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소사이어티

무너져 가는 제국의 마지막 영웅

- <리홍장 평전> 량치차오 著

서평 고진석 <독서컨설턴트>

“미국과 한국이 38선을 넘어 전면적인 군사행동을 보이면 중국은 군사적 개입의 위험성이 있다”(환추시보) 북한 핵 문제로 인하여 한반도는 구한말의 혼란으로 돌아 간 듯하다. 이런 현실에서 동북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나라로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근대(近代) 중국은 자신의 무능으로 인하여 아시아를 불행으로 몰아간 장본인이다. 이 책은 청나라가 왜 실패했는 지 보여준다. 그리고 청조의 후손들은 이 시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교훈을 주는 책이라 생각해 이 책의 서평을 쓰게 되었다.

“이번에 합병조약이 발표되자 이웃 나라의 백성은 오히려 조선을 위해 흐느껴 울며 눈물 흘렸는데, 조선 사람들은 술에 취해 놀며 만족했다.”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

리홍장 평전의 저자 량치차오(梁啓超•1873~1929)는 조선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적지 않았다. 조선에 대한 애정도 대단했다. 물론 그 애정은 제후국 조선을 보호해야 한다는 봉건적 사고를 기초로 했다. 량치차오는 청나라 말기 변법유신파의 지도자로 유명했다. 변법자강! 변법(changing laws)으로 청조의 낡은 법을 고치어 나라를 자강(self-strengthening)하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변법유신파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의 개혁정책에 주목했다. 단순한 무기 도입이나 신식군대의 설립보다는 바탕이 되는 부국강병의 바탕이 되는 제도개혁에 관심을 기울였다. 위대한 지식인 이었지만 그가 속한 변법파의 개혁은 수천 년간 이어진 중국지식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히 썩어빠진 유학의 틀을 깨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그는 보수적 사상가였다.

오직 난세에만 영웅이 있었고…

크게 평화로운(太平)천국(天國)을 만든다는 자칭 예수의 동생 배상제회 교주 홍수전은 명청전쟁 이래로 중국 역사상 가장 대규모 내전을 벌인다. 태평천국의 난(Taiping Rebellion)이다. 손문은 자신이 제2의 홍수전이라고 칭했을 정도로 태평천국의 난은 민중에게 지지를 받았다. 청나라 정규군은 무능했고 싸울 의사가 없어 보일 정도로 무기력했다. ‘오직 난세에만 영웅이 있었고 태평성대에는 영웅이 없었다.’ (4p) 호남성에서 쩡궈판이 이끄는 민병대 상군은 태평천국군을 성공적으로 토벌한다. 남경이 무너진 뒤 만주족의 피지배민족 이었던 한족 쩡궈판과 그의 제자 리홍장은 무너져 가는 제국의 영웅으로 추앙된다. ‘염군의 난’ 염에서 염(捻)이란 '뽑다'라는 의미로 집단이라는 뜻이다. 이 집단은 굳이 말하면 규모가 큰 사적폭력집단이었다. 태평천국과는 달리 정부를 세우지 못한 채 떠돌이 약탈 군이었던 염군은 쩡궈판과 리홍장에 의해서 제압당했다. ‘(리홍장이 이끄는) 회군 지휘관들의 용기와 엄격하고 명확한 부대 규율을 본 유럽과 미국 사람들은 모두 태도를 바꾸어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88p)’ 제갈공명을 능가한다는 쩡궈판의 제자 리홍장은 15년 내전 동안 한 번도 패배를 당하지 않았을 만큼 유능했다. 비정규군과의 싸움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했을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리홍장의 활약은 눈부셨다는 것이다.

동양의 비스마르크 개혁을 추진하다

양무운동(洋務運動;Yang-wu movement) ‘양무(洋務)’란 외교 사무라는 뜻이다. 여기서 양무란 서양의 문물과 기술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쓰인다. 양무운동(1861년~1894년)은 함풍제의 죽음 이후 중앙 정부의 실권을 장악한 공친왕과 태평천국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운 쩡궈판, 리홍장등의 한인 관료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되었으며, 이들은 양무파로 불렸다. 초기에는 군사력 증강을 위해 군수 공업의 육성에 중점을 두고 전개되었지만, 1870년대 이후에는 광공업이나 교육 등 다른 부문까지 근대적 개혁으로 확산되었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양무운동의 리더 리홍장을 보고 ‘동양의 비스마르크’라고 추켜세웠을 정도였다. 양무파의 핵심 리홍장을 보는 량치차오의 눈은 냉정하다. ‘그는 (리홍장) 서양 국가가 부강한 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는 중국의 정치제도, 전통, 풍속이 외국보다 우수하고 단지 총, 포, 배, 철로, 기계만이 서양보다 뒤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중국이 부족한 것만 채우면 양무는 끝이 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49p) 기존의 봉건적 구조를 유지하면서 실행하는 안일한 개혁은 결국 실패한다.

