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의 미래를 말한다

- 굿소사이어티 대담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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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종 교수 소개]
가톨릭대학교 신학부에서 학사, 석사(신학)를 받고, 후에 서울대학교 교육학 석사를 취득한 후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바른사회시민회의와 교과서포럼 공동대표로서 활동하고 있다. 2002년 저서인 『국가와 권위』로 제42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저작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합리적 선택과 공공재 I, II』『 민주주의와 권위』 등이 있다.

[전상인 교수 소개]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로 있으며, 한국미래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파트에 미치다』『우리 시대의 지식인을 말한다』『고개 숙인 수정주의』등의 저서가 있으며, 『국가 처럼 보기』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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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대전 이후 가장 성공한 신데렐라 나라 대한민국에서 전에 없던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88만원 세대”라는 주술에 갇힌 2030세대 젊은이들은 트위터와 같은 SNS 모바일 공간 속에서 연일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의 정치는 철지난 좌우 이념 논쟁 속에서 상대를 손가락질하는 데에만 익숙하다. 잠시 기회를 잡은 기득권 세력과, 여기에서 탈락한 소외세력의 항변과 분노가 뒤섞여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사회적 분노가 지식의 이름으로 거듭 확산되고 있다.

  과연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좋은 공동체로서 진정한 공화국이 되기 위한 비전은 무엇일까? 이번 굿소사이어티 대담은 이명박 정부 말기이자 총선과 대선을 코앞에 둔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 보수를 대표하는 두 학자를 모셨다. 쉽고 깊이 있는 그들의 대화는 이미 보수 우파의 선을 뛰어 넘었다. 삶의 리얼리즘을 관통하는 헌법 정신과 역사의 균형 감각을 재확인하였다. 조금 아카데믹한 게 사실이지만, 정치학과 사회학의 눈으로 바라보는 공화주의 정신은 ‘대한민국의 내일’을 가늠해보는 데 소중한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주>

  박효종 교수(이하 박효종)=오늘 대담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말한다”는 주제를 가지고, 네 가지 범주로 나누어 진행하고자 합니다. 먼저 정치 현실, 사회 현실의 문제부터 짚어보겠습니다. 하나의 공동체가 운용되는 모습을 보면, 이분법으로 나누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상식, 진실, 순리와 같은 것들이 주요 담론이 되고 그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소수의 입장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후자를 존 스튜어트 밀은 악마의 대변자(devil's advocate)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보면 과연 정론의 사회인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소위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소통이 광속도로 이루어지는 SNS 시대가 되면서, 사회정치적 이슈가 나올 때마다 진실 게임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실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듣고 귀에 솔깃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 보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발전을 이룩한 우리 사회가 2500년 전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을 닮은 신소피스트적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전상인 교수(이하 전상인)=박 교수님 말씀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저는 좀 더 큰 틀에서 냉철하게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박 교수님 말씀대로 진리, 상식, 순리 이런 것들이 다 깨지고 있는 것 같지만, 단순히 “소피스트다. 이단이다.” 라고만 얘기하면 대립이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문명사적 차원에서 범세계적으로 이 문제를 크게 이해한다면, “올 것이 오고 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른바 ‘권력의 재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개별 국가나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세계화는 현재 불행하게도 양극화를 동반하고 있습니다. 1:99는 좀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어쨌든 99%에 속한다고 믿는 보통 사람들은 “1%는 잘 살고 있는데, 나는 낙오자다. 피해자다.” 라고 생각하면서 화가 나 있습니다. 이른바 앵그리 사회(angry society)가 된 것입니다. 타임(TIME)지가 2011년 올해의 인물로 시위자(the protester)를 선정한 것도 우연의 일치는 아니겠지요. 오늘날 개인은 비록 현명하지는 않더라도 스마트폰등으로 똑똑하고 영리해졌습니다. 게다가 만물의 척도가 옳고 그름, 선과 악이 아니라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자들의 무기(weapon of the weak)인 단결의 방법으로 뭉치고 있습니다. 돈과 권력, 지식과 정보가 가진 자들의 권력자본이라면, 연대는 약자들의 권력수단이죠. 특히 정당이나 노조와 같이 설립비용과 유지비용이 많이 드는 방식에서 돈이 별로 안 드는 네트워크 방식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막스 베버가 권력의 집은 정당이라고 했다면, 요즘 권력의 집은 스마트폰에 있는 셈이지요. 좋든 싫든 정당과 국가 중심의 제도권 권력으로부터 모바일 중심의 게릴라식 디지털 권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게릴라식 디지털 권력에 권위는 있는가

