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1> 학계가 내버려둬온 빈 공간 채워줄
법조계 원로의 커다란 기여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책에 관해 촌평하기 앞서 며칠 전 <조선일보> 남상미 기자가 쓴 국제면 토막기사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 佛 90대, 30년간 쓴 논문으로 박사학위
프랑스에서 90대 할머니가 30여년간 쓴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AFP통신은 15일(현지 시각) 91세 콜레트 불리에씨가 프랑스 동부 브장송 프랑슈콩테대학 논문 심사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전했다. 브장송에서 이주 노동자를 대상으로 프랑스어 교사로 일했던 불리에씨는 1983년 이주 노동자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브장송대학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이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20세기 후반 브장송의 이주 노동자'란 논문을 썼다. 불리에씨는 박사 학위를 받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쉬엄쉬엄하다 보니 조금 오래 걸렸다"고 답했다. |
유럽 인문사회계열 대학의 경우 대학등록금이 거의 없습니다. 비단 그것만이 이유가 될 수는 없겠습니다만, 은퇴 후에 대학의 학위과정에 등록하여 해당 분야를 전공한 교수는 물론 청년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이 일생 동안 몸담았던 전문분야에 대해 학위논문을 쓰고,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이것이 영어권의 헤게모니 속에서도 프랑스나 독일의 인문사회공동체가 건강하게 생존해왔던 비결들 중 하나입니다. 한국의 인문사회공동체가 더욱 발전하고, 속살이 풍성해지기 위해서도 노년세대의 전문적 경험과 기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전통을 대학이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 책을 단순히 은퇴 법조인의 회고담으로만 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비록 저자가 대학에 몸담고 있는 분은 아닙니다만, 이 책은 분명한 학술적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통상 학계라고 하면 학사, 석사, 박사 등의 학위와 학회, 그리고 국내학술지 및 국제학술지 등의 제도적 장치들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은 근대적 대학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학문적 진실을 탐구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발전해온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학계의 제도적 장치들이 근대 이전의 권력기제처럼 진실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기존 학계의 독점적 패러다임에 맞서서 새로운 문제제기를 통해 사회적 토론을 촉발시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밝은 면에만 치중한 한계
이 책은 민족주의사관이나 민중주의의 사관에 입각해서 대한민국의 어두운 과거에 치중했던 학계의 여러 저작들과 달리 국가건설사관에 입각해서 대한민국의 밝은 면을 보고자 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사관을 갖고 책을 쓰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입니다. 저자의 국가건설사관만이 유일한 사관이 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되겠습니다만, 기존 학계의 빈 공간을 메워주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그러한 목표지향성으로 인해 이 책은 거꾸로 대한민국의 밝은 면에만 치중한 측면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비추었던 빛과 더불어 공존했던 그림자에 대해 주목하고 성찰할 수 있는 학계의 비판적 사유 또한 저자가 강조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의 핵심적 가치로서 존중 받아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대립구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직과 부정직의 대립구도입니다. 몰라도 아는 척, 조금 알아도 많이 아는 척 하는 글쓰기가 표절시비로 이어지기도 하고, 생산적 학술토론 자체를 불가능하게 합니다. 저자는 법조인으로서 자신이 경험하고 학습한 한국현대사를 자신의 국가건설 사관에 입각해서 ‘정직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특히 근대적 법조인이 체험하고 읽어낸 한국현대사라는 점에서 ‘모던(modern) 법조인의 한국 현대사’라고 명명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사법화’가 우려되는 현실을 넘어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는 원로 법조인의 시대적 증언이 소중하고 참신합니다. 특히, 모든 법조인들과 법조지망생들의 논쟁적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인가 정부수립인가?
1948년 5.10총선, 제헌, 정부수립, 그리고 1948년 12월 12일 제3차 국제연합 총회의 국제적 승인 등을 통해 대한민국이 수립됨으로써 나라가 다시 세워졌다. 1948년 대한민국의 수립은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같은 뿌리로부터 나와서 세워진 나무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한 나무들이 모여 있는 숲을 국제사회라고 볼 수 있는데,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것은 1897년 수립된 대한제국과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아시아-아프리카의 일부 신생국들처럼 과거에 국제적 승인을 받은 적이 없던 새로운 국가가 등장한 것이 아니다. 대한제국은 근대국제사회의 여러 국가들과 수교했고, 오늘날까지 국제우편연합(UPU)에서 인정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가입연도는 1900년 대한제국이 가입했던 연도이다.
1919년의 역사적 의미는 지대하나, 1919년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하면 1919년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고, 일본정부에 세금을 낸 사람들 모두가 국가반역자가 되는 논리구조가 만들어진다. 아울러 이미 국가가 존속하고 있었는데, 1945년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고,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했던 사람들 모두 국가반역자가 되는 논리구조도 만들어진다.

[저작자] 봉지 [이미지출처] http://blog.naver.com/jcs203?Redirect=Log&logNo=220430191664
분단책임론도 따져볼 필요 있다
1945년 무엇이 분단되었는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정상상태에 있던 코리아를 미소가 분할했다는 외인론적 인식은 사실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 38선은 코리아를 나눠먹기 위한 선으로 획정된 것이 아니라 미군과 소련군이 일본제국군의 무장해제를 분담하기 위해 획정했던 선이다. 오스트리아의 경우는 그러한 분할선이 분단선으로 귀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분할선이 획정된 1945년을 분단의 기점으로 보는 것은 분단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처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남북한 분단이라는 표현 자체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접근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조선과 한국의 분립이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일본은 한국이라는 명칭 대신 조선이라는 명칭을 쓰게 했다. 그 결과 1948년 대한민국 수립 직전에 개최된 런던올림픽에 파견된 선수단은 ‘한국올림픽대표단’이 아니라 ‘조선올림픽대표단’이라는 깃발을 들고 참가했었다. 조선과 한국의 관념적 분화는 고종이 조선을 대신해서 대한제국을 세웠던 시기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1948년 정상국가로 존재하고 있던 한국이 남북한으로 분단된 것도 아니다. 조선과 한국의 분립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단군조선 –> 이성계가 세운 조선 –> 일제강점기 조선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민족사의 정통성으로 인식하는 조선민족주의에 입각해서 인민민주주의국가를 수립하고자 했던 정치노선 vs. 삼한 –> 대한제국 –> 대한민국 임시정부 –>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민족사의 정통성으로 인식하는 한국민족주의에 입각해서 민주주의국가를 수립하고자 했던 정치노선이다.
