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군사동맹은 왜 예외적이고 특별한가
- 한미동맹은 영구화하는가> 서재정 著,
고진석 (독서 컨설턴트)
‘동맹은 연애결혼이 아니라 편의에 따른 동거이다.’ 미국의 국제정치학 교과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편의에 따른 동거가 한반도에서는 연애결혼이 되어버렸다. 이번 달에 소개하는 서재정(존스홉킨스 대학 국제대학원 교수)의 <한미동맹은 영구화하는가: 군사동맹과 군사력, 이해관계 그리고 정체성>(원제: Power, Interest, and Identity in Military Alliances)은 제목 그대로 한미동맹의 예외적인 성격 분석에 집중했다.
‘한미동맹은 매우 예외적이다’(5p) 패전국도 아니고 식민지도 아닌 국가인 한국 땅에 수만 명의 외국군대가 반세기 이상 주둔하는 것은 한미동맹뿐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미일 동맹,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같은 다른 군사동맹과 비교해 봐도 그렇다. 동맹국에게 작전지휘통제권까지 넘긴 경우는 전례가 없어 ‘경이로운 주권의 양도’ 라고 표현한 학자가 있을 정도이다. 게다가 주권을 넘겨받은 미국은 작전지휘통제권을 넘기려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환수를 결사반대하고 있다. 미군이 철수한 후에도 동맹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은 얼마든지 있는데도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반미’라는 낙인이 찍힌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런 예외성에 대한 ‘모범답안’이 있다. ‘북 위협’ 이다.(8p)” 북의 군사적 위협은 1990년대 전까지 의문의 여지없이 매우 분명하고 직접적이었다. 90년대 이후 북한경제의 쇠퇴는 북한군의 전력약화를 가져왔다. “경제난은 북한군을 군사훈련보다 주로 건설과 농사일에 더 자주 동원하는 공병대 집단으로 변모시켰으며 군사작전은 크게 축소되었다.”(19p) 이시기에 과연 한국은 단독으로 북한의 공격을 저지하거나 방어할 수 있느냐는 동맹의 미래에 중요한 문제였다. “1990년대에 한국은 지상전에 크게 밀리지 않고도 ‘단독으로’ 북한의 침략을 격퇴할 수 있다는 시종일관되면서도 상호 보강적인 결론이 나온다.”(57p) 이 책은 북한의 전투 능력을 최대치로 가정하고, 남한의 전투 능력을 미군 포함 없이 최악이라는 가정 하에 분석해도 북한의 전격전을 막을 수 있다는 결론을 객관적인 자료로 보여준다.
한국 단독으로 북한 침략을 격퇴할 수 있지만…
냉전의 해체와 북한의 경제적 몰락으로 1990년대 초에 한미동맹은 약화되기 시작했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소멸된다면 주한미군의 감축에 동의할 것이다.’ 놀랍게도 군사정권의 연장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던 노태우 정부에서 나온 발언이다. 1991년 10월 미국과 한국은 한국에 배치되어 있던 전술핵무기 철수에 합의했다. 1991년 12월 남북은 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1992년에는 1976년 이후 처음으로 한미합동군사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이 중단되었고, 주한미군의 1단계 감축을 위한 조처가 진행되기도 했다. 같은 해 미국 국방부는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한에 관한 평가를 기초로 한미연합사의 해체를 결정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1991년 11월 북한의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의 개발과 북한 내부의 불안정성이 안보위협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로 주한미군 감축 계획은 철회된다.
북의 군사적 위협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한미동맹의 장기화는 ‘자산특수성’에 기인한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동맹은 무기체계, 지휘구조, 군사기지 등의 자산을 공유 한다. 제도경제학의 개념인 자산특수성은 동맹관계에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떠맡는 ‘영구적인 투자’를 의미한다. 그 결과 동맹을 종결하거나 변경하는 것 보다 유지하는 것이 비용이 덜 드는 구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한미동맹을 이익의 시각에서 계산하는 자산특수성적 시각은 북한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 유지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도구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북한은 변하지 않았고 북한 위협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라는 것이 90년대 이후 한국과 미국의 동맹 강화 명분이었다.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부인하면 북은 신뢰할 수 없는 '거짓말쟁이'이고, 이를 인정하면 북은 핵무장을 추진하는 '위협국가'"가 되는 ‘담론의 정치’가 한미동맹의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주요 변수임을 이 책은 말한다.
‘많은 것이 정체성의 균형에 달려 있다’(294p) 이 균형은 한미동맹의 지지자와 도전자들이 (그람시가 말한)'진지전'에 동원하는 물질적 능력과 담론적 힘의 균형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한미동맹의 명운은 담론전쟁의 향배에 달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담론전쟁은 단기전인 ‘기동전’이 아니라 장기전인 ‘진지전’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동맹의 지지자들인 우파세력은 추상적인 정치적 담론을 넘어 주한미군의 경제적 가치까지 제시하며 동맹유지를 주장한다. 바로 자산특수성에 기인한 주장이다. 반면 동맹에 반대하는 진보세력은 ‘우리민족끼리’ 라는 민족애에 호소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필자가 보기에 진보세력의 주장은 유통기한 지난 주장의 반복일 뿐이다. 최근의 여론조사가 말해주듯 한미동맹의 담론전쟁 승자는 우파이다.
어떤 동맹으로 영구화 되어야하는가?
‘한미동맹은 영구화하는가?’ 책의 질문에 지금의 현실만 놓고 본다면 ‘그렇다’ 이다. 그렇다면 영구화는 올바른가? 만약 영구화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면 동맹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필자는 이 책 중간에 한미 동맹에 미래의 모습이 될 만한 문구를 발견했다.
“실제로 북대서양조약기구는 결국 매우 낮은 수준의 군사력을 유지하고도 존속되었다. 미국은 유럽 주둔 미군을 대부분 철수시켰고, 유럽 회원국들은 자국의 군사력 규모를 감축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는 인접 국가들을 안정화시키고 민주화시키는데 관심을 가진 민주공동체로의 정체성을 재확인했다. ” (100p)
북대서양조약기구와 한미동맹을 1:1로 직접비교하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시점에서 (북한의 변화를 전제하지 않더라도) 국력이 월등해진 한국사회 내에서 동맹의 재조정에 대한 욕구가 증대하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그러나 동맹의 재조정 논의가 미군철수를 전제로 한 한미동맹파기로 발전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동맹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한미동맹의 영구화라는 현실을 인정한다는 가정 하에 동맹의 정체성에 대한 생산적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