  박효종=전 교수님 말씀처럼 저도 권력의 이동 현상에 공감을 하면서도, 우리가 공동체를 살아가면서 좋은 삶이 무엇인지 평가하려면 권력, 즉 힘(power)의 요소 외에 ‘권위’의 문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권위’는 ‘권력’과는 상이한 현상으로 굉장히 가치평가적인 개념입니다. 권위는 영어로 ‘오소리티(authority)’인데, 어원적으로 말하면, 저자(author)와 같은 어원을 갖는 라틴어의 ‘아욱토르(auctor)’에서 비롯된 ‘아욱토리타스(auctoritas)’로서 고대 로마인들은 ‘원천’, ‘기원’의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즉 권위는 거부할 수 없는 충고와도 같은 것입니다. 권력이 어디로 이동하든지간에, 도덕적인 근거를 주고 있는 ‘권위’는 꼭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평등하고 민주화된 사회라 하더라도, 이성적인 지시와 명령을 내리고 거기에 순응하며 받아들이는 설득의 권위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죠.

  예를 들어 부모의 권위나 교회의 권위, 국가적으로는 국가의 권위, 판사의 권위, 국회의 권위 등 이런 것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보면 권위의 해체 현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 2030 세대는 권위주의적인 부모를 싫어합니다. 친구 같은 부모를 좋아하죠. 좋습니다. 하지만 친구처럼 살다가도, 어떤 것은 안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모의 권위는 있나요. 교회의 권위, 성직자의 권위는 어떻습니까. 성과 속을 함부로 뒤섞어 시위자의 입장, 자신들의 분노를 표현하는 성직자가 있다 보니, 신자들이 성직자의 이야기를 권위 있게 듣는 문화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부러진 화살과 같은 영화 한 편을 가지고 이야기 할 것은 아니지만, 그 영화 한 편 때문에 사법부의 권위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사법부의 권위가 무너졌기 때문에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을 겁니다. 판사가 정말 정의의 여신처럼 눈을 가리고 했는가. 그 칼을 제대로 쓰고 있는가. 저울을 제대로 달고 있는가. 나꼼수 현상이건 아니건, 사회 곳곳이 불신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 어느 때보다도 편리해졌는데도 이렇게 힘든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 말이기 때문에 듣는다.” 라는 개념이 없고, 전교수님 말씀처럼 내가 즐거워지거나 기분이 좋아져야지, 내 감성이 내키지 않으면 판사의 말이든 국회의원의 말이든 수긍할 수 없다고 합니다.

  권위와 권위주의는 구분해야죠. 권위주의적 방식으로는 해법이 나올 수 없습니다. 안철수 교수가 청춘콘서트로 인기를 얻은 이유도 ‘꼰대스러운’ 접근보다는 열린 권위를 가진 상담자로서 쌍방향 소통을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다음으로는 오늘 대담의 두 번째 범주인 보수와 진보의 문제, 즉 이념 갈등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먼저 보수 우파라고 하면, 어떤 원칙이 있는 지부터 말씀해 주시죠.   
 
