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재보선 평가와 정치적 의미
윤종빈(尹種彬,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끌벅적했던 4.27 재보선 드라마가 막을 내렸다. 예상과 달리 배우도 주연급이었고 관객도 넘쳐났다. 지역 무대임에도 전국적인 관심이 쏠렸다. 예상대로 투표율은 매우 높았고, 이는 야당의 승리에 기여하게 된다. 소위 ‘빅3’ 지역의 유권자들은 투표에 대한 시민 의무감이 매우 높았다. 그들의 투표가 향후 대선 구도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선거가 끝난 다음날 아침,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결과를 “무겁고” 그리고 “무섭게” 받아들인다고 유감을 표했다. 대통령은 서민경제 및 일자리 문제와 같은 서민 불만의 심각성을 인정했다.
한나라당이 집권 여당으로서 총력전을 펼쳤음에도 선거에 패배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나라당 강세 지역인 분당(을)에서도, 보수 성향의 강원도에서도 패배하였다. 필자의 관찰로는 3가지 원인이 작용했다고 본다.
첫째, 정부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체감 경기에 가장 민감한 30․40대 중산층이 등을 돌린 결과이다. 특히 분당(을)에서 한나라당은 이를 감지하지 못했지만, 손학규 후보는 “중산층이 변해야 대한민국이 변할 수 있다”는 구호로 중산층을 잘 파고들었다.
둘째, 선거 막판에 터진 불법선거운동이다. 강릉에서 적발된 엄기영 후보 측의 불법 펜션 콜센터 운영은 한나라당의 과거회귀 이미지를 더욱 각인시켜 강원도지사 선거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셋째, 정책의 혼선과 당의 무능이다. 신공항 계획이 백지화되었고 과학벨트 입지 선정에 대한 지역적 갈등이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집권 여당의 역할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와 같이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대통령 및 청와대의 국정운영 스타일과 수직적인 당청관계가 재보선에서 유권자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야당의 승리는 야당이 수권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심판으로 반사효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 분당(을)에 출마해 당선한 손학규 후보는 대권 주자로서 확실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민주당 손학규 후보의 당선은 향후 대선 일정에서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선거 다음날 대표적인 보수언론인 조선․중앙․동아일보의 제1면 톱기사 사진이 손학규 대표였다. 보수 세력에서도 야당의 명실상부한 대선 후보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손 대표는 재보선 승리로 크게 2가지 가시적인 소득을 얻었다. 우선 중도적 이념을 가진 유권자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야권의 유일한 경쟁력 있는 대권 주자라는 것을 각인시키게 되었다. 또한 2007년 3월 한나라당 탈당 이후 3년 10개월 만에 진정한 민주당원으로 정치적 재탄생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반면 김해(을) 선거에서는 야권연대로 출마한 국민참여당 후보가 패배함으로서 유시민 대표는 커다란 정치적 상처를 입게 되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 마을이 위치한 지역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결과적으로 유시민 대표의 본선 경쟁력이 다시금 논란이 되었다. 6.2지방선거에서 김진표 후보와의 경기도지사 경선에서의 승리, 김해(을) 야권연대 경선의 승리와 같이 당내 경선에서는 승리하지만 본선에서는 패배한다는 피할 수 없는 사실 때문이다. 손학규 대표와는 대조적으로 중도 지지층 확대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결과적으로 야권연대 혹은 야권통합 과정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과의 ‘소통합’ 후 민주당과 통합을 논의하겠다던 국민참여당의 전략은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국민참여당은 원내 진입에 실패함으로서 야권연대의 한 축을 선점하기 위한 동력을 상실하였고,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의 “국민참여당과 유시민 대표의 결단을 요구한다”는 통합 압력에 수동적인 입장으로 몰리게 되었다.
한나라당은 재보선 패배로 내홍에 휩싸여 있다. 선거 다음날 지도부 총사퇴,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결의, 조기전당대회 개최와 같은 긴급 조치로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했지만, 잠재되었던 계파 간의 갈등이 급작스럽게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대통령 임기 말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재보선 패배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수도권 초․재선의원 중심의 ‘새로운 한나라’와 같은 쇄신 그룹이 기존 친이계 주류의 ‘무한책임론’을 공격하고 있다. 중립 성향의 황우여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되면서 변화와 개혁을 둘러싼 갈등이 점점 격해지는 양상이다.
재보선에 나타난 민심은 2개의 키워드, ‘변화’와 ‘개혁’으로 압축할 수 있다. 국민들은 한나라당이 새롭게 변할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아직 한나라당은 변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내년 총선 공천을 둘러싼 지분 싸움만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고, 당이 어떻게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계파 간 이견(異見)만 난무할 뿐이다. 또한 임시변통적인 대안인 ‘박근혜 역할론’에 대해서도 계파 간에 커다란 입장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한나라당의 앞길에는 검은 그림자만 드리워져 있다.
고전적인 선거이론에 '합리적 선택이론'(rational choice theory)이 있다. '똑똑한'(sophisticated) 유권자들은 합리적으로 손익계산을 하고 투표한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우리 국민들은 매우 합리적이고 똑똑하다. 유권자들은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적극 지지했지만, 대통령 임기 3년차인 작년 6.2지방선거에서 권력 교체의 의지를 보여주었고, 이번 재보선에서 다시금 확인해 주었다. 과도한 권력 집중은 물론이고 소통과 통합 없는 성장주의를 견제한 것이다. 이번 재보선에서 비록 민주당이 대안 정당으로 부각되었지만, 국민들의 심판은 매우 준엄하기에 언제 다시 채찍을 들지 알 수 없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권력은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 역사적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독선과 자만, 도덕적 우월주의는 반드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