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소사이어티

<칼럼1> 사회통합의 핵(核)인 언론 문제에

정부는 왜 무대응 무대책인가

- 소신 없는 '불개입 정책'으로는 국정운영 쉽지 않다

박한명 <미디어 비평가>

역대 어떤 민주정부보다 법과 원칙에 따른 국정운영의 모범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던 박근혜 정부가 임기 첫 해 보여준 모습은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사회통합의 큰 원칙에 충실했는가도 의문이지만, 이를 위한 통치환경 정비 차원에서 올바른 언론정책을 펼 수 있을지도 크게 걱정스럽다. 지난 한 해 정부의 태도에서 알 수 있었던 건 거라곤 언론문제에 관한 한 무관심 내지는 방관이었다. 정부에 직접적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괜히 골치 아프게 언론 문제에 끼고 싶지 않다는 소극적 자세로만 일관했다.

바로 그런 태도에서 나온 정부의 안이한 행보 때문에 지난 이명박 정부가 호되게 당했는데도 말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하늘을 찌르는 적개심” 때문에 MBC 언론노조가 만든 PD수첩 광우병 방송은 MB정부의 기둥뿌리를 흔들었고,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불러야 했던 이명박 정권은 첫해부터 방송이 만든 단 하나의 프로그램이 날린 카운터펀치를 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져 제대로 힘 한번 못쓰고 막을 내려야 했다.

결과는 이명박 정부의 불행을 넘어 한국사회 모두에게 치명적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핵심은 이렇다. 지상파, 종편은 물론 친노 포털에 이르는 언론환경에 대한 올바른 의미의 환경정비 없이 사회통합은 어렵고, 박근혜 정부의 향후 4년도 보장받기 힘들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그런 이명박 정부의 뒤를 이어 신문과 방송에 무대응을 상책으로 한다. 심리적으로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느낌도 피할 수 없다.

야권 프레임에 갇혀 균형 감각을 상실한 KBS

언론문제에 불개입, 불간섭 원칙만 지키며 떨고 있을 뿐,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못한다. 그 결과 이 정부은 야당과 언론노조, 좌파단체들로부터 “박근혜 정권의 언론장악 수준은 MB를 능가한다” “언론장악으로 유신독재체제로 돌아가고 있다” 는 일방적이고, 억울한 얘기를 들으며 매도 당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정부가 그 점을 과연 억울해하고 있는지 여부조차도 나는 잘 모르겠다. 정말 국정운영에 자신이 있고, 정상적 언론관을 가지고 있다면, 지상파 방송사 메인 뉴스들이 국정원 댓글 사건과 채동욱 전 검찰총장 등 보도에 있어 여전히 집요하게 야권 프레임을 고집한다는 사실을 넋 놓고 쳐다 만 보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KBS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 관련 개인정보유출 문제만 몇날 며칠을 보도했다. 정작 대다수 국민이 의혹을 갖고 있는 혼외자 사실여부라든지, 혼외자 어머니로 지목된 임모 씨의 가정부에 대한 갈취•협박 의혹, 임씨 차명계좌 추적이나 채 전 총장 자필확인 문제 등에 관해서는 제대로 취재, 보도하지 않았다.

위법의 무게만 보더라도 KBS의 이러한 보도가 얼마나 균형을 잃은 것인지 알 수 있다. 임씨의 공갈협박 등에 적용될 법규는 형법 제350조인 공갈죄로, 10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는 중범죄이고, 아이의 정보유출사건의 경우 관련자에게 적용되는 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죄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임씨에게 적용될 수준보다 훨씬 가볍다.

국민의 알 권리 차원이나 법과 원칙의 문제에서나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KBS가 어느 부분에 더 무게를 두고 보도해야 하는지는 자명한 일이다. 검찰은 전 검찰총장의 낙마에 분풀이라도 하는 듯 일일이 수사과정을 언론에 흘리고, KBS는 허겁지겁 이것을 받는 수준이었다. 최소한의 기계적 균형 감각이라도 있다면 임모 씨 관련 동일한 양적, 질적 보도가 따라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KBS의 보도는 그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사회갈등을 부르는 숱한 사안에 대한 KBS의 보도가 대부분 그러했는데, 국정원 댓글 사건도 마찬가지다. 국정원 측의 반박이나 허점 가득한 검찰의 공소내용에 대해서는 일절 취재나 비판도 하지 않는다. 기계적인 균형보도도 없다. 그러면서도 공무원들의 조직적인 댓글 정치개입 문제, 가령 전공노 압수수색에 대해선 “댓글 물타기”라는 전공노 측의 입장은 친절히 보도한다. 수신료를 납부하며 KBS의 뉴스를 보는 시청자 국민 입장에서 황당할 뿐이다.

무능한 사장의 MBC, 줄타기 방송 SBS도 문제

더욱 기가 차는 일은 KBS가 자체 미디어비평 미디어인사이드 프로를 통해 주로 보수우파세력을 비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8일 방송에서는 보수를 종북몰이에나 미친 집단이라는 식으로 표현했다. 보수신문과 TV조선 등 종편은 물론 보수논객들의 종북 비판을 아무런 근거나 배경설명도 없이 과도한 종북몰이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등장시키고 여당은 마치 종교집단까지 핍박하는 집단처럼 몰아갔다.