  전상인=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제가 강조하고 싶은 보수적 가치는 두 가지, 가족과 교육입니다. 지금 어느 정당도 가족은 얘기 안하고 복지 얘기만 하고 있습니다. 복지도 좋지만, 복지가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 중 하나가 가족 영역의 약화입니다. 복지를 내세우면서도 가족의 가치를 꾸준히 얘기해야 합니다. 교육도 지난 3-40년간 압축성장하다보니 후배 세대들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나가면 잘 따라와 주려니 했는데, 역사 교육, 국어 교육 모두 엉망입니다.

  또한 좀 엉뚱할 수도 있겠지만, 국가 기구 차원에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지금은 권력의 재구성 시대이지만, 보수적 관점에서 볼 때 모바일 권력으로의 이전보다는 현행 헌법 질서 내에서 권력 이동과 진화를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급속도로 권력이 재편되는 시기에 질서 있는 예측가능한 변화로 갈 필요가 있고, 그런 면에서 권력의 생성 과정을 최종적으로 관할하는 선관위가 보다 적극적으로 절차에 개입해서 판단을 해주어야 합니다. 지난번 서울시장 선거처럼 사후약방문 식으로 ‘관리’만 할 것이 아니라, 명칭부터 ‘관리’를 빼고 ‘선거위원회’로 격상시켜 민의가 왜곡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유인으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말할 때”

  박효종=저도 보수의 원칙이 무엇일까 생각할 때, 전 교수님 말씀처럼 보수의 원칙이 진화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전 교수님의 좋은 말씀에 추가한다면, ‘자유’라는 것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좌파 진보 쪽에서는 평등이라는 가치를 굉장히 강하게 얘기합니다. 복지라는 것도 평등에서 나온 개념 아니겠습니까. 자유주의와 같이 이즘(ism)을 붙이면 상대적인 측면을 띱니다. 우파 보수주의자들이 좌파 진보주의자들과 분별될 수 있는 자유라는 가치의 진가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호소한 적이 있습니까. 6.25 전쟁 외에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공화주의자들이 얘기해왔듯이 자유의 정통적인 개념은 노예처럼 무릎 꿇고 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자유의 개념을 자꾸 얘기해야 하는 이유는 북한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권위주의나 독재의 방향으로 흘러갔던 시기가 있었지만, 북한처럼 사적 영역까지 패쇄해버리는 전체주의적 삶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이러한 자유는 자립이라는 개념과 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 교수님이 복지가 가족을 해체시키는 부작용이 있다고 하셨는데, 복지는 자립정신에 마이너스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적어도 보수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국의 대처나 미국의 레이건 등이 말한 얘기와 통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법치(法治)가 있습니다. 전 교수님이 질서라고 말씀하셨지만, 법에 대한 존엄성이죠. 과거 왕이 자기만 빼고 모두 지키라고 하면서 우스꽝스러웠지만, 스크라테스가 그랬던 것처럼 보수가 몸을 사르는 한이 있더라도 살려야 하는 것이 법입니다. 권력을 잡고 나면 법치가 아니라 인치로 가는 현실 때문에 우리 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밖에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라고 하는 것, 즉 애국심 정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보혁 갈등을 가장 을씨년스럽고 품위 없게 만드는 부분은 국가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이 부분이 서구 사회와 우리 사회를 비교할 때 보혁간 담론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지점입니다. 무릇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라고 하면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와 같이 가치관이나 정책에서만 나타나야 하는데, 우리는 국가의 시작이나 건국의 아버지와 같은 개념들에 대해서는 보수와 진보가 같이 출발하고 있지 못하는 저질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바람직한 관계란 무엇일까요. 

