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따지고 보면 한미동맹은 어울릴 수 없는 두 나라를 억지로 짝지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태평양 건너 멀리 있고, 이해관계도 별로 없었고, 문화적으로도 상이했다. 한국은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보잘것없는 나라였던 반면 미국은 대표적인 선진국이고 초강대국이었다. 1949년에도 이미 미국은 한국이 전략적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미군을 철수시켰고, 북한이 남침했을 때에도 참전의 명분은 도적을 몰아내는 경찰행동(police action)에 불과했다.

60년 전 전혀 안 어울리는 한국-미국의‘결혼’

더구나 한국전쟁은 미국에게 아주 인기 없는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미국이 엄청난 희생을 치렀던 2차 대전이 끝난 지 몇 년 후에 일어났을 뿐 아니라 머나먼 극동의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서 싸워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한국전쟁을 지휘하던 브레들리 합참의장마저 이 전쟁을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장소에서 일어난 잘못된 전쟁”이라 했다. 2차 대전의 영웅이었던 아이젠하워 장군마저 “한국전쟁을 조속히 끝내겠다”는 공약으로 1952년 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전후복구에 급급하던 처칠을 비롯한 유럽의 지도자들도 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은 한국에 대한 “사형 집행장”이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200만 가까운 희생자를 내고 나라가 잿더미가 되었는데 휴전을 한다면 통일의 기회를 놓치게 될 뿐 아니라 장차 나라의 생존이 위태로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군은 괴멸상태였지만 50만 명 규모의 중공군이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고, 북한이 중국 및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군사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북한과 중국 간, 그리고 중국과 소련 간에 군사조약을 맺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휴전을 하고 미군이 철수하게 된다면 공산세력은 언제든 또 다시 침략할 수 있을 것으로판단했다. 이승만은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기본적인 안전장치는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이라 확신하고 미국에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승만의 요구를 일축했다. 상호방위조약이란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나라 간에 체결하는 것인데 한국은 부담만 될 뿐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라의 생존과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이승만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휴전을 강력히 반대하면서 유엔군이 전쟁을 포기한다면 한국이 단독북진 할 것이라 했고, 국민들도 그를 적극 지지하면서 전국적으로 휴전반대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단독북진을 위해 유엔군 지휘 하에 있던 한국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위협했고, 이를 위해 미국에서 훈련 중인 장병들에게 귀국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미국은 이 대통령의 상호방위조약 체결 요구를 무시하고 휴전회담을 계속하자 이승만은 비장의 카드를 동원했다. 즉 그는 유엔군 통제 하에 있던 반공포로 2만 7천명을 기습적으로 석방시켰다. 이에 대해 미국의 덜레스 국무장관은 “등 뒤에서 칼로 찌르는 행위”라고 비난했고, 영국 총리 처칠은 “반역적 행동”이라 했다. 서구 언론은 “입에 칼을 물고 춤추는 위험한 행동”, “비타협적인 독재자”, “망령 난 늙은이” 등이라는 등 비난이 쏟아졌다. 그래서 미국은 휴전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승만을 제거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이승만 대통령“후손 대대로 혜택 누릴 것”

그러나 미국은 이승만의 동의 없이 휴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로버트슨을 특사로 파견하여 한국 정부와 협상하도록 했다. 2주 간에 걸친 줄다리기 협상 끝에 미국은 한국에 상호방위조약 체결, 한국군 20개 사단으로 증강 지원, 10억 달러 규모의 원조를 약속하는 대신 한국은 휴전에 반대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리하여 1953년 7월 휴전이 이루어지고 포성은 멈추었다. 그리고 3개월 후인 10월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고, 당시 이 대통령은 “우리 후손들이 대대로 이 조약의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라 했다. 미국원조에 힘입어 한국은 전쟁의 폐허를 조기에 복구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70만 명 규모의 강력한 현대식 군대를 육성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상당규모의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면서 전쟁이 발발하면 자동 개입되는 인계철선 역할을 함으로써 북한의 침략을 억제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한국의 동맹국이 되면서 한국은 미국식 제도와 문물을 적극 수용하게 되었고, 나아가 미국을 국가발전 모델로 한 국가건설에 착수하게 되었다.

공기를 호흡하며 살면서 그 소중함을 모르듯이 한미동맹의 혜택을 누려왔으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미동맹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던 가는 월남의 패망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한미동맹이 결성된 지 20년 후인 1973년 미국은 공산 측과 월남전을 끝내기 위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군을 철수시켰지만 2년 후 자유월남은 공산화되고 말았다. 한미동맹이 없었다면 한국의 운명도 월남처럼 되었을지 모른다. 또한 한미동맹이 없었다면 한국의 경제발전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과중한 안보부담으로 경제개발에 투입할 자본도 없었을 것이고, 안보리스크가 큰 한국에 투자할 외국자본도 없었을 것이다. 60-70년대를 통해 북한은 국민총생산의 20-30%를 군사비에 투입한 반면 한국은 한미동맹에 힘입어 국민총생산의 5%만 국방비로 쓰면서 경제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다. 또한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의 경제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시장을 개방했기 때문에 당시 미국시장은 한국수출품의 절반정도를 흡수했다.

한국의 경제발전과 민주발전에도 결정적 기여

뿐만 아니라 한미동맹이 없었다면 한국의 민주발전도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의 학생데모를 비롯한 극렬한 민주투쟁, 과격한 노동투쟁, 비판을 아끼지 않는 언론은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다. 한미동맹이라는 튼튼한 안보울타리가 없었더라면 과연 그러한 것들이 용납될 수 있었을까? 자칫 극단적 안보위기를 불렀을 것이다. 물론 동맹으로 한국만이 이익을 누린 것은 아니다. 월남전으로 미국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은 대규모 전투부대를 파견함으로써 혈맹으로서의 한미관계를 더욱 튼튼히 했다. 최근에는 이라크와 아프간에서도 한국은 미국의 소중한 파트너가 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