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육의 무게중심을 잡자

신창호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새 천년을 맞이한 지, 10여년이 지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구촌의 경제 선진국 모임인 OECD 국가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런 한국을 국외에서 어떻게 바라보는가? 정확하게 알기는 힘들지만 어떤 나라에서 ‘새마을 운동’을 배우러 온다는 것을 보니, 한국이 경제발전의 한 모델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경제발전의 바탕에 교육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경제개발 계획과 더불어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고 국가 발전의 동량으로 활용했다는 얘기다.

  이렇게 국가 발전의 밑거름이 된 인재를 양성한 것이 우리 교육의 힘이었다. 그런데 새천년 들어 교육이 표류하고 있다. 최근 어떤 개그맨은 학생들이 등산복을 입고 학교 다니는 것을 두고, 우리 교육이 산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정치인들이 ‘복지’ 얘기를 하는 데 휩쓸려, 교육복지에 대한 주장도 가지각색이다. 무상급식을 비롯하여 반값등록금, 다양한 교육 지원 등, 뾰족뾰족한 이슈들이 넘쳐흐른다.

  뿐만이 아니다. 청소년들에게 교육의 목적이나 목표를 물어보면,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서글프기 그지없다. 많은 청소년들의 공부목표는 ‘내신 성적 향상’과 ‘수능 고득점’, 그리고 ‘대학 진학’이다. 체력이 고갈되어 건강을 헤쳐도 상관없고,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을 정도로 인격을 갖추지 못해도 상관없다. 고등학생의 경우, 대학 진학만하면 모든 것이 성취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대학생들의 경험은 보다 쇼킹하다. 이제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 나가야 하는데, 대학 졸업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망설임 없이 방황한다. 소위, ‘개념이 없다.’ 그들의 말로 하면, ‘맨탈(mental)을 놓쳤다!’ 상당수의 대학생들이 도전정신을 갖고 자신의 이상을 고려하기보다는 공무원 같은 안정된 직장을 추구하고, 자신의 적성과 상관없이 연봉이 높은 대기업 취직을 선호한다. 이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인가? 어른들의 기대 수준이 너무 높은가? 아니면, 그런 걱정 자체가 기우이며, 이 시대는 아무 이상 없이 추세에 맞게 잘 돌아가는 것인가?

  어떤 현인은 문제가 혼란스러울수록 본질과 원리원칙을 성찰하라고 했다. 오늘 우리 교육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인류 문명을 추동해 온, 큰 힘이 두 가지 있는데, 그것은 경제와 교육이다. 이때 경제는 단순하게 서구적 의미의 이코노미(economy)라기보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준말로 보는 것이 옳겠다. 즉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으로 현대적 의미의 정치와 경제를 포괄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축인 교육과 경제에 대해 동양 최고의 고전으로 손꼽을 만한 󰡔논어󰡕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어느 날 공자가 위나라로 여행을 갔다. 그때 제자 염유가 수레를 몰았다. 길을 가면서 두 사람은 뼈 있는 대화를 나눈다.

  공자: 이 나라에 참 사람이 많구나.

  염유: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졌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더해야 합니까?
  공자: 사람들이 잘 살게 해 주어야 한다.

  유: 잘 살게 되었다면, 그 다음에는 또 무엇을 더해야 합니까?

  자: 사람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반듯하게 제대로 되지 않겠느냐?

  ｢논어｣｢자로｣에 나오는 이 대화의 핵심은 국가 운영에 관한 기본 원칙을 보여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은 먹고 사는 문제이다. 생물학적 생명을 유지하기조차 힘든 사회는 문명국가로 발돋움하기 어렵다. 공자 시대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공자는 국가를 구성하는 요건으로 세 가지를 적시했다. 첫째가 인구증가요, 둘째가 경제적 부이며 셋째가 교육이다. 인구증가와 경제적 부의 창출은 나라를 구성하고 지속하기 위한 물질적 바탕이다. 농경사회에서 인구증가를 통한 노동력 확보는 삶을 보장하는 기초 요건이었다. 그 다음 문제가 부의 창출을 통한 생활의 안정이다. 이런 것을 바탕으로 세 번째 요건인 정신적 바탕 마련이 제기된다. 그것이 교육이다.

  맹자의 경우에도, 배부르게 먹고 따스하게 입고 편안하게 살면서, 즉 경제적 부의 창출과 물질적 안정을 이루었으면서도 사람의 길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경계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들은 짐승 수준으로 떨어지리라. 교육은 여기에서 등장했다. 이때 교육의 핵심 내용은 오륜(五倫)이라는 윤리 질서이다. 맹자가 오륜을 제시하는 상황은, 허행(許行)이라는 농가(農家)를 비판하는 가운데, 분업(分業)의 논리를 강조하면서이다. 한 인간이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이는 인간의 개성과 직업에 따라 인간의 기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회성 담긴 언표이다. 즉 육체노동자인 노력자(勞力者)와 정신노동자인 노심자(勞心者)의 역할 분담 가운데, 자칫하면, 짐승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바른 자리에 놓기 위한 노력이다.

  그렇다면, 공자나 맹자 시대보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발달했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오늘 우리는 어떤 교육을 고민해야 하는가?

  필자가 보기에, 무상급식이나 반값등록금과 같은 정치적인 제스추어, 진보와 보수로 얼룩진 이념의 혼란, 자녀 교육을 위한 유학이나 각종 영재 교육 등등. 그런 것보다 훨씬 중요한 원칙의 문제를 우리가 정말 놓치고 있다. 특히,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자녀교육에 대한 인식은 놀랄 정도로 퇴보하고 있다. 예컨대, 왜 일반계 고등학교를 두고 특수목적고에 보내야 하는가? 자녀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공과 계통의 기술직인데 반드시 외국유학을 시켜야 하는가? 솔직하게 성찰해 보라!  

  정신지체나 장애 아동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영위할 만큼의 자질과 재능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철저히 존중해야 한다. 돈이나 권력, 기타 권위에 의해 조작되지 않는 우리 아이들의 재능들. 그것은 교육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교육은, 좀 심하게 말하면 개인의 잠재능력을 확인 사살하는 저격수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는 학교대로 사교육 시장은 사교육 시장대로, 심지어 대안학교까지도 교과 성적의 노예가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면, 학벌 사회인 한국에서 당연히 성공할 것으로 오해한다. 성공은, 개인의 자질에 따른 노력,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책무성 등 자신의 내부로부터 온다. 결코, 학벌이나 직위, 권력과 같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인생이 성공한 삶인가? 

  그러기에, 교육은 자신을 찾는 작업을 무엇보다 중시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진로를 모색할 수 있다. 자기 자리를 찾을 때, 젊은 영혼은 굳건한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며 공공 의식을 강화한다. 그 바탕에 행복한 인생의 밑그림이 그려진다. 이제 우리 교육도 무게중심을 벗어난 소모적 논쟁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 스스로 인생을 꾸며갈 수 있는 능력을 인정하고, 그것의 성숙을 고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