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3> 민족파여, 역사전쟁 대신 역사논쟁을

 

- 정치투쟁 양상의 역사교과서 논쟁에 새 국면을 열자


주익종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역사전쟁이 한창이다. 지난 20여년간 이어져온 역사 갈등이 올해 여름을 넘기며 전면전으로 폭발했다. 싸움의 두 진영은 민족파와 자유파. 민족파는 한국사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는 한국사학계 대다수 연구자, 교사와 좌파 언론, 야당 등을 말하며, 자유파는 소수의 역사학 및 사회과학계 연구자와 보수언론, 여당 등이다. 민족파는 대한민국이 민족을 두 동강 내고 세워진 나라라 하여 그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보는 반면, 자유파는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 국가로 발전해 왔음을 강조한다.

근래 역사 갈등은 오랜 기득권을 유지해온 민족파의 역사연구와 역사교육을 자유파가 비판하는 것으로 전개되었다. 고등학교 근현대사 검인정 교과서의 좌편향에 대한 비판 및 수정 요구(2002~2009),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의 출간(2008) 등이 그것이다. 그 때는 자유파가 민족파의 영토 안으로 진격한 것이 아니기에 민족파는 일면 공격, 일면 무시(無視) 전술을 폈다. 헌데 이번에 자유파가 정식으로 검인정 교과서를 집필해서 민족파의 영토로 뛰어들자, 진노한 민족파는 자유파에 대한 전면 공격에 나섰다.

편향된 역사연구을 한 세대 동안 장악해온 기득권세력‘민족파’

전임 정부에 이어서 이번에도 우파가 집권했지만, 역사전쟁에서 단연 우세한 쪽은 민족파다. 역사연구와 교육이 본래 그들의 영토일 뿐 아니라 수로도 압도하기 때문이다. 편향된 역사연구와 교육을 한 세대 가까이 누적한 결과 민족파는 대학 사학과와 중고교 역사교육계를 완전 장악하고 있다. 민족파는 압도적으로 우세한 화력을 총동원해서 자유파 진영을 초토화하려 하고 있다.

그들은 합리적 근거가 있는 비판뿐 아니라 날조나 다름없는 흑색선전(마타도어), 악의적인 흠집내기 등도 불사한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의 검정을 받던 중인 5월에는 인터넷을 통해, 교학사 교과서가 ▲안중근•김구를 '테러리스트' ▲일본군 위안부를 '자발적인 성 매매업자'라 묘사했다는 주장이 마구 유포되었다. 또 최근에는 유영익 신임 국편위원장에 대해 저서 서술 중 일부를 왜곡 발췌해서 식민지근대화론이라고 비판하거나 아들이 미국시민권자임을 폭로하는 등 온갖 흠집내기가 자행되고 있다.

민족파 연구자들은 국편의 검정이 끝난 직후 한국사연구회 등 4개 단체의 명의로, <뉴라이트 교과서 검토>(2013. 9.10.)라는 문건을 발표했다. 그들은 교학사 교과서에서 사실과 다른 오류,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잘못된 서술, 어느 한 사실만 부각시킨 왜곡 등 총 298개의 문제점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이후 민족파는 수준 이하의 엉터리 책이라는 공격도 병행하였다.

민족파 정치인, 즉 민주당 의원들도 교학사 교과서 죽이기에 가세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야당의원 일동이 교학사 교과서의 검정 합격을 취소하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어서 민주당은 <역사교과서 친일독재 왜곡미화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교육부가 검정 합격을 취소할 것과 교학사는 출판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어서 민주당 의원들은 10월의 교육부, 문체부, 총리실 등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교학사 교과서에 맹공을 퍼부었다. 그렇다면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민족파의 공격은 정당한가.

교학사 교과서에 쏟아진 공격은 과연 정당한가?

