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3> 그래도 대한민국 미래는 낙관적
- 동서양이 이 땅에서 꽃 피우는 동서(東西)병행론
문용린 <전 서울시교육감. 서울대 명예교수>
서양세력이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극동의 세 나라인 중국과 한국과 일본을 덮치기 시작한 시기를 대충 1850 년경부터라고 보면, 165년이 지난 2015년 현재도 이 세 나라는 그 쓰나미가 흩으려 놓은 상황을 정리하고 있지 못한 듯하다. 서양문물이 감당하기 어려운 무력과 매력으로 들이 닥칠 때, 나름대로 두터운 형이상학으로 무장되어 있던 세 나라의 지식인들은 고뇌 끝에 서양문물과의 타협의 지침을 만들어 낸다.
중국의 유학자들은 중체서용(中體西用)을 내세우고, 일본의 지식인 사무라이들은 화혼양재(和魂洋才)를 그리고 조선의 유학자들은 동도서기(東道西器)를 주장하기에 이른다. 표현은 다르지만, 내용은 유사하다: “서양의 과학과 기술을 받아들이되 정신은 우리 것을 고수하자”
중국은 이 지침아래 양무운동이 전개되었고, 더 강화되어 변볍자강운동으로까지 번져 나갔지만, 수구세력의 비협조로 서양세력과의 사상적 타협엔 철저히 실패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도서기란 몇몇 유학자의 사랑방 담론으로만 존재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화혼양재가 아니라 아예 탈아입구(脫亞入口)를 내세워, 정신도 서양에 내주어, 서양의 일원으로 살기로 작정하게 된다. 사상적 타협 보다는 사상적 자살을 택한 셈이다. “일본인은 백인이다.”라는 망상이 아직도 일본 열도엔 무의식으로 흐르고 있는데, 바로 이 탈아입구라는 사상적 자살 덕분이다.
결국 중국, 한국, 일본의 세 나라 모두는 서양 이상의 긴 역사와 문화와 풍부한 사상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지만, 근대 이후로 막강해진 서양문화와의 정반합의 변증법적 변신과 통합에 실패하여 중국과 한국은 K.O 펀치를 맞고 아직도 멍한 상태에 있으며, 일본은 상대 선수의 허리춤을 부여안고 클린치 상태를 유지하며, 겨우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한중일이 서양근대를 받아들인 서로 다른 방식
서양적 문물의 핵심은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합리성(rationalism)과 공평성(fairness)에 있고 이것이 근대 이후의 막강한 서양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한중일의 사상적 핵심은 인간관계를 천륜으로 파악하는 삼강오륜과 의리에 있어서, 농경사회와 봉건사회에서 그 장점이 최고도로 발휘될 수 있었다.
분명히 서양의 사고는 민주주의적 공평성과 과학적 합리성이 경쟁력을 갖는 현대 사회에서 장점이 크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안정성과 행복과 책임을 강조하는 한중일의 사상적 전통도 그 나름대로 장점과 필요성이 있다. 특히 21세기 들어서면서부터 신자유주의적 무한 경쟁의 폐해가 부각되면서부터, 경제적 발전이나 과학의 발전에 못지않게 인간관계(가족이나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 속의 안정과 행복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서양과 동양의 사상적 접점(接點)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몇 년 전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논지를 용감하게 편 사람이 있었고, 이에 대한 반론으로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주장을 펼친 사람도 있었다. 공자 사상의 역할이 현대 사회의 발전과 진보에 부정적인가 긍정적인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서양식 민주주의와 과학적 합리성과의 변증법적 변신에 대한 논의는 좀 부족한 것이 흠이긴 했지만, 문제의식은 날카로웠다. 그러나 두 주장 모두 좀 공허했다.
공자를 죽인다고 했지만, 우리 문화와 역사 속에 깊이 배어있는 공자를 빼내버릴 방도가 도대체 없기 때문이며, 공자를 살려야 한다고 했지만, 공자의 가르침만으로 지구촌 시대와 IT시대를 잘 헤엄쳐 나갈 수 있다고 보기 또한 어렵기 때문이다.
