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 선거의 기적 만들 수 있습니다. 마지막 문턱 정치 후진성, 못 넘어설 이유 없습니다."
-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강지원 대표와의 대화
“표를 얻기 위한 거짓말을 하는 후보를 가려내자는 유권자 운동이 매니페스토 아닙니까? 그걸 위해 2006년 5·31 지방선거부터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첫 활동을 했으니 올해로 7년째를 맞습니다. 그동안 대선(2007년)과 총선(2008년)을 거치며 경험도 쌓였고 해서 4·11 총선을 앞두고 획기적 변화를 가져오자는 비장한 각오를 품었습니다. 결과요? 사회 운동하는 사람으로 깊은 자괴감을 느끼는 게 현실입니다. 오죽하면‘매니페스토 7년의 슬픔’이라는 글을 제가 어느 잡지에 썼겠습니까?”
호감을 주는 둥글둥글한 이미지의 강지원(63)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대표의 얼굴에 잠시 그늘이 졌다. 각각 적지(敵地)에 출마해 기대를 모았으나 끝내 동반 낙선한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광주)와 김부겸 민주통합당 후보(대구)가 실패의 상징이다. “두 후보에 대한 능력이나 선호도 때문이 아니라 지역적 교차당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던 겁니다. 오랜 지역주의 타성에 빠져 나온 유권자들이 이제는 정책공약만을 보고 투표할 것으로 믿었는데 우리 활동이 미진했고, 국민들 의지도 아직 부족했던 걸까요?”그럼에도 그는 12월 대선을 계기로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정치적 후진성을 씻을 것이란 자신감을 잊지 않았다.
“대선은 전국 단위의 이슈이고 여야 두 후보의 정책에 초점을 맞추면 되니 매니페스토 운동을 펼치기 딱 좋습니다. 의미도 큽니다. 우린 경제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뤘고, 민주화도 달성한 사회 아닙니까? 이제 유일한 장애물로 남은 게 정치의 후진성입니다. 그걸 넘어서는 게 선거의 기적입니다. 유력한 대선주자들이라면‘저는 조직선거와 돈 선거를 하지 않겠습니다.’, ‘상대방을 욕하는 네거티브 선거를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하기를 우리는 기대합니다. 그게 당락 여부를 떠나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정치가 아닐까요? 실제로 우리는 그런 압박을 병행할 것인데, 그럴 경우 선거의 기적은 결코 불가능한 게 아닙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대표, 푸르메재단 대표, 타고난적성찾기국민실천본부 대표, 자살방지대책위원장…. 강지원(63) 변호사의 사회적 직함은 열 손가락을 넘는다. 굿소사이어티의 이슈레터‘대화와 소통’은 매니페스토운동의 맨 앞줄에 서온 그를 만나 12월 대선에 임하는 자세에서 한국사회에 대한 진단까지 들었다. 참고로 매니페스토운동은 정치적 중립이 기본이다. 그래야 NGO의 생명인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표현은 부드럽고 유머감각도 있지만, 뜻은 더 깊었다. 대담은 이슈레터 편집을 맡은 조우석이 진행했다.
“4·11총선 정책선거 뿌리 내릴 계기로 착각했었다”
-이정현(광주), 김부겸(대구)후보의 동반 낙선이 그렇게 가슴 아픕니까?
“먼저 말씀 드릴 것은 두 후보의 개인적인 능력이나 선호도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영·호남은 새누리당와 민주당이 각각 말뚝만 꽂아도 당선되는 곳으로 통하지 않았던가요? 그런 망국적 지역감정을 벗어나야 하는데, 두 후보의 교차 당선은 매니페스토가 뿌리 내리고, 정책선거를 벌일 수 있는 멋진 신호탄이라고 우리는 봤던 것이죠.”
-그럼 매니페스토의 자체 분석으론 뭐가 미흡했던 겁니까? 총선에 대한 평가는 어떤 것입니까?
“출발은 나쁘지 않았어요. 초기에 논란이 된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 등은 어쨌거나 정책과 이슈에 바탕을 둔 찬반 논쟁 아닙니까? 그러다가 우리 선거풍토의 악습이자 고질인‘바람’이 등장했고, 그 앞에 모든 게 와르르 무너진 겁니다. 사찰 풍(風), 막말 풍 두 개가 정책 선거 분위기를 날려버린 거죠.”(사찰 문제, 김용민 막말 파문에 대해 그의 개인적 판단은 따로 있겠지만, 그걸 굳이 묻진 않았다. 그게 인터뷰의 목적도 아니었다.)
-글쎄요. 어쩌면 그건 우리 정치풍토의 고질병 내지 불치의 병 같은 게 아닐까요? 매니페스토 쪽에서 지나치게 낙관으로 한국사회를 진단해온 건 아닐까요?