우선, 국편 심의 중 인터넷에서 제기된 비판은 8월 말 교학사 교과서가 공개되자 전혀 사실이 아닌 유언비어에 불과함이 밝혀졌다. 제정신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도대체 누가 안중근, 김구를 테러리스트라 하며, 위안부를 자발적 성 매매업자라 하고, 일제 통치가 우리나라에 유익했다고 하겠는가. 그럼에도 민족파가 아무런 근거 없는 음해를 불사하는 것은 그들이 이번 사태를 전쟁 상황으로 보고 있으며, 그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자세는 역사를 다루는 자로서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오로지 상대를 매장시키기 위해 사실(事實)의 근거도 없이 상대방을 매도, 비난한다면, 사실(史實)을 다루는 역사가, 역사교육자의 자격이 없다고 할 것이다.

둘째로, 교학사 교과서가 수많은 오류를 저질렀다는 지적은 부분적으로만 타당하다. 필자가 근현대 부분을 검토해 본 바로도 여러 사실 오인과 논리 오류, 비문(非文)이 발견된다. 일례를 들어 306쪽 <남한에서의 정부 수립과 유엔> 항목을 보면, 미국이 1947년 말에 한국 문제의 유엔 이관을 제안했고, 소련이 이를 거부하자, 9월 유엔총회가 한국문제를 의제로 채택했다고 한다. 보통의 어법상 연말 다음에 9월이 올 수는 없다.

또 같은 쪽 하단에는 5.10선거와 관련하여 “좌익세력이 점령했던 제주도는 이듬해에 선거가 실시되었다”고 하였는데, 좌익세력이 제주도에서 봉기는 일으켰을지언정 제주도를 점령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혼란스러운 서술은 곳곳에 있다.

이 점은 교학사 교과서 집필에 좀더 정확성을 기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게다가 논란이 확대되자 필진 중 일부 교사들이 참여를 철회하겠으니 저자 명단에서 이름을 빼줄 것을 요구했다 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들의 자세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런 식의 오류는 자문을 받아 쉽게 고칠 수 있다.

이제 더 근본적인 문제로 교학사 교과서가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를 찬양했다는 비난은 정당한가. 당연히 아니다. 일례를 들어, 교학사 교과서의 식민지기 서술 중 식민지 근대화론이라 해석될만한 곳은 없다. 민족파도 기껏해야 교학사 교과서 280쪽의 ‘식민 도시의 발달’ 항목이 발달, 발전이라는 긍정적 의미의 용어를 썼다고 지적했을 뿐이다. 민족파가 식민지 근대화론의 본산이라 지목하는 낙성대경제연구소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쓴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는 시장제도의 구축, 공업화와 경제성장, 도시화, 교통통신의 발달 등 식민지기의 근대적 사회경제변화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이승만, 박정희를 찬양했다는 지적도 전혀 근거 없다

반면, 교학사 교과서는 식민지 근대화 문제에 관한 한 다른 검정 교과서와 차이가 없다. 민족파의 천재교육 출판사 교과서 역시 식민지기 도시의 ‘발달’과 ‘성장’을 언급하고 있다. 또 일제말 침략전쟁에 대한 협력 문제와 관련해서 교학사 교과서는 일제의 강요를 이기지 못한 많은 한국인들이 전쟁에 협력하였다고 서술하였다. 하지만 친일을 미화한 구절은 어디에도 없다.

“일제는 중•일 전쟁을 추진하면서 전시 동원 체제를 강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는 약간이라도 민족적 색채를 띤 활동이나 단체를 모조리 탄압하였다.... 일제는 모든 한국인들에게 굴종과 전쟁에 대한 협력을 요구하였고, 강요를 이기지 못한 이들은 이에 따랐다.... 그 동안 각 분야에서 실력 양성 운동을 전개하였던 민족주의 계열의 많은 지도자들이 일제의 침략 전쟁에 협력하게 되었다. 대표적 인물로 이광수는 국방 헌금과 학도병 출병 등을 적극 권유하였다. 이어 교육자와 문학자, 예술인과 기업인, 나아가 종교인의 일부까지도 일제의 침략 전쟁 협력에 동참하였다”(교학사 교과서, 288쪽).

