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의료라는 민주당의 거짓말
김종대( 통합의료진흥재단 이사장)
“민주당의 발표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환자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사느냐 죽느냐 사경을 헤매는 형국인데 그와 함께 달나라에 여행가는 꿈만 꾸고 있는 듯---”
지난 1월 건강보험을 통해 무상의료를 실현하겠다는 민주당의 발표를 접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건강보험이란 제도가 처음 탄생된 1883년 이래 무상으로 건강보험 진료를 받게 할 수 있었던 나라는 지구상에 하나도 없었다. 필자는 1977년 의료보험제도 도입당시 제도 설계에 직접 참여하고 전국민의료보험 확대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했던 실무책임자(보건사회부 의료보험국장)였기 때문에 더욱 궁금했다. 의식주(衣食住)가 해결되고 나서 인간의 가장 간절한 소망은 질병이 발생했을 때 부담 없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 병을 고치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인데 이런 소망을 담은 무상의료 실현을 어떠한 방법으로 건강보험을 통해 달성시킬 수 있을까 의문 때문이었다.
그러나 구체적 발표내용을 접하고는 납득할만한 논거나 데이터도 없이 단순히 희망사항을 나열해 놓은데 불과해 무척 실망스러웠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 비급여 의료의 전면 급여화, 간병서비스와 상병수당의 보험급여, 차상위 계층은 의료급여로 전환, 저소득층에 대한 보험료 면제 및 무이자 대출.
둘째, 진료비를 절감하기 위해 포괄수가제(입원)와 주치의제(외래) 도입, 총액계약제 도입, 지역별 병상총량제 도입, 공공의료 강화 등의 내용.
셋째, 민간의료보험과 역할 분담을 위해 민간의료보험법(가칭)의 제정.
넷째, 위의 방법으로 5년간 단계적으로 입원진료비 본인부담을 10%로 축소, 병원비 본인부담상한액을 100만원으로 인하하여 실질적 무상의료 실현.
다섯째, 보장성 강화에 따라 비급여의 급여화, 보장율 90%, 본인부담상한 100만원, 간병급여, 틀니, 치석제거, 한방 첩약, 의료사각지대 해소 등에 8.1조원이 소요되는데 보험료 부과기반 확대, 국고지원확대, 국고지원 사후정산제 등으로 7.5조원의 재원을 확보하여 충당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위 내용이나 소요재원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이나 수단, 산출 근거와 과정 등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우선 사보험(私保險)이든 국민건강보험 같은 공보험(公保險)이든 보험제도에는 무상(無償)은 있을 수 없다.
국가가 의료기관을 소유하고 세금으로 운영하는 소위 보건의료서비스제도와는 달리 건강보험은 모든 보험가입자가 보험료를 부담하는 것이 대 전제이다. 즉 매월 일정 보험료를 내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게 되면 진료비 총액 중 일정 부분을 보험에서 지불해 주고 그 나머지는 본인이 병원에 직접 지불하는 제도이다. 다만 건강보험에 있어 보험가입자인 국민이 매월 납부하는 보험료의 많고 적음에 따라 병원에 갔을 때 나오는 전체 진료비 중에서 보험에서 부담해 주는 진료비 비율(또는 본인이 부담하는 진료비 비율)이 높아지거나 낮아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건강보험 보장성이 높다는 것은 평시에 보험료를 많이 부담하고 진료 받을 때 본인이 지불하는 진료비부담 비율이 낮다는 의미이고, 보장성이 낮다는 것은 그와 반대로 평상시에는 보험료를 적게 내고 진료시에 지불하는 진료비부담이 많다는 의미이다.
건강보험제도 운영에 있어 건강보험 부담률이 높은 것이 반드시 좋고 낮은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라 나라마다 의료제도, 경제상황, 의료 관행 등에 따라 건강보험 부담률을 다르게 정해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적정한 보험료부담으로 질병이 발생했을 때 편리하게 병의원에 접근할 수 있고, 양질의 진료를 적정한 비용으로 받을 수 있게 하면서 건강보험제도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제도의 본질상 건강보험에 무상은 있을 수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되는 제도이며 상부상조가 본질이다.
현행 의료제도에 대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개혁 없이 대증요법만으로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획기적으로 강화될 수 없다.
민주당은 현재 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검사‧수술‧재료, 치과의 틀니제공, 한방의 첩약까지 전부 보험에 적용시켜 주고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이나 의료공급 통제 등의 방법으로 의료비는 줄인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병의원의 90% 이상이 민간 소유이고, 병의원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행위 이외의 진료도 더 행할 수 있고, 그 진료행위에 대해서는 스스로 정한 의료수가를 받을 수 있는 소위 혼합진료가 허용되고 있다. 또 보험적용이 안 되는 선택진료(특진)와 상급병실 운영도 허용되어 병원 스스로가 정한 수가를 환자로부터 더 받을 수 있도록 허용되고 있다. 의료기관이 절대 부족하고 국민소득 수준도 낮은 현실에서 민간의료에 의존해서 저보험료 부담으로 조기에 전국민의료보험을 달성하게 된데 그 역사적 배경이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연구보고에 의하면 보험이 적용되는 진료행위는 투입비용에 비해 수입이 적고 즉 원가에 미달되는데 비급여 행위는 투입비용 보다 수입이 큰 것으로 나타나 있는 사실에서도 그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건강보험공단의 공식통계로는 입원진료시 건강보험 부담률(보장성)이 62%라고 하나, 실제는 병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중질환으로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전체 진료비 중 본인부담이 50%가 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의료(수가)제도의 역사적 배경이나 실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대책 없이 건강보험 보장성확대를 논한다는 것은 사상누각(砂上樓閣)이고 실효성도 담보될 수 없다.
