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기업인은 무조건 '나쁜 도둑'이라고?
- '난민촌 대한민국'을 읽는 5가지 코드
③반기업 심리와 富에 대한 적개심
조우석 문화평론가, <나는 보수다>의 저자
[싣는 순서]
①들어가는 말
②지식인의 리버럴 강박증
③반기업 심리와 富에 대한 적개심
④역사 허무주의의 태도
⑤과도한 이념분쟁
⑥우리안의 근본주의 DNA
베스트셀러 <무지개 원리>(위즈앤비즈)의 저자인 차동엽(54) 신부를 최근 만났다. 속 깊은 대화를 그와 나눴다. 가톨릭의 스타 성직자로 꼽히는 그를 만난 이유는 문제작 <잊혀진 질문: 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명진출판)을 펴낸 그의 사람됨과 생각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湖巖) 이병철이 1987년 임종 직전 품었던 삶과 종교에 관한 질문 24가지를 다룬 단행본인데, 그 책 출간 소식을 기사화했던 게 지난 해 말 중앙일보 1면이다. 아파트 현관에 떨어져있는 그 지면을 집으면 들었던 첫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 이런 게 진짜배기 기사야!.”
기억하시는지?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정말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나?” 한국 최고의 부자가 임종 직전 털어놓았던 의문은 그렇게 절박했다. 우리시대 부자의 내면의 목소리라서 더욱 신선했다. 질문 하나 하나가 모두 그러하지만, 23번 째 질문이 현재진행형의 쟁점이다. 이 글의 주제와 직결된, ‘반(反)기업 심리’와 ‘부(富)에 대한 적개심’의 핵심이라는 게 나의 판단이다. “천주교의 어떤 단체는 기업주를 착취자로, 노동자를 착취당하는 자로 단정하는데, 자본주의 체제와 미덕을 부인하는 것인가?” 고인의 이 말을 염두에 두고 차 신부와 필자가 이런 말을 주고 받았다.
스타 성직자 차동엽 신부와의 대화
“실로 만만치 않은 질문입니다. 기업보국(企業報國)에 대한 고인의 자부심이 생각 이상으로 컸구만요. 반면 대기업와 오너를 나쁘게만 보려는 세상 시선에 대한 부담감도 그 못지 않게 많았구요. 확실히 반(反)기업 심리 즉, 정당하게 쌓아올린 부(富)와 기업에까지 적대감을 품는 게 우리사회의 큰 문제입니다. 신부님도 이 책을 쓰면서 그런 걸 의식하셨나요?”(조우석)
“그럼요. 보통 사람, 유명인사의 구분이란 저에겐 의미 없습니다. 제 눈에는 목 마른 영혼만 보입니다. 질문에 답을 하자면, 이 회장의 경우 유교 윤리를 바탕으로 한 기업보국에 대한 신념이 실로 대단하셨던 분이죠.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과 함께 현대사의 거인 아닙니까? ”(차동엽)
“신부님이 순진해서 삼성 홍보맨 역할을 했다는 삐뚜름한 시선도 있을 걸요? 우리 사회 요즘 정서가 그렇다니까요?” (조우석)
“그렇죠? 저도 잘 압니다.”(차동엽)
내 판단으로는 이렇다. 해방 이후 가장 큰 부를 일궈낸 그를 우리는 이병철보다는 돈병철로 불러왔다. 부러움과 질시가 뒤섞인 그 말에는 부정적 뉘앙스가 더 컸다.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대중정서가 그랬다. 현대적 의미의 기업인 1호 격인 호암을 매도하는 이는 실로 부지기수이다. 경제학자라는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가 쓴 기록 <호암 자전>을 엄밀하게 읽었고, 한국경제 발전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려하는 나로서는 대기업과 재벌 때리기에는 마냥 동조할 순 없다. 냉정하게 말하자. 호암을 포함한 대기업과 재벌의 오너란 공칠과삼(功七過三), 그 이상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지금이다. 상황은 더 나빠진 건 아닐까? 이건희의 삼성은 글로벌 기업으로 더욱 커졌다. 하지만 해외에서 받는 찬사는 국내에 들어오면 바로 묻혀 버린다. 변호사 김용철 사건과, 여기에 동조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핏발 선 눈빛 등을 떠올려보라. 엉거주춤한 현 정부도 공정사회를 내세우며 재벌을 때리기에 동조한다. 대통령 산하 동반성장위원회를 그래서 만들었다. 한국인의 일상과 정서에는 그렇게 반기업 심리가 배어있다. 아니 거의 생리이자 체질로 자리 잡았다. 얼마 전 전 국무총리 정운찬은 한 신문 인터뷰 제목이 이랬다.
