다. 이는 하나의 커다란 지적 사기(intellectual fraud)였다. 다음 세 가지 점에서 거짓이다.

첫째, 당시의 주류 제도권은 아직 보수주의 정신에 이르는 각성에 도달한 바 없었다. 지금까지도 보수주의에 관한 쓸 만한 책은 버크가 지은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of France and on the Proceedings in Certain Societies in London) 한 권 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주류 제도권은,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두 명의 걸출한 지도자에 의해 교육받고 육성된, 기능적 충직성 및 전문성을 가진 집단일 뿐, 사상과 역사에 관한 지적 각성(intellectual enlightenment)을 경험한 바 없었다.

둘째, ‘진보’(progressive)는 인류 역사가 특정방향으로 진보한다는 좌파적 세계관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 반대말은 원래 보수(conservative)가 아니라 반동(reactionary)이다. 즉 80년대 말, 급진 운동권이 자신을 ‘진보’라고 점잖게 부르기 원했다면 상대방을 ‘보수’라고 부르지 말고 ‘반동’이라고 불렀어야 되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반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상대방을 ‘보수’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것도 반드시 앞에 ‘수구’라는 두 글자를 더 붙여서 ‘수구 보수’라고 불렀다.

셋째, 그들이 말하는 ‘진보’는 리영희식 진보이다. 리영희가 지은 ‘전환시대의 논리’와 ‘8억 인과의 대화’라는 두 권의 책은 70년대와 80년대 운동권의 입문 필독서였다. 그는 80년대 말부터 진보-보수 두 날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중국과 북한을 진보, 미국과 서방을 보수라고 끊임없이 암시했다. 이 사고방식이 2012년 현재에도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보수-진보 구분의 틀은 지적 사기이다. 정파 구분에서는 보수-리버럴 구분틀을 사용해야 하며 사상의 구분에서는 보수주의-전체주의 구분틀을 사용해야 한다.

보수주의는 공화 가치(republican values)로 나타난다

보수주의는 생명이 번영하는 길을 온건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끈질기게 옹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생명 번영의 길인가에 관해서 그 사회의 근본적 가치 판단이 존재함을 전제해야 한다. 이때 근본적이라는 것은, 다수결—떼의 힘으로 도전하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곧 토크빌과 링컨이 말하는 공화가치이다. 생명이 번영하는 길을 제대로 짚어내는 공화가치의 전통이 확고한 나라만이 보수주의 정치철학에 도달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공화가치를 옹호하기 위한 싸움을 통해 보수주의 정치철학이 확립된다. 전자(前者)는 에드먼드 버크였고 후자(後者)는 링컨이었다. 프랑스 혁명에 반대했던 에드먼드 버크의 핵심적 논지는 다음과 같다.

“영국의 제도와 전통은 이미 왕권을 제한하고 있고 의회의 결정에 의해 국가를 원만하게 운영하고 있는 상태를 성취했다. 한편 지금 프랑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생명을 죽이고 파멸을 자초하는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이 멋있어 보인다고 다수결에 의해 혁명을 고스란히 따라하는 짓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뿐이다.”

한편 링컨의 핵심적 논지는 다음과 같다.“ 건국이념은 불평등의 확대를 막는 것이다. 새로 개척되는 지역에서 노예제를 둘 것인지 말 것인지는, 불평등의 확대를 초래하기 때문에, 각 지역별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노예제 문제를 지역별 다수결에 맡기는 것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확립한 원칙을 정통으로 위배하는 짓이다. 또한 노예제 문제를 빌미 삼아 연방을 탈퇴해서 분리 독립하는 일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이 역시 주민의 다수결에 의해 결정될 문제가 아니다.” 한마디로 다수결—떼의 힘을 내세워서 함부로 흔들거나 훼손해서는 안 되는, 생명 번영의 길에 관한 원칙적 가치를 확립시키고 옹호하는 것이 바로 보수주의 정치철학이 성립하는 계기이다.