 

  전상인=언제부터인가 진보좌파가 보수우파와 맞짱 뜨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언필칭 사회통합이라는 담론의 유행 속에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하지만, 저는 새가 오른쪽으로 날 수도 있고 왼쪽으로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유시민 씨가 “과거에 민주노동당이 주장했던 정책을 한나라당, 지금의 새누리당이 내세운다.” 라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18대 국회를 보거나 최근의 새누리당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보수가 보수의 맛을 잃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저나 박 교수님이 언급하신 보수의 원칙을 지키면서 정책 대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복지 정책을 내가 하느냐 네가 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방향이 같다보니 정당간의 권력 대결만 있습니다. 제가 박근혜 대표라면 경쟁 정당을 따라할 것이 아니라, 원래 복지의 역사적 기원이 그러했듯이, 옛날 박정희 대통령이 얘기했던 복지에서 정책의 기원을 살려야 합니다. 최근 박근혜 위원장이 6.15 선언을 버리고 10.4 남북공동합의서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소위 남북관계의 마그나카르타로 인정받고 있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로부터 보수의 계보랄까 정체성을 풀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요. 잘못된 시대정신 속에서 보수의 가치, 보수의 지향이 그 맛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효종=저도 전 교수님의 지적에 공감합니다. 음식으로 비유하면 비빔밥을 만들고 있는 셈인데, 이런 식으로 간다면 보수의 정체성을 찾기 힘들다고 봅니다. 보수와 진보의 바람직한 관계는 구동존이(求同存異)면 충분합니다. 즉 대한민국의 정체성, 자유민주주의, 시장 경제, 인권 등 같은 것은 같게, 하지만 다른 것은 다르게 하면서 얼마든지 평화롭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른바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라고 하는데요. 지금의 새누리당은 짬뽕을 만드는 것 같아요. 표만 많이 얻자(vote maximization)는 것이지요.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전 교수님 말씀대로 노골적인 권력싸움만 있게 됩니다. 비대위의 김종인 위원이 보수라는 표현을 삭제하자고 했다는데, 보수가 변한다거나 진화한다는 것과 보수를 뺀다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지요. 자기 색깔, 자기 정체성 다 빼고 나면 중도가 됩니까. 중도라는 것이 신기루와 같아서 중도를 향해 질주하다보면 결국 똑같아지고 맙니다. 이것은 유권자 국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어떻게 닮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색깔을 가지고 경쟁하면서 어떻게 고민을 풀어갈 것인지가 중요하지요.  

 

  전상인=총선과 대선에서 지금처럼 야당과 별 차이가 없는 정당정책으로 새누리당이 집권한다면 어짜피 좌파진보적인 정책을 할 것이고, 만약 진다면 다음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더 좌클릭 할 것 아닙니까. 오히려 죽기살기로 보수의 가치를 더 선양하는 것이 훗날을 기약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의 중도와 마찬가지로, 자유민주주의 논쟁 역시 좌파진보쪽의 전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논쟁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도 노이즈 마케팅 효과처럼 괜히 자유민주주의가 대립되고 논쟁되어 왔던 것처럼 국민들에게 비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논리의 대립 구도를 보면 학문적 논쟁이라기보다 오히려 밥그릇싸움의 성격이 강합니다. 대한민국의 과거에 대한 역사 평가에 있어서 분열이 심각한 진짜 이유이기도 하죠. 4.19나 광주민주화운동 등 역사적 모멘트마다 해당 단체들에 의해 모두 이권화 되어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박 교수님 말씀처럼 대한민국의 정체성, 대한민국의 성취, 근현대사에 대해 최소한의 동의 없이 근본적으로 태어나서는 안될 나라라고 말하든가 자기 나라의 경찰을 개패듯이 패는 사람들은 통합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통합민주당을 보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사진만 걸려 있는데,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사진을 걸어놓을 수 있는 베짱이나 기백이 아쉽습니다.

“진정한 보수라면 꼼수와 같은 승리보다 명예로운 패배를”

  박효종=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하지만 사실 날개 이상으로 머리는 하나입니다. 보수가 좀 지면 어떻습니까. 지더라도 로마 공화정에서처럼 명예롭게 패배해야죠. 영혼을 팔아서라도 이겨야한다는 것은 꼼수와 같은 승리입니다. 그러면 보수에게 기득권만 있다는 비판을 듣게 됩니다.