그 간 동양과 서양의 접목을 보는 관점은 배타적이었고 부정적인 게 사실이었다. 서양의 압도적인 힘(군사력과 경제력)이 동양을 정복해오는 양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부터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국가 간에, 문명 간에 상호의존성이 심화되어 어느 한 문명의 독주가 아니라 공존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21세기 국제사회의 경쟁력은 ‘다문화 공유능력’으로 결판난다. 다시 말하면 서양적 가치와 동양적 가치를 조화롭게 공유하고, 병존시킬 수 있는 문명권, 국가, 개인이 경쟁력을 갖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중체서용, 화혼양재, 동도서기론은 이제 동서병행론(東西竝行論)으로 대치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즉 서양적 가치인 합리성(rationality), 공평성(fairness), 정의(justice)라는 덕목을 우리의 전통적인 덕목인 삼강오륜과 병존시킬 수가 있지 않겠는가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간, 서양의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는 유교의 삼강오륜과는 배타적일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살아왔다.
훌륭한 비즈니스 환경 갖춘 동방예의지국도 가능하다
삼강오륜에 철저한 사람은 합리적 사고를 못하는가? 개인주의자는 삼강오륜을 지키기가 원래 어려운가? 삼강오륜을 지키려면 공평성과 정의라는 가치를 포기해야만 되는가? 이러한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잘못된 선입관을 계속 가지고 왔다.
한 가지 예로 뇌물과 부패를 유교적 전통과 관련 지우는 사람들이 많다. 한중일 세 나라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이것이기도 하다. 삼강오륜의 의리와 천륜 중심의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전통이 뇌물과 부패의 관행을 부추기고 강화시켜왔다는 주장인 셈인데, 의외로 이를 의문 없이 그대로 수긍해버리는 사람이 많다. 삼강오륜의 심리적 구조 그 자체 속에 뇌물과 부패 관행이 기생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삼강오륜에 대한 과잉 기대가 뇌물과 부정부패에 대한 방지체제의 설치를 게을리 하고 등한시 해왔고 봄이 옳다. 서양의 선진국들을 보라. 그들의 합리적인 의식이 부정과 부패를 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곳곳에 마련해둔 부정부패의 방지장치와 제도가 그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동서병행론은 서구적인 합리성의 덕목과 동양적인 삼강오륜의 덕목을 생활국면이나 상황에 맞게 적절히 병행시키자는 것이다. 예컨대 공적인 업무(business)는 서양적 덕목인 합리(rationality), 공평(fairness), 정의(justice)에 입각해서 추진하고, 사적(가족, 친척, 친지)인 업무는 동양적인 덕목인 삼강오륜에 입각해서 해결하자는 것이다. 한 개인의 경우를 보더라도 동양과 서양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동시에 지혜롭게 병존시키는 사람이 결국 성공하고 출세도 한다. 우리 주변의 성공한 사람들은 결국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동양과 서양의 가치를 병존시키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중체서용, 화혼양재, 동도서기의 문제는 과학기술과 정신적 가치가 양분 되어, 있고 이원화가 가능한 실체로 오해한 점이다. 과학기술과 정신은 그대로 하나다. 합리주의가 과학의 토대이며, 합리주의는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할 때 더욱 활성화 되고, 개인주의는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과 정신의 분리가 아니라 생활국면의 분리가 중요하다.
공적(公的)인 생활국면에서는 서양식 합리주의를 작동 시키고, 사적(私的)인 생활국면에서는 동양적 삼강오륜을 작동 시키자는 것이다. 즉 비즈니스를 할 떼에는 합리적 공평성을 지키고, 개인, 가족, 친구 사이의 관계는 삼강오륜의 원리를 지키며 살도록 하자는 것이다. 동양과 서양의 행동규범이 생활국면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동서병행론(東西竝行論)의 핵심이다.
이러한 동서병행의 생활 문화가 시민들의 삶 속에 정착될 때 전반적인 국가 경쟁력도 증대된다. 만약 한국이라는 사회가 삼강오륜과 같은 전통적인 인간관계의 미덕이 흘러 넘치면서 동시에 서구적인 합리성과 정의와 공평의 원칙이 잘 지켜지는 사회라고 가정해보자. 한국은 인정이 넘치는 삼강오륜의 동방예의지국이면서, 동시에 최고의 합리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갖춘 나라로 이름나게 될 것이다. 동양적 전통과 서양적 전통이 정반합의 변증법적 변신을 이룩한 역사 상 최초의 나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