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특집1>문화운동의 인프라를 새로 구축하자

 

황성준 '미래한국' 편집위원, 동원대 초빙교수

 

 

지난 대통령 선거는 ‘세대전쟁’(generation war)의 양상을 띠었다. 2030세대는 야당에게, 50대 이상은 여당에게 몰표를 몰아주었다. 그리고 40대에서는 야당후보가 10포인트 이상 차이로 이겼다. 이러한 선거 결과를 놓고, “요즘 젊은 애들이 문제야”라는 말을 5060세대로부터 자주 들을 수 있다. 사실 세대갈등은 정도의 문제일 뿐,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던 문제이다.심지어 고고학자들이 수메르 제국의 설형문자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젊은 세대의 버릇없음을 개탄하는 문서를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에 반발하기 마련이며, 그러한 반발, 혹은 문제제기를 통해, 사회가 발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대선 과정을 통해, 드러난 문제는 지금 대한민국의 세대갈등이 단순한 세대 간의 충돌, 혹은 일부 버릇없는 젊은 세대의 반항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대갈등이 아닌 이념갈등이 문제의 핵심이다

단순한 세대갈등이라면 시간이 가면서 자연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표면상 세대갈등으로 보이는 현재 대한민국 갈등의 기본구도의 본질은 ‘이념갈등’이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2040세대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이유가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보다 젊기 때문이었는가? 아니다. 이번 선거 구도를 규정한 것은 이념과 역사인식이었다. 여기서 이념이란 ‘허위의식’을 일컫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ideas’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사실 MB정권이 젊은 세대로부터 외면당한 것도, MB가 소통을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다른 이념과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소통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였다는 것이 정확한 지적일 것이다. 그럼 MB 정권은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는가? “기회주의라도 좋다. 경제만 살려다오”라는 것이 MB에게 표를 던진 40대 이하 세대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만큼 경제가 살아나지 않자(이것이 MB의 잘못이든 국제경제 환경 탓이든), “그렇다면 더 이상 기회주의에게 표를 줄 수 없고, 이제는 정의(?)를 회복할 때”라는 논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던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위기의 본질은 2040세대에서 지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안티 대한민국 진영에게 빼기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사실은 대학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문학 및 사회과학 강의 내용과 대형서점에 진열돼 있는 인문 사회과학 서적들의 목록만 살펴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인문 사회과학 분야에서의대학 강단 ‘주류’는 좌익진영이다. 믿기 힘들다고? 대학에서 진행되는 강의내용을 조사해 보기 바란다. 출판 분야 문제는 대형 서점을 방문해 보던지, 아니면 사회과학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안티 대한민국 진영의 지적, 문화적 헤게모니 장악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오랜 시일에 걸쳐(최소한 1980년대 초부터) 끈질기게 벌여온 저들의 문화•이념투쟁의 산물인 것이다. 이러한 헤게모니가 온존하는 한, 젊은 세대의 ‘두뇌’와 ‘심장’은 저들의 손아귀에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재 대학가의 문제는 사실 20대 대학생이 아니다. 문제의 중심은 30∼40대 교수와 강사들이다. 어떻게 보면, 요즘 20대는 그리 좌익적이지 않다. 30∼40대의 지적, 문화적 헤게모니 하에 있을 뿐이다. 마치 ‘벌거숭이 임금님’ 우화를 떠오르게 하는 것이 요즘 20대의 분위기다. 자신들의 눈에는 대한민국이 그리 나쁘게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나쁜 사람이거나 지적으로 열등한 사람으로 비춰지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분위기를 깨고 용감하게 ‘커밍아웃’한 20대들도 적지 않다. 바로 이들에게서 희망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반 대한민국 세력이 장악한 문화의 헤게모니 

5060세대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주류는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전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을 경제대국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87년 넥타이 부대로 상징되는 민주화의 주역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위대성은 해외만 나가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더 이상 제3세계 저개발국가로 분류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원조 받던 국가에서 원조 주는 국가로 변모한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그런데 2030세대의 의식을 살펴보면, 대한민국은 별로 자랑스러운 나라가 아니다. 아니 “태어나지 말아야 할 국가”였으며,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국가”이다. 지금 조금 잘 산다고? 너무나 명백하기에 이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이 사실도 이렇게 왜곡하여 인식한다. “민족의 영혼과 양심을 판 더러운 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려고 온갖 고생과 노력을 다 했다. 그 결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이념을 개발하고 이를 아래 세대에 전파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렇기에 졸부 아들이 아버지가 이룩한 재산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아버지를 존경하기는커녕, 경멸하고 무시하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주류세대는 절대로 졸부가 아니다. 단지 지금까지 그들의 역사관과 이념을 체계적으로 포장하여 전파할 시간적 물질적 여유를 갖지 못했을 뿐이다. 그럼 무엇을 할 것인가? 이대로 대한민국을 경멸하는 이념과 문화를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인가? 이제 지적, 문화적 헤게모니를안티 대한민국 세력으로부터 되찾아 오는 작업을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구체적 방법론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아마도 ‘파월 메모’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우리와 미국의 상황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앞선 경험이 시사해 주는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 바탕 위에서 몇 가지만 지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장기전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 지적, 문화적 헤게모니 싸움은 단기간의 전투가 아니다. 좌익 진영의 문화적 헤게모니도 최소한 30년, 길게는 50년 이상의 노력 끝에 이뤄진 성과다. 최소한 한 세대를 놓고 준비해야 한다.

둘째, 싱크탱크를 조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도처에서 들리고 있으며, 이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싱크탱크는 순수 아카데미 그룹이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야할 싱크탱크는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이나 미국 기업연구소(AEI)와 같은 조직이다. 즉 이념조직으로서, 이슈문제를 선점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운동성을 지닌 조직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그저 박사와 교수만 모아 놓는다면, 이는 이미 존재하는 연구소에 한 개를 더 추가하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될 따름이다.

셋째, 대학 강단을 회복해야 한다. 하이에크나 미제스도 대학 정규 교수진(faculty member) 소속이 아니었다. 외부 재단의 지원으로 대학에서 강의했던 교수들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경제학 일부 분야에서 이러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 그리고 젊은 대한민국파 대학원생들을 체계적으로 육성, 지원해야 한다. 이러한 사업은 별도의 재정을 마련하지 않고, 현재 지급되고 있는 장학기금만 제대로 활용하더라도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넷째, 출판 사업에 보다 많은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대학생들로부터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권할 책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또 “요즘 대학생들은 책을 많이 읽지 않는데, 무슨 출판 사업이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중사업 관점에서 보면 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지적, 문화적 헤게모니는 소수의 지적 호기심이 강한 그룹의 장악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러한 지적, 문화적 리더 그룹은 여전히 책을 매개로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지적, 문화적 선진그룹의 장악을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대중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원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사업이 출판 부문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