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경수 명지대교수, 국제정치학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좋은 일에는 궂은 일이 따르게 마련이라는 우리네 속담처럼 건국이래 국내에서 열리는 최대 규모의 국제행사라고 알려진 서울핵안보정상회의를 코앞에 두고 40여개 시민단체와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4개 야당이 대규모 반대시위를 벌이기 위해 조직(‘핵안보정상회의 대항행동’) 결성했다는 소식이다. 특히, 3월 19일부터 회의가 끝나는 27일까지는 ‘집중행동’기간으로 설정, 기자회견, 국제포럼, 항의집회 등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기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잔치상에 재 뿌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인데 하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렇게 반대의 이유와 명분이 뚜렷하다면 2년 전 워싱턴에서 서울정상회의가 열리기로 결정된 직후 했어야 했다.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온 서울의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개최를 한 달여 앞두고 이제 와서 회의개최 반대의 총공세를 편다는 것은 4월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공세의 일환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고 본다.

  또 다른 유감은 금번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가 야권과 재야 시민단체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원자력(핵)발전소 더 짓겠다는 회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회의는 익히 알려진 대로 핵테러 대응을 위한 국제협력, 핵물질의 불법거래 방지, 핵물질과 원자력 발전소 등 핵관련 시설의 방호방안이 주로 논의 되는 장(場)이다.

  ‘핵없는 세상’을 반대의 논리로 내세우면서 두 차례나 핵실험을 하고 2002년 이래 핵무기의 원료가 될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HEU)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이밖에 국가 대사를 앞두고 ‘책임정치’의 구현을 언필칭 강조하는 제1야당이 함께 참여하여 대규모 반대시위를 벌인다는 것은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한 우리나라의 국격에도 걸맞지 않는 행동이다. 혹여 군소 시민단체가 회의의 성격 자체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반대시위라면 몰라도 민주통합당이 여기에 참여하는 것은 ‘책임야당’을 자처하는 정당의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

   2010년 서울에서 개최된 G20 주요국 ‘경제정상회의’로 ‘글로벌 코리아’의 서막이 올랐다면 이번 서울핵안보정상회의는 UN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을 포함, 세계 50개 주요국의 정상과 4개 국제기구 수장이 참석하는 미증유의 매머드 국제회의이다. 따라서 정치분야 세계정상회의에서도 그 주역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흥미있는 사실(史實)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미국이 건국이래의 고립주의 외교노선을 버리고 세계 정치, 외교 무대의 주역으로 명실상부하게 등장하게 된 사건이 1921년의 워싱턴군축회의였는바 이는 미국판 ‘글로벌 아메리카’의 한 단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팍스 아메리카나’의 출발은 1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하는 파리평화회의(1919)의 중재역을 자임한 우드로 윌슨 미 대통령의 활약이었으나 당시 자국(워싱턴)에서 직접 중요한 다자 국제회의를 개최한 것은 처음이었다. 따라서 지난번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2010)는 미국이 90여년 만에 다시 매머드급 국제군비통제관련 회의를 개최한 것으로 세계 초강국의 이미지를 재현했다는 상징성을 읽을 수 있다.

  이런 견지에서 한국이 두 번째 핵안보정상회의라는 사상 초유의 국제안보 관련회의를 개최하게 된 것은 미국이 당시 고립주의의 벽을 허문 것처럼 ‘조용한 아침의 나라’(Land of Morning Calm)에서 ‘글로벌 코리아’로 본격 발돋움하는 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