이 두 가지 정치노선의 대립에 따른 분립을 살펴봐야 한다. 후자에 의해 수립된 국가는 국제연합에 의해 승인되었고, 전자에 의해 수립된 국가는 1948년 당시 소련, 몽골, 체코슬로바키아 등 공산권 국가들에 의해 승인되었고, 1949년 수립된 중화인민공화국에 의해 추인되었다.
6.25전쟁 누구의 책임인가
조선민족주의+인민민주주의 vs. 한국민족주의+민주주의 간의 관념충돌에 주목해야 한다. 인민민주주의는 사실상 공산주의의 변형된 형태로서 ‘역사적 진보를 위한 폭력’을 용인하는 사상이다. 6.25전쟁 이전에는 주로 내부전복을 통한 정권장악이 주전공이었으나, 6.25전쟁에서는 전쟁이라는 수단을 채택했던 것이다. 6.25전쟁 책임에 대해서는 ‘China Quarterly’라는 국제학술지에 게재되었던 K. 굽타(Gupta)의 논문으로 대표되는 북침론이 몰락한 이후, 내전확대론에 입각한 양비론이 대두됐다. 이러한 내전확대론적 양비론은 “통일과 화해를 위한 역사”라는 명목으로 유행했다. 통일과 화해를 위해서는 누가 6.25전쟁을 일으켰는가라는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통일과 화해라는 대의를 앞세워서 역사적 진실을 왜곡해서는 안되며, 역사적 진실을 통한 화해와 통일로 가야 한다.
또 다른 논란의 핵 ‘이승만의 공과’
이승만의 공과를 평가함에 있어서 무리한 3선 개헌을 통한 장기집권에서 4.19혁명에 이르기까지의 과오에 대해 냉철하게 비판하고 교육해야 한다. 그러나 대한제국 시기부터 5년 이상의 감옥생활을 통해 키워온 그의 민주주의 사상, 수십 년 간의 항일광복운동, 1923년 <<태평양잡지>>에 “공산당 당부당”론을 발표한 이후 확고하게 견지했던 반공노선이 대한민국의 존립을 가능하게 했던 점, 6.25전쟁 정전협상 과정에서 역사상 유례가 드문 고래와 새우 사이의 동맹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미국이 체결하게 만듦으로써 대한민국의 안보적 토대를 확립했던 점 등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정당한 평가가 필요하다.
이번에 나온 책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는 새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줬다. 그 하나가 현재의 영토공간적 구속성을 벗어난 시간에 대한 인식과 교육의 필요성이다. “국사를 국정으로 가르치는 선진국은 없다”라는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프랑스의 경우, 좌우가 극명하게 갈라져 있지만, 국가가 여러 단계에서 관여함으로써 국민통합적 역사교육을 실시해오고 있다. 무엇보다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에서 <<국사>>나 <<프랑스사>>라는 과목 자체를 가르치지 않다. 대신 <<역사-지리>>(histoire-géographie)라는 과목을 가르친다.
우리도 다음 단계로는 검인정이냐, 국정이냐 하는 대립구도를 넘어서 필수로 지정된 <<한국사>>과목의 명칭 자체를 <<역사-지리>>로 바꾸고, 인접학문 분야의 학자들과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나아가서 몽골을 포함한 동유라시아국가들이 유럽처럼 공동의 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앞서 각각 자국사라는 틀을 벗어나서 <<역사-지리>>라는 과목명 하에 현재의 공간적 구속성을 벗어난 과거의 진실을 다음 세대에게 교육하는 것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
차제에 한국현대사를 산업화세력 대 민주화세력이라는 이분법으로 보는 문제점도 점검해야 한다. 이런 구분법에는 ‘공산주의 대 반공, 반공 대 반-반공의 대립구도’가 빠져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20세기 현대사에서 ‘공산주의 대 반공, 반공 대 반-반공의 대립구도’가 압도적이었다. 유럽에서는 좌파의 일부도 반공을 했을 정도였다.
한국현대사를 평가함에 있어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사후작명된 이분법적 구도로만 보는 것은 잘못이다. 이북 공산주의에 맞선 ‘반공 대 반-반공의 대립구도’가 포함된 4각 구도로 보아야 한다. 냉전시대의 ‘반공’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불가피했던 측면이나 민주화세력이 ‘반공’에 기여했던 측면을 보지 않는 것은 오류다.
민주화세력을 억압하는 도구로 ‘반공’이 오용되었던 측면만을 보는 경향이 있다. 다른 한편 산업화세력은 스스로의 존립을 가능하게 했던 ‘반공’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현실적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소극적 입장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적 사실은 좌우구도를 넘어 “있었던 그대로(what really happened)”를 기록하고, 교육해야 한다.
*본래 이 토론문의 제목은 ‘<민주시민을 위한 대한민국 현대사: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 발간에 즈음한 촌평과 한국현대사 쟁점들에 관한 소고’이었으나 편집의 필요성 때문에 새 제목을 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