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2> 국회가 자기개혁 못하면 나라 망칠 수도
- ‘권력의 갑옷’ 걸친 채 주체 못하는 입법권력의 현주소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31일 대정부 질문에서 국회의원이 가진 특권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 사회에서 무노동 무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집단, 주요 20개국(G20) 중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법을 안 지키는 유일한 나라, 선거제도가 정착된 나라 중 단식투쟁을 하는 국회의원이 있는 유일한 나라, 만일 국회와 국회의원이 국정감사, 국정조사, 청문회를 받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인사청문회 자료처럼 국회의원의 의정활동 관련 자료들이 공개되면 국민 여론의 뭇매를 맞을지도 모른다.”

[저작자] 서울나들이 [이미지출처] http://blog.naver.com/haechiseoul?Redirect=Log&logNo=110154603335
‘국해(國害)의원’ 소리가 나도는 이유
전직 국무총리이자 3선 의원 한명숙 전 의원이 지난 8월 20일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재판 끝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추징금 8억8000만 원을 선고한 2심을 확정했다. 건설회사 대표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가 쇠고랑을 찬 것이다.
한명숙 전 의원뿐만이 아니다. 현재 국회의원 중 재판 중이거나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여당 4명, 야당 12명(한명숙 제외) 등 총 16명이나 된다. 혐의도 불법 정치자금 수수, 철•해운 비리, 성폭행 의혹, 입법 로비, 국정원 여직원 감금, 대리기사 폭행, 위증, 취업 청탁 등 다양하다.
국무총리 출신으로는 최초로 유죄 판결을 받은 한명숙 씨는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은 뒤 자신의 재판을 정치 탄압이라고 선언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대법원으로부터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한명숙 씨 재판을 수사당국의 ‘야당 탄압’으로 규정짓고 강경한 대응책을 모색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한민국은 헌법이 삼권 분립을 보장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인데, 대법원의 판결을 정치탄압으로 몰고, 이를 야당 탄압이라고 우긴다. 플라톤이 오래 전에 설파한, 민주주의가 타락하면 중우(衆愚)정치(ochlocracy)가 적나라하게 이 땅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국회가 이 정도까지 타락하다 보니 시중 여론은 국회의원이란 용어 대신 국가에 해를 끼친다는 뜻의 ‘국해(國害)’의원, 일부 심한 경우는 ‘국개’의원이라고 비하하고 있는 실정이다.
헌법상 국회 및 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입법’ 기능이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고유 업무인 입법 기능을 제대로 수행했는가?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최근 조사 결과 제19대 국회는 역대 최다 법안을 발의했지만 법안 가결률은 역대 최저로 밝혀졌다. 2015년 6월 기준, 제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 건수는 정부 제출을 포함하여 1만 4,290건이다. 이 중 처리 건수는 4,737건으로 처리율은 33.1%다. 처리 중 가결 건수는 1,848건이며 전체 발의 중 가결률은 12.9%다.
왜 그들은 반(反)시장적인 포퓰리즘 법안 양산하나
정부 제출안과 위원회안을 제외한 의원 단독으로 발의한 건수는 12,578건이며, 이 중 3,409건이 처리되었고 처리율은 27.1%다. 처리 중 가결건수는 771건이며 처리율은 6.1%. 이는 역대 최저율로, 의원 수가 가장 적었던 제7대(175명)의 50%와 크게 대조되는 수치다.
19대 국회는 의원발의 기준으로 역대 국회 중 양적으로는 가장 많은 법안을 발의했지만 가결률은 가장 낮았다. 쉽게 말하면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일반 국민의 상식으로 볼 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온갖 파렴치한 범죄 행위를 저질러 유죄 판결을 받거나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의원이 전체 의원의 5%가 넘는 위기 상황인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회가 대한민국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한 헌법적 질서에 현저히 어긋나거나 위헌 소지가 다분한 법, 반(反)시장적이거나 사회주의적 요소가 다분한 포퓰리즘적 법안을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무원연금법 같은 구조개혁 법안 등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과도한 수정 과정을 거치면서 만신창이가 되어 당초의 개혁 취지가 현저히 훼손되는 등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지금 국회는 스스로 자정(自淨) 개혁해야 할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례대표 도입 취지는 지역구 당선이 힘든 여성•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전문가를 의회로 보내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재 야당은 운동권들의 등원 통로로, 여당은 집권자의 추종세력으로 도배질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이유 때문에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부 교수는 국회의원 직을 “책임은 없고 권한만 있는 자리”라고 비판한다.
무거운‘권력의 갑옷’입고 비틀대는 여의도
1987년 제정된 6공화국 헌법은 박정희, 전두환 권위주의 체제에 지친 정치권과 국민들의 합작품이었다. 그 결과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제한하고,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을 폐지하는 등 권한을 대폭 축소했다. 대신 국회에는 대통령 탄핵권을 부여하는 등 입법부의 권한을 크게 강화했다. 이것이 현행 6공 헌법의 가장 큰 특징이다. 6공 헌법에서 국회의 권한이 얼마나 막강한가는 노무현 대통령을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여 대통령 직위를 정지시킨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국회의 입법 권력이 강화된 만큼 국회가 국정의 동반자라는 책임감을 갖고 대통령의 국가 통치에 협조해야만 원활한 국정 운영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권력의 중심이 청와대에서 국회로 옮겨가면서 국정의 동반자는커녕 브레이크가 고장 난 탱크처럼 ‘제왕적 국회 독재’라는 폭주를 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국회 독재(elective despotism)’란 용어는 미국 헌법의 아버지 제임스 메디슨이 제기한 것이다. 메디슨은 미국 헌법 제정 과정에서 3권 분립체제 하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무너지고 의회로 권력이 집중되는 정치 체제의 타락 현상을 경고하기 위해 이 용어를 내놓았다. 메디슨은 ‘국회 독재’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자제력을 발휘하여 헌정 질서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한국의 여야 정치 지도자들은 과연 이런 자제력을 잘 발휘하고 있다고 보는가?
대한민국 국회는 지금 너무나 거창하고 무거운 ‘권력의 갑옷’을 입고 제 몸을 가누지도 못하면서, 개혁을 한답시고 의원 정수를 늘이려다 호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철회했다. 국회가 스스로를 개혁하지 못하면 국민이 들고 일어나 국회를 개혁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단히 가혹한 개혁이 될 것임을 자각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