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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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교수 소개]
1956년생.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남일리노이 주립대학교에서 사회철학 및 정치철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 주립대(버클리) 역사학과, 미시간 주립대 철학과, 뉴저지 럿거스대 정치학과에서 연구교수로 있었다. 현재 한신대학교 대학원장 및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비평》과 《철학과 현실》 편집위원이다.
사회철학, 정치철학, 문화철학, 예술철학 등의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이 책에서 시도하고 있는 급진자유주의 정치철학 외에 영화존재론의 기획을 학문적으로 정초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푸코와 하버마스를 넘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과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담론이론의 사회철학』, 『논쟁과 담론』, 『주체개념의 비판』(공저), 『이성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극단의 시대에 중심잡기』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비판이론의 이념』(공역)이 있다.

[박명림 교수 소개]
1963년생. 고려대 정치외교학 박사.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하버드 옌칭연구소 합동연구학자를 역임했다. 현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다음 국가를 말하다』공저 등이 있다.
한국전쟁을 세계적·동아시아적·남북국내적 3가지 수준에서 조망하고,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한국전쟁의 기원을 찾는 근본주의적 시각이나, 6월 25일 하루의 사태에서 전쟁의 책임을 캐려는 현상적 해석 두 가지 모두를 거부하며 '기원'과 '발발'의 결합을 시도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은 한국전쟁 연구에 대한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는 87년 헌법의 개정 등 민주주의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정치체제 등 현실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사안들에 대한 연구를 계속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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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평중 교수(이하 윤평중)=3대 세습 후 북한체제의 미래 전망을 놓고 한국 학계는 상대적으로 안정성을 강조하고, 외국 학계는 불안정성이 드러날 가능성을 강조하는 듯 보입니다. 저는 북한 문제를 다루는 모든 논의에서 저들 체제가 의외로 내구성이 높고 견고하다는 점부터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부와 차기 정부가 취해야할 대북정책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오늘 대담의 주제인 ‘공화정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을 위해 이 문제부터 우선 짚어볼까요?
 박명림 교수(이하 박명림)=북한의 내구성(耐久性)은 외부 요인과 내부 요인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외부 요인은 중국이란 존재입니다. 탈냉전 이후 소련의 붕괴로 동구권이 붕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살아남는데, 이유는 소련의 영향력을 중국이 대체하면서 미국과 균형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내부 요인으로는 폐쇄성이 있습니다. 북한 인민들은 다른 체제를 경험하거나 열망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북 정책은 두 가지를 결합했으면 좋겠습니다. 즉 대화와 협상의 상대, 안보의 상대로 북한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 체제가 인류의 보편 가치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나를 비판해야 합니다.  
윤평중= 동감입니다. 지난 진보정부 10년 동안의 햇볕정책은 낙관적 기대(wishful thinking)로부터 과잉을 초래한 측면이 있고, 거기에 대한 반발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걔네들은 우리 상대가 아니다.”는, 또 다른 과잉이 있었습니다. 김정은 체제를 현실적 상대로 받아들이자는 제 판단은 그 때문이죠. 그래야만 당파 논리를 넘어서 대한민국의 미래, 나아가 한반도 전체과제를 객관적으로 사유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를 논할 때 북한 문제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요. 이 지점에서 ‘과연 북한은 공화국인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공화국이라고 자부하는 그들의 논리와 현실을 먼저 선명하게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말하기 전 북한체제부터 논한다

 박명림=저는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해야한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그들 체제가 공화국이라는 주장에는 회의적입니다. 우선 주권재민이라는 원리에 위배됩니다. 게다가 권력분립과 법치 역시 찾기 어렵습니다. 전형적인 인치(人治)에 더해 견제와 균형의 장치도 없습니다. 또 자신들의 공화국만이 인민의 총의, 이를테면 루소가 말하는 이른바 일반의지(volonté générale)를 갖고 있고, 맑스와 레닌의 적통성을 가졌다고 보았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북한은 자신들이야말로 인민을 대변하는 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은 소수의 친일파, 친미파, 부르주아를 대변한다고 공격했는데, 그 점은 북한의 많은 내부문건을 검토하며 확인했던 사실입니다. 물론 사실에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윤평중=북한의 내부문건 검토를 포함해 그들의 자료를 섬세하게 보고 판단하시는군요. 먼저 그들의 논리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접근법이라고 봅니다.
