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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새해 다시 '기본'을 생각한다
김인섭   |  2012-01-30 12:01:09  |  조회 3025 인쇄하기
임진년 새해 다시 '기본'을 생각한다


김인섭 (재)굿소사이어티 이사장

 

 

밝아온 임진년 새해 굿소사이어티 회원 여러분과 ‘대화와 소통’의 애독자 여러분들 가정에 행복과 건강이 두루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꼭 1년 전 신년 권두언에서 저는‘헌법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제언을 드렸는데, 올해 다시 한 번 기본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지난 한 해 우리사회가 과연 어떠했는지 실로 복잡한 심회를 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모든 문제를 헌법의 기본정신과 내용에 따라 운영하는 법치주의를 명실공히 정착시키자는 외침은 지난해를 거치며 되려 후퇴 내지 악화된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상식이지만 지금 우리가 받들고 있는 제 6공화국 헌법은 민주화 선진화를 추구하는 우리 모두의 염원과 지혜를 담아낸 기본적 가치의 총합입니다. 그래서 가히 우리시대의 으뜸가는 장전(章典)이자 황금의 가치가 분명한데, 이것을 건국 후 48여년의 민주화를 향한 진통 끝에 1987년 6공 헌법으로 제도화했다는 과정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즉 87년 헌법은 한국현대사의 근대국가 만들기, 즉 네이션 빌딩 과정에서 의미심장한 세 번째의 역사적 계기라는 인식이 우선 중요합니다. 네이션 빌딩의 첫 번째 가치는 다 아시듯 1948년 제헌국회에서 합의하고 채택한 헌법이었습니다. 해방된 나라, 신생 독립 근대 국가의 모델을 어떻게 가져갈까, 어떤 큰 그림을 그릴까 하는 숱한 논쟁 끝에 얻어낸 사회적 합의로 우리 선배들은 현대적 민주공화국 헌법 제정에 일단 성공했습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네이션 빌딩의 첫 삽을 들어 안보와 치안이라는 최우선 과제에 몰두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후 전개된 현대사, 그리고 지금의 발전된 대한민국의 기적적인 성공이야말로 이승만의 선택, 한국민의 당시 합의가 얼마나 정당하고 세계사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었나를 웅변해줍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근대화 산업화의 압축성장을 이뤄냄으로써 네이션 빌딩의 두 번째 가치를 창출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건국혁명 이후 두 번째 가치인 부국 혁명에 성공했던 또 한 번 현대사의 역사적 순간으로 기록됩니다.

  2차대전 후 미·소의 치열한 냉전의 한 복판에서 한국인들은 스스로의 머리와 땀으로 건국과 부국의 경이로운 신화를 창출해냈으며, 그 과정에서 헌법의 정신과 내용에 어긋나는 반(反)법치적 과오도 적지 않게 남겼지만, 신생 국가 건설 사례 중에서도 최악의 여건 하에서 이루어 낸 위대한 성취이기 때문에 합당한 존경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이제 외국의 우수한 학자들도 우리의 네이션 빌딩을 기적에 가까운 이례적 성공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그 일례가 지난 연말 선보였던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 경제성장과 민주화, 그리고 미국>(그렉 브라진스키 저, 책과함께 펴냄, 원서 제목 ‘Nation Building in South Korea’)입니다.

  코넬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현재 조지 워싱턴 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교수로 있는 그는 “냉전 시대 미국의 국가 만들기, 왜 한국에서만 성공했을까?”를 묻고 또 묻는데, 그 질문은 저의 오랜 관심과도 일치합니다. 브라진스키에 따르면 냉전의 두 슈퍼파워였던 미국과 소련은 총칼을 겨누는 열전(熱戰) 대신 전 세계를 양분한 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갈려 체제 경쟁에 돌입했습니다. 그게 지난 20세기 중반의 전 세계인의 공통된 경험인데, 그 한가운데에 바로 가장 예민한 동서의 전초기지 격인 한반도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특히 미 소 경쟁이 한 국가에 몰렸던 국가는 중국과 베트남, 독일도 있었고, 미국이 인력과 물자를 지원해준 나라 역시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오직 한국만이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뤄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이 생각해온 이상형 국가에 가깝게 네이션 빌딩에 성공한 극히 이례적인 케이스라는 게 브라진스키의 진단입니다. 베트남, 필리핀은 안 되고 대한민국만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는 일단 미국의 지원이 중요했으나 한국인들의 잠재능력, 즉 능동적인 네이션빌딩 노력과 지혜를 핵심요소로 평가합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의 성공역사는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땀으로 쓰고 세웠습니다. 때문에 외국학자의 말 하나에 굳이 일희일비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현대사를 “실패한 역사”라며 자기비하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게 중요합니다. 인간 만사는 항상 양지는 음지와, 공(功)은 과(過)와, 장점은 단점과 표리를 이루면서 함께 굴러가고 있는 것이 인생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양쪽에서 다 교훈을 얻어서 큰 역사적 안목으로 우리의 성취와 과오를 새로 쓰고 시민교육에 나설 때가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는 건국과 부국의 신화 속에서 목적과 내용만을 중시하고 절차(due process) 즉, 사회적 동의와 꼭 필요한 절차적 합리성을 도외시 내지 경시했던 사실입니다. 그게 지금 사회혼란의 주범이라서 저는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대한민국이 네이션 빌딩의 세 번째 가치인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국민의 이름으로 찾아내어 국가의 기본적 가치로 삼고 있는 1987년 6공화국의 헌법을 제정했다는 점입니다. 그 점에서 6공 헌법은 한국 민주주의의 금자탑으로 손색없는데, 아쉬운 점은 헌법이 규정한 법치주의를 정착시키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 때를 기점으로 법치주의가 정착되었어야 하며, 전시대에 소홀히 해왔던 절차적 정의(due process)를 존중하는 문화가 사회 각 부문에 자리 잡았어야 했습니다. 적어도 이 때부터 법에 의한 통치, 법과 질서에 대한 승복을 토대로 한 선순환의 정치가 큰 틀의 정권교체뿐만 아니라 일상의 국정운영과 국민의 공•사 생활에 이르기까지 생활화되었어야 했습니다.

