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5> 2030이여, 엄마를 배반하라
- 취업난에 목매는 젊은세대와 나누고 싶은 말
이원우 (미래한국 기자)
2030세대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갖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금요일 밤에 홍대로 나가보는 것이다. 안 취한 게 비정상인 신세계다. 가로수마다 토사물이 잭슨 폴락 그림처럼 흩뿌려져 있다. 그것들은 다음 날 새벽 환경미화원들에 의해 기적적으로 제거되기 전까지 각종 해충들의 잔칫상이 된다.
‘불타는 금요일’을 목격하고 나면 지금이 불황이고 청년들이 지쳐있다는 게 거짓말처럼 들린다. ‘청년실업 대한민국’도 허상처럼 여겨진다. 학교에서, 서점에서, 페이스북에서, 멘토링 강연장에서 소리 높여 힐링(healing)을 외치는 청년들이 어디의 무슨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스러워진다.
‘불금’은 21세기 청춘들의 편린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청년들은 본인들이 받고 있는 진짜 상처를 감추고 있다. 청년실업과 같은 거대담론은 스스로의 답답함을 어떻게든 보기 좋게 포장해서 그럴 듯하게 꾸며놓은 위장에 불과한 것이다. 본인의 실업에 관심을 갖기도 벅찬 상황에 세대의 실업에 관심을 갖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쪽이 본심에 가깝다. 청년들이 진짜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 장소는 따로 있다. ‘집안’이다.
때론 지나친 사랑이 상처가 된다면…
청년들은 집에서 무슨 상처를 받고 있을까. 실마리는 ‘풍요의 역설’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현재의 2030은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래 오직 풍요로운 시대만을 살아온 유일한 세대다. 왼손에는 휴대폰, 오른손에는 키보드를 들고 태어난 세대. 부모들은 아가페에 근접하는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를 키웠다. 그들은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대신 ‘넌 소중한 사람이고 마음만 먹는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학교는 부모들의 무한한 사랑을 보다 체계적으로 확장시켰다. 본디 교회에서 부르는 노래인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2030의 찬가가 되었다. 우리 모두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므로 친구를 적으로 돌리고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경쟁은 악(惡)에 다름 아니었다. 선생님들은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도 있다”고 가르쳤다. 교과과정은 남들보다 노력하는 학생들이 손해 보는 평준화의 도상 위에 있었다.
평준화 교육은 2030으로 하여금 희한한 판타지를 도출시켰다. 모두가 평등해진 회백색의 세상 위에 오직 나만이 군림하는 상상이다. 누군가 “현재의 2030들은 평등을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대단히 큰 착각을 한 것이다. 현재의 청년들을 이해하는 키 포인트는 ‘불평등’이다. 현재의 2030은 불평등에 가장 열광하는 세대인 것이다. 청년들이 불평등의 결정체인 연예인의 삶을 동경하고 모방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지를 보라. 청년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결코 놓지 않는 스마트폰의 용도는 결국 세 가지다. ①게임을 통해 친구보다 높은 점수를 얻는 것 ②SNS를 통해 친구 못지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③연예인들의 뉴스를 검색하는 것.
불평등이야말로 이 세대의 영원한 테마다. 남들이 다 평등할 때 유독 나 혼자만은 그 평등한 세상을 발 밑에 두고 군림하고 싶은 마음. 이 이율배반이 열정의 겉옷을 입은 채 청춘을 수식하고 있다. 문제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나만은 아니었다는 데 있다. 모두가 다 나름대로 자신이 특별해지는 시나리오를 꿈꾼다. 하지만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릴 수 있을 것 같았던 대학교 4년의 세월은 아무런 짜릿함도 가져다 주지 못한 채 빠르게 종결돼 버린다.