 박명림=건국 초기 북한은 당시에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의 차이점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직접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 모두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실제로 북한 인민은 지구상에서 드물게 인신보호, 자유, 인권, 그리고 평등과 같은 근대 공화주의의 가치를 아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민을 위한다”는 목적을 추구하면서 “인민에 의한다”는 절차의 문제는 전혀 중시하지 않는 체제입니다. 공화이건, 민주이건, 혹은 자유이건, 평등이건 간에 공동체 차원의 근대적 가치의 최초 출발은 절차의 문제로부터 발원하는데도 그렇습니다.
 윤평중 = 근대공화주의의 중요한 요소인 자유로운 시민의 존재나 보편적 인권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는 뜻일까요?
 박명림 = 그렇습니다. 저는 북한인민, 북한주민이 현실에서 근대 시민적 존재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봅니다. 체제 역시 물론입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특히 북한 문건을 살펴보고, 북한의 고위층 및 실무층들과 대화하면서 가장 큰 충격을 받는 것은, 그 체제가 인간을 목적적 존재가 아닌 수단적 존재로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평양 순안 비행장에 내리며 목도하는 가장 크고 선명한 붉은 구호는, 수령과 당을 위한 “이천만 총폭탄”, “결사옹위”입니다. 인민을 폭탄과 결사대라는 극단적인 수단으로 보는 겁니다.
 윤평중=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은 인민의 나라도 아니며, 민주주의 국가도 아닐 뿐 더러 공화국을 자칭하는 것도 터무니없습니다. 공화국에 대해서는 로마 시대에 키케로가 최초로 “공공의 것(res publica)” 또는 “우리 모두의 것(res populi)”이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북한 현실을 보면 국가 성립 초창기에도 그랬거니와, 특히 수령유일체계를 주체사회주의의 바이블로 선포한 70년대 초 ‘유일사상체계확립 10대 원칙’ 성립 이후에는 단연 ‘수령의, 수령에 의한, 수령을 위한 나라’입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동일성 원칙’이 현실에서는 처절하게 배반된 채 모든 인민이 수령의 노예가 되어있지요. 말씀을 듣고 보니 예전에 운동권의 필독서로 여겨졌던 정경모 선생의 <찢겨진 산하>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그 책에 북한체제야말로 루소적인 의미에서의 일반의지를 구현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는 주장이 나옵니다. 수령이 인민의 일반의지를 육화한 존재이므로 수령 무오류설이 도출되는 것이지요. 북한체제가 루소의 일반의지 이념을 악용하고 오도한 역사상 최악의 사례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정경모 선생의 논법은 나이브하기 짝이 없는 주장입니다.
 이제 오늘 대담의 본론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로 들어가 보지요. 박 교수께서는 우리 헌법에 대해 심도 깊은 연구를 하면서, 임시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헌법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공화국 내지 공화정 이념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연구결과에 입각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확인했지요. 그럼 한국현대사의 현실과 이념에서 부족한 부분이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민주-공화 사이의 긴장관계가 대한민국 발전의 요체”

  박명림 = 역사적으로 볼 때 대한민국은 한말 이래 대한제국 시기나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공화, 공화국, 공화주의, 공화헌법의 관념과 제도를 조금씩 발전시켜온 토대 위에 건국되었습니다. 저는 이점을 거시적인 공화주의 혁명(republican revolution)이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수립은 출발인 동시에 귀결이었지요. 그런데 민주공화국에서, 공화는 조화로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려는 가치의 지향이라면 민주는 다양하고 개별적인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민주와 공화 사이에는 늘 긴장이 존재합니다. 이런 두 가치 사이의 내면적 현실적 긴장과 갈등이 오늘날 대한민국 발전의 요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민주공화국 헌법과 제도를 갖는 국가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의 주권재민, 권력분립, 법치 원리나 공화주의 의식은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윤평중 =저는 마키아벨리적 관점에 따라 한국현대사를 재조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마키아벨리는 명저 <로마사 논고>에서 갈등하는 사회세력들 간의  경쟁과 긴장이 활력 있는 공화주의에 봉사한다고 말합니다. 그 갈등을 국가발전에 선용(善用)하지 못한 피렌체공화국은 실패했지만, 갈등을 사회발전의 동력으로 삼은 로마공화정은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한국의 이승만, 박정희 모두 현대의 군주였습니다.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이었죠. 하지만 한국 현대사는 북한에 비해 잘 진화해왔습니다. 한국의 경우 권위주의 시절에조차 시민사회 세력과 집권기득권 세력 사이의 갈등이 정치공동체 진화의 동력으로 이어진 데 비해 북한은 그런 내부 분화의 여지를 원천적으로 질식시킴으로써 국가실패의 길을 치닫게 됩니다. 통일 한반도, 미래 한반도에서 실현되어야할 정체(政體)의 모습에 대해 얘기해 보기로 하지요.