“전혀 안 그래요. 영국 역사를 보실래요? 영국도 1834년 첫 근대 선거 때 돈 봉투를 돌리는 등 부정과 부패가 난무했습니다. 당연히 선거 직후 당선 무효도 부지기수였고요. 그 해 로버트 휠 보수당 당수가 ‘이래선 안 된다. 정책으로 승부하자.’며 정당 매니페스토를 선언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우린 악명 높은 막걸리 투표, 고무신짝 선거 풍토에서 성큼 벗어났습니다. 이젠 개표 부정 따위는 꿈도 못 꿉니다. 마지막 관문인 학연·지연에 따른 고질적인 연고 선거와 어떻게 굿바이를 할 것이냐, 바람과 네거티브 한 방에 의존하는 악습과 어떻게 결별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입니다.”
-만만치 않은 과제인데, 가능성은 있다고 보십니까?
“선거판에 나선 정치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연고 선거, 그리고 바람과 네거티브 선거라는 한 방에 대한 강력한 유혹을 느낀답니다. 마치 마약하는 사람이 약을 못 끊는 것과 같은 이치죠. 하지만 저들도 지난 7년 간 풍토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투표 전에 배포할 수 있는 선거공약집 있죠? 그 용지의 일정 공간을 후보 별 선거공약으로 채워야 하는데, 그건 관련법으로 의무적으로 규정돼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운동을 벌인 결과물이죠. 또 각 정당은 정책 공약집을 만들어 시중에 판매해도 됩니다. 그거 아셨나요?”
-몰랐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판매가 될까요?
“첫 술에 배부를 수 있나요? 구입해 보는 이가 많지 않지만…. 제 눈엔 유권자들의 정책 투표에 대한 신념이 부족한 게 결코 아니에요. 오랜 시행착오도 겪을 만큼 겪었고, 그것에서 벗어날 준비가 대충 다 되어있는데 다름 아닌 정치꾼들이 훼방을 놓고 있는 상황은 아닐까요? 즉 선거란, 비유컨데 거대한 무대 공연과도 같은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등장해서 좋은 노래, 감동적인 공연을 펼칠 의무가 있죠. 그럼에도 연고 선거, 바람 선거에 매달리는 건 노래 부르길 포기한 채 상대편 가수와 멱살잡이하고 싸우는 꼴입니다. TV의‘나는 가수다’프로그램에서 가수끼리 싸움 박질하는 걸 보셨나요?”
-생생한 비유입니다. 자, 그럼 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대선에 임하는 입장은 무엇인지요?
“우선 대선 후보들이 조기 결정되기를 우리는 원합니다. 다음은 대선을 앞두고 적어도 석 달 전까지 매니페스토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 그걸 가지고 유권자들 앞에서 멋진 경쟁, 좋은 경쟁을 펼치라는 요청이 우리의 뜻입니다. 곧 각 당에 공문을 보내 본부의 이름으로 이걸 요구할 것입니다.”
-석 달 전이면, 9월 즉 추석 전후가 되겠습니다. 역산하자면 당내 경선은 7~8월경에 마쳐야 하겠고요.
“그렇겠지요? 그와 별도로 두툼한 정책집 중에서 핵심공약 10개를 뽑아달라고 우리는 따로 요청할 것입니다. 일자리 창출, 민생, 복지, 안보에 이르는 우선순위를 정해달라는 요구이죠. 저번 대선에서도 그렇게 했고요. 우리가 이번 대선에 거는 기대가 큰 것은 경제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뤘고, 민주화도 달성했는데 이제 남은 유일한 장애물이 정치의 후진성이란 판단 때문입니다. 이거 극복할 수 있어요. 이것이 바꿔지면 파급력은 엄청 납니다. 사회 전체를 바꿔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데, 대학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동창회장 선거까지 분위기를 일신할 수 있는 겁니다.”
-제가 볼 때는 둘 중의 하나입니다. 강 대표께서 대단한 몽상가이거나, 아니면 놀라운 비전을 가진 낙관적 사회운동가이거나….
“하하하, 그래요? 대선에서 후보끼리 서로 욕설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실제로 그렇게 실천을 해보자고요. 그 경우 사회 각 부분과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욕설이 사라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또 명색이 대선 주자라면 ‘저는 조직 선거와 돈 선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먼저 선언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게 당락 여부를 떠나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결연한 모습이 아닙니까? 조직 선거란 곧 돈 선거를 뜻하는 것인데, 각종 눈에 보이거나 안 보이는 조직을 움직여야 하고 그렇게 되면 돈이 필요합니다. 그걸 딱 끊어야 한다는 것이죠.”
-법으로 정한 대선 비용은 후보당 500억 원 내외이지요?
