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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발제> 머리와 가슴의 역사 아닌 온몸으로 쓴 새로운 현대사의 등장
전상인   |  2016-03-25 15:26:04  |  조회 4695 인쇄하기
<기조발제> 머리와 가슴의 역사 아닌

온몸으로 쓴 새로운 현대사의 등장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이른바 ‘한국현대사’가 70년을 넘겼지만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한국현대사에 대한 관심 부재와 연구 부족이 학계의 문제였다. 하지만 그 이후 한국현대사는 우리나라 학계에서 가장 유망한 ‘성장산업(成長産業)’ 가운데 하나로 급부상해 왔다. 양적으로 한국현대사 연구는 더 이상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측면에서는 오히려 과잉이다. 지금 문제는 그것의 질적 수준과 궁극적인 효과가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 학계가 좌와 우 내지 진보와 보수를 표방하며 정치적으로 팽팽하게 대립해 있는 가운데, 시나브로 한국현대사 연구는 양 진영의 종교적 교리문답(敎理問答)처럼 되어버렸다. 채널은 고정된 채 볼륨만 점점 더 커지는 형국이다. 그래서 작금의 한국현대사 연구가 한국사회의 통합과 발전에 기여하는 바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무성했던 학회나 저술활동에 비해 한국현대사 연구가 우리나라 학문 전체의 성장에 이바지한 흔적도 별로 눈에 띠지 않는다.  


김인섭 변호사는 이런 점을 안타깝게 여겨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를 썼다고 한다. <민주시민을 위한 대한민국 현대사>라는 부제가 붙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역사학 전공자가 아닐 뿐 아니라 전문(專門)•전업(專業) 학자도 아니다. 이 책은 법조인 출신 시민역사가가 한국현대사를 새로 공부하며 쓴 결과다. 그런 만큼 이 문제에 대한 저자 특유의 뜨거운 열정과 시대적 소명의식이 오히려 돋보인다.

 

 


교리문답식 역사책, 이제는 벗어날 때


이 책에 실린 말과 생각은 저자의 인생역정에 깊이  육화(肉化)되어 있다. 책에서 읽은 것, 학교에서 배운 것, 혹은 남들의 주장을 적당히 옮기고 엮는 그런 수준이 결코 아니다. 산수(傘壽, 80세)인 그의 연배를 고려하면 이 책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한국현대사이다. 한국현대사라는 대하드라마를 처음부터 본 사람이어서, 중간부터 본 사람이나 끝부분만 본 사람과는 확연히 다르다. 머리로 아는 역사, 가슴으로 아는 역사와 온몸으로 아는 역사는 차원이 같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의 몇 가지 주장은 막힘이 없고 거침이 없다. 분단과 단정의 책임을 공산권에 확실히 못 박는 것, 대한민국을 정부수립이 아니라 건국으로 규정하는 것, 국가건설 과정에서 드러난 이승만의 독보적 공로를 인정하는 것, 박정희식 경제개발의 전략적 합리성을 높이 평가하는 것, 민주화 이후를 사회적 고비용•저효율 시대로 인식하는 것, 민주주의 퇴행의 책임을 지도자들의 자질 부족과 민주시민의식의 부재 탓으로 돌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서로를 경청하며 이해-공감의 폭 넓히자


양비론이나 중도론의 유혹에 흔들리기 쉬운 현 세대에서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이 책의 매력이자 용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저자의 주장에 대해 반론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저자 자신도 이 책에 대한 비판을 기대하고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앞에 주어진 과제는 이 책을 어떻게 수용하고 활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선 선입관을 버리고 다른 의견과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서로 간에 예의를 갖추고 감정을 최대한 자제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귀한 음식일수록 좋은 그릇에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성급하게 합의를 추구할 필요도 없다. 굳이 중도로 귀결할 필요도 없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격조와 품위를 유지한 채 서로가 서로를 경청하면서 이해와 공감의 폭을 하나하나 넓혀 나가야 한다. 이 때 권력의 시녀가 되는 이도 없어야 하고 밥그릇의 노예로 사는 자도 사라져야 한다. 


특히 내가 아는 지식, 내가 믿는 지식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 것이 우리 시대 지식인의 과제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근본주의의 포로가 아닌지, 차제에 누구라도 한번쯤 진지하게 성찰했으면 한다. 시인 이성복은 이렇게 말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밝힌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밝힘의 과정이 사실을 왜곡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 한다>, 문학동네, 2015). 한국현대사의 언필칭 ‘올바른’ 이해를 둘러싼 대립과 대결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이고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먼저 세상을 떠난 순국선열과 산업전사 그리고 민주투사는 우리에게 말없이 묻고 있다. *이 글은 본래 별도의 제목이 없이 책 제목대로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이었으나, 편집의 필요상 새로운 제목을 달았습니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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