박명림=저는 진보나 보수의 편협한 일원주의적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현대한국의 특성을 밝히려 지금 한글과 영문으로 동시에 집필하고 있는 책의 잠정 제목이 “갈협의 예술(art of conflomise)”입니다. 갈협(conflomise)이라는 말은 갈등(conflict)과 타협(compromise)의 합성어인데, 현대 한국의 발전과 한계의 핵심 요체를 두 개념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마키아벨리, 막스 베버, 제임스 매디슨, 게오르그 짐멜 등 대학자들이 건설적인 갈등과 파괴적인 갈등을 구분하는데 공동체 전체를 위한 갈등이 좋은 갈등이라는 것입니다. 그건 사익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한 갈등입니다. 둘은 타협이라는 지점으로 언젠가는 합쳐집니다. 한국사회는 서로 어우릴 것 같지 않은 세 층위, 즉 “높은 동질성”, “심각한 갈등”, “빠른 발전”이 어우러진, 세계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공동체입니다.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 갈등이 점점 더 재벌독점체제로 인한 사익 중심으로 귀결되고 있어 공화와 민주의 가치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회해체를 방지하고 공동체 붕괴를 막기에는 벅찬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통일 문제의 경우 저는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중시합니다. 자유나 평등, 인권이나 복지, 민주주의와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향한 남북한 내부의 변화와 그 연장으로서의 통일, 그리고 통일 이후의 체제를 상정하는 것입니다. 급변적 통일보다는 평화를 우선하는 것이지요. 가치나 제도를 넘는, 남북한 권력의 즉각적인 수렴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남북한이 가능한 한 보편적 가치를 향해 평화적으로 나아가는가가 통일문제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윤평중 = 통일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는 우리가 아직 준비가 부족합니다. 게다가 새누리당과 통합민주당을 포함한 보수와 진보 정치세력들 가운데 어느 쪽의 지향과 정책, 그리고 구체적 정치실천이 공화정과 통일의 목표에 더 친화적인 지 판단하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대기업집단과 수구에 가까운 정치세력들의 연합을 위한 배타적 이해관계에 골몰하면서 결정적 민심이반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또 복지-분배 패러다임이 2012년의 시대정신으로 떠오르고 있지요. 이처럼 우여곡절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대한민국은 일보 후퇴하고 이보 전진해가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남북 경쟁도 단기간의 북한 급변론보다 평화 정착이 급선무라는 박교수님의 주장에 대해 공감합니다. 결국 민주공화정의 핵심인 평균적 시민의 자기 결정 능력의 잣대로 볼 때도 대한민국이 훨씬 의젓하고 우월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북한을 이끌어 인류 보편의 가치로 전진해가는 과정이 바로 통일일 것입니다. 민감한 이슈이긴 한데, 박 교수님은 최근 교과서 논쟁에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와 자유민주주의는 상이하다.” 라고 문제제기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적 근거는 무엇이고, 헌법조항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와 자유민주주의가 어떤 점에서 다르다고 보는지 말씀해주시지요.