청일전쟁은 본질적인 개혁 없는 허장성세개혁의 끝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일본은 중국이 아니라 리훙장 한 사람과 싸웠다’ 리홍장은 충정을 다해 싸웠지만 결과는 허무했다. 저자는 말한다. ‘리홍장이 그동안 누렸던 명성은 청일전쟁으로 사라졌다.’ (159p) 양무운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세계최대의 조선소에서 만들어진 북양함대의 전투함은 포한번 제대로 쏘지 못하고 바다로 사라졌다. 허장성세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청나라 군대의 최후는 너무나 허무했다. 청일전쟁에 대한 량치차오의 시선은 냉정하고 논리적이다. ‘19세기 후반 이래로 국가 간의 전쟁에서 승패는 이미 개전 이전에 결정되었다. 왜 그럴까? 세계가 문명사회에 가까워질수록, 강한 자는 번성하고 약한 자는 쇠멸하는 이치가 더욱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187p)

조선을 끝내 잃다

량치차오는 리홍장의 미숙한 외교처리로 중국의 종속국 조선을 잃었다고 말한다. 청이 조선의 대일(對日) 외교를 직접 주관하지 않아 청일전쟁이 발발하게 됐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조선 사람이 하는 말은 하나도 충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없다’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 량치차오는 조선을 믿지 않았다. 그 이면에는 청조를 배신하고 일본에 쉽게 자신의 국가를 넘겨주는 허약한 종속국 지배계급에 대한 분노가 자리 잡고 있었다. 명성황후가 일본 불량배들에 의해 시해된 것은 1895년 10월 8일이었다. 이보다 6개월 전인 1895년 4월 17일 일본 시모노세키(下關)에서 청일전쟁을 매듭짓는 시모노세키(下關)조약 담판 중에 리홍장은 일본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아 탄알이 왼쪽 눈 밑에 박히는 사고를 당한다. ‘(리홍장의 사고로 인해) 결국 일본은 중국이 이전에 제기한 정전 조건에 서명하기로 결정했다. 언쟁으로 얻을 수 없었던 것을 이렇게 총상으로 얻게 되었다. 드디어 정전 가능성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203p) 교섭 상대에게 총상을 당하는 정도가 아니면 사태가 수습 될 수 없는 당시의 처절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량치차오는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과 1901년 신축조약 체결을 탓하는 사람들이 과연 리홍장의 자리에 있었다면 그보다 더 잘 일을 처리할 수 있었을까 하고 되묻는다.

청을 몰라도 리홍장은 안다

‘청을 몰라도 리홍장은 안다’ 서양외교가에서 나온 말이다. 청일 전쟁 이후 중국의 허약한 실체가 드러난 후 서구 제국주의국가들이 이권을 챙기려고 혈안이 돼 있을 때 협상의 현장에는 리홍장이 있었다. 저자는 외교관 리홍장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다. ‘그래서 서양 철학에서는 항상 "사람은 도덕이 있지만, 국가는 도덕이 없다."라고 말한다. 여러 나라의 위대한 외교가라 불리는 사람들을 한번 봐라. 누구 하나 교활한 외교 수완 없이 명성을 얻은 사람이 있는가? 그러나 중국에서 외교술이 제일이라는 리홍장도 세계에서는 제일 뒤쪽에 위치한다.’(238P) 리홍장의 외교는 주로 다른 국가와 연합해 또 다른 국가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이제이(以夷制夷)에서 나온 이 전략은 오늘날 중국에서도 쓰는 전략이다. 한심한 것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었을 때나 가능한 전략을 현재 한반도에도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이제이의 얄팍한 술책은 당대에도 문제가 된다는 것을 저자는 지적한다.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술책인 중러밀약 이외에 리홍장이 처리한 다른 사건들에서는 술책을 활용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한번 사용한 이 술책 때문에 훗날 여러 가지 곤란한 문제들이 발생했으니, 이 또한 자업자득이라 하겠다. 이런 상황인데 구태여 나까지 슬퍼할 필요가 있겠는가?(240P)’ 리홍장은 죽기 한 시간 전까지도 더 많은 이권을 요구하는 러시아의 협박을 받다 간질환이 악화돼 숨을 거뒀다. 리홍장의 사망은 낡은 제국 청나라의 사망이었다.

이이제이 전략의 몰락

량치차오는 리홍장을 ‘시대가 만든 영웅일 뿐, 시대를 만든 영웅은 아니다’(29p)고 말한다. “배운 것도 없고 재주도 없어 감히 파격적이지 못했다(無學無術不敢破格)” 저자는 리홍장이 근대적 의미에서의 국민의 본질을 알지 못했고, 서양이라는 세계의 대세를 통찰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서양의 정치제도의 장점과 의미를 몰랐던 것은 오늘 신 중국의 정치가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얄팍한 부국강병의 결과에 만족 할 때 나라의 패망이 가까워 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저자는 리홍장의 장점도 언급한다. “고생을 피하지 않고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不避勞苦不畏謗言)(301p)

이 책은 진정한 개혁이 없었던 중국의 몰락을 보여준다. 중국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북양대신 리홍장을 비판한다. 이 책의 저자 량치차오도 그랬다. 량치차오는 이 책에서 청일전쟁을 중국의 몰락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조선을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청제국의 입장에서 보면 조선은 이이제이전략에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카드였다. 용기 없고 비전 없는 허세만 가득한 제국다운 통찰이었다. 이이제이 전략의 결과는 비참했다.오늘 중국의 외교 전략이 리홍장 시대보다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까. 세계를 리드해야 할 대국이라면 용기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 중국은 청나라 시대나 크게 다를 바 없는 이이제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이제이전략의 본질은 발전 없는 현실 유지이다. 북한이라는 무능하고 낡은 나라를 유지하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이제이전략에서 북한이나 한국은 리홍장이 쓰려던 오랑캐 카드일 뿐이다. 이런 얄팍한 전략은 청조 말기나 지금이나 결론은 비극적일 것이다. 오늘 신(新)중국이 청나라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세계 대세를 따르지 않는 깡패국가 북한에 대한 원칙 있고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북한 미국 일본 한국을 서로 견제시키려는 소심한 전략에서 벗어나 시대를 앞서가는 비전을 보여줄 때 중국은 세계사에 우뚝 설 것이다. 이것이 신중국의 리더들이 얻을 교훈일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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