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3> 기적을 이뤄낸 한국사회
그러나 왜 우린 행복을 잃어버렸는가?
박기주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책을 받아든 순간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는 책의 제목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평자의 어린 시절 쓰레기 더미를 뒤져 양철 캔의 알루미늄 따개를 주어 고물상에 팔던 생각을 하면 지금의 한국경제는 확실히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2조가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었던 시대에 청년기를 보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의 한국정치는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평자보다 한 세대를 앞서 살면서 한국 현대사의 모든 변화과정을 보고 체험한 저자의 세대에게는 한국 현대사가 기적이라는 것이 집단적 고백일 것이라 생각된다. 88올림픽 때 세계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체제의 희생물로 분단의 아픔을 겪었고 전쟁과 가난, 그리고 독재로 얼룩졌던 나라가 역동적인 산업국가, 자유로운 민주국가로 탈바꿈해 사는 모습을 보고 그들은 크게 놀라워했을 것이다.”고 쓰면서 저자에게 가슴 벅찬 감회가 있었을 것이다.
가난한 시절엔 마음만은 편했었는데…
그러나 가난했던 시절에도 마음은 편했고 그래서 배만 부르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 한국사회를 보면서 우리는 절망만 느낄 뿐이다. 매스컴은 연일 천륜과 인륜을 무시하는 끔찍한 사건과 권력집단의 이전투구와 사회적 갈등에 관한 뉴스를 토해내고 있다. 갑을관계, 수저논쟁은 불만세력들의 근거없는 아우성이 아니다. 수년간 OECD 국가 중 행복지수 최하위에 머무르고 특히 인생이 즐겁기만 해야 할 아동과 청소년의 행복지수도 그렇다. 또한 빠르게 늘고 있는 고령인구의 빈곤율이 가장 높고 고용 사정은 최악의 상태이며, 청년층은 절망하고 있고 미래의 삶이 불안하다.
이런 시점에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독자의 손을 끌기에 충분한 것 같다. 책의 부제는 ‘민주시민을 위한 대한민국 현대사’이다. 저자는 현역에서 은퇴한 후 공익적 사회활동을 하면서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나름대로 진단하고 법치질서의 정착이 무엇보다 필요함을 절감하였다. 법치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성숙한 민주시민이 형성되어야 하며 따라서 그를 위한 시민교육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민주시민 육성을 위한 교육은, 건국과 국가이념, 국가 정체성과 법치주의, 민주시민의 권리의무와 덕목을 가르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위한 출발을 한국 현대사 교육으로 보고 수년 동안 노력을 집중한 결과, 웬만한 연구자도 따라갈 수 없는 책을 출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독자들 중에는 이 책이 갖고 있는 시각(사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이미 익숙하게 듣던 내용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험적으로 진단하기 전에 저자가 갖고 있는 ‘본의’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저자는 실사구시와 중용의 자세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때문에 비록 보는 눈에 따라 달리 비춰질 수도 있지만, 비현실적 근본주의를 따르기보다 현실을 인정하고 적절히 공과의 양면을 균형 있게 보고자 노력했다고 생각된다.

사회발전 고민하는 미래지향의 자세 돋보여
둘째,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누구를 공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발전을 고민하는 미래지향적 자세이다. 사회발전의 방향에는 시공간을 막론하고 정답이 있을 수 없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이 각각 다르다. 이들 국가가 하나의 참고는 될 수 있지만 정답은 아니다. 따라서 반사회적 집단이 아니라면 상이한 이념집단 간에 사회발전을 모색해나가는 토론이 있어야 한다. 책의 마지막에 저자가 중용과 톨레랑스를 통해 민주주의를 성숙시킬 수 있다고 한 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현대사를 단계론적 이해하고 민주주의는 제도적 틀만이 아니라 성숙한 시민의식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보는 점 등에 대해서 상당 부분 동의하며 따라서 이 서평은 어떤 문제 제기를 하고 있지 못함을 미리 말씀 드린다. 저자는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시기를 산업화의 시기로 파악한다. 1960-80년대는 매우 압축적인 산업화에 의해 연평균 8-9% 성장을 한 고도 성장기였다.
