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라고?
- <다시 경제를 생각한다> 김정호 著
고진석 독서 컨설턴트
“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입니다. 우리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는 이 거위의 배를 가르려는 행위입니다.”
신간 <다시 경제를 생각한다>(21세기북스)의 저자 연세대 경제대학원 김정호 교수가 문화일보와 인터뷰 한 내용 이다.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성격처럼 글도 시원시원 하다. 시원시원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천박해지기 쉬운데 그의 글은 격이 있다. 이 책은 읽기가 쉽다. 저자는 논란이 많은 사안들을 우회하지 않고 바로 직진한다. 이 책의 중요한 주제는 재벌 문제이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간단하다. 재벌을 괴롭히지 말고 놔두라는 것이다. 그는 재벌에 대한 공격과 비판은 대부분 틀렸다고 주장한다. 경제문제의 원인을 찾아내고 해결책을 처방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고 경제전문가들도 답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답을 찾기 어려운 정치권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재벌에 돌리기 시작했고 특히 풀기 어려운 양극화와 청년실업문제 등을 재벌에게 돌렸다고 주장한다. 원인이 재벌 하나로 단순해지니 처방도 단순해 졌다고 주장한다. 처방은 경제민주화 인데 그는 반대한다. 재벌 때문에 중소기업이 죽는 것이 아니고 재벌 때문에 양극화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서 오히려 재벌의 비중이 높았을 때 오히려 빈부격차가 작았다고 주장한다.
재벌 비중이 높았을 때 오히려 빈부격차가 작았다
그는 문제가 되는 순환출자에 대해서도 적극 재벌을 옹호한다. 작은 돈으로 투자해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었으니 정상적인 기업활동이라고 주장한다. 문어발식이라고 비판하는데 미국과 영국식의 전문독립기업 방식이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며 한국방식은 지극히 정상적이라 주장한다. 지금의 지식인 사회 분위기에서 보기 드문강력한 돌직구이다. 내 주변 사람 중에는 김교수가 재벌에 아부해서 호의호식 하려는 어용 지식인이라고 비판한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저자가 재벌에 아부해서 얻는 이익보다 실이 더 많은 것이 대한민국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저자를 비판하기 전에 저자의 책을 한권 신중하게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읽어 보면 저자는 재벌에 아부하는 학자가 아니며 누구보다 자신의 소신을 용기 있게 드러내는 학자라는 것을 독자들은 알게 될 것이다.
만악(萬惡)의 근원, 재벌?
‘재벌’, 쉽게 말하면 재(財)산을가진 집단(閥)이라는 뜻이다. 재벌에 대한 비판은 재산이 많다는 것 보다는 지나친 영향력으로 중소기업을 죽인다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재벌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이슈에 대하여 과감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 첫째가 대기업 빵집과 SSM에 대한 비판에 관한 문제이다. 파리바게뜨가 동네 빵집을 몰아낸 것이 아니라 동네빵집이 원해서 파리바게트로 간판을 바꿔단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노동자들의 처지에서도 좋은 것이 파리바게뜨는 우선 안정된 직장이다. 예전에는 제빵학원을 나와도 취업하려면 동네 빵집뿐이었고 취직을 해봤자 연봉으로 따지면 1000만원도 안되었고 임시직이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이에 반해 SPC그룹의 초임 제빵기사 연봉은 2100~2200만원에 달하고 직원수만 1만명이 넘는데다가 일자리까지 만드니 노동자나 사회적으로 보아도 순기능이 크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일리가 있다.
IMF이후 한국 경제의 큰 문제는 자영업자가 지나치게 많고 더 큰 문제는 대부분 실패하는 것이 현실이다. 2008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 폐업률은 84.3%에 달하는데 반해 프랜차이즈 가맹점 폐업률은 25.0%다. '공생발전을 걱정하지만 기존의 영세 상인들과는 프랜차이즈방식으로 상생을 도모하면 된다. 영세상인들이 소자본을 투자해서 성공 기업의 브랜드와 노하우를 공유하는 프랜차이즈 방식이다. 안타깝게도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할인점과 소상인사이의 상생방법인 SSM까지 불법화해버렸다.' (147P) 저자는 모 대형할인점은 10억이나 드는 SSM을 개점하는 영세상인에게 최고9억까지 자본을 대주는 제도를 만든 적이 있는데 유통산업발전법이 이 프로그램을 좌초시켜버렸다고 주장한다. 이런 불합리한 일이 동반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현실을 개탄한다.
