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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1> 북한인권법 제정 미루는 건 위헌이다
김태훈   |  2013-06-24 13:22:16  |  조회 2945 인쇄하기

<칼럼1> 북한인권법 제정 미루는 건 위헌이다

 

-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로 완성되는 계기로 삼아야


김태훈 (변호사, 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특별위원장)

 

 

우리 역사상 가장 참혹한 인권상황이 벌어진 것은 임진왜란 때가 아닐까 싶다. 420 여년 전 서애(西厓) 유성룡이 <징비록>에 남긴 민생 현장을 보면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굷주림 속에 살아남은 자들은 아비와 아들, 남편과 자식이 서로를 잡아먹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21세기 평시에 북녘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북한은 이미 1990년 중후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시대에 수백만이 아사하는 재앙을 겪었고, 그 후에도 현재까지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리면서 사람을 잡아먹는 이른바 인육사건(人肉事件)까지 빈발하고 있다.  나아가 북한이 정치범수용소 등 구금시설에서 주민들을 고문하고 공개 처형해온 실상은 단순한 인권침해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하다. 주요 8개국(G8) 정상들이 최근 성명에서 라오스에서 북송된탈북 청소년의 인권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이와 함께 인권 침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북한이 해소하기를 촉구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국제사회 최고의 관심사로 떠오른 북한인권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은 국제사회에서도 최고 관심사 중 하나다. 미국은 이미 2004년 10월, 일본은 2006년 6월 각 북한인권법을 제정하였고, 특히 미국은 올 1월 외국에서 유랑하는 탈북(脫北) 어린이들을 구호하기 위한 ‘북한 어린이 복지법’도 제정했다.

유엔은 2003년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해 왔다. 특히 올 3월 21일에는 제22차 인권이사회에서 조사위원회(CoI)를 설립해 ①식량권 침해, ②정치범 수용소, ③고문과 비인간적 처우, ④자의적 구금, ⑤차별, ⑥표현의 자유 침해, ⑦생명권 침해, ⑧이동의 자유 침해, ⑨외국인 납치를 포함한 강제적 실종 등 9개 유형을 비롯해 북한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인권침해를 조사해 반인도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를 저지른 북한의 지도부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현재 유엔 차원에서 운영되고 있는 조사위원회는 북한과 시리아뿐인바, 북한 조사위원회는 무력 분쟁상황이 아닌 평시에 장기간에 걸쳐 만성적으로 발생하는 인권위반에 적용되는 첫 사례로서 그만큼 국제사회의 관심이 각별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지금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무얼 하고 있는가? 대한민국이 진정한 법치국가, 인권국가를 지향한다면 일찍이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헌법상 국민인 북한주민의 인권 개선 방안을 법제화하여 국정의 주요과제로 삼고 일관성 있고 체계적으로 추진했어야 한다. 그러나 국내사회는 인권을 천부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말하면서도 유독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인색하였다. 국회에서는 2005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처음으로 북한인권법을 발의하였고, 그 중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이지만, 민주당 등 야당의 반대로 8년 동안 진전이 없다. 지난 1월 14일 ‘나비 필레이’ 유엔 인권최고대표(UN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는 북한 조사위원회(CoI)의 설립을 촉구하면서 "북한 인권에 대한 심층 조사는 참으로 정당한 일이며, 이미 너무 늦은 것(but long overdue)"이라고 탄식한 바 있다. 그런데 정작 당사국은 아직도 이렇게 중요한 기구를 설립조차 못하고 있으니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1. 3. 15. 「북한인권침해신고센터」를 설립하여 북한인권침해사례를 수집하고 2012. 5.경에는 「북한인권침해사례집」까지 발행하였으나, 야당의 견제와 여당의 무관심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제사회와 공조하여 유엔 조사위원회의 활동을 적극 지원함은 물론, 조속히 북한인권법을 제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핵심 내용인 북한 인권 기록보존소를 만들어 유엔 조사위원회(Co I)처럼 북한 인권의 침해사례를 체계적으로 수집․ 기록․ 보존하여 그 처벌을 경고함으로써 북한 정권의 인권침해를 자제케 하고, 피해자들의 보상 근거 및 인권교육의 자료로 삼도록 해야 한다. 그 효능은 이미 1961년 서독 잘 쯔기터(Salzgitter)시에 설치된 중앙법무기록소 (Erfassungsstelle)에 의해서도 입증된 바 있다. 당시 서독에서도 동독에 대한 인권 정책을 둘러싸고 방법론에서 보수와 진보진영간 인식차이가 있었으나, 중앙법무기록소설치 문제에 대해서만은 초당적 합의가 이루어졌었다.