출발점인 5.16에 대해 저자는 헌정질서를 파괴한 점에서 쿠데타이지만 이후 집권기간에 국민경제에 남긴 성과를 본다면 혁명이었다고 이해하고 있다. 5.16 자체를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를 얻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집권기간 중에 이룬 박정희식 개발정책의 경제적 성과는 ‘혁명적’이었다는 보는 것에는 다수가 동의할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한국경제의 구조(높은 무역의존도와 재벌의 지배력)는 박정희식 개발정책으로부터 연원한다. 박정희식 개발정책은 정부 개입에 의한 수출 주도적 공업화와 중화학공업화 전략이며, 둘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박정희식 개발정책은 금융‧세제상의 특혜와 노동에 대한 억압을 통해 경제 질서를 왜곡했다는 것이 경제학의 보수와 진보 양 진영으로부터 비판적 평가이다.
신고전파적 입장은 수출주도형 공업화를 시장 우호적이었다고 평가하지만, 중화학공업화 정책에 대해서는 자원배분의 왜곡과 저효율성, 저생산성의 효과만을 남겼다고 본다. 반면 개발국가론적 입장은 정부가 전략 산업에 자원을 집중적으로 배분함으로써 경제 발전 및 산업화를 조기에 달성할 수 있었다고 하며, 재원을 생산적으로 투자하도록 유도하고 기업을 국제경쟁시장에 노출시켰으며 보호와 경쟁을 적절히 배합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고 본다.
논란의 핵 박정희 시절 어떻게 볼까?
수출주도적 공업화는 국내의 풍부한 유휴 노동력과 국외의 넓은 시장을 이용하고 기업을 경쟁에 노출시켜 세계적 수준에 부합하는 기술력을 습득하는 좋은 선택이었다. 이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1962년 1월의 제1차 5개년계획은 자립경제 건설을 목표로 하였으나 내자조달을 위한 화폐개혁이 실패하고 외화가 부족하였다. 기존의 1차 상품 수출로는 외화 확보에 역부족이었다. 이에 수입대체공업에 편중되었던 투자를 수출공업으로 전환하자 63년에 공산품수출이 호조를 보였다.
64년 2월 공산품수출을 대폭 늘린 보완계획이 발표되고 5월에 환율을 인상하였다. 이처럼 수출주도 공업화는 원래 계획된 것이라기보다 새롭게 발견한 길이었다.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차별적 지원정책은 후에 중화학공업화와 새마을운동에서도 유지되었다.
경제학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온 중화학공업화 정책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처음부터 국제적 규모의 설비를 갖도록 추진되었다. 중화학공업화 정책은 정태적 관점에서 보면 경제학자들이 비판하듯이 시장질서의 교란과 고비용을 유발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일종의 셋업(setup) 비용과도 같은 것이며, 동태적으로 보면 민간 경제 주체가 시장을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강제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시장에 의한 자원배분을 지향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책은 불가피하게 유력 자본을 파트너로 하면서 재벌을 탄생시켰으며 재벌은 이후 한국경제를 지배하면서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박정희식 개발정책은 비슷한 시기에 다른 개도국들과 비교하여 한국이 압도적이고 만족할 만한 경제적 성과를 보일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다. 다른 길을 통해 그런 성과를 보인 개도국은 없었다. 저자는 박정희의 실용주의와 리더십이라고 표현하였지만, 박정희 정부는 기업이 끊임없이 효율을 추구하도록 유인체계를 구축하고,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통해 집단이기주의를 배제하고, 경제성장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민간의 자발성을 유도하였으며, 정책실행을 확인하고 민간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그래도 유신만은 옹호할 수 없지 않을까?
