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5> 국정원 무력화 방안 대신 ‘대한민국 수호’ 강화 쪽이 옳다

 

- 논란 속의 국정원 개혁안의 원칙과 방향<상>


황성준 ('미래한국' 편집위원, 동원대 초빙교수)

 

 

국가정보기관이 야당 정치인을 대규모로 사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이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의 한국인은 격앙된 목소리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는 정보기관은 해체하거나, 개혁되어야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아니 ‘정치사찰’이란 제3세계 독재국가에나 가능한 일이란 것이 보통 한국인들의 상식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작년 2월 유럽 선진국 독일에서 발생했다.

독일 연방헌법수호청(BFV)이 독일 ‘좌파당’의 당수 게지네 뤼치와 그레고어 기지 원내대표, 그리고 페투라 파우 연방하원 부의장 등 다수의 거물 정치인을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사찰해 왔던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독일의 시사잡지 <슈피겔>誌가 폭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독일 정부와 국민들의 입장은 우리 상식(?)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독일 연방헌법수호청은 왜 지금도 버젓한 정치사찰을 할까

“정치인 사찰은 부당하다”는 ‘좌익당’ 측의 주장에 대해, 여당인 기독교민주당 사무총장 그뢰에는 “체제 변경을 요구하는 자가 감시의 대상이 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고 맞선 것이다. 또 니더작센 헌법수호청의 바르겔 청장은 “좌파당 의원들에 대해 비밀정보기관적 감시를 하고 있다”고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당당히 밝혔다. 이 같은 독일 여당과 헌법수호청의 당당함(?)은 이미 관련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2010년7월 라이프치히 소재 연방행정재판소는 당시 좌파당 원내대표인 보도 라멜로 의원에 대한 감시가 “합법”이란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체제변경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연방법원 판결의 요지였다. 이에 대한 독일 국민 대부분의 반응도 한마디로 ‘쿨’했다. “독일 헌법과 체제를 뒤흔들 가능성이 있는 개인과 집단을 감시•사찰하는 것은 헌법수호청의 기본 임무이며, 이러한 감시•사찰의 대상에서 정치인이라고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이에 우리 같으면 정국을 뒤흔들만한 사건으로 비화됐음직한 이 사건은 그냥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하기야 독일 헌법수호청의 악명(?)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독일 통일 이후 다소 완화됐지만, 통일 이전에는 오늘날 한국에서 일어났으면 난리가 일어났을 만큼 무자비한 탄압(?)을 저지르곤 했다. 1986년까지 공무원 신규 임용대상자 350만 명에 대해 ‘헌법 충성도’를 조사, 그 중 2250명을 탈락시켰다. 그리고 기존 공무원과 교사에 대해서도 ‘헌법 충성도’를 조사, 2000여 명을 중징계하고, 256명을 파면시켰다. 이때 탈락 및 파면자들의 죄목은 지극히 단순한 것들이었다. 대학시절 공산주의 학습 서클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전향했다는 명백한 근거가 없다는 정도면 충분한 사유였다.

“안보 위해선 도청•감청과 고문도 가능하다”는 미국 여론

지난 6월 미국 CIA요원 출신인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은 영국 가디언紙를 통해, 미국 정부가 개인의 전화와 e메일 등을 대규모로 도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스노든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이러한 미국 정부의 범죄행위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 민주•공화 양당, 그리고 미국 국민의 반응은 냉담했다. 물론 스노든을 “개인의 자유 신장을 위해 싸운 영웅”으로 간주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책임 있는 정치집단과 대부분의 미국민들은 스노든을 “반역자”로 간주했다. 그토록‘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미국인들이건만,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면, 정부가 도청이나 감청을 해도 된다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한때 중국이 스노든을 보호하려 했으나, 미국의 으름장에 러시아로 보내 버려야 했으며, 러시아도 스노든의 망명을 허가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스노든의 행동을 보면, 돈키호테적인 측면은 있지만, 적어도 자신의 정치적 출세나 입지를 위한 행동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전직 국정원 직원이 자신의 정치적 출세를 위해 국정원 내부 정보를 특정 정치세력에게 빼돌리고, ‘자유의 투사’인양 의기양양하게 활보하고 있다. 사실 스노든 사건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CIA를 비롯한 여러 정보기관의 만행(?)에 대한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관테나모 수용소에서의 테러리스트 용의자들에 대한 고문(?)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미국 CIA나 기타 정보기관을 해체시켜야 된다는 주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심지어 “필요 시에는 한정적 범위 내에서 고문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우위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야당이 내놓은 개혁안은 사실상 국정원 무력화안

반면 서울은 이른바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국정원이 인터넷 댓글을 통해, 정치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뜨겁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국정원 댓글이 지난 대선에 미친 영향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으며, 또 그 댓글과 댓글을 단 사이트(대표적 사이트 ‘오유’)의 성격을 살펴보면, 대선개입보다는 對사이버 역공작의 성격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게 필자만의 판단이 아니고 많은 이들이 공유할 상식이리라.