두 번째가 양극화 문제이다. "재벌 때문에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누구나 믿고 있는 말이다. 양극화는 1998년 까지는 낮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외환위기후부터 10년간 급격하게 높아졌다. 그렇다면 재벌 때문에 더 심화되었나? 정운찬 전 동반성장위원장은 4대그룹의 매출액이 국내총생산(GDP)의 53%에 이른다며 경제력 집중 심화가 걱정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숫자는 맞다. 그러나 매출액이든 자산이든 일관된 기준으로 비교할 경우에는 재벌로의 집중도는 줄어들었음이 데이터로 증명한다.
매출액을 기준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무리해서 확장하면 1980년 중반부터)외환위기 이전까지 30대 기업집단의 비중은 60%쯤에 있다가 IMF를 기점으로 급격히 떨어져 2003년 32.7%까지 낮아진다. 그 후33~36%에서 안정된 추세다.(공정거래위원회 자료) 가장 최근의 데이터 시점은 2010년 기준 35.8%다. 1998년부터 재벌로의 집중도는 낮아지는데 이 때 계층간 소득분배가 얼마나 공평하게 이루어졌는지를 나타내는 수치인 지니계수는 급등하는데 이것은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뜻이다.재벌 때문에 양극화가 초래된다는 말이 틀렸음을 보여주며 오히려 재벌은 양극화를 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니계수가 악화된 가장 큰 이유는 노인빈곤의 증가 때문인데, 그것도 재벌 때문이라고 몰아붙인다.(161P) 저자는 모든 문제를 재벌 탓하는 비이성적인 시각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셋째, 재벌이 중소기업을 죽였다고 한다. 이것은 진실인가? 이 책에 나온 도루코의 실패와 성공 이야기는 중소기업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첫째, 중소기업을 국내의 대기업으로부터 보호할 수는 있지만 외국제품이나 외국기업으로부터 보호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도루코에 치명타를 입힌것은 1989년의 면도기 수입 개방이었다. 개방이되어 절박한 상황이되자 그전까지 엄두도 못 내던6중 면도날도 개발하고 국외 진출에도 성공했다. 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터가 2006년 중소기업 고유업종 해제 이후 중소기업들의 성과를 분석해 보니 382개 중소기업들의 매출액 증가율은 43.8%에서 51.2%로 높아졌고 연간자산 증가율은 39.2%에서 56.1%로 상승했다. 영업이익증가율은 4.6%에서 59.2%로 놀랍게 높아졌다. 중소기업들이 보호를 원하는 것은 당장 눈앞의 편안함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한국경제가 도약하려면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커야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는 불쌍하다 여기고 시대를 개척하는 자는 뒷다리를 잡는 것이 민주화요 정의처럼 되어버렸다고 한탄한다.
넷째, 소수지분으로 대기업을 지배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경제민주화론자들은 1%의 지분율로 99%를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벌 총수는 평균 4.17%의 지분율로 100%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게 사실이다. 지분율과 의결권 사이의 이런 차이를 ‘의결권 괴리’라고 한다. 저자는 순환출자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의결권 괴리가 한국 재벌만의 병리현상인 것처럼 매도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 의결권 괴리를 공식적으로 제도화한 기업들도 많고 구글, 페이스북, 벅셔해서웨이 등 누구나 아는 기업들이 의결권 괴리를 제도화해두고 있다고 한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버핏이 갖고 있는 벅셔해서웨이의 주식은 일반투자자가 갖고 있는 주식의 200배의 의결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차등의결권이 허용되지 않은 한국 기업의 순환출자는 경영권 유지를 위한 수단이라는 설명이다.
