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나라 북한의 실체를 다시 묻는다
- <극장국가 북한> 정병호, 권헌익 공저(共著)
고진석 독서 컨설턴트
전쟁 분위기를 내기 위해 시내버스와 전차엔 위장용 그물과 어설픈 나뭇잎을 달았지만 “(너무 위장을 잘해) 교통사고가 날 수 있겠다”는 외국 관광객의 농담에 평양 시민들은 키득거리기만 했다.(영국 이코노미스트 2013년 4월) 그런 이상하고 또 이상한 체제 북한은 식량위기로 곧 자멸한다는 주장을 무려 20여년간 들었다. 김영삼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줄곧 그러했다. 그러나 기대(?)인지 예측인지 모를 주장과는반대로 3대 세습은 이루어졌고, 핵무기 개발에도 성공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되는 위기조성을 위한 북한의 행동들은 한편으로 심각하고 한편으로는 코미디라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정상적이지 못하다. 정상적으로 보면 이미 망했어야 할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한편으로는 경이롭기 까지 한 것이 사실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수령의 영도력’이실제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과연 존재하는 걸까?
반세기 넘게 카리스마체제가 유지되는 진짜 이유는?
이 책 <극장국가 북한-카리스마 권력은 어떻게 세습되는가>(창비)는 비정상적인 북한 권력유지의 비결을 풀어 간다. 흔히 북한체제를 유지하는 비결로 위대한수령의 영도력으로 상징되는 카리스마 리더십을 든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베버는 카리스마 권력은 사회적 위기 때 등장했다가 그 사회가 일상의 질서로 되돌아가면 서서히 사라져 전통적 권력이나 합리적•법적 권력에 그 자리를 내준다고 봤다.
20세기 스탈린 마오쩌둥은 모두 저항운동을 통해 업적을 이루었고 사회적 혼란기에 대중동원을 통한 카리스마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카리스마 권력은 사회가 격변을 수습하고 일상의 질서로 돌아가면 사라졌다. 그러나 북한만이 예외였다. 오직 북한만이 반세기 넘게 ‘비정상적인’ 모습 그대로 일상을 이어 가고 있는 셈이다.위대한 수령의 카리스마권력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카리스마는 만주항일유격대시절을 미화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극장국가 북한>은 북한의 특수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이문웅’의 가족국가의 개념과 ‘와다 하루키’의 유격대국가의 개념을 베버 및 기어츠의 이론을 접목하여 북한을 설명한다.
이 책을 보기 전에 꼭 보아야 할 책이 바로 와다 하루키(和田春樹.65) 전 일본 도쿄대학 교수의 <북조선>이다.
이 책에서 북한은 1961년 국가사회주의체제를 완성한 후, 후계자 김정일의 주도로 김일성을 사령관으로 하여 전 인민이 받드는 유격대국가라고 주장한다. 김일성의 만주항일유격대정신을 인민들에게 유격대식 학습과 훈련, 정신무장을 요구하는 국가라는 것이다.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 식으로"라는 말을 창안한 이가 김정일이며 주체사상탑이나 개선문 같은 기념비적 건축물의 건립 또한 그가 주도했다는 것이 와다교수의 주장이다.
이 시점을 와다 교수는 김일성 유일주체사상 이 전개되는 67년 이후 72년 무렵으로 잡고 있다. 와다는 유격대 국가적이던 북한이 1998년 9월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 회의에서 신헌법이 선포됨으로써 법제적인 토대까지 마련했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국방위원회는 "국가주권의 최고지도기관"이 되었으며 김정일은 국방군사위원장에 추대된다. 북한은 김정일 체제가 들어서면서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 '이행'한 것이 된다.
유격대 국가 북한의 실질적인 무대감독이던 김정일
그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유격대국가론과 정규군국가론은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으며 서로 어떤 관계에 있을까? 정규군국가론이란 글자 그대로 군(인민군)을 체제의 중심으로 보는 이론이다. 정규군국가론은 유격대국가에서 강조되던 항일유격대를 혁명적 군인정신으로 대체한다. 그에 따라 인민군은 "혁명의 기둥이며 주체혁명 위업 완성의 주력군"으로 승화된다. 요컨대 군을 앞세우는 선군정치(先軍政治)인 것이다. 김정일은 유격대국가론의 무대감독이자 제작자라고 와다 교수는 주장한다. 이 순간 북한은 '국가'가 아닌 '극장'이 되는 것이다.