지면 관계상 언급은 생략하지만, 독재를 찬양했다는 비난도 근거가 없다. 요약하면 교학사 교과서에는 다소 서툰 점은 있을지언정 결코 친일과 외세 영합을 미화하고 독재를 찬양하는 내용은 없다. 그럼에도 민족파는 교학사 교과서를 막무가내로 공격한다. 합리적인 토론, 논쟁은 실종된 지 오래다.

당초 자유파는 민족파에 대해 교과서에서 대한민국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인정하라고 요구하였다. 이는 당연히 토론과 논쟁을 할만한 것이었으나, 민족파는 토론과 논쟁대신 음해로 응대하였다. 이는 민족파가 이 사태를 밥그릇 싸움으로 간주함을 말해 준다. “국사학을 하는 사람들이 교과서를 자신들 영역이라고 보는 것이다. 국사학계는 전부 좌파가 잡고 있고, 그 좌파의 이념이 저항적 민족주의다. 그런 상황에서 왜 너희들 자유주의자들이 들어오느냐 하면서 들어오지 말라는 밥그릇 싸움이다.”(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의 중앙일보 인터뷰, 2013.10.12.)

대한민국에 감사하는 마음 길러주는 역사교육이어야

이제 밥그릇 싸움의 차원을 넘어서, 음해 대신 토론과 논쟁을 할 때다. 이를 위해 민족파는 이 문제에 임하는 마음 자세를 바꿔야 한다. 역사학은 내 영토인데 왜 들어오느냐, 내가 여기서 무슨 일을 하건 상관하지 말라고 할 일이 아니다. 물론 대한민국은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니 역사 연구야 연구자 마음대로, 연구자의 양심대로 해도 된다. 하지만 역사 교육은 역사 전공자 마음대로 할 일이 아니다. 역사교육은 그들에게 위임되었으되, 명확한 준칙에 따르도록 위임되었다. 그것은 역사교육이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대한민국에 감사하고, 대한민국을 더 좋은 나라로 만들려는 마음가짐을 길러주는 교육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자유파가 아닌 민족파가 마음가짐을 바꾸어야 하는가. 그것은 한국사학계에서는 민족파가 다수이자 지배세력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학계 외부 인사가 여러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한다면, 이를 친일과 독재를 정당화하는 궤변이라고 매도하지 말고, 귀를 열고 그 소리를 들어야 한다. 민족파는 이승만과 박정희가 독재를 하면서 비판의 소리를 억압하고 압살했기 때문에 결국 비극적 종막을 맞았다고 본다. 이는 사실이다. 민족파에게도 해당한다. 민족파가 역사연구와 역사교육은 내 영역이라고 독재를 고집할 일이 아니다. 외부의 비판자와 토론과 논쟁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 무엇보다 대화를 해야 한다.

한국사학계에서 누가 이 일을 할 것인가. 한국사학계라고 해서 생각이 모두 같은 것이 아니며, 이 역사전쟁을 보는 시각이 천편일률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유연한, 고정된 사고의 틀에 대해 회의하고 새로운 연구에 시각을 연 연구자들, 교사들이 나서야 한다. 이들이 포연만 자욱한 전장에서 새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오늘의 자유파는 과거의 극우반공주의자와 다르다. 이들은 역사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떤 내용을 자라나는 세대와 국민 대중에게 전해 줄 것인지에 관해 한국사학자들과 대화하길 원한다. 대화의 물꼬는 다수파, 그것도 압도적인 다수파가 터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역사를 둘러싼 혼돈은 해소되지 않고 그 때문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될 터이다.

민족파와 자유파는 지금까지 해석이 완전히 엇갈린 문제들, 분단의 책임,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에 대한 평가, 대한민국의 미래에 관해 대화하고 소통해야 한다. 양측은 치열한 역사논쟁, 토론을 통해 역사인식의 공유지점, 공유지대를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