자신감 잃은 청춘들은 빠르게 현실과 타협하는 이유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2030은 대학을 졸업하는 20대 중반의 시점에 가서야 처음으로 진짜 세상과 독립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 펼쳐져도 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이탈해 본 적이 없는 청춘들은 이번에야말로 세상의 높디높은 벽 앞에서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 불합격. 거절. 탈락. 자신의 인생과 어울린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단어들이 순서를 바꿔가며 연약한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자기만의 특별한 불평등을 거머쥘 수 있을 것 같았던 자신감에도 점점 균열이 생긴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총체적 난국에서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변함없이 애정 어린 눈으로 자신을 지켜보는 따뜻한 시선, 즉 부모님의 사랑이다. 20년이 넘도록 한결 같은 페이스로 작렬하는 ‘부모님 은혜’야 말로 2030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부담이 되는 것이다. 받은 게 많으니 뭐라고 말은 못하고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다. 나도 잘하고 싶은데, 누구 못지않게 멋진 아들/딸이 되어 부모님께 두둑한 용돈을 꽂아드리고 싶은데, 그게 안 되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만 한단 말인가. 도저히 자신이 없다.
자신감을 잃은 청춘들은 빠르게 현실과 타협을 시도한다. 많은 숫자의 어른들이 젊은이들의 패기 없음을 탓하는 것은 이 무렵의 2030들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비판에는 물론 일리가 있다. 돌도 씹어 먹을 젊은 나이에 꿈이 공무원이라니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맞다. 하지만 공무원을 목표로 하는 청년들에게도 할 말은 있다. 최대한 안정적이고 평온한 길을 지향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이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이상할 정도로 공무원 시험에 몰두하는 현실은 이 세상에 공무원 자식을 싫어하는 부모는 없다는 명제와 연결된다. 청년들이 꿈을 크게 갖지 못하는 이유? 그건 이 시대의 청년들이 전부 효자/효녀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받은 사랑에 대해서는 입을 싹 닦고 부모님 뜻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산다는 건 대다수의 청춘들에겐 그저 배은망덕이고 불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모든 2030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다. 오로지 나 하나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맨 땅에 헤딩을 할 것인가,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그들이 원하는 삶의 경로로 진입할 것인가?
엄마를 배반할 때 ‘진짜 효도’가 시작된다
얼마 전 만화 <먼 나라 이웃나라>의 이원복 교수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1944년생으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표정은 소년 같았다. 만화가가 직업조차 아니었던 1980년대에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하겠다는 발상에는 분명 비장한 각오가 필요했을 텐데,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을까?
“부모님의 반대는 전혀 없었어요. 부모님이 안 계셨으니까요. 저는 7남매의 막내였는데 첫 누님과 제가 무려 열일곱 살 차이가 나요. 전쟁 직후여서 다들 바쁠 때였고, 막내 동생을 돌볼 여유가 없었죠. 그 덕에 저는 온전히 스스로의 의지대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어요. 부모님 덕을 못 봤지만 대신에 엄청난 자유를 누린 셈이죠.”
현재의 2030은 이원복 교수의 반대말 같은 존재들이다. 엄청난 풍요를 누린 대신 미래를 결정할 자유를 꿈꾸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으로부터 평생 동안 받은 사랑을 눈에 보이는 미래로 바꿔야 한다는 강박은 오로지 직면해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이다. 지금 대다수의 2030이 그 고통과 싸우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가 시대의 난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는 위원회를 만들어 해결하려 하고 누군가는 지원금을 풀어서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입한다 해도 청춘들이 스스로 ‘엄마를 배반’하고 자신의 인생길을 찾아 나설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언제까지나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2030에게 간절한 것은 눈물을 머금고 엄마를 배반할 용기가 아닐까. 지금은 잠시 그들에게 불안감을 줄지 몰라도, 언젠가 더 화끈하게 효도하고 말겠다는 꿈을 가지고 그들의 품을 떠나는 용기. 이 ‘창조적인 배은망덕’만이 청년들의 불타는 청춘을 더욱 찬란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