“그 돈도 많은 데 역대 출마자들은 실제로 두 배, 세 배인 1000억 원, 2000억 원을 쏟아 부었을 겁니다. 그게 어디에서 나옵니까? 사회 부정부패와 직결된 것 아닐까요? 최고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그걸 끊겠다고 과감하게 선언을 해야 합니다. 그런 풍토를 만들도록 우리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이번 대선에서 선거의 기적이 일어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최고지도자 되려면, 돈 선거 끊겠다고 먼저 선언해야!”
-제가 이번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새누리당 홍정욱 의원을 만났는데, 그가 꿈꾸는 것은 여의도에서의 갑론을박이 아니라, 사회 저변의‘조용한 혁명’이더군요. 플라톤의 <국가론>, 공자의 <논어>등 고전 출판과 지식나눔 운동을 진행해 근원적 치유로서의 사회운동을 하자는…. 자, 그럼 매니페스토가 지향하는 것도 결국은 조용한 사회 혁명이네요?
“조용한 혁명,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매니페스토가 조용한 혁명에 성공을 하려면 언론과 유권자들이 보다 시끄럽고 요란하게 우리를 응원해주셔야 합니다.(웃음)”
-하나 묻겠습니다. 강 대표께서는 평소에 평균적인 한국 사람의 정서와는 좀 다르다는 말을 안 들으시나요?
“평균적인 한국 사람이란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겁니까?”
-이를 테면 끼리끼리 패거리 풍토, 공적 토론과 사적 논의가 서로 다른 두 모습, 시민교육의 부재에서 오는 혼란, 남의 뒷통수를 치는 태도….
“아, 그거요?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한국인의 천성은 일단 선합니다. 우리가 소소한 폭력사건은 많은 편이지만, 총이나 칼 따위를 동원한 잔인한 사건은 다른 나라에 비해 눈에 띄게 드문 편입니다. 통계적 근거가 있는 주장인데, 티격태격 닭싸움하는 폭력이 대부분입니다. 근대 이전 유럽의 종교전쟁, 지금 다른 나라의 종교전쟁 같은 건 없잖습니까? 단 지난 20세기 근·현대사가 문제예요. 지난 1세기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일제침략, 분단, 그리고 전쟁 속에서 혹독한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었는데, 아직도 그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집단적 트라우마가 문화유전자로 남아있다는 뜻인가요?
“그렇죠. 6·25때 그 많은 생사람을 구덩이에 파묻고, 당시 사상자가 200만 명입니다. 그런 상처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해요. 또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지난 시대 독재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거기에서 진보 보수 이념 논쟁도 일부 시작됐고요.”
-제가 박정희 평전을 쓴 저자이지만, 독재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인정해야 하겠지요?
“그럼요. 요즘 사회 일각에서 역대 지도자들을 평가할 때 공칠과삼(功七過三)의 태도를 견지하자는 견해가 종종 나옵니다. 쉽게 매도하지 말자는 의도이겠고, 균형 잡아 평가하자는 뜻이라서 저도 일단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게 혹시 또 다른 논쟁의 실마리가 되는 건 아닐까요? 그걸 생각해봐야 합니다. 즉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보다 구체적이고, 세부 항목의 수준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걸 따져서 잘한 것은 잘했다고 칭찬하고, 못한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하는 시시비비의 태도…. 저는 그런 걸 좋아합니다.”
-저는 공칠과삼(功七過三)이란 표현에 공감하지만, 시시비비 태도란 것도 경청할 만합니다.
“그래요? 종합점수로 70점이다, 80점이다 하고 뭉뚱그리면, 이게 뒷탈로 이어집니다. 부문별로 점수를 줘야 깔끔해져요. 안보 100점, 인권 30점 이런 식으로 말이죠. 지난 호 굿소사이어티 이슈레터에서 대통령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아니라고 어느 분이 지적하셨지만, 그게 맞는 소리예요. 우리는 알게 모르게 종합점수 100점짜리 지도자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데, 그게 잘못입니다. 반에서 1등, 전교에서 1등 그래서 수학도 잘하고 스포츠 만능이고….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그건 일제시대 이후 등장해 우릴 괴롭혀온 '종합점수의 망령'이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본래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역대 대선에서도 정책 공약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있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중간평가를 받겠다고 공약했습니다. 하지만 유야무야 됐습니다. 김영삼 후보도 쌀 개방은 절대로 안 된다고 했으나 스스로 뒤집었습니다. 김대중 후보도 내각제를 공약했는데, 이것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뻥 공약’이죠. 지킬 수 있는 공약만 하라는 게 우리들의 주장입니다. 선거 매니페스토(elect manifesto)는 표를 얻기 위한 거짓말을 않겠다는 선언에서 시작됩니다. 구태와 결별해 새 정치를 하겠다는 책임 선언이지요.”