“무장혁명투쟁의 전기적 역사는 단순히 개인의 업적이 아니라 집안의 계통문제로 제시되며, 따라서 그의 카리스마도 그 사람 개인의 속성이 아니라 내림을 받은 집안의 유산이며 정해진 운명으로 그려진다. 나아가 그를 이은 후계자의 경력도 동일한 시나리오를 반복하며 전통의 계승자이자 수호자로 그려진다. 따라서 이른바 총대철학은 대체 불가능한 개인적 카리스마를 세습적 카리스마로 대체해야 하는 어려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인격화된 카리스마
를 상속되는 권위의 형태로 변모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북한은 어떻게 카리스마 권력의 수명을 뛰어넘었고 심지어 개인적 카리스마를 세습까지 시켰다. 이 수수께끼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북한 정치체제에는 미스터리가 없다. 북한이란 국가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아니며 그랬던 적도 없다” 책의 저자들은 대신 “북한 정치체제의 수수께끼는 특이한 개인숭배의 관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관행의 특이한 지속성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북한정권은 어떻게 비정상적인 형태의 통치를 일상화하면서 세습까지 이루어 냈을까?‘극장국가’가 답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의 행사 자체가 의식, 연극에 있다고 하는 극장국가는 화려한 의례와 공연 등 과시의 정치로 통치되는 국가를 통칭해 말한다. 극장국가는 20세기 저명한 인류학자인 클리퍼드기어츠가 1979년에 낸 권력이론이다. ‘극장국가’ 개념은 클리퍼드기어츠가 19세기 발리 왕국 연구에서 제시했다. 인도네시아 현대정치의 기원을 찾다 도달한 결론이다.
결국 북한은 '거대한 쇼'의 메커니즘?
기어츠는 “국가권력은 강제적인 힘(관료, 군대, 경찰)의 독점이라고 정의한 베버의 고전적 논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정치권력에 대한 개념을 다원화”하는 것이었다. 정치적 권위라는 것은 처벌의 공포뿐 아니라 “왕이 사회와 우주의 중심임을 주기적인 의식을 통해 과시하는 것에 기반을 두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쇼를 한다는 것이다. 쇼란 웅장해야 한다. 상징을 조작하기 위해 엄청난 볼거리를 제시함으로써 전 인민이 박수치도록 하는 것이 극장국가다.북한은 비정상적인 카리스마권력을 일상화하기 위해 연극, 노래, 영화, 군중집회, 대규모 행사와 다양한 선전도구, 사상을 보급했다. 극장국가는 김정일시대에 와서 확립된다. 김정일은 김일성에서 자신의 체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북한은 극장국가의 핵심을 이루는 두가지의 상징을 창조한다. 자신의 생모이며 빨치산 투쟁경력이 있는 ‘김정숙’ 과 할아버지 아버지와 자신을 연결하는 ‘총대’를 만들어 낸다.
이 둘을 결합한 형태가 선군정치다. 다른 사회주의 혁명국가들과 달리 정통성을 유지하며 미국에 대항하는 유일한 국가라는 자부심과 함께, 자신의 정치체제를 절대적 가치로 여기는 정당성을 부연한다. 절대적 가치는 저항정신이다. 북한에서 일본제국주의자를 몰아내는 ‘빨치산 활동’은 반제국주의투쟁인 동시에 부성애와 효성이라는 가족적 가치를 포함한다.따라서 아버지 김일성을 따르지 않거나 그의 지도력에 의심을 품는 행위는 민족에 대한 배신인 동시에 가족에 대한 배신에 해당한다. 정리하면 오늘의 어려움은 외세에 원인이 있고 그 외세를 몰아내야만 우리 가족의 풍요와 안정이 있다는 것이다. 극장국가는 한 가족이 되어버린 가족국가의 아버지가 가진 숭고한 저항정신을 포장하기 위한 수단이다. 외세에 대한 숭고한 저항은 오늘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도덕적인 원동력이 된다. 이 도덕은 유교와 유사하지만 분명 다르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충과 효의 미덕은 유교적 전통에서는 공과 사의 별개의 원칙이고 북한은 윤리와 원칙을 통합했다는 점은 오히려 현대적인 정치관행에 가깝다고 해석한다.
'아리랑축전'은 극장국가의 대표작이다. 아리랑은 일제의 강압에 고향을 등진 유랑민들이 혁명적인 지도자(김일성)를 만나 민족해방을 달성하고, 희망과 열정을 회복한다는 이야기다. 10만 명 이상의 학생•여성•군인이 고도로 훈련된 시민이 배우로 참가하는 아리랑축전은 북한의 극장국가 정치가 정점에 이른 시기의 산물이다. 북한 주민에게는 도덕적•정치적 슬로건을 제시하고, 국제사회에는 핵심적인 외교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에게 변화를 바라지 말라” 북한이 세계에 전하는 메시지이다.
