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신년공동사설을 년도별로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추세를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는 2008, 2009, 2010, 2011년 4년의 신년공동사설에서 사용된 단어 빈도수를 살펴본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
북한은 1995년 이후 해마다 1월 1일 3대 신문의 신년공동사설을 내보내고 있다. 3대신문은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이다. 1994년까지는 김일성이 신년사를 텔레비전을 통해 직접 낭독했었다.
신년공동사설은 북한 내부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서이다. 사설은 당해년도 정책 방향을 예고하면서, 주민을 준비시키고 동원하는 데 이용된다. 해마다 그러했듯이, 1월 3일 공동사설 관철 평양 10만 군중대회가 열렸고, 이를 시발로 지역마다 결의대회가 열린다.
신년사설은 해마다 그 해에 국가적으로 집중해야할 정책 화두를 제목으로 내세우고 있다. 올해의 제목은 “올해에 다시 한 번 경공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향상과 강성대국건설에서 결정적 전환을 일으키자”이다. 참고로 신년사설의 제목은 일반적으로 정치 선동구호로 되어있어 왔기 때문에 경공업이나 인민생활이 언급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에 속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례적인 제목이 2년 연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의 화두는 ‘농업과 경공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에서 결정적 전환을 일으킬 것’이었다.
북한의 신년사설은 대체로 200자 원고지로 75-80매 분량으로 이루어졌다. 신년사설은 전년도 실적 찬양, 경제정책을 중심으로 금년도 분야별 정책 제시, 당․군․근로단체․청년단체 등에 대한 과업 제시, 그리고 대남 및 대외 정책 제시로 구성된다. 이중에서 예년에는 경제 분야에 관한 서술의 전체 분량이 10매 내외였는데, 금년에는 총 20매이고, 그 중에서 경공업에 관한 서술에만 대략 8매를 할애하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인민생활과 경제를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북한에게도 2012년은 매우 중요한 해이다. 2012년은 북한이 1998년부터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제끼는 해’이다. 드디어 목표연도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또한 김일성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또한 2009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해오고 있는 후계체제 구축 과정에서 김정은 후계자로 공식 발표해야 할 것으로도 또는 1980년 이래 최초로 당대회가 열릴 것으로도 예상되고 있는 해이다. 이처럼 매우 뜻 깊은 해를 맞이하면서, 북한 정권은 무엇인가 경제적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러면 경공업 진흥이라는 북한의 목표는 얼마나 현실적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북한의 수준을 고려할 때, 일정한 성과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최근 북한 경제의 상황은 화폐개혁의 실패에 따른 내부 혼란, 핵실험과 천안함 공격 등에 따라 강화된 대북제재로 인한 경제 곤란 심화 등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북한이 2000년대 중반 이후 전력, 석탄, 금속, 기계, 건재, 화학 등에서 낮은 수준이더라도 일정하게 산업 연쇄를 성사시켰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은 최근 들어 석탄화학을 바탕으로 경공업과 농업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진행시키고 있다. 북한경제가 여전히 매우 어렵고 정책도 과거 실패한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매우 취약하더라도 북한경제는 특히 1990년대 중반 최악의 시기와 비교할 때, 상당한 개선을 이루었고 최소한의 안정 기반은 마련한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
나아가 금년도 신년사설에서 북한은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운동을 더욱 힘있게 벌리며 가능한 모든 단위들에서 생활필수품생산을 부쩍 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 목표는 북한당국이 시장활동 증가에 대해 적어도 적극적으로 방해하지 않는 입장을 취할 때에만 시현될 수 있다. 실제로 그러할 지 두고 볼 일이다.
다음으로 대남정책과 대외정책에 대한 서술은 항상 분량도 적고 매우 추상적이었다. 따라서 분석자의 관점에 따라 그 내용은 온건한 호소로도 강경한 협박으로도 읽힐 수 있다. 다만 금년에는 남북관계와 관련한 서술에서 ‘전쟁’이라는 단어가 10번이나 등장한 것은 이례적이다. 작년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공동사설은 "북남사이의 대결상태를 하루빨리 해소하여야 한다"고 했다. 참고로 작년에는 ‘남북관계 개선의 길을 열자’고 해놓고 실제 정책은 매우 달랐었다.
마지막으로 신년공동사설을 년도별로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추세를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는 2008, 2009, 2010, 2011년 4년의 신년공동사설에서 사용된 단어 빈도수를 살펴본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나타난다. 즉 선군, 사상, 사회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성 단어 사용빈도가 저하하고 대신, 강성대국, 경공업, 인민생활의 사용빈도가 현저히 증가한다. 이를 보면 북한정권의 정당성이 점점 더 사상 강조에서 실적강조 쪽으로 추세적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김일성’이라는 단어가 금년에는(10회) 전년들에(1-3회) 비해 유달리 많이 등장한다. 내년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김일성’을 통합 상징으로 다시 강조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주목할 만한 것은 2008년과 2009년과 비교할 때, 2010년과 2011년에는 조선노동당을 뜻하는 ‘당’의 사용빈도가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선군’이라는 단어 빈도가 감소한 것을 함께 고려하면, 1995년 이후 군대를 중심으로 했던 ‘선군정치’가 김정은 후계과정의 시작과 더불어 군보다는 당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2010년부터 ‘당’이라는 단어 빈도수가 현저히 증가한 것을 보면,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이 시작된) 2009년에 북한 내부에서 권력정치적으로 무엇인가 중요한 변화 또는 결정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끝으로 2010년까지 최종 맺음말은 "모두 다 위대한 김정일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 두리에 굳게 뭉쳐"였으나, 2011년에는 " 모두 다 위대한 김정일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의 두리에 굳게 뭉쳐"로 바뀌었다. ]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브르킹스 객원 연구원, 주요 관심: 북한 정치와 경제, 남북관계 및 한반도 정치 안보, 주요 저서: 북한 핵 보유 고수 전략의 도전과 대응(2010), 북한 '변화'의 재평가와 대북정책(2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