“이건희 회장은 세상변화 몰라…우리 사회 재벌장학생 너무 많아.”(조선일보 1월31일 29면) 명색이 국립대 총장을 지낸 경제학자가 정운찬인데, 그런 그게 할 소리일까? 이 칼럼 시리즈는‘난민촌 대한민국을 읽는 5가지 코드’인데, 우리는 그만큼 총체적으로 어지럽다. 난민촌이란 표현은 과한 게 아니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공동체이고 공화국이라면 어떤‘큰 그림’에 대한 동의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인데, 상황은 실로 정반대이다. 그런 한국사회를 관류하는 핵심코드이자 파괴적 에너지가 반(反)기업 심리라는 게 내 판단이다.
Mr.포스코 박태준과 <태백산맥>의 조정래
주류와 엘리트층 그리고 언론-기업-정치의 기성체제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려는 평등주의 정서가 너무 막강하다. 이런 부정적이고 소모적인 힘이 어떤 급박한 계기를 만나 폭발할 경우도 가상할 수 있다. 이때 난민촌 한국사회는 비극적인 해체도 불가피한데, 그 잠재적 인화(引火)요소가 반기업 심리이요, 부에 대한 적대감이다. 그런 정서는 국내의 간판 작가라는 <태백산맥>의 조정래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그가 얼마 전 쓴 장편소설 <허수아비춤>이 바로 그러하다.
그에게 “기업은 야만의 존재이고, 기업가는 영혼이 없는 동물”이다. 그런 짧은 인식이 과연 사회정의를 염두에 둔 것이고, 소망스러운 경제민주화일까? 유감이지만 조정래 식의 조악한 반기업 심리를 대한민국 젊은이 10명에 8~9명이 공유한다. 여기에서 개인적 의구심 하나. 조정래는 포스코를 일군 고(故) 박태준과 우정을 함께 했다고 들었는데, 내가 아는 조정래는 대기업과 현대사에 대한 균형 잡힌 인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실은 안쓰럽기조차한 위인이다. 그렇다면 둘 사이에 진정한 우정이 존재했을까? 나는 그게 좀 의심스럽지만, 대기업이나 재벌 오너 자체도 문제가 있다. 아니 문제가 많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대한민국 안에 숨어사는 유령의 존재이고, 거의 익명으로 산다. 진정한 친구도 별로 없다. 전경련 등을 통한 이익반영의 목소리 말고, 자기 삶과 스타일을 당당하게 밝히는 용기, 일궈낸 부(富) 자랑스럽게 밝히고, 이를 통해 사회에 공헌하려는 이를 별로 보지 못했다. 울며 겨자 먹기 상황에서 억지로 돈을 기부하는 민망함 대신 몸으로, 행동으로 썩 나서는 용기있는 부자도 없어 보인다. 대기업과 재벌 오너란 그래서 뒤가 구린 존재이다. 그런 그들을 나는 이 자리에서 기꺼이 옹호하려 한다. 왜? 모두가 그들을 향해 뭇매를 드니, 나라도 나서서 말리려는 생각이다.
정운찬의 눈엔 내가 대표적인 재벌 장학생으로 비쳐질지도 모른다. 그런 게 뭐 대수이랴? 만일 내가 대권(大權)을 잡을 경우를 가정해보자. 그게 좀 변수일 수 있다.(헌법과 선거법이 규정하는 피선거권을 나는 두루 갖췄다. 주변에 사람도 꽤 있다.)그땐 동반성장위부터 해체시키려 한다. 필요하다면 대신 ‘큰 성장위원회’를 만들 생각이다. 경제학자 좌승희 박사의 말처럼 “흥하는 이웃이 있어야 나도 발전한다”는 생각, 즉 제대로 된 자본주의 발전관부터 심어줄 생각이다. 어떠신지? 대권구도에 영향을 줄 만한 빅 카드가 아닐까? 오해 하실까 두렵다. 너무 무거운 주제를 다룬 칼럼 뒤에 붙여본 나름의 유머이자 농담이었음을 사족처럼 밝혀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