민주당의 발표내용에는 이러한 본질적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다. 또 공보험인 건강보험과는 상반된다고 할 수 있는 민간의료보험과 역할 분담을 위한 민간의료보험법까지 제정하겠다고 했는데 건강보험과의 상관관계와 제도의 골자가 무엇인지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무상의료의 문제는 재원조달 문제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제도 존립의 2대 축의 하나로 의료공급의 90%를 점하는 민간의료기관의 사활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올바른 해법이 나올 수 없다.
보험은 수리를 바탕으로 하는 통계가 생명이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재원조달 문제는 국민과 기업의 세금부담이나 보험료의 인상으로 귀착되기 때문에 보험재정 항목은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발표내용을 보면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한 재원부담은 정부, 의료계, 국민이 순차적으로 부담케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보장성 강화에 따른 지출증가 규모(8.1조원)와 국민의 보험료부담 추가(4.2조원)및 국고부담 추가(3.3조원) 규모만 표시해 놓고 진료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수많은 의료공급제도 개편내용을 나열하면서 의료계 부담규모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다. 모든 비급여 행위를 보험급여로 전환해도 의료계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는 뜻인지 의료수가를 대폭 인상해 준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건강보험에 포함되어 있는 차상위계층은 국가가 부담하는 의료급여로 전환시킨다고 하면서 전환되는 의료급여의 재원부담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다.
또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보험료를 면제하거나 무이자 대출해 준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또 별도의 국민부담이 따른다. 본인부담의 대폭적 감축에 따른 의료의 가격탄력성(가격의 변화하는데 따라 수요가 달라지는 정도, 즉 의료의 경우 본인의 의료비부담이 줄어지면 그만큼 병원을 자주 이용하게 되고 의료비도 증가되어 결국 보험료부담이 늘어나게 되는 현상)과 그 비용증가와 추가부담 문제에 대해서도 한마디 언급이 없다. 한방첩약, 상병수당, 간병수당지급 등에 따른 재원부담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 무상의료를 실현하기 위해 국민부담이 8.1조원(민주당 주장)이 더 필요하다느니 30조원(정부)이 더 소요되느니 논쟁하는 것 자체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어떻게 정확한 추계가 나오겠는가?
문제는 무상의료 실현이나 급여확대가 시급한 사안이 아니라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존립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처하는 것이 시급하다.
왜냐하면 무상의료의 도구로 인식하고 있는 그 건강보험제도가 앞으로 존립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위급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의 발표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환자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사느냐 죽느냐 사경을 헤매는 형국인데 그와 함께 달나라에 여행가는 꿈만 꾸고 있는듯하다. 작년도 건강보험급여비 지출이 34조원을 넘어 한해 적자가 1조 3천억이 발생하여 누적적립금도 2조 3천억원에서 9천억원으로 급격히 감소, 일주일 정도의 진료비 여유분 밖에 없다. 그래서 지난 연말 정부는 금년도 보험료를 5.9% 인상한 반면 의료수가는 그 3분의1도 안 되는 1.64%만 인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년에도 5천억원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그런데 금년 말로 국고지원액과 담배부담금 약 5.2조원이 법적으로 중단되어 더 이상 지원되지 않게 되어 있다. 그리고 설사 국고지원이 계속된다 하더라도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2012년 상반기 중에 보험재정이 파탄, 보험대란이 우려된다. 2000년 의료보험통합과 의약분업으로 초래된 2001년의 재정파탄 사태로 얼마나 많은 국민부담이 초래되고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에 얼마나 큰 장애가 되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간략히 두 가지 예만 들어 보기로 한다. 2000년 의약분업을 하면 약의 오남용이 줄어들어 보험급여비 지출이 감소되어 보험재정이 절감되고 따라서 국민부담도 경감된다고 주장하면서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1년 7월부터 강제적으로 시행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의약분업이 강제화 되기 직전인 2000년도 전체진료비(13조1,401억원) 중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6.85%(3조5,200억원)이었는데 2009년도는 전체진료비(39조4,300억원) 중 약제비 비중이 36.16%(11조6,554억원)으로 10%p 가까이 급증했다.
다음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에 대한 보험료 부과기준을 소득 하나로 통일한다면서 2000년 7월부터 의료보험을 통합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보험급여를 하는 기준은 직장가입자나 지역가입자가 동일한데 보험료를 부과하는 기준은 완전히 다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고 운영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상식이고 이치인데 강제적으로 한자리에 모아 놓는다고 같아질 수가 없다. 의료보험통합과 의약분업이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개혁에 결정적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모든 인간사에는 문제가 있으면 해법도 있으니 여야를 막론하고 달은 보지 못하고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만 보고 공론만 하지 말고 지혜를 모아주길 간곡히 바라마지 않는다.
김종대 이사장
. 행정고시 제 10회
. 보건사회부 사회보험국장, 사회복지정책실장
. 대통령비서실 경제비서관 (보사,노동,환경)
. 보건복지부 식품안전본부장, 기획관리실장
. 대구가톨릭의대/한의대 겸임교수(현)
.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이사장(현)
. 통합의료진흥재단 이사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