아리랑 공연은 2002년에 들어서야 선보였지만 아리랑의 주요 구성 요소는 김일성의 60회 생일 기념을 맞은 1972년 전후부터 존재하기 시작했다. 이 극의 핵심은 저항의 기억이다. 일본과 미국 강대국에 대한 저항의 기억은 역사적 사실보다 김정일이 연출한 혁명가극으로 미화되어 기억된다. ‘꽃파는 처녀’와 ‘피바다’ 역시 식민지배의 폭력으로 혈육을 잃고 천애고아가 된 아이들이 빨치산 지도자 한별(김일성)을 만나 혈육을 대신할 가족적 유대감과 도덕적 소속감을 발견하고, 빨치산 대원이라는 혁명가족에게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깨우친다는 내용이다. 북한주민 대부분이 실제로 경험해 본적이 없는 1930년 김일성의 항일유격대의 기억은‘피바다’와 ‘꽃파는 처녀’라는 연출된 작품으로 거대한 극장을 통해 주민들에게 보여 지고 통치권을 유지하는 핵심요소로 자리 잡는다.
지금 북한은 체제의 위기이자 극장의 위기
극장국가 북한을 보면북한의 위기는 체제의 위기가 아닌 극장의 위기임을 알 수 있다. ‘극장국가’는 북한식 극장국가의 기원을 1970년대로 소급했지만, 와다가 지적한 것처럼 북한식 극장국가는 1994년 김일성 사후 더 강화된다. 1990년대 중반 북한사회에 몰아닥친 농업생산의 감소, 생산과 분배체제의 붕괴, 경제와 행정의 마비는 대규모 굶어죽는 사람들을 낳았다. 이 와중에 김일성 즉 국가의 아버지의 죽음은 현실의 어려움을 집단애도로 승화한다. 장례식의 비정상적인 비통함은 사실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극화된다. 직접 경험한 적은 없는 극화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북한인민들의 위대한 조상인 1930년대 빨치산처럼 마땅히 고난을 견뎌야 했다. 그것이 ‘고난의 행군’이었다. 고난의 행군 시절 북한의 수뇌부는 금수산궁전의 개축, 조선로동당창건기념탑과 같은 극장국가를 위한 대형 구조물을 만들고 있었다. 당장의 빵보다 극장공연이 더 중요시되는 이상한 사회였다.
201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제65돌 기념일에 68세의 김정일과 그해 장군으로 임명된 28세의 후계자 김정은이 북한 대중 앞에 처음으로 함께 출연해 군사퍼레이드를 사열한다. 아버지 김일성의 역사를 연출한 김정일은 아들의 역사도 직접 연출한다. 극장국가의 연출자는 무대와 함께 살고 무대와 함께 죽은 셈이다.
“북한 내부의 위기와 외부의 위협은 극장국가적 요소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북한에 미래가 있으려면 극장국가로서의 스스로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이를 매듭지어야 한다.”
극장국가는 북한왕조의 입장에서 보면 자랑스러운 성취이면서도 비극적 실패이기도 하다. 연극적으로 연출되고 과장된 권력에 대한 숭배는 정상적인 통치체제의 기능을 마비시켰다. 문화통치에 집중된 리더십은 경제개혁을 멀리하고 핵무기나 만드는 허무한 짓거리나 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저자들은 “북한에 미래가 있으려면 극장국가로서의 스스로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이를 매듭지어야 한다”며 “다원성을 중시하는 현대적 정신에서도 한 사회의 특수한 정통성은 오직 다른 사회들이 인정하고 승인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인정될 수 있다는 지혜를 회복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냉전사 이론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트리니티칼리지 석좌교수와 한양대 정병호 교수는 문화 인류학자답게 문화인류학(cultural anthropology)을 토대로 북한사회를 분석한다. 북한사회를 문화인류학적 관점으로 분석한다. 필자는 이 책이 문화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명제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명제에 관해서 상대적 판단만 존재한다는 워프학파(Whorfian school)의 의견에 충실한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 책은 북한의 문화를 통해 북한정권을 보는 색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반복되는 위기에 둔감해져 가는 한국사회에 이 책은 북한을 이해하는데 유익한 관점을 제공해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