2012 대선은 대한민국의 공화가치를 둘러싼 결전장(決戰場)이다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 하던 사이에 대한민국은 훌쩍 성장했다. 대한민국에는 생명 번영의 길에 관한 원칙적 가치, 즉 공화가치가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필자는 4개 공화가치의 싹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대한민국을 소중한 삶의 터전으로 보는 것

둘째, 북한을 극악한 전체주의로 보고 그 필연적 변화, 붕괴를 예감하는 것

셋째, 자유민주주의—개인의 선택과 책임—를 삶의 원리로 보는 것

넷째, 세계시장을 삶의 조건으로 보는 것

필자는 이 네 가지 공화가치를, 첫 글자를 따서, ‘대-북-자-세’라고 부른다. 이번 대선은 정치인들이 의식하든지 의식하지 않든지 이 네 가지 공화가치를 둘러싼 결전장(決戰場)이 되어 가고 있다. 보수주의 정치철학—생명 번영의 길을 옹호하는 정치철학이 확립될 것인가 주저앉을 것인가를 둘러싼 거대한 드잡이로 발전하고 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야권의 선택 덕분에(?)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의 역사 해석’을 둘러싼 싸움이 되었다. 해방 이후 67년의 역사가 자랑스럽고 뿌듯한 성취였는가, 아니면 지저분하고 수치스런 과거였는가에 관한 가치평가(evaluation) 싸움이 되었다. 이는 위의 네 가지 공화가치 중 첫 번째 가치(대한민국에 관한 입장)와 직결된 이슈이다.

둘째, 2011년 김정일 죽음과 3대 세습 이후 북한의 붕괴가 가속화됨에 따라 이번 대선은, 북한 전체주의 체제를 ‘교류와 협력의 파트너’로 볼 것인가, 아니면 ‘붕괴 관리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라는 가치평가 싸움이 되었다. 이는 위의 네 가지 공화가치 중 두 번째 가치(북한 전체주의에 관한 입장)와 직결된 이슈이다.

셋째, 글로벌 경제위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이번 대선은, 자유민주주의—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옹호할 것인가, 아니면 ‘빅브라더 스타일의 거대 정부’를 지향할 것인가라는 가치평가 싸움이 되었다. 이는 위의 네 가지 공화가치 중 세 번째 가치(자유민주주의에 관한 입장)와 직결된 이슈이다.

넷째, 한미FTA 재협상 이슈 덕분에(?) 이번 대선은, 세계시장을 우리 삶의 조건으로 볼 것인가 혹은 무시해도 좋은 변수로 볼 것인가라는 가치평가 싸움이 되었다. 이는 위의 네 가지 공화가치 중 네 번째 가치(세계시장에 관한 입장)와 직결된 이슈이다.

공화가치의 승리는 보수와 리버럴, 양대 정파를 만들어 낸다

공화가치, 즉 보수주의 정치철학을 공유하는 보수-리버럴 양극(兩極) 체제에서는 보수와 리버럴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번영한다. 필자는 이를 양극 공생 체제라고 부른다. 반면에 무기력한 웰빙 주류 제도권과, 북한 전체주의에 봉사하는 빨대 노릇을 하는 전빨로(전체주의 빨대) 이루어진 양극 체제에서는 주류 제도권과 전빨이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강화해 주는 기묘한 생태계가 만들어 진다. 서로가 상대방을 이용하면서도 이용당하는 상태. 서로 상대방에게 기생하면서도 숙주 역할을 해 주는 상태이다. 필자는 이를 양극 기생(寄生) 체제라고 부른다. 지난 20년 동안 대한민국 정치는 양극 기생 체제였다. 공화가치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이 공화가치를 둘러싼 결전장(決戰場)으로 승화되고, 이 싸움에서 공화가치가 승리한다면 2013년부터 거대한 정치문화의 변화가 시작된다. 그 변화가 완성될 때에 비로소, 공화가치, 즉 보수주의 정치철학을 공유하는 두 개의 정파—보수와 리버럴이 확립된다. 이는 이승만이 주도한 ‘건국의 기적’과 박정희가 주도한 ‘한강의 기적’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기적이다. 필자는 이를 ‘가치의 기적’(The Miracle of Values)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세 번째 기적이 이루어질 때에만 우리는 일류국가가 될 수 있다. 일류는 ‘정신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정신의 가장 숭고한 핵심적 활동은 ‘가치평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