  자유민주주의 논쟁도 그렇습니다. 제가 볼 때 민주주의는 여행용 가방과 같습니다. 북한의 인민민주주의까지도 다 들어갑니다. 단순한 자유주의의 자유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지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고 살 수 없다는 ‘자유’를 빼고 민주주의를 얘기할 수 있나요. 그래서 관용을 하지 않겠다는 히틀러와 같은 나찌즘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국가보안법도 방어적 차원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된 것이죠.
  대한민국이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에서 ‘유일한’을 빼야한다며 일부 역사교육학자가 사표를 내기도 했습니다. 합법성이란 단순히 주권이나 영토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권자들의 ‘자유로운’ 의사표시 여부가 중요한 것이죠. 그런 점에서 북한은 지금도 합법성이 없습니다. 

  좌파진보 진영의 주장처럼 친일파 청산을 완벽하게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일제 35년간 살아오면서 유명했던 사람들을 전부 친일파로 모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 열기가 가장 높았던 때에도 민족운동가를 처벌했던 악질적 사람들 700여명을 넘지 않았습니다. 2010년 4776명의 친일인명사전을 보면, 박정희 대통령, 애국가의 안익태 선생, 백선엽 장군 등 대한민국을 세우고 지키는 데 큰 공이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친일파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극일을 한 나라입니다. 친일파 청산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역사를 보는 시각은 좌우의 문제를 떠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을 보더라도 건국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잘못되었다고 문제를 삼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공동체 정신이 정말 약화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보수진보 문제는 이 정도로 하고, 세 번째 이야기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로 가겠습니다. 임기 4년을 마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과연 보수인가에 대해서는 저도 의문이 많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공과(功過)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전상인=자원 외교나 경제위기 극복, 대북정책의 일관성 등에서 공(功)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대북관계에 진전이 없었다고 하는데 그러한 책임을 이명박 정부가 다 져야하는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도 햇볕정책의 맹목적 반대자는 아니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본인의 사욕 과잉이랄까 북한의 버릇을 잘못들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기가 없었던 4대강 사업의 평가도 저는 좀 다릅니다. 민주화 이후 길이나 도로는 많이 닦았습니다. 눈에 보이니까 표 얻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강 밑바닥을 아무리 정비해도 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자체가 강 정비 사업을 못합니다. 최종 평가는 따라서 지켜볼 대목입니다.

  문제는 인사(人事)입니다. 정치는 정책 이상인데, 일만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요. 또한 많은 분들이 소통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불통(不通)정부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안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개인 스타일이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 않을까요. 특히 촛불 정국 이후로 헤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즉 어느 날 죄를 뒤집어 쓴 셈이지요. 귀를 닫고 있는 야당이나 일부 시민단체 또는 시민 사회도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통의 문제는 쌍방의 문제이니까요.

 

  박효종=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전 교수님 말씀처럼 시대정신이 변했습니다. 과거에는 밀실에서 결정한 후 관료주의적 방식으로 밀고 나가면 되었지만, 이제는 투명한 권력을 원하는 모바일 시대입니다. 권력의 정당성은 투표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평가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정부가 일중독에 걸렸을 정도로 일을 많이 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국가에 관해 중대한 쟁점이 생겼을 때마다 대통령은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가령 한미 FTA에 대해서 의회에서 비준이 되었음에도 민주통합당이 재협상이나 폐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침묵을 지키고 있고, 말이 없습니다. 월요일 라디오 연설이 고작입니다. 쇠고기 문제가 나왔을 때에도 청와대 뒷산에 올라갈 것이 아니라 계란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비록 졸속이긴 했지만 나라를 위해서 했다고 했어야지, 3개월 이상 문제가 지속되었음에도 자신의 입장 표명조차 하지 못한 것은 실로 유감입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어떻게 광우병에 걸립니까. 명백한 사실을 가지고도 얘기를 못합니다.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공권력이 얻어맞는데도 가만히 있습니다. 오바마나 서구의 대통령을 보더라도 ‘소통’은 대통령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책무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담대한 웅변은커녕 기자회견 한번 안합니다. 5년 단임인데 누구 눈치볼 것도 없지 않습니까. 대통령은 국가인이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서 국익을 위해서 부국강병, 국리민복을 위해서 내 한 몸 바치겠다고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아쉬운 점이고, 저는 잘못이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공화주의 정신에 대해서 논의했으면 합니다. 공화주의 하면 일반인들은 낯선 개념 같지만, 사실 헌법 1조를 보면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올바른 정치 공동체와 성숙한 시민사회를 향한 공화주의 정신이 무엇인지 논의해보고자 합니다. 이번에는 평소 공화주의적 가치를 삶 속에서 실천해오신 이사장님께서도 한 말씀 해주시지요.  

