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서평> 좌파 역사관에서 시원하게 벗어난
현대사 통사의 새로운 모델
- <대한민국 역사-나라만들기 발자취 1945~1987> 이영훈 著
고진석 (독서컨설턴트)
“교재 집필자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대표적 뉴라이트 학자로서 왜곡되고 편파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경기도가 제작한 공무원 교육용 교재 <경기도 현대사>가 5•18 광주민주항쟁과 제주 4•3사건의 성격을 왜곡했고 심지어 항일 독립운동까지 폄훼하고 있다고 광복회 전북 지부는 주장했다. 그게 지난 6월의 일인데, 교재의 집필자는 이번 달에 소개하는 <대한민국역사>의 저자 이영훈 서울대 교수이다. 그는 좌파진영에서는 친일파와 군사독재를 옹호하는 우파 교수로 평가 받고 있다. 정말 그럴까?
“다른 나라와 축구시합을 할 때 제 나라를 응원하는 것은 애국심이라기보다 민족감정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애국심은 나라의 기초 이념과 역사에 대한 이해, 동의, 자발적 헌신에 기초해 성립하는 국민적 연대감 혹은 도덕적 책무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이 그러한 수준의 애국심에서 선진국의 국민보다 취약한 것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16p.
민족감정 앞서는 한국인은 한 차원 높은 애국심엔 정작 취약
흔히 한국에서 애국자는 민족주의자로 간주된다. 이 때문에 저자는 한국인들이 애국심과 민족감정을 종종 혼동한다고 지적한다. 가령 식민지 시대를 조금이라도 긍정하거나 미국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면 곧바로 친미파 친일파라고 비난을 받는 것이 한국의 지식인 사회의 분위기이다. 특히 한국현대사의 경우 과도한 민족주의정서와 좌파의 분열적 시각이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는데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역사는 어떻게 기록되어야 하는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기존에 과도한 민족주의와 좌파 중심의 분열된 역사에서 탈피하여 통합의 역사를 새롭게 기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합의 역사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위한 올바른 관점’ 다섯 가지를 책 앞에 인상 깊게 제시하고 있다. 국민이 공유하는 역사가 필요하다는 것,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 민족주의는 우리의 소중한 공동체 정서이지만 휩쓸려선 안 된다는 점, 자유의 이념은 역사 발전의 근본동력이라는 점, 해방 후 경제성장과 민주주의가 정착된 1987년까지는 ‘나라만들기’의 과정이라는 것이 저자의 다섯 가지 관점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자랑스럽게 공유할 역사를 새롭게 쓸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쓰이고 가르쳐진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 나라가 세워지고 발전해온 역사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역사가 오히려 국민을 분열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런 분열의 역사가 아니라 통합의 역사를 새롭게 쓸 필요가 있다.” 18p.
국민이 자랑스럽게 공유할 역사를 새롭게 쓸 필요가 있다
"1937년 6월 4일 김일성 부대는 압록강을 건너 함경남도 갑산군 혜산진 보천보에 침투하여 경찰주재소, 면사무소, 우체국을 습격하였다. 김일성의 회고에 의하면 살상한 군경은 얼마 되지 않았고, 소총•기관총과 선동연설이 배합된 평범한 습격에 지나지 않았다." 65p.
기존의 분열을 조장하는 역사시각에서는 남한의 건국은 친일파 친미파로 구성된 민족반역자들에 의한 건국이었다고 평가한다. 북한과 남한의 일부 좌파는 김일성의 항일 투쟁을 들어 북한의 건국을 높이 평가한다. 저자는 북한이 자랑하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은 알려진 것 보다 과장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과도한 무장항일 투쟁에 대한 의미 부여를 경계한다. 무장독립투쟁과 외교 한국 독립사의 양대 축이었다. 김일성의 무장투쟁 보다 이승만의 외교투쟁은
상대적으로 폄하 된 것이 사실이다.
급진좌파는 중국과 소련에서의 공산주의자들의 무력 투쟁의 결과로 독립이 이루어 졌다고 주장한다. 만약 미국이 한국의 독립에 관심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했을까? 아마도 소련과 중국공산당에 의해 한반도 전역이 공산화 되었을 것이다. 미국정부에 한국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에 이승만의 공이 컸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가 미국인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을 있었던 것은 그의 뛰어난 정세분석능력도 한 몫 했다. 그의 정세분석은 민족보다는 이념이 한반도의 중요한 정치적 변수가 될 것이라는 놀라운 통찰로 이어진다. <일본 내막기>(Japan Inside Out)는 그의 뛰어난 능력을 상징하는 책이다.
“1941년 6월 이승만은 <일본 내막기(Japan Inside Out)>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책에서 이승만은 일본의 영토 야욕을 고발하면서 머잖아 일본이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그 몇 달 뒤 1941년 12월 일본은 미국의 하와이 해군기지를 기습 공격하였다. 이승만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그는 미국의 정계와 언론계에서 더욱 유명해졌다.”