인권법이 대북삐라 살포를 지원하는 법이라고?


이번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의 윤상현, 황진하, 이인제, 조명철 의원 등이 발의한 북한인권법안들에는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하여 북한인권 관련 시민단체를 재정지원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 점을 들어 새누리당안은 특정단체의 대북 삐라 살포를 지원하는 법에 지나지 않는다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인권 개선사업을 함에 있어서는 정부가 직접 하는 것보다 이른바 ‘Two Track 이론’에 의하여 시민단체가 하는 것이 더 좋은 분야가 있다. 대북전단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대북 전단은 중동의 재스민 혁명과 달리 인터넷과 모바일 사용이 제한된 북한의 현실에서, 남측의 TV나 라디오 방송, DVD, VCD, USB 저장장치 등과 더불어 북한의 정보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외부정보의 차단을 체제유지의 핵심요소로 삼고 있는 북한인권 문제의 근본적 해결방안은 폐쇄된 북한주민들의 인권의식을 깨우쳐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인권을 찾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가 2010. 12. 6. 권고한 바와 같이, 모든 매체를 통해 북한주민이 외부의 자유로운 정보에 접근하여 ‘알 권리’를 실현하고 인권의식을 함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므로 시민단체의 진정성을 갖는 대북전단 사업은 오히려 권장돼야 한다.


이번 19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새누리 당의 북한인권법안에 대응하여 심재권의원이 ‘북한주민인권 증진법안’을 발의하고 있는데, 요지는 기아선상에서 헤매고 있는 북한주민을 위해 조속히 식량․물자를 지원하면서 대화를 재개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햇볕정책의 과오로 드러난 바와 같이, 우리가 대북지원을 하더라도 그 지원은 그대로 북한주민에게 돌아가지 않고 군부와 지배계층으로 가서 북한의 핵 개발을 돕고 통치기반만 연장해 왔다. 아시아 최초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의 지적대로 정기적으로 선거를 치르고,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국가에서는 대기근이 일어나지 않는다.


북한 식량난은 왜곡되고 불평등한 배분의 문제


이번 유엔 조사위원회가 북한의 반인도범죄를 조사함에 있어 북한의 식량권 침해(the violation of the right to food)를 첫 번째 조사대상으로 꼽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유엔도 북한의 식량난은 단순한 식량 부족 때문이 아니고 북한 당국의 자원배분의 왜곡, 불평등 분배, 외부지원의 전용 등 북한 주민에 대한 식량접근권 침해 때문으로 본 것이다. 덮어놓고 대북지원과 협력을 내세우는 대북지원론은 철회되어야 한다. 


전세계인구의 1/3이 지난 70 년간 실험했던 사회주의는 완전히 실패했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거역하는 정권은 반드시 멸망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은 북한의 민주화와 인권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경제와 물질적 측면에서는 번영을 구가하고 있지만, 정체성의 위기에 있고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존중하는 도덕적 리더십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자살률은 세계 1위이고, 청소년들은 ‘3․1절’을 ‘삼점일절’로 답하며, 고교생 69%가 6․25를 북침으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당장 대한민국의 국격(國格)과 우리 국민인 북한주민의 인권을 생각하는 교육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 더 이상 국회가 북한인권법의 제정을 미루는 것은 입법정책상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 위반의 준엄한 책임을 지는 위헌적․ 위법적 조처라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새로운 국제규범으로서 힘을 얻고 있는 ‘국민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R2P) 원칙이나, 기본권이 침해된 국민에 대하여 국가에 사법 구제의무가 있다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조 제3항 등 보편적 국제규범에 비추어 명백하다. 국민들이 깨어서 북한인권법의 제정을 미루는 정부와 국회가 두려워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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