그러나 박정희는 10월 유신으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파괴하고 공권력으로 인권을 유린하였다. 유신이 종신집권의 야욕인가 고육지책이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후퇴는 산업화의 대가였으며 산업화의 성공 없이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빈곤 탈출이 지상 목표였던 시기에 산업화를 위해 민주화를 유보 또는 후퇴시킨 것에 대해 박정희로 대표되는 ‘산업화 세력’에게 일정한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그런 부작용을 치유하는 것이 다음 민주화 시기의 정부의 사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단‧방법을 무시한 목적 달성이 가져온 가치관의 전도, 탄압의 트라우마가 낳은 이념 대립과 갈등, 대기업에 대한 비판적 정서’ 등의 부정적 유산은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있다.
저자가 안정‧균형의 시기, 제2의 경제도약기로 표현한 80년대 전반은 전후의 시기에 비해 성장이 크게 둔화되었다. 당시의 중화학공업 구조조정이 그다지 실효성이 있었다고 생각되지 않으며, 거의 혁명적으로 물가를 안정시켰지만 물가안정은 유가가 급락하면서 나타난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한편 산업구조 면에서 주요 과제는 중소기업 부품산업을 육성하여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수직적 분업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산업구조의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었지만, 80년대 말부터 대규모 사업체수는 감소한 반면 영세규모(5-9인) 사업체가 증가하면서, 고부가가치의 기술집약적 대기업과 저부가가치의 노동집약적인 중소기업 간에 양극화가 일어났다.
80년대에 정부주도에서 시장자율로 경제 패러다임이 변하였다. 산업정책에 의한 정부규율을 대신할 시장규율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1980년에 제정된 공정거래법이다. 86년말 재벌규제 조항을 강화하는 개정이 있었지만 시장규율의 확립에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마침 87년의 개정헌법 119조 2항에 소위 ‘경제 민주화’ 조항이 포함되었다. 용어 자체가 많은 오해를 낳고 있지만, 내용은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어서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저자는 이를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사회민주주의 경제질서의 동거’라고 표현했지만 후자 역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양자를 이질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저자는 재벌이 경제민주화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강한 규율 하에 있던 재벌은 80년대 후반에 정부의 규율이 약화되자 이후 과다차입에 의한 다각화전략을 통해 몸집을 불렸으며 대마불사라는 도덕적 해이와 자정능력 상실로 결국 경제위기를 불러왔다.
시장경제체제는 자유를 기초로 하지만 이 자유는 질서의 틀 속에 있는 ‘과정에서의 자유’여야 하며 국가는 시장경제가 붕괴하지 않도록 질서를 유지‧형성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전후 독일 경제제도 형성에 큰 영향을 준 사회적 시장경제주의의 이론이다. 국가는 개인의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하도록 시장의 질서를 유지함과 동시에 대중이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성장의 이익을 누릴 수 있는 제도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안전망을 구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선산업화 후민주화’의 논리가 맞다
저자는 중산층이 형성되고 그들이 시민의식을 갖게 될 때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하였다. 고대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중산층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하였으며 그들이 몰락하자 민주주의는 물론이고 국가도 붕괴하고 말았다. 근대유럽에서는 부르주아 중산층이 민주주의를 쟁취했으며 이후 민주적 제 권리가 하층까지 확대되었다.
이들 중산층은 개인적 자유와 프로테스탄트적 노동윤리를 갖고 있었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이 결실을 맺게 된 것은 산업화를 통해 중산층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라는 ‘선산업화 후민주화’의 논리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동일한 맥락에서 현재 중산층이 붕괴된 것은 민주주의의 위기(plutocracy)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진단에 의하면, 우리 사회는 절차나 과정을 경시한 채 성장이라는 목적과 효율을 앞세운 결과, 비록 경제적 풍요를 갖게 되었지만 민주시민의식이 결여되어 자학적인 정서가 만연하게 되었다. 민주의식 교육에 법치주의를 포함한 것은 충분히 동의가 된다.
그러나 일찍이 영국에서는 재산과 인권에 대한 왕의 자의적인 침해를 부정하는 마그나카르타가 선언되고 이후 사법(司法)이 왕권을 견제하는 법치주의를 실현하였다. 법치주의는 먼저 권력이 법아래 엄격하게 통제될 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법 위에 군림하는 권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필자가 본래 달았던 이 글의 본래 제목은 ‘서평’이었으나 편집의 필요성 때문에 새 제목을 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