친일파와 민족주의 세력의 대립으로 흔히 한국현대사를 평가하는 학자들이 많다. 평가 절하된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친일의 문제는 가장 논쟁적인 부분이다. 왜 우리나라는 프랑스처럼 역사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했는가? 라는 질문에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일제의 지배가 길었고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일제에 의해 근대화가 되었기 때문에 프랑스와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주장한다.
"나치의 군사적 점령이 프랑스의 국가와 사회를 바꾸어 놓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두 나라는 다 일찍부터 근대화된 나라였다." 40p
친일파 옹호자 이승만과 민족주의자 김구라는 역사학자들의 평가로 인해 김구는 대체로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김구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김구는 민족적 대의에 입각해 남북 협상을 추진했지만, 결과적으론 공산주의의 선전 선동에 이용되었다고 평가한다. 남북의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유로 역사학자들은 대부분 좌우합작론을 중심으로 현대사를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논리에 반대한다. 감성적인 공동체 의식인 '민족'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니 더 상위의 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김구에 대한 호의적인 시각은 이승만의 건국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진다. 김구는 대한민국의 건국 세력을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한 자'라고 매도했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장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했다고 비판하면서 이것은 김구 정치인생에 큰 오류였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건국의 법통을 임시정부에서 찾으려는 견해와 맞물린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임시정부에서 찾아야 한다는데 반대한다.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에 반대한다.
이명박 정부는 광복절을 ‘건국60주년’으로 경축하였다. 야당은 건국이라는 단어에 항의하면서 기념식에 불참했다. 야당은 대한민국의 건국은 이미 1919년에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됨으로써 이루어진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저자는 임시정부의 정신은 계승되어도 되지만 건국을 임정에서 찾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주장은 저자가 독립운동을 매도하는 친일교수라는 비난을 받는 근거가 되었다. 보는 이에 따라 관점은 달라질 수도 있지만 저자는 임시정부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고 단지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이어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을 뿐이다. 이념이 민족보다 중요하다는 주장을 했다는 것 때문에 독립운동을 부정했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으로 보인다.
민족보다 이념이 위에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영훈 교수는 이승만을 미화했을까?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 완전객관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승만의 과오를 분명하게 지적한다. 그러나 저자는 ‘과’ 보다 ‘공’이 더 많았다는 입장이다. 전쟁 중에 자신의 집권욕심 때문에 부산정치파동까지 일으키면서 강력한 대통령제를 추진했다는 비판이 있다. 건국 초기 이승만의 대통령제와 한민당의 의원내각제 주장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이 있었고, 그 결과 반대당이 부통령이 될 수 있는 기형적인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4.19이후 의원내각제를 채택했지만 박정희는 이승만의 식의 대통령중심제를 다시 복원했다. 국민은 이의를 제기 하지 않았고 부통령제는 부활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물러났지만 그가 옹호했던 정부 형태는 받아들여진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복원된 대통령 직선제는 결국 '이승만 유업(遺業)의 발전적 계승'이었던 셈이다.
좌파는 이승만을 분단을 고착시킨 원흉이라 평가한다. 사실 분단을 향해 먼저 달린 쪽은 북한의 공산주의 세력이었다. 북한은 1946년 2월에 실질적인 정부를 세웠고 3월에 급진적인 토지개혁을 실시해 자유민주주의 세력을 추방했다.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건국 주도 세력은 남한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굳건하게 세운 뒤에 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민족 전체가 공산화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결과적으로 맞았다. 수정주의자들은 6.25전쟁은 이승만과 미국이 일으킨 북침이었다고 주장했고 남한의 진보세력은 이것을 정설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것은 허구임이 밝혀졌다. 바로 소련의 정보문서가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1991년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모스크바의 공문서관이 개방되자 스탈린이 작성한 여러 문서가 공개되었다. 그에 따르면 6.25전쟁은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미리 세밀하게 준비된 전쟁이었다. ...스탈린의 문서가 공개되자 미국이 북한과 소련의 남침을 유도하였다는 학설이 쑥 들어가고 말았다. 21p.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의 국가체제로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전쟁에서 나라를 지킨 것이 나라 만들기 1단계라면 4•19와 5•16은 나라 만들기의 2단계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는, 연속하는 두 혁명이라고 평가한다. 5•16은 ‘군사정변’이지만 정변 이후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점에서는 ‘혁명적 근대화’의 출발이고, 정치체제로는 이승만 권위주의 체제를 계승했기 때문에 역사의 연속성이 유지되었다고 평가한다.