“소유권과 인권,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박명림=우선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는 독일에서 49년 헌법에 집어넣을 때 방어적 민주주의 개념이었습니다. 좌우독재, 즉 공산주의와 나치즘으로부터 어떻게 민주주의를 방어할 것이냐가 최우선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에서는 우파 독재, 즉 유신체제가 등장할 때 이 내용이 들어갔습니다. 저는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왜곡된 내용으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삽입한 것을 비판했던 것입니다. 유신헌법은 1948년 건국헌법이 자유와 평등, 권력분립, 민주주의 헌법으로 출발했던 것조차 부정하였던 것입니다.
 현재의 한국헌법과 체제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현재 한국사회의 자유민주주의 담론을 비판한 이유는, 자유민주주의의 기저가치를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장경제의 자유, 즉 소유권은 강조하면서, 왜 개인자유, 즉 인권은 말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분들은 재벌체제로 변모된 시장경제체제는 강조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저는 루즈벨트의 언명처럼, 재벌체제와 시장경제체제를 동일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저는 건국헌법의 요체인 복지체제와 자유·인권담론을 합쳐보자는 생각입니다.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분들은 소유의 자유만 일방적으로 강조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자본주의와 동일시합니다. 그러나 둘은 다른 것입니다. 지금 신자유주의와 재벌체제 시대를 맞아 뉴라이트가 단기적으로 맞는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너무 단견이죠.
 윤평중 = 좋습니다. 학자로서의 통찰이 잘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통상적으로 학문공동체 내부에서도 잘 인식하지 못한 부분을 중요 자료나 문건의 토대위에서 주장하시니 마치 눈 위의 비늘이 떨어지는 듯합니다. 교과서 논쟁과 관련해 저는, 논쟁의 두 당사자가 모두 100% 신뢰를 얻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조항만을 그대로 놔두면 결국 인민민주주의를 정당화하기 때문에 친북적 자세로 귀결된다는 보수의 주장은 어쩌면 냉전 소아병적 피해의식의 소산일지도 모르며,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면 냉전반공주의와 군사독재의 정당화라는 진보의 주장은 자유민주주의의 보편사적 성취와 한국적 성과 자체를 부인하는 이념 외눈박이의 단견(短見)일 수 있습니다. 
 박명림 =맞는 말씀입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의 민주주의 초창기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결합되면서 자유민주주의가 봉건체제를 넘고 독재를 타도하는 데 얼마나 중요했습니까? 4월 혁명이나, 박정희 시절 재야의 주장 역시 결코 반(反)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과 용어를 처음 도입하여 사용한 세력들도 1950년대 <사상계>를 포함한 재야진영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민주주의를 통해서도 북한에 승리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충분히 발전시켜왔던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현재시점에 굳이 자유민주주의로 바꿔야할 필요성을 갖지 못한다고 봅니다. 
윤평중 = 자유민주주의의 진화 양태나 대한민국 헌법 변천과정에서 표출된 자유민주주의의 특징들에 대해서 저는 생각이 약간 다릅니다. 세계사, 특히 근현대사의 진화는 그 두 견인차인 민주질서와 시장질서의 경합적 상호보완관계의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민주질서와 시장질서가 상호 보완하고 비판하면서 생겨나는 생산적 갈등이나 긴장 관계로부터 모더니티의 발전이 가능했습니다. 민주질서가 지향하는 목표에서 중요한 건 박 교수님 말씀처럼 인권입니다. 시장질서가 지향하는 목표지향은 소유권 내지 사유재산권이 될 터인데, 저는 이 둘이 상호 모순이나 적대관계에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인권의 이념이 처음 등장해 근대민주주의가 영국에서 실현된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이라는 사회적 존재의 물적 토대인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 보편적 인권의 싹이 생겨납니다. 결국 소유권과 인권의 이념이란 구체적 역사현실에서 선명하게 둘로 나눠질 수 없다는 게 역사적 교훈이죠. 이런 인식이 최초로 선명하게 집대성된 게 로마법이며, 중세 유럽자치도시들의 번영이 입증하듯 경제적 교환과 상거래의 자유에서 확인된 시민권의 신장이지요. 자유로운 시장활동에서 비롯된 이런 계약과 법치의 이념이야말로 근대 유럽을 세계사의 승자로 등장케 한 동인(動因)이 된 셈입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양쪽의 긴장관계에서 비롯된 현대적 활력이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매력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민주주의는 행복한 공화정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