만약 본격적 대선개입용이었다면, ‘오유’(오늘의 유머)와 같이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이트에서 활동했을 리 만무하며, 그 정치적 댓글이란 것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목 내놓고 금강산 가기는 싫다” “연평도 포격 2년… 그 날을 잊었는가?” “남쪽 정부? 정말 할 말이 없네요” 등과 같은 댓글 표현도 대선 공작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이러한 표현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정치세력의 성격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 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러한 댓글을 근거로 국정원 해체를 주장하는 세력이 있다. 또 국정원 해체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폭 개혁되어야 된다고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현재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른바 ‘개혁안’이다. 현재 구체적 개혁안이 제시된 것은 지난 9월24일 민주당이 발표한 내용이다. 이 내용을 보면, 이는 국정원 개혁안이 아니라, 국정원 해체안 혹은 무력화안임을 알 수 있다. 9월24일 민주당안의 요지는 다음 4가지이다.

첫째, 국내정보수집 기능 박탈
둘째, 수사기능 박탈
셋째, 대통령 직속기관에서 국무총리 소속기관으로 이전
넷째, 국정원 및 국정원 예산의 국회 통제 강화
 

국정원의 가장 큰 존립 이유는 북한의 위협 속에서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것이다. 북한의 위협은 주된 전선은 해외가 아니라 국내이다.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미국 CIA나 영국의 MI6 흉내만 내는 일은 국정원의 본래적 존재 목적 자체를 부인하는 행위이다. 일각에서는 정치개입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독일의 예에서 보여주듯, 정치권 정보가 敵 혹은 체제전복 및 헌정파괴세력과 연결되어 있다면, 이에 대한 감시도 불가피한 일이다.

또 해외파트와 국내파트의 분리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 역시 CIA와 FBI, 그리고 MI6와 MI5로 나눠져 있는 외국 사례를 근거로 한 것인데, 현재 외국 정보기관들의 추세는 분리가 아니라 ‘통합’이란 점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9•11사태에 대한 ‘정보실패’가 정보기관 간의 정보공유 실패에서 기인한 것으로 평가하는 미국에서는 ‘정보+보안+수사’ 통합체제 구축으로 나아가고 있다. 백 번 양보해서, 상호견제, 혹은 편의상 분리하더라도, 이것이 국내정보수집기능을 없애는 것일 수는 없다.

둘째, 이번 국정원 댓글 사건과 국정원의 수사기능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최근 들어난 ‘이석기 RO사건’을 살펴보면, 수년에 걸친 국정원의 치밀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더라면, 발각되거나 혹은 발각되었더라도 기소될 만큼의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국정원의 대공 수사기능을 없애자고?! 시쳇말로 누구 좋으라고? 혹자는 국정원의 인권유린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먼 과거 이야기는 집어 치우고, 최근 사건들을 잘 살펴보기 바란다.

이석기와 관련자들은 9시에 출근 5시까지 조사받고 숙소로 돌아가는 이른바 ‘9 to 5’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피의자의 변호사 접견권 무제한 보장으로 인해, 이석기의 실질적 하루 조사 시간은 2-3시간도 되지 못했다. 그나마도 묵비권 행사로 인해, 구속 이후 조사 과정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검찰로 송치됐다는 것이다. 전 세계 어느 정보기관에서도 이렇게 민주적(?)으로 수사하는 경우는 없다.

셋째, 국정원을 국무총리 소속기관으로 변경시키겠다는 이야기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 그것도 대통령이 외교와 안보를 직접 관장하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사고일 수밖에 없다. 이는 국정원뿐만 아니라, 대통령 자체를 무력화시키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깔린 행위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국정원 및 국정원 예산을 국회 산하로 두자는 이야기는 자신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국정원을 극도로 정치화시킬 것이다.

또 현재 국회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보안유지에도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사실 국정원은 개혁되어야 한다. 국정원 존재 이유인 대한민국 수호를 더 제대로 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게 정상이다. 이 방향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다음 호에 추가로 이야기하겠다. 큰 관심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