경제민주화가 아닌 경제자유화 확대가 필요하다
경제자유화는 재벌만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 여론이다. 광복 이후 김대중 정부까지 한국의 경제자유는 계속 확대돼 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귀속재산 불하를 통해 사유재산제와 자유기업주의가 뿌리 내리게 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닫혀 있던 나라의 문을 열어 한국인의 활동무대를 세계로 넓혔다고 주장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본시장 개방 등 경제자유화 조치를 단행했다. 2000년대 초까지의 60년은 경제적 자유가 확대되는 시기였다. 노무현 정부가 반(反)시장적 기치를 들고 나오긴 했지만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만은 추진했으니 경제자유를 완전히 후퇴시키지는 않았다. 저자는 이명박 정부가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를 내걸었던 만큼 경제적 자유가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결과는 실망이었다고 한다. 서비스산업의 자유화 민영화는 물 건너가 버렸고 정부가 시장가격에 직접 개입하고, 주유소를 차리고, 투자를 안 한다고 기업을 압박했다고 주장한다.
대기업을 견제 한다는 사회분위기에 힘입어 정치권은 ‘경제민주화’를 주장한다. 출자총액제한 부활은 투자의 자유를 줄이고, 순환출자 금지는 기업의 형태를 선택할 자유를 줄인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대기업만 그런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에도, 그중에서도 특히 의욕적인 중소기업에는 경제민주화가 올가미로 작용한다. 풀무원식품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이 회사가 두부사업을 시작한 것은 1984년. 직원 10명의 영세기업이었다. 철저한 위생관리와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해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냈고, 30년 만에 연매출 1조 원이 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CJ나 대상 같은 재벌계 식품기업도 누르고 두부시장 점유율 1위가 되었다. 그런데 동반성장위원회가 풀무원식품에 두부사업에서 철수하라고 압박을 해왔다. 두부는 대기업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다. 옥신각신한 끝에 확장을 자제하라는 수준에서 가닥을 잡은 모양이지만 경제민주화 바람이 더 거세지면 언제 다시 두부사업을 접으라고 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경제민주화는 기업들의 성장동력을 빼앗고 대기업은 규제의 사슬로 묶어 못 크게 만들게 하며 중소기업은 묶지는 않지만 그 대신 중소기업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좋도록 만들어 성장욕구를 거세해 버려 우리 경제를 후퇴하게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성장이 없으면 복지재원도 마련할 수 없고 복지가 성장을 가져온다고 하지만 틀린 말이라 주장한다. 성장은 경제적 자유와 기업가정신이 만들어내는 결과이며 경제민주화에만 쏠린 관심을 경제자유화
에도 나눠주기를 주문한다.
저자는 지식인들이 대중의 재벌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대중의 믿음을 거스르는 어떤 증거도 내놓으려 하지 않으며 아예 찾으려는 노력조차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대중이 원치 않는 증거를 내놔서 자기에게 돌아올 거라곤 재벌의 사주를 받았을 거라는 의심과 비난뿐일 테니 숨는다는 것이다. 언론도 그런 증거는 제대로 다뤄주지 않으니 한국 사회는 ‘경제력 집중’이라는 거대한 집단최면 상태에 빠져 버렸다고 비판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최면에도 대가가 따른다. 착각 위에서 나오는 정책들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리 없고 경제민주화든, 동반성장이든 서민들에게 해로운 결과들을 몰고 올 것이며 그 결과로 기업의 투자가 줄어드는 만큼 일자리는 줄어들고, 소득은 낮아질 것이고 중소기업의 일감도 줄어들 것이니 무엇보다도 소득의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 저자는 경고한다. 저자는 우리나라 30대 기업의 직원 수는 106만 명인데, 직원 가족과 협력업체 직원 및 가족까지 합하면 1000만 명 정도이니 30대 그룹은 이 천만 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으니 그룹의 이익이 늘어나면 자산도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대기업이 오천만 국민 모두를 책임질 수 없는데 정치권은 책임을 대기업에 넘긴다고 비판한다. 경제민주화가 아닌 경제자유화를 더 가속화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확고한 주장이다.
경제학자들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세계 경제와 국내 경제의 성장세를 어둡게 보고 있다. 불황이 더 오래갈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이 대세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불황의 시대를 맞아 한국 경제가 나아갈 방향은 어디인가? 우리는 한국의 미래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과연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담론은 미래를 위해 옳은 선택인가? 라는 질문에 이 책은 신선한 시각을 제시한다. 지금의 선택이 앞으로 10년, 나아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담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