-거짓말 공약의 대표적인 게 재원(財源)에 대한 고려가 없는 복지 공약의 남발 아닙니까? 향후 5년 여당은 74조 원, 야당은 164조 원 짜리 복지를 내세웠는데, 포퓰리즘 풍토가 걱정스럽습니다.
“보편복지, 선택복지 정책 논쟁은 더 벌여도 좋다”
“그건 우리 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표현대로 '산타크로스 방식의 공약'의 전형입니다.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며, 혜택을 늘리겠다는 식인데, 모든 정책에는 돈이 따르니까 유권자들이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그래서 각 당이 정책공약을 만들 때 반드시 재원이 얼마나 든다고 공약별로 명기를 합니다. 우리가 요구해서 이제 관례로 자리 잡은 것이죠. 그래서 요즘 여당 74조 원, 야당 164조 원을 복지비용으로 쓰겠다는 게 드러났고, 때문에 그게 ‘가능 하냐, 안 하느냐’하고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이고요. 우리가 볼 때 그건 일단은 필요한 과정, 거쳐야 할 대목입니다.”
-아주 너그럽게 보시는군요.
“상대방의 복지정책이 유권자에게 먹혀들 것 같으니까 그걸 견제한답시고 포퓰리즘이라고 싸잡아 매도하는 건 그렇게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 하는 정책 논쟁은 더 벌여도 좋습니다. 단, 야당이 내세우는 보편복지를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하는 여당도 자칫 당할 수도 있습니다. 즉 여당은 뉴타운 공약을 내세워 표를 얻고 제법 짭짤했는데, 뻥 공약으로 끝난 게 많았습니다. 그럼 대표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반격을 당하는 것 아닙니까? 제 말은 포퓰리즘이란 말을 상대방을 싸잡고 덧씌우는 무기로 남용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정책 수준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또 하나 논쟁거리가 한미 FTA, 제주 해군 기지일텐데요.
“그건 야권에서 먼저 제기했던 정책 논쟁인데, 총선에서 너무 나간 결과, 표를 되려 깎아먹었다고 자체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즉 전략적 패착이라고 판단하니, 대선에서 그걸 반복할 동력은 앞으로 떨어질 게 아닐까요?”
-야권 후보로 지목되는 안철수 교수에는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입장에서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이왕 대선 판에 나오려면 빨리 나와서 구체적 정책을 내놓으라고 지적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입니다.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고 말한 게 전부인 상황에서 각론을 따지기는 좀 어렵습니다.”
-저는 거의 20년 전 청소년 문제에 열중하던 무렵, 한 번 강 대표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후 사회운동에 정력적인데, 왜 법률사무소 간판까지 거의 내린 채 돈도 안 되는 이런 일에 몰두하시는 겁니까?
“검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저의 첫 임지가 전주 지검이었고, 업무가 소년사범 담당이었습니다. 그때는 첫 인사발령에 불만스러워 씩씩 댔지만, 생각해보니 그게 절반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때 심리학과 카운셀링 공부를 따로 했는데, 그게 사회운동을 시작한 배경입니다. 지금껏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10대들의 꿈은 외형적 가치입니다. 돈, 권력, 사회적 지위, 명성 등등…. 실은 사회 전체가 그런 건 아닐까요? 물신주의(物神主義)의 포로인 우리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이 그걸 보여주잖습니까. 제가 자살방지대책위원장이니 그걸 잘 알지요.”
-마음 아픈 일입니다.
"매년 대학 수능시험이 끝난 뒤 왜 젊은 청춘들이 아파트에서 낙엽지듯 떨어져야 합니까? 각자는 뚫린 재주가 따로 있는 게 종합점수로 모든 걸 재려니까 탈이 납니다. 단 세상은 한 사람에게 오복(五福)을 주진 않습니다. 외형적 가치에 목을 매는 그 욕망부터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비운 공간에서 솟아나는 게 사랑과 자비가 아닐까요? 저는 간혹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애기애타(愛己愛他)란 말을 씁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처럼 남을 사랑하는 이런 정신이죠. 그게 넓어지고 더 넓어지면 결국 홍익 이념에 가 닿겠고요. 요즘 저는 그걸 확대해 홍익 자본주의란 말을 쓰곤 합니다."
강 대표는 달변이었다. 내용이 있고, 체험이 담긴 논리라서 설득력이 컸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홈페이지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념의 과거 껍질을 깨고 다양한 대립과 갈등 속에서 성숙한 민주적 방식으로 대안을 찾아가고자 합니다. 공공의 선을 지향하는 자신의 철학과 가치 및 정책대안을 용기 있게 말하는 자에게 박수를 보내고자합니다.” 강 대표의 말을 들으니 그게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다. 지난 7년 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노력으로 한국정치의 변화된 모습이 일부 있다면, 올해 말 선거의 기적을 포함한 향후 7년에 기대를 못할 것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