“법치와 신뢰에 대한민국의 내일이 달려 있다”

  김인섭 이사장=전교수님이 말씀하신대로 교육의 가치는 모든 가치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이 큰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가 군주전제정에서 민주정으로,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통적인 민족 사회에서 다원화된 고도 문명사회로 진입하면서, 소셜 메카니즘의 일대 지각변동이 있었습니다. 원래 이러한 사회변동은 국민의 가치관과 이념의 변화가 일어나고 나서 변화된 가치관에 의하여 이끌려가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에는 국민의 의식과 가치관은 종전의 전통사회의 것으로 남아 있는데 외풍(外風)에 의하여 제도부터 바뀌게 되었던 것입니다. 건국 당시 절대 다수의 국민은 민주주의 제도나 민주시민의식이 체득이 안 된 상태에서 민주주의 헌법부터 도입되었던 것입니다. 자유와 평등을 포함하는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는 동시에 자기 선택의 결과에 대하여는 자기가 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라는 민주 시민 교육을 시키지도 않았고, 시킬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테러와 전쟁으로 인하여 극도로 혼란하고 위험한 상태에서 간신히 나라를 이끌어가느라고 경황이 없었고, 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소위 대물려온 한 맺힌 가난으로부터 벗어나 ‘우리도 잘 살아보자.’ 라는 구호 하에 모든 국력을 경제 건설에 우선적으로 투입하고 다른 국가적 가치는 후순위로 밀어낸 한국적 민주주의를 하느라 지금 우리가 말하는 시민 의식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지 못했습니다.