6월 항쟁이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는 이승만 유업의 발전적 계승
박정희는 이승만을 비롯한 건국세력들에 부정적이었고 4.19로 집권한 민주당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박정희 개인의 생각이 아닌 당시 대중의 생각이기도 했다. 박정희는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려 했다. (1963년 선거)
박정희는 구정치인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정치적 방종을 혼동하고, 미국에 지나치게 굴종적인 자세를 취한다고 비난하였다. 유세가 거듭됨에 따라 박정희는 ‘자립’,‘자주’,‘민족’과 같은 민족주의적 용어를 구사하였다. 박정희는 윤보선에게 15만 6,000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승리하였다. 301p
박정희 대통령은 집권 18년간에 걸쳐 이승만 건국대통령에 대해 한마디의 존경도 표하지 않았다. 그 점에서 그는 근대화 혁명의 커다란 업적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적 역사에 부담을 남겼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그렇지만 매우 역설적이게도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더없이 충실한 계승자였다. 박정희는 이승만을 증오했지만 이승만 권위주의 체제는 계승했다.
신민당은 도시의 의석 64석 중에서 47석을 차지하였다. 민주주의 가치를 교육받은 도시의 중산층은 박정희의 권위주의체제를 더 이상 용납하려 하지 않았다. 382p. (1971년 선거)
저자는 유신은 국민의 정치 감각에 벗어난 박정희의 선택이었다고 주장한다. 1952년 이후 여섯 차례나 대통령을 직선해온 한국인들은 대통령직선제를 민주주의의 소중한 요건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대통령직선제는 이승만과 박정희의 역사적 연속성을 말해주는 제도였다. 막걸리나 고무신을 주는 한이 있었더라도 선거를 했다면 박정희의 비극적인 최후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제1차개발계획은 종이계획에 불과하였다. 당시 개발계획의 작성에 참여한 어느 관료의 회고에 의하면, 연평균 7.1%는 10년간 1인당 국민소득을 두 배로 증가시킬 목표를 먼저 설정한 다음에 지수방정식을 통해 계산해 낸 수치에 불과하였다. 당시 일본에서 10년 내에 1인당 국민소득을 두 배로 늘린다는 계획이 추진 중이었는데, 그로부터 힌트를 얻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의 전문가들은 한국의 군사정부가 작성한 제1차개발계획을 두고 가난한 사람의 쇼핑 희망 리스트에 불과하다고 비꼬았다. 317p.
박정희가 없었더라도 한국의 경제기적은 있었을 거라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 이 의견을 받아들인다 해도 박정희의 집념과 혜안이 한국의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초기에 박정희 정권의 정책은 어설프고 실수가 많았다. 그러나 그는 강한 집념과 노력으로 실패를 성공으로 전환시킨다.
“한국에서는 매월 정기적으로 열린 월간경제동향보고와 수출진흥확대회가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였다. 15년간이나 매월 두 차례 대형회의를 개최한 나라는 세계의 어디에서도 없었다. 매번 두 회의를 주관한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에 대한 집념은 무서운 바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반복되는 회의의 과정에서 어느 듯 최고 수준의 경제학자로 훈련되고 있었다.” 336p.
자유민주주의를 희생한 경제개발이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저자는 오늘날의 잣대로 그 시대를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물질적인 경제성장 후에야 민주주의의 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중산층이 생겨나는데 이런 중산층이 형성된 것은 1980년대라고 주장한다. 경제 성장 과정에서 자원 배분의 왜곡이 생겼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당시에 김대중이 주장한대로 수출 중심 대기업을 키우기 보다는 철강 등 주요 산업을 국영화하고 중소기업과 농업을 발전 시켰다면 결과는 최악이었을 거라 주장한다. 선별된 소수에 대한 특혜적 지원이 오늘날의 경제를 일군 건 사실이었다. 그 와중에 부정부패가 있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익이 더 많았다는 것은 후에 역사가 증명해 주었다. 김대중과 야당이 주장하는 방식으로 경제정책을 한 다른 후진국들이 모두 실패한 것도 박정희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고 이 책은 말한다.
통합의 역사를 만드는 전제조건은 ‘균형’
준비 없이 황급하게 건국이 이뤄진 상황에서 국가의 기초이념, 정부 형태, 강한 군대 육성, 각종 제도 확충 등 기초 여건을 갖추느라 빚어진 건국 초기의 잘못을 두고 나라의 정체성을 의심 하고 역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옳은 일일까? 최소한의 나라형태도 갖추지 못한 대한민국이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동시에 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저자는 부정적이고 어두운 부분에 지나치게 치우친 기존의 역사관에서 역사의 밝은 면을 재조명하여 균형을 이루자고 주장한다. 2차 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가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경우는 대한민국이 유일 할 것이다. 나라 만들기의 과정이 많은 오류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적은 증명해주고 있다. 결론적으
로 이 책은 지난 세대의 과만 들추어 우리 자신과 선배세대를 비하 하지만 말고 공은 자랑스러워하고 과는 정확하게 알고 개선하여 그 결과 ‘균형’을 가진 시각으로 본 자랑스러운 ‘통합의 역사’를 만들자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