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4> 현대사가 왜 몸살 앓고 있나
그 원인에 대한 진단과 성찰이 아쉬웠다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법치인이 바라보는 한국현대사는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 모든 분야에서 현대사를 개척해온 분들의 경험이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이는 오버도프의 “두개의 한국”이나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가 보여주는 현대사의 소중한 경험을 역사로 승화시키는 작업일 것이다. 단지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좀 더 많이 녹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법치주의를 강조한 것은 중요. 특히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오용과 남용, 급진 좌파집단의 문제, 과잉민주사회에서의 대중인기영합주의, 만성화된 연고주의, 비제도화된 집단이기주의 등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법치주의가 어려운 것은 법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법의 집행이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만연되어 있다는 것.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울러 결과를 위해서는 수단이 중요하지 않다는 압축성장 시대의 가치관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는 황색 언론의 보도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언론의 문제는 지식인의 문제보다 더 중요. 한편에서는 언론이 정치, 경제권력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황색 언론이 횡행하고 있다.
한국현대사‘그늘’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
자기 나라와 자신의 역사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어려운 위치에서, 어려운 상황에서 독립을 지켜오고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했다는 것은 다른 개발도상국에서 볼 수 없는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자랑스러운 것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통해서 불필요하게 치렀던 비용을 또 다시 치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역사 연구의 중요한 현재적 의미다. 이 점은 한국을 배우러 오는 개발도상국 관료 및 학자들에게도 중요한 점이다.
한국의 모델을 알려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러한 모델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비용을 치르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중국이 개혁개방 과정에서 한국을 벤치마크했다는 것은 동구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들 국가들이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금융위기를 벤치마크했다는 것 역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이런 관점에서 실패학에 대한 저자의 언급은 매우 소중한 측면이라고 판단된다.
건국과 산업화와 민주화를 각각의 단계로 인식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세 과정이 함께 가는 것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닐까? 4.19 혁명과 함께 1960년대부터 1987년까지 계속 된 민주화의 과정은 산업화의 과정과 함께 계속되어 온 것. 산업화를 하는 동안 민주화를 유보했다는 것은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런 것이고, 필리핀과 한국의 부패를 비교한 데이비드 강의 식민지 자본주의론(Crony Capitalism)을 고려한다고 할 때에도 민주화 운동에 의해서 끊임없이 견제 받은 한국의 산업화는 필리핀과 비교될 수 있다.
아울러 건국과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는 어느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지속적으로 계속되는 것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이 점은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산업화 근본주의와 민주화 근본주의, 그리고 국민형성(nation building)의 중요성에 대한 저자의 입장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저작자] 히엔 [이미지출처] http://blog.naver.com/hayade?Redirect=Log&logNo=208402494
국민형성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인정
해방 직후에 대한 서술에서 1946년 가을의 혼란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지점이 분단 정부의 수립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서술하는 바와 같이 스탈린의 지령이 있었고, 미국도 1945년 가을 행정위원회 계획을 구사하고 있었지만, 분단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1946년 가을의 상황은 이제 본격적으로 분단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혼란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미군정 조사 보고서를 참조하는 것도 이 시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김구의 남북협상에 대한 평가는 ‘실패’하였지만, 역사적으로 의미를 갖는 사건에 대한 평가와 동일선상에서의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만약 그것을 ‘실패’만으로 본다면 의병운동, 3.1운동, 4.19 혁명 등에 대해서도 연구할 필요성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운동들이 없었다면, 한국인들이 식민지를 원하지 않았고, 독립을 원했으며, 민주주의를 원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건국과 정부수립을 놓고 대립하는 것은 역사인식에서 그다지 중요한 논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점은 임시정부에 대한 평가, 그리고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대한 분석과 평가이다. 아울러 임시정부를 독립운동 단체 중 하나로 보는 시각은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궤를 같이 한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임시정부에 정통성을 두지 않을 경우 대한민국 정부의 기원을 어디에 둘 것인가? 둘은 서로 떨어지는 관계로 설정할 수 없다.
맨몸으로 세워서 맨몸으로 지켰다고 하기에는 미국의 공헌이 너무나 컸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민족주의 또는 국가주의의 관점에서 1948년 이후 1960년까지 미국과 계속 대립각을 세웠던 이승만 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특히 반공포로 석방과 환율을 둘러싼 공방은 이후에도 한미 간의 신뢰 문제에 부정적 유산을 남겼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겠다는 제안은 이미 반공포로 석방 이전에 미국 측에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했던 제안이었다. 미국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타이완, 호주, 뉴질랜드와도 상호방위조약을 맺었다. 이 과정에서 한미관계만 갈등이 심했을 뿐 다른 정부와는 큰 갈등이 없었다.
1960년대 월남 참전도 실패한 개입?
이승만 정부 시기의 산업정책과 미국의 원조 사용에 대해서는 좀 더 객관적인 조사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측에서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대한원조는 1960년대 초까지 비효율적인 원조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였다. 충주비료공장 건설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었다. 이승만 정부 시대의 국비유학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필요하다. 1달러를 바꾸는 것도 대통령이 재가를 받아야 할 만큼 1950년대는 유학이 쉽지 않았던 시기였다.
발전국가와 관련해서는 차머스 존슨이나 엘리스 암스덴 등의 모델 근거를 이용하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베트남 전쟁 참전에 대한 재평가도 필요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실패한 개입이었고, 개입해서는 안 되는 전쟁이었다. 전쟁 특수는 경제성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일본의 특수를 비판하면서 한국의 특수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부정의의 전쟁에 대한 개입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1960~70년대의 경제성장은 부인할 수 없는, 한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타이완의 중소기업 중심, 한국의 재벌 중심의 경제성장 과정은 앞으로도 다른 개발도상국에 중요한 모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안들이 있다. 이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나타났던 ‘비용’으로 이러한 비용이 정책 상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세계 경제 변화에 따른 문제였는가에 대해서는 객관적 평가가 필요하다.
1) 1960년대 말 부실기업 정리와 1972년이 8.3 조치
2) 1979년 경제안정화 대책 보고서에 있는 것과 같이 중화학 공업에 대한 과잉투자와 과도한 보조금 지급, 그리고 이로 인한 기업 경쟁력이 약화. 결과적으로 1979년 이후의 외환위기.
3) 1978년 이후 경제정책을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과 1980년대 초 경제안정화 정책을 통한 미국과의 갈등 봉합. 사실상 안정화 정책은 미국 측의 강력한 요구와 1978년 말 이후 한국은행 및 KDI의 요구사항이었음.
4)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말 재벌의 부동산 투기 문제
*본래 필자가 달았던 이 글의 제목은 ‘토론문’이었으나 새로운 제목을 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