야당은, 특히 문재인 의원은 그에 맞서 종교인들을 보호는 정의의 인물처럼 그려 놨다. 이 프로는 대표적인 좌파지식인과 시국선언에 이름이나 올려대는 매사 삐딱한 언론 학자를 출연시켜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했다. 공영방송이 주관적 잣대로 보수세력과 보수 가치를 지지하는 국민을 사실상 종북몰이 사냥이나 즐기는 좀비 집단처럼 바라본 것이다.

MBC의 경우는 좀 다르다. 문제가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보도의 경우 전 정권 때와는 달리 노골적 편파 방송은 하지 못하고 있다. MBC는 노영방송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언론노조의 힘이 타 방송사와 달리 매우 강력한데, 작년 노조의 총파업이 실패로 돌아가는 바람에 노조의 기가 한풀 꺾여 있는 상태다. 그렇다고 노조가 죽은 것은 아니다. 이들을 지원하는 최민희, 신경민 의원 등 정치권력이 버티고 있고, 또 미디어오늘 등 인터넷 매체들과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좌파단체들과 여러 언론단체들이 외곽에서 지속적인 선동보도와 주장으로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노조에 둘러싸여 있는 무력한 현 경영진이 언제든지 노조에 굴복해 야합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박근혜 정부에서도 제2의 광우병 방송이 만들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노조가 주인인 MBC와 달리 사주가 있는 민영방송인 SBS는 절묘한 줄타기 방송을 하고 있다. 노골적인 좌편향 방송으로 내달리진 못하지만, 메인뉴스 <8시뉴스>의 경우 김성준 앵커는 MBC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 시절의 클로징 멘트를 흉내내면서 이슈 메이킹하고 있다. 경쟁사인 MBC 뉴스데스크를 의식한 상업적 전략일수도 있고, 사주 묵인 하에 신경민 식 출세모델을 따르는 듯한 김성준 앵커의 단독 플레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됐든 SBS 역시 여론의 방향에 따라 포퓰리즘적인 선동방송이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정부의 언론정책이나 확고한 원칙적 자세가 중요한 것인데 박근혜 정부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답답한 일이다.

종편에게 다가온 기회와 한계…그리고 JTBC, YTN, MBN, CBS

다행스러운 것은 전 정부에서 탄생한 종편채널이 지상파 방송이 담지 못하고, 또 배제하는 보수우파의 각종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룬다는 점이고 보수우파층의 요구를 만족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2011년 12월 탄생 즈음에 0~1%대에 머물렀던 종편채널 4개가 이제 토탈 시청률이 6.5%정도로 오를 정도로 영향력이 확대된 것도 고무적이다.

그러나 CJ E&M 계열의 tvN 나, JTBC의 <썰전>과 같은 예능과 정치시사를 버무린 케이블 프로그램이 진보좌파 언론들의 전략적 홍보 속에서 성장하고 있고 좌편향 포털의 도움으로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상업좌파 전략을 쓰는 케이블 방송의 지상파 잠식현상도 정부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동시에 아직까지는 지상파 방송사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점을 놓쳐선 안 된다.

또 종편 채널의 시사토크 집중화 현상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적은 제작비로 본래 보수우파적 성향의 중장년층을 만족시킬 수는 있어도 이념적 중도좌파 층이나 정치이슈에서도 가벼운 트렌드를 좇는 젊은 층 공략에는 한계가 있다. 적극적 투자와 대중의 소비욕구를 놓치지 말고 보수우파적 가치가 녹아있는 재미있는 예능프로그램 개발도 신경 써야 한다.

보수정권이 일개 방송 프로그램 하나에 휘청거린다는 건 그만큼 보수 세력의 언론인식이 취약하고 나이브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현 정부는 방송이 제2의 광우병 선동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둔 방송사 노조가 언론독립과 공정방송을 외치는 적반하장 행태를 고쳐나가야 한다. 그건 언론환경 불개입 정책을 내세우는 정부 방치에 위배되는 게 아니며, 사회통합에 급선무이고 통치환경 정비 차원의 핵심 사안일 수도 있다.

그러자면 공영방송 지배구조에서 여권 우위를 100% 활용하고, 확실한 언론관을 지닌 인물을 선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노조와의 야합을 능력으로 포장한 기회주의자들이 사장으로 낙하산 타고 내려오는 구태도 과감히 끊어야 한다. 특히 MBC 사장은 공청회와 같은 방법으로 선임해 낙하산 주장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 좋다. 정부가 지난 1년을 허송세월하게 된 데에는 언론에 대한 문제의식 부재도 있었단 걸 알아야 한다. 정부의 언론정책은 자신들이 모른다는 걸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반복하지만, 미디어환경 정비야말로 효율적인 국정운영의 기초를 이룬다. 그것은 옛 권위주의 시절의 언론대책과는 질과 차원이 다르며, 사회통합을 위한 환경정비이자 언론의 공론장(公論場)회복을 뜻한다. 그럼에도 무대책으로 일관하는 청와대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지지율 수치 등락에 일희일비하는데, 그런 태도야말로 우스꽝스럽다. 왜 반국가적 선동을 거듭하는 대형 인터넷 포털을 방치하면서 높은 지지율을 기대하는가? 왜 지상파는 물론 JTBC, MBN 같은 일부 종편, 그리고 YTN 같은 국가 기간 통신사를 포함한 CBS, 서울신문 등 작은 미디어들이 그토록 정부를 흔들어 대는 걸 방치하는가? 새해 거듭 되짚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