  1987년 이후의 민주화된 정부에서는 과거에는 경황이 없어 미처 하지 못했던 민주시민의식 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하면서 법치주의 정착을 주도해나갔어야 했는데 소위 민주화 세력이라고 불리운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조차도 절체절명의 이 기회를 놓치고 오히려 법치를 더 후퇴시키고 말았습니다. 더욱이 권위주의를 타파한다는 명분하에 적법한 권위마저 훼손하여 더욱 사회 혼란을 가중시킴으로써 우리 헌정사에 천추의 한을 남겼습니다. 과거 항일 투쟁시절이나 군사독재 시절에는 독재 정권에 저항하느라고 법을 안 지키는 것이 애국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모두가 솔선수범하여 법부터 지켜야 애국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계몽했어야 했습니다. 법치라는 공화주의적 인프라가 기본적으로 굳건히 서있을 때, 개인이 자유와 민주의 이름으로 지속가능한 행복추구권을 향유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건강한 사회공동체의 핵심 가치인 이러한 공화주의적 가치를 가르쳐야 하는데, 아직도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은 자기영달을 위한 출세 지향적 시험 위주로 가고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최소한의 공화주의적 토대로서 법치는 물론이고, 나라의 장래를 앞장서서 짊어지고 나갈 엘리트에게 요구되는 이상적인 공화주의적 가치로써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은 아직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물론 개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지 개인이 국가를 위해 인생을 희생해야 하는 시대는 아닙니다만, 국가 공동체가 무너지면 지속 가능한 개인의 행복은 도저히 보장될 수가 없습니다.    사익(private interest)과 공익(public interest)의 한계를 규정해 놓은 것이 법이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민주시민의 최소한도의 의무이자 애국의 길이라는 것쯤은 모든 국민의 의식에 자리잡혀 있어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답게 만드는 ‘협동’을 실천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이러한 민주시민의 의식교육을 어릴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가르쳐 가치관으로 체득하여 지니고 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전상인=저도 공화주의 정신과 관련해서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법치입니다. 사회자본으로서 법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법을 지켰을 때 이익이 나에게 돌아온다는 예측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는 교육입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힘은 어른이 애들을 가르치는 교육에 있었다는 김 이사장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교육의 본질은 가르치는 것, 즉 탑다운(top down)인데, 언제부터인가 교육의 주체와 객체가 뒤집혀졌습니다. 대학진학률이 80%를 넘고 사교육 시장이 교육을 총매진하는데도, 우리 국민의 인격적 성숙, 인성의 질은 매우 낮은 편입니다. 인격, 민격, 국격은 기본적으로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는 민도를 직업의 문제로 보기도 합니다. 현재 50% 정도인 고도 서비스업의 비중을 선진국 수준인 70%까지 늘리는 것도 시민들의 인격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통한 선순환 구조의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평등하면 재미가 없고 발전도 없습니다. 다만 그 불공평을 수용할 만한가 즉 공정의 여부가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배계급인 리더의 처신이 중요합니다. 서구사회의 리더나 엘리트는 부단히 베풉니다. 그리고 그러한 베풂에 사회는 감사하고 고마워합니다. 그래서 신이 나서 더 베풉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베풀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빼앗깁니다. 그래서 기분이 나쁩니다. 어쩌다 베풀면 도움 받은 사람들이 별로 고마워하지 않습니다. 악순환 구조입니다. 우리나라 재벌과 같은 대기업들은 자발적으로 기분 좋게 베풀어야합니다. 다른 나라 대기업과는 달리 국가 주도의 성장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박효종=공화국은 일찍이 로마의 키케로가 지적한 대로 ‘res publica'입니다. 즉, 나라는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으로 국민전체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공화주의라고 얘기할 때는 자기보다는 공동체를 위주로 생각할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재화에는 내 것도 아니고 네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공공재(public good)가 있습니다. 세금, 국방, 환경 같은 것이죠. 지금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화되면서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 부족합니다. 말하자면 복지와 같이 내가 공동체로부터 무엇을 받을 수 있느냐는 많이 요구하는데, 법치나 애국처럼 내가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너무 부족합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70%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후회합니다. 부모 세대는 잘 살았는데 나만 힘들다는 앵그리 사회(angry society)입니다. 선진화니 국격이니 이런 목소리는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내 스펙만이 중요한 거죠. 공화주의에서는 의무를 얘기하는데, 노블리스 오블리주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불어로 시트와엥 오블리주(citoyen oblige), 즉 민주 사회에서는 일반 시민들도 공화주의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시민들이 정직해야 하고, 법도 지켜야 하며, 불편한 진실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학생들은 컨닝하면서 사회 지도층에 대해서는 욕을 하거나 음식점에서 파는 음식을 믿고 사먹지 못하면, 공화주의 사회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시민들부터 정직이 무엇인지 진실이 무엇인지 상식이 무엇인지 얘기할 수 있어야지, 즐거운 것만 찾으려면 개콘만 보면 됩니다. 옛날처럼 나라가 해주는 대로 기다리는 수동적 시민이 아니라 시민들의 투표에 의해서 대표자가 선출되고 있습니다. 니법이니 내법이니 하면서 법을 저급화시킬 것이 아니라 자기헌신과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이 넘쳐나는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대담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