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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5> 국가건설사관 강조하려다가 민주화에 대한 평가 소홀한 게 아쉽다
윤평중   |  2016-03-25 15:08:12  |  조회 3478 인쇄하기
<토론5> 국가건설사관 강조하려다가

민주화에 대한 평가 소홀한 게 아쉽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김인섭 변호사(이하 ‘저자’로 표기)의 역저인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 민주시민을 위한 대한민국 현대사』(이하 ‘저서’로 표기)는 중요한 책이다. 전문적 국사학자가 아닌 원로 법조인이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저서’는 단순한 역사 전문서적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요새 서점가에 넘쳐나는 역사 교양서적 수준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 ‘저서’는 ‘기적은 이루었지만 기쁨을 잃어버린’ 나라가 되어버린 대한민국과 동료 시민들에게 ‘저자’가 던지는 우국충정의 사자후(獅子吼)로 독해되어야만 한다.


법조인으로서 ‘저자’는 평생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데 진력해 왔다. 법조인이 특권화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다 법률가의 전문성을 빙자해 법의 정신을 오히려 왜곡하는 법기술자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 게 우리 법조계의 흔한 풍경인 터에 일관되게 선공후사를 실행해 온 ‘저자’의 족적은 매우 희귀한 것이었다. 그 일관성이 ‘저서’를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주된 동력이다. 공인(公人)의 말과 글, 삶과 실천이 서로 유리(流離)되어 겉돌기 일쑤인 한국의 생활세계에서 ‘저자’는 스스로의 말과 삶을 일체화하려 진력해 온 드문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진정성의 프락시스가 낳은 최신의 결과물이 바로 ‘저서’인 것이다.

 

[저작자] 전북여성힐링센터 [이미지출처] http://cafe.naver.com/jbheelingcenter/11681

 


민족•민중•민주 삼민(三民)사관이 문제라고?


‘저서’는 또한 이론과 실천의 복합체라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저자’의 실천적 행보에 더해 책의 내용이 계발적인 곳이 많고 건강한 역사논쟁을 장려하는 튼실한 콘텐츠를 갖고 있다. 역사학자들, 특히 한국현대사 전공자들에게도 연구공동체의 전문적 패러다임의 정당성을 돌아보게 자극한다. 논쟁적 지점에서도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설하는 ‘저서’의 덕목은 특히 일반 독자에게 우리가 서 있거나 가고자 하는 자리의 근본에 대한 집합적 성찰을 격려한다.

‘저서’의 사관은 국가건설사관이다. 즉 신생국 한국이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처절한 간난(艱難)의 도정(道程)과, 그렇게 해서 이루어야 할 국가의 목표를 가장 중시한다. 우리가 국가를 떠나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정치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국가건설의 본원적 중요성을 되풀이 강조하는 ‘저서’의 목표는 일단 정당하다. 한국현대사 연구의 운동장이 민족주의•민중주의•민주주의의 삼민(三民)사관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다고 확신하는 ‘저자’는 기울어진 막대를 제 자리에 돌려놓기 위해 삼민사관을 혹독하게 비판하면서 국가건설사관의 지평을 최대한 확장하려 한다.


하지만 ‘저자’의 우국충정은 때로 국가건설사관의 과잉을 낳는다. 삼민사관의 핵심이 ‘저자’가 요약하는 방식으로 간단하게 압축될 수 있는지도 그리 분명치 않다. 한국현대사의 경험을 단절과 대립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계승과 상생의 패러다임으로 이동시켜보려 하는 ‘저서’의 노력은 설득력이 있지만 국가건설사관의 과잉은 때로 ‘저자’가 지향하는 계승과 상생의 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저자’가 높이 평가하는 국가건설시기에 대한 풍부한 서술에 비해 민주화 시대의 분량이 너무 작은 데다, 그 상당 부분이 민주화 시대의 빛보다는 그림자에 대한 강조에 할애되고 있다.


국가건설이 민주화에 비해 더 선차적이고 더 중요하다는 ‘저자’의 확신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러한 불균형은 역사계승과 상생을 강조하는 ‘저자’ 특유의 긍정사관의 긍정성 자체를 감소시킨다. 국가건설시대의 빛을 크게 부각시키는 것과 함께 그 그림자는 매우 우호적이고 온정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저자’의 해석학적 추체험의 역사 읽기가 왜 민주화 시대에 대한 역사 독해에서는 정반대로 작동하는지 궁금하다. 이는 물론 ‘저자’의 실존적 삶의 맥락을 반영한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사회, 특히 역사학계를 괴롭히는 대립과 대결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국가건설시기와 민주화 시기 모두를 긍정사관의 해석학으로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


국가건설과 민주화 모두 긍정했어야 


‘저자’가 강조하는 민주시민교육의 주체가 될 학생과 청년세대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존재가 이미 압도적 현실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저자’가 평생 몸 바쳐온 법치주의의 확립을 위해서 운동권 인사나 야당, 강성 노조와 평범한 시민들의 법 경시 현상을 비판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국가기관과 기득권층이 공공연히 법을 위반하고 법치주의를 무력화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사실 이런 경우가 한국 법치주의 확립의 최대 적(敵)이라 할 수 있다. 단적인 사례로 박근혜 정부 들어서 정치권력이 앞장 서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유린하는 사례가 너무 잦고 악성인 현실은 ‘저자’가 고창(高唱)하는 민주시민교육의 정신적 토대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민주시민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는 ‘저자’의 말도 참이지만 오늘의 현실은 ‘민주주의 없이 민주시민도 없다’는 교훈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저서’는 빛과 그림자를 같이 안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세상에 나온 모든 책의 운명이다. ‘저서’는 역사 전문서적과 역사 교양서 사이의 경계선에서 유연하게 움직이면서 긴박하고도 생생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대한민국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 시민 모두는 이 사활적 질문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저서’는 국가건설사관으로 조망한 한국현대사의 의미를 촌철살인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 특히 역사학자들은 ‘저서’의 사관과 ‘저자’의 논변에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인간 존재의 의미지향성이 ‘저서’에서 유려하게 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꿔 말하면 ‘저자’는 국가건설사관이라는 의미의 망(網)으로 현대한국사를 통관(通觀)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성을 위해 평생 노력한 법치주의자의 실존적 이력이 이런 의미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저서’는 한국사를 기독교 신앙이란 의미(뜻)의 틀로 조망해 풍성한 성과를 낳은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본래 이 글의 제목은 ‘국가건설사관의 빛과 그림자’이나, 편집의 필요성 때문에 새 제목을 달았습니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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