  이게 자리 잡았더라면 거창한 담론이나 고상한 명분을 앞세우며 공리공론과 파벌싸움으로 국력을 소모하는 우리만의 고질병을 치유했을 것입니다. 국민과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책도 이를 계기로 경쟁적으로 등장했을 것입니다. 투쟁 일변도의 힘겨루기 대신 구존동이(求存同異)의 화해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따뜻하고 합리적 사회 풍토 역시 이미 한국의 새로운 사회 풍토로 뿌리 내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금의 사회현상이 과연 어떠한 가는 회원 여러분이 다 아십니다. 법치는 후퇴일로이며, 집단이기주의와 연고주의가 극성을 부립니다. 위아래가 모두 탈법 불법에 뛰어들었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편 가르기가 성행합니다. 절대 다수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은 보수의 가치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듯 부정부패의 도가니에 빠져 많은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채 국정의 리더십을 상실하였으며, 책임 있는 공당인 야당 지도자들은 명분 우선에 따른 도그마에 갇힌 채 “당했던 만큼 되돌려주겠다”고 호언할 정도로 정치수준이 이 시대정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국민들은 정치 불신을 넘어 대의정치 제도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난해 이후 더욱 걱정스러운 게 있습니다. 이른바 소셜 미디어(SNS) 시대, 온라인 시대인데 한국사회가 과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전망이 안 보입니다. 페이스북, 트워터 전성시대의 사회건강이 실로 어두운데, 일부 네티즌들의 인터넷 테러가 일상화된 데 이어 일부 판사까지도 '가카 빅엿' '가카새끼 짬뽕' '꼼수면' 같은 막말을 SNS를 통해 토해내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 헌법재판소는 인터넷과 트위터로 사전 선거운동이 가능하다고 결정했는데, 이런 움직임이 한국사회의 구조와 여론형성 과정에 막대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는 이런 SNS 변수가 부글거리는 우리 사회의 무교양주의와 반문화 성향을 재촉할 것으로 우려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시민교육이 턱없이 부족한 게 우리 풍토라면 기성세대, 학계, 교육계, 문화계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오래 전부터 위험수위에 도달한 한국사회의 계층·지역별 위화감, 세대간 문화전쟁은 혹시 일촉즉발의 상황이 아닌가 우려되는 게 비단 저만이 아닌 줄로 압니다.

  역시 관건은 올바르고 균형 잡힌 민주시민교육에 달려있습니다. 한국사회 표준적 인식을 세우는 민간 주도의 운동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우리 시대 보편의 가치를 매 사안마다 재확인하는 시민교육은 ‘역사에서 교훈 찾기’에 충실할 때 가능한데, 그 점도 시민교육의 큰 영역입니다. 이 과정에서 다루어야 할 질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1) “현대 이전 우수한 우리 민족은 왜 잠재력 발휘를 못했나?” 2) “그러던 우리가 지난 반세기 어떻게 해서 위대한 성취를 거뒀을까?” 3) “지금 혼란을 넘어 더 큰 대한민국을 위해 지금 뭘 해야 옳을까?” 즉 19세기 말, 20세기 초 뼈아픈 실패의 역사와 20세기 후반 반세기 동안의 기적적 성취에 대한 겸허한 성찰을 통하여 귀중한 공 • 과의 교훈을 진지하게 배우는 자세로 성실하게 묻고 균형 잡힌 응답에 충실해야합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세대들은 물론, 미래를 짊어지고 갈 2세, 3세들에게 우리의 전 근대사의 명암을 공정하게 가르쳐주는 교육이 제대로 이어져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민주시민 의식을 고양시키는 시민교과서, 국민교과서 발간도 굿소사이어티의 큰 목표입니다. 회원끼리 돌려보게 하는 책을 넘어 시민의 광장에 내놓아 성찰과 지향(指向)의 텍스트로 삼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국의 가정에 한 권 씩 비치하며, 젊은 세대와 중장년 세대가 손잡고 읽는 저술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습니다. 지난 해 말씀드렸듯이 우리에게는 두 방향에서 민주주의 위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는 정치적 무관심과 혐오증이며 다른 하나는 포퓰리즘입니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올해가 상식과 균형이 자리 잡히고 경쟁과 협동이 조화를 이루는 전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헌법의 민주공화국의 기본정신을 다시 한 번 음미하며 건설적인 대화와 건강한 소통이 넘치는 한 해로 만들어야하겠습니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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