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 8개의 코드로 해석한 종편 출범 365일
태윤정 미디어컨설턴트, (주) 선을 만나다 대표
지난 해 이맘 때 종편의 탄생을 지켜보면서 미디어 시장의 지각변동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대했다. 광고 시장이야 가장 1차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영역이지만, 필자가 관여하고 있는 홍보와 캠페인, 프로모션 비즈니스를 하는 BTL(Below the Line) 기업에게는 미디어 변화가 바로 업무 영역의 변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상파 방송사의 방송작가로 15년 집필 활동을 해왔으니 상황을 예의주시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사실 미디어 변화는 실로 국민적 차원의 관심거리가 아니던가? 그로부터 1년 과연 어떤 평가가 내려져야할까?
1. 시장의 외면
BTL 영역에서 종편은 사실상 피칭의 대상이 되고 있지 못하다. 몇몇 눈에 띄게 선전(善戰)하는 드라마나 교양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 일부이다. 투자 대비 기대 효과상승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잣대로 삼는 이상, 매체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평균 시청률 0%대의 종편을 두고 피칭의 대상으로 삼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클라이언트들에게 피칭의 영역으로조차 권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시장이 종편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에 대해서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2.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콘텐츠의 문제
우리 회사의 2030 세대 젊은 사원들은 종편을 거의 보지 않는다. 케이블 채널의 ‘슈퍼스타 K’, ‘응답하라 1997’, ‘로맨스가 필요해’ 등등은 오히려 젊은 세대들의 대화 소재이지만 종편에서 무슨 프로그램을 하는지 조차 관심의 영역에서 벗어나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방송작가 출신이라는 속성 때문인지 모니터링을 하게 되지만, 재방송률 80%대와 지상파 방송사 프로그램 구매 송출이라는 현실을 들여다볼 때면 마음이 무겁다. 콘텐츠 부재의 종편이 과연 자기 존재의 증명을 할 수 있는 매체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3. 영상 매체와 활자 매체의 동상이몽
종편을 시청하면서 목에 가시처럼 넘길 수 없는 것은 바로 제작 주체들의 매체 문법에 대한 인식의 부재이다. 즉 영상 문법은 활자 매체의 문법과는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종편의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은 활자 매체를 그대로 스튜디오에 옮겨다 놓았을 뿐, 영상과 오디오가 어떻게 쓰여지고 프레임과 편집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는 듯 보인다. 물론 지상파 방송사에서 옮겨간 몇몇 스타급 PD들의 프로그램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하지만, 전반적으로 영상과 오디오로 이뤄진 TV 매체의 문법을 이해하지 못한 제작 주체들의 불균형한 인식과 학습의 부재로 인해 종편이 과연 영상 매체가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만약 종편이 진정으로 성공을 원했다면 제작의 주체로 활자 매체 종사자들을 제외했어야만 한다. 그리고 부득이하게 인적 구성원으로 포함시키려했다면 적어도 3년 이상의 트레이닝 기간을 거쳐서 TV 매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기능과 역할을 학습한 다음에 이뤄졌어야만 한다.
4. 시청률 1%의 거대한 함의
종편을 가진 활자 매체들을 펼칠 때면 가끔 실소를 하게 될 때가 있다. 유의미와 무의미의 두 경계에서 보자면 단연 무의미한 자기 합리화이기 때문이다. 물론 열악한 환경에서 선전을 하는 몇몇 프로그램의 눈물겨운 분투가 보이지만 자화자찬 식의 평가는 메이저 언론사의 자존심에 대한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가 없게 만든다. 특히 바보상자라는 이름을 붙여가면서 방송매체에 대해서 일종의 우월감을 갖고 있었던 활자매체종사자들은 왜 시청자가 별 것도 아닌 것 같은 ‘1박 2일’에, ‘무한도전’에 그토록 환호하고 강호동과 유재석에 환호하는 지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청률 1% 올리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매일 매일 책상 앞에 놓여지는 시청률 표에서 분당 시청률을 분석하면서 시청자의 마음에 닿기 위해서 고민하고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지 그 냉엄한 시청자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청률 1%의 거대한 함의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 냉철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때만이 방송 매체에 대한 겸허한 시각을 갖게 될 것이고 그 때 비로소 존재의 의미이기도 한 시청자에 대한 의식이 변화될 것이다.
