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와 민주당, 그 애증의 緣
김순덕 (언론인)
“미 의회가 행정부에 부여한 신속협상권(TPA)이 만료되기 전인 2008년 6월 30일까지 협상안에 서명했더라면, 지금쯤 활짝 열린 미국시장을 통해 단기적으론 수출 12.1% 국내총생산 29억 달러를 증가시키며 경제 폭발성을 회복했을지도 --- ”
자기들이 체결한 FTA! 발목잡는 민주당
4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2층의 한 회의실. 열린우리당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결과 보고를 위해 참석한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김종훈 FTA 한국 측 협상단 수석대표 등이 정세균 의장과 악수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열흘 동안 집에도 못 들어갔다는데…”(송영길 의원) “영웅이다”(홍재형 의원)는 찬사도 쏟아졌다. 그러자 늦게 들어와 구석에 있던 정청래 의원이 “열흘 동안 집에 못 간 것만 잘한 거냐. 20일 동안 단식한 사람(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도 있는데…”라고 쏘아붙였다. 일순 회의장에 어색한 침묵이 돌았다.
“한미 FTA를 해야 될 것 같기도 한데 찬성하기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내용도 잘 모르겠고…. 판단을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열린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한미 FTA 협상 타결에 따른 당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2007년 4월 5일자에 실린 동아일보 기사는 한미FTA와 민주당(열린우리당의 후신)의 애증의 긴 세월을 잘 말해준다. 그해 4월 체결된 한미FTA는 지금까지 비준되지 않았다. 민주당이 자기들 집권 시절에 체결한 한미FTA에 대해 끊임없이 발목을 잡는 자가당착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FTA는 2006년 1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우
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 미국과도 FTA를 맺어야 한다”며 “조율이 되는 대로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밝히면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취임 이래 미국과 사사건건 맞서는 대통령을 보아온 국민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자신의 노선이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고백하며 “FTA로 경쟁력을 키우고 여기서 나온 이익을 독점하지 말고 보상해 전 국민이 이득을 보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장 드러난 것은 당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 내의 갈등과 분열이었다.
한미FTA를 둘러싼 당시 열린우리당, 즉 현재 민주당의 지형은 구성원의 이데올로기와 성향을 거의 정확히 반영한다. 그때 FTA 협상 타결에 반대하는 의원 51명의 모임인 ‘비상시국회의’에는 열린우리당 의원 20여 명이 참여하고 있었다. 현재 민주당내에 한미FTA가 상징하는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좌파그룹이 다수인지,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움직이는 기회주의자 또는 뭐가 뭔지 잘 모르는 무지한 그룹이 다수인지, 아니면 대한민국이 잘 돼서 현 집권당인 한나라당이 잘 되는 꼴은 절대 봐줄 수 없다는 반대를 위한 반대파가 다수인지는 알 수 없다(실은 알아도 말하기 어렵다).
오락가락 손학규
손학규 대표는 오락가락의 전형이다. 한때는 2006년 한나라당의 당적을 유지한 채 대선주자의 길을 닦는 ‘민심 대장정’ 속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FTA라는 어려운 결단을 한 것을 높이 평가해주고 더욱 힘있게 추진하도록 격려해주자”(2006년 12월)고 자신의 블로그에 썼고, 통합민주당으로 말을 갈아탄 뒤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일은 조속히 처리하여 통합민주당이 신뢰받는 대안이 될 수 있음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2008년 4월 10일).
그러나 올해 10․3 전당대회로 민주당 대표를 맡고나선 달라졌다. 당내에서 한미FTA 재협상 논란이 가열되자 “국익을 추가하고 피해 상황을 보완하는 것을 과제로 삼겠다”는 아름다운 말로 재협상 쪽으로 기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또 이게 다가 아니다. 10월 27일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를 만난 자리에선 “한미 간 균형을 깨는 공정하지 않은 관계가 된다면 양국 통상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재협상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종잡을 수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세균. 기회주의자로 볼 수밖에
지난 정부에서 한미FTA를 총괄한 산업자원부 장관이었던 정세균 최고위원도 기회주의자 그룹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 당시도 체결을 찬성했고, 지금도 재협상을 반대하는 건 맞다. “한미FTA 체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했던 것인데 아무리 야당이 됐다고 해서 입장을 바꿔서는 책임 있는 정당임을 보여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2008년 여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가 불타오를 때 당시 통합민주당의 차기 대표 후보로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수십 명의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시위에 동참해 주먹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민주당 대표를 맡은 2008년 7월부터 2년간 FTA 국회 비준에는 전혀 나서지 않았을 만큼 이중적이기도 하다.
좌파의 맹주 자처하는 정동영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과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내면서 “참여정부 내 협상 완료 반대”를 밝혔었다. 대권을 노리고 있던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한미FTA를 뒤엎을 작정이었던 것 같다. 당연히 이 정부 들어선 재협상 반대다.
그는 35명의 야4당과 무소속 의원들과 함께 10월 18일 한미FTA의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는 서한을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앞으로 발송했다. 말은 재협상이지만 “기업의 이해를 유권자의 이익보다 더 중시하는 FTA는 야합에 불과하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공동노력을 해 나가겠다”는 문구를 보면 의도는 명백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좌파이념에 충실한 그룹의 맹주를 자처하는 모습이다.
민주당 최고위원 중 열린우리당 의원으로 국회비준을 거부했던 이인영, 민주당 중앙위원으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협상엔 반대”를 밝혔던 박주선,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으로 “국회비준 반대”를 외쳤던 조배숙 최고위원도 ‘재협상’을 주장하며 사실상 FTA에 반대하고 있다.
이보다 좀더 선명하고 강경한 사람이 천정배 민주당 최고의원이다. 그는 2006년 4월 한미FTA 타결이 임박하자 반대 단식투쟁을 했고, 2007년에도 김근태 당시 의원과 함께 “한미FTA는 제2의 을사늑약”이라며 또 단식을 하곤 급기야 민주당을 탈당했다(결국 복귀했지만).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고,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하면서 붙여진 별명이 ‘탈레반(원리주의자)’ 이미지 그대로다.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 정권은 17대 국회 마지막 회기이던 2008년 2월 민주노동당이 반대하자 회의장을 옮겨가며 비준안을 상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18대 총선을 의식한 의원들이 끝내 발목을 잡았고, 민주당으로 간판을 바꿔단 다음인 2008년 12월 18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선 비준안 상정을 막기 위해 공사장용 망치와 끌, 전기톱을 동원해 국회 회의실 문짝을 뜯어내고 난장판을 벌였다.
민주당이 처음부터 한미FTA 찬성을 밝혔던 한나라당과 함께 적어도 미 의회가 행정부에 부여한 신속협상권(TPA)이 만료되기 전인 2008년 6월 30일까지 협상안에 서명했더라면, 지금쯤 우리나라는 활짝 열린 미국시장을 통해 단기적으론 수출 12.1% 국내총생산 29억 달러를 증가시키며 경제 폭발성을 회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통합민주당 의원이었던 김명자 사회통합위원회 위원만이 “17대 임기가 끝나는 6월 29일 마지막 순간까지 한미 FTA 처리를 포기하지 말자”고 공개 발언한 거의 유일한 민주당 의원이었다.
김순덕 연구원
동아일보 논설위원 / 편집국 부국장 /문화부차장
미국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방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