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를 해부한다
심양섭 박사
“누가, 왜 미국을 미워하는가? 과연 한국 사람들 대다수가 미국을 싫어하는가. 그게 아니라면 반미의 핵심세력은 누구인가. 그들은 왜 반미투쟁을 줄기차게 전개하는가. 좀 더 대등한 한미관계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
나는 그동안 반미에 관한 책과 논문을 여러 편 썼지만 이 책은 그동안의 것들과 사뭇 다르다. 지금까지의 글에서는 주로 겉으로 드러난 반미의 현상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에는 반미의 드러나지 않은 측면, 즉 이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반미의 실체와 본질에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작년에 미국에서 1년간 연수하면서 이 책의 원고수정작업을 마쳤다. 내가 만난 많은 미국인들이 2002년 신효순․심미선 사망사건 후 촛불시위나 2008년 광우병시위 같은 한국의 대규모 반미시위를 궁금해 했다.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서 미국인들이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왜 그 문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미국을 공격할까. 미국은 9․11테러 이후 전쟁 중에 있는 나라인데 동맹국인 한국 국민들이 왜 미국의 어려움을 몰라줄까. 그것이 미국인들의 질문이다.
한국에서는 누가, 왜 미국을 미워하는가? 과연 한국 사람들 대다수가 미국을 싫어하는가. 그게 아니라면 반미의 핵심세력은 누구인가. 그들은 왜 반미투쟁을 줄기차게 전개하는가. 좀 더 대등한 한미관계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다른 정치적, 이념적 목적이 있는가.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주로 반미를 미국의 한반도정책에 대한 한국 국민의 반응으로 설명했다. 미국 외교정책의 잘잘못, 한미관계의 불평등성, 그리고 한국인들의 심리와 여론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그것은 반미 연구의 기초로서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반미의 실체와 본질에 다가가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반미의 전모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정책적, 사회적, 심리적 의미를 밝히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반미의 정치성과 이념성을 규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이 책에서 한국의 반미주의를 고도의 정치적, 이념적 성격을 가진 현상으로 보고 그것이 가지는 정치적, 이념적 성격을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나아가 한국 반미주의의 원인과 성격을 객관적으로 고찰하되 규범적이고도 실천적인 차원에서 그 가능성과 한계를 지적함으로써, 이 책이 한국정치 발전과 한미관계 개선에 기여할 수 있게 하였다.
반미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이다. 그것을 ‘반미감정’이라고 표현하건 ‘반미주의’라고 표현하든 간에, 반미는 이미 하나의 강고한 이념이다. 이념으로서의 반미주의는 미국의 행동이 아니라 미국이 상징하는 것, 즉 미국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반미주의는 냉전 이후 오늘날 세계에서 유일하게 보편적인 이념이다.
반미는 또한 국내정치의 산물이다. 반미는 정치세력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과 이념적 성격을 감추기 위해 입는 외투이다. 그 외투를 벗겨 보아야만 누가, 왜 미국을 반대하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러할 때 반미에 대한 올바른 대응책도 강구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는 한국 반미주의의 정치적, 이념적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 먼저 한국의 반미주의를 세계 반미주의와 비교하였다. 세계 반미주의의 원인과 유형을 분석하고, 그것을 한국 반미주의에 적용함으로써 한국 반미주의의 정치적, 이념적 성격을 각각 밝혀냈다. 세계 반미주의의 원인은 국제적 요인과 국내적 요인으로 나뉜다. 국제적 요인은 첫째, 냉전 이후 미국이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존재하는 국제정치 구조, 둘째 미국의 군사력 사용, 셋째, 정체성 충돌, 넷째, 이슬람근본주의, 다섯째, 세계화이다. 국내적 요인은 첫째, 국내정치 리더십, 둘째 언론과 대중문화의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세계 반미주의의 유형은 자유주의적(liberalist) 반미주의, 사회적(social) 반미주의, 급진적(radical) 반미주의, 주권 민족주의형(sovereign-nationalist) 반미주의의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다음으로 세계 반미주의의 원인을 한국 반미주의에 적용하여 한국 반미주의의 정치적 성격을 도출하였다. 첫째, 동북아시아 공동체론, 둘째, 반전평화론, 셋째, 정치연합 혹은 집권전략으로서의 반미, 넷째, 반미에서 반대한민국으로의 지향성, 다섯째, 문화투쟁과 좌파 헤게모니 구축이다.
이어 세계 반미주의의 유형을 한국 반미주의에 적용하여 한국 반미주의의 이념적 성격을 도출하였다. 첫째, 우파 민족주의, 둘째, 유럽식 복지모델, 셋째, 좌파 민족 패러다임과 통일지상주의, 넷째, 주사파식 자주 이데올로기, 다섯째, 반자본주의이다.
이 중에서 한국 반미주의만이 갖는 특수성은 첫째, 반미에서 반대한민국으로의 지향성, 둘째, 좌파 민족패러다임과 통일지상주의, 셋째, 주사파식 자주 이데올로기이다. 이러한 한국 반미주의의 특수성은 분단, 북한의 존재, 그리고 미군의 대규모 장기주둔이라고 하는 한국 특유의 상황에 기인한다.
오늘날 한국의 반미주의는 미국의 동맹국 중에서는 가장 강한 편에 속한다. 그것은 오랜 권위주의 시절 억눌려 있었던 미국에 대한 불만이 민주화시대를 맞아 분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국내정치와 언론, 대중문화의 합작품이라고 보아야 한다.
한국의 반미주의자들은 MBC PD수첩의 광우병 왜곡보도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듯이 단기적 목적을 위해 사실을 날조하거나 왜곡한다. 그들은 민주화투쟁 시절의 만성적 적대문화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시위만능주의는 바로 그러한 만성적 적대문화의 결과물이다. 한국 반미주의자들의 친북일변도 노선은 시대착오적이다. 한국 반미주의자들이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다음 세대의 공감을 얻는 데 실패할 것이며, 결국 언젠가는 자멸할 수밖에 없다. 한국 반미주의도 민족주의적 강박관념에서 탈피하여 궁극적으로 차원 높은 세계시민운동으로 승화할 필요가 있다.
심양섭 박사
숙명여자대학교, 단국대학교, 한림대학교 강사
서울대 동양사학과 졸.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
조선일보 기자, 서울시장직무인수위원, 미국 워싱턴대학교(UW) 방문학자 역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