5. 시청자 눈높이의 실종
시청자는 영악하고 냉정하다. 동시에 위대하고 두렵다. 방송작가로 일한 지난 15년간 시청자는 나를 이렇게 깨우쳐줬다. 그들이 교과서였고 그들이 등대였다. 보지 않는 방송 듣지 않는 방송은 존재 의미를 이미 상실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우리를 존재하고 증명하는 대상이었다. 그래서 시청자가 무엇을 원할까는 제작의 첫 번째 요소였다. 하지만 종편 프로그램 특히 제작비를 아끼기 위한 고육지책의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지켜보면 영상 문법이라고는 고려하지 않고 게스트가 방송 프로그램을 살리는 주체라는 점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이미 대중의 관심에서 너무도 멀어진 게스트들의 출연으로 스스로를 고령화 채널로 가두고 시청자에게서 외면받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는 것 같다. 한마디로 시청자의 눈높이에 대한 인식의 실종이 종편의 위치를 더욱 고립시키고 있다.
6. 시스템 부재가 낳은 악순환
신문기자가 되고 나서 제대로 된 기사를 쓰게 되는 것은 3년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방송 역시 학습 시스템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기자와 PD, 방송작가와 아나운서 역시 상당한 시간 학습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제작 무대에 올라서게 된다. 하지만 종편은 이런 학습 시스템이 거의 부재한 듯 보인다. 역량 있는 외부 제작사의 외주 프로그램이나 지상파 방송사에서 이직한 PD들이 만든 몇몇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너무도 많은 프로그램들이 너무도 거친 영상에 고개를 돌리게 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특히 뉴스프로그램의 영상은 보도 영상 학습의 부재가 그대로 드러나면서 뉴스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또한 아나운서와 앵커 학습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아서, 오디오에서부터 시선 처리같은 비언어적인 부분까지 마이크를 잡아서는 않될 듯한 인물들이 화면에 등장하고 있다. 종편으로 이직한 선배들의 전언에 따르면 제대로 학습할 수 있는 인력과 시스템 등이 갖춰지지 않은데서 비롯되는 악순환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 학습 시스템이야말로 방송의 경쟁력이며 방송의 신뢰로 직결되기 마련인데, 종편이 출범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학습 시스템의 구축이 선행됐어야만 하는데 과연 이 선행조건이 얼마나 이뤄졌었는지 묻고 싶어진다.
7. 채널의 브랜드 가치 올리기
채널이 견인되기 위해서는 드라마가 살아야 한다는 것이 방송가의 정설이다. 심지어 KBS 9시의 시청률은 9시 뉴스 바로 앞의 시청률이 받쳐줘야만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할 정도이다. 이 때문에 지상파 방송 3사가 드라마의 전쟁에 몰두하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만 산다고 해서 채널의 브랜드 가치가 생겨날 수 있을까?
방송사는 방송사의 브랜드 가치를 살리기 위해서 <차마고도>나 <루들로드>, <남극의 눈물> 같은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시청률이 낮아도 공익적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 <열린 음악회>와 <전국 노래자랑>, <물은 생명이다> 같은 프로그램도 만든다. 채널의 브랜드 가치를 위해서 균형을 맞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종편은 이 균형의 부재로 인해서 스스로의 브랜드 가치를 잃고 있다. 드라마로만 승부를 거는 채널, 노이즈 마케팅으로 시선 훔치기에만 몰두하는 채널, 영상은 외면한 채 지면의 이데올로기와 지면 문법을 그대로 옮겨놓는 채널까지, 콘텐츠의 불균형은 채널의 브랜드 가치 상실과 신뢰의 부재로 직결되고 있다.
8. 매몰 비용인가, 안녕인가?
종편매각설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대로 시간과 재정적인 투자 없이 종편이 연명의 시간을 연장한다면 종편은 시장으로부터 고립을 자초할 뿐이라는 게 걱정된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시간과 재정적 투자를 매몰 비용으로 삼아야만 한다. 정말 성공을 원한다면 시장의 반응을 얻어내려면 적어도 5년 이상 시스템을 갖추고 정직하고 균형 잡힌 콘텐츠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시청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아주 오래 달려야만 한다. 마음을 두드려야만 한다. 그래야 시청자의 마음이 비로소 열리고 거기에서 비로소 생존을 넘어 성공의 불빛이 겨우 반짝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