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곧 선보일‘시민 교과서’ 프로젝트에 바란다

박기호 (재)굿소사이어티 상임이사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중 대한민국은 아주 예외적으로 성공했습니다. 그 노하우를 알고 싶어서 적지 않은 외국의 엘리트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옵니다. 현장을 둘러보고 전문가 설명도 경청을 할 텐데, 그들이 떠날 때 보이는 공통적인 반응이 있답니다. ‘한국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 살고 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한국처럼 될 수 있는 가를 배우러 왔는데, 막상 성공 노하우를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귀국해서 뭐라 보고해야 할까? 그게 걱정이다.’이런 그들의 자탄이 우리사회 현주소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 스스로가 모르거나,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데, 어떻게 남에게 가르쳐줄 수 있단 말입니까?”
  지난 5월에 개최된 (재)굿소사이어티 1차 임시이사회에서 들었던 김인섭 이사장의 발언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날 이사회는 집행부 개편안과 함께 <시민교과서-역사에서 교훈 찾기> 집필에 관한 중간보고가 안건이었다. 잘못된 현대사 교육, 그리고 황폐한 시민교육을 바로 잡기 위해 우리 재단의 주요 프로젝트로 <시민 교과서> 발행이 귀중하다는 발언이었는데, 가슴에 와 닿았다. 이사진은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다 읽어보아야 할 국민 교과서이자 시민 교과서 집필 사업을 오래 전에 승인했으니 진행상황도 가늠하고 있다. 그 결과 학계-언론계의 전문가들과의 협력 아래 이제 완성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재확인하지만, 이러한 책을 발간하게 된 배경은 명쾌하다. 적지 않은 이들이 “시중에 현대사 관련 책이 꽤 많은데, 왜 재단이 다시 써야 합니까?”라고 궁금해 할지 모른다. 그게 문제이다. 무수한 책에는 정통의 가치를 앞세우고, 큰 대한민국을 지향하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다. 그걸 바로 잡을 책의 등장을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현대사 책은 많지만, 정통의 가치를 찾아보기 힘들지 않은가? 2차 대전 이후 가장 성공한 한국역사이지만, 최근 10여 년 사이에 전에 없던 현상이 빚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스스로의 성취를 비하하고 부정하며, 1948년 건국혁명과 1960년대 부국혁명을 부끄러운 역사로 규정하는 풍조가 만연해온 것이다. 사회는 하향평준화와 포퓰리즘의 늪에 빠져들었다. 여기에 철지난 좌우 이념 논쟁 속에 상대를 손가락질하는 데 익숙한 대한민국은 과연 좋은 공동체, 진정한 공화국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점에서 대화와 소통을 모토로 설립된 굿소사이어티는 보다 큰 대한민국의 기본 가치를 재확인하는 시민 교양서, 국민 교과서로 이 책을 발간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게 주류 없는 한국사회에 표준적 인식을 세울 필요성이다.
  유감이지만 이 나라 혼란의 상당 부분은 책임있는 사회적 주류가 없다. 잠시 기회를 잡은 기득권 세력과, 여기에서 탈락한 소외세력의 항변과 분노가 뒤섞여 있는 것이 어제 오늘의 상황이다. 하지만 시민교과서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반드시 우파 일변도일까? 사회통합을 염두에 둔 우리가 지향해야 할 황금의 기준은 헌법 정신이 아닐까? 헌법에 명문화된 자유와 평등, 인권과 민주주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재확인하며, 우리 시대 보편의 가치를 매 사안마다 재확인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또 하나 그렇게 어렵게 만든 시민 교양서 또는 국민 교과서를 회원끼리만 돌려보게 할 수는 없다.
  시대의 광장에 내놓아 성찰과 토론의 텍스트로 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국의 가정에 한 권 씩 비치하며, 젊은 세대와 중․장년 세대가 손잡고 함께 읽는 저술이어야 한다. 누군가는 꼭 했어야 하는 일이고, 조금 늦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직 원고가 완성되지 않았고, 내용을 살펴보지 못한 관계로 무어라 평가를 할 수가 없어 나의 책에 대한 기대를 몇 가지 적어 본다. 많은 사람들 특히 좌, 우로 지나치게 치우친 인사들과 야권에서는 지금의 시대를 혼돈의 시대라고 우려하고 상대 진영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비판만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 설득과 균형감각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싶다.
  이점 집필진이 특히 유념해주시길 바란다. 또 하나 베스트셀러의 공통점을 보면, 읽기 쉬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 또한 중요하다. 시민교과서라는 말처럼, 대중성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가 핵심이다. 그들의 눈높이에서, 특히 젊은이들의 감각에 맞춘 스타일이어야 한다. 그만큼 내용이 명확해야 한다. 전달하는 메시지가 있어야 하고, 동시에 시대성과 잘 맞아야 한다. 책을 만드는 목적이 국민 누구나 읽는 필독서가 되기 위해서는 위에 언급한 기준에 두루 적합해야 할 것 같다.
  간혹 많은 단행본의 저자들이 자기의 박식함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현학의 늪에 빠진다. 독자가 보기에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거나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이것을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읽기 쉬운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기회에 밝혀둔다. 국민 교과서도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체계적인 논리를 거쳐, 어째서, 왜 이래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가 명확히 이루어져야 한다. 다만 필자 혼자만 이해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독자가 공감하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책을 출간 하는 시기도 중요하다. 12월 대선 직전에 나올 가능성이 높은데, 이걸 좋은 타이밍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이걸 피해서 제 3의 출간 시점을 따로 잡을 것인가 하는 선택도 필요할 듯 싶다. 또 시대 상황에 맞는 내용으로 편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의 시대는 어떠한 시대인가? 혹자들이 말하는 혼돈의 시대인가, 아니면 새로운 도전을 하는 시대인가? 나는 혼돈의 시대에 초점을 맞춰 개탄만 하는 내용을 담는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감히 지적하고 싶다. 현 시대는 누구나 그들의 존재를 일단 인정해줘야 하고, 그 다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해야 잘 받아들인다. 특히 1960~70년대 개발 시대 이후 출생한 젊은 독자들을 상대하려면, 이 점에 대한 고려가 중요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들의 감성에 맞춰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역사에서 교훈 찾기’ 뜻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교훈을 얻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실패한다. 역사는 되풀이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실패하지 않으려면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는데, 어떻게 어디에서 교훈을 찾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다. 일반 대중은 그것을 알 수가 없다.
  토인비는 또한 “한 문명권의 흥망성쇠는 그 집단의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ies)가 존재 하는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그들은 도전에 대한 적절한 응전을 해내줄 수 있는 자들이고, 그들의 모범을 대중이 따르는 것이 미메시스(mimesis)”라고 했다. 창조적 소수가 역사의 교훈을 얻고, 일반 다수는 그들을 모방하면 되는 것이다. 집단 지성을 말하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 다소 낡은 느낌을 피할 수 없지만, 창조적 소수가 소중하다는 뜻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다만 우려되는 일은 역사의 교훈을 한 어떤 인물, 즉 특정 정치지도자에 국한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역사는 한 시대 또는 몇 세기에 걸친 흐름이고, 인물은 그 시대에 등장하는 소수이다. 소수의 등장인물에 너무 포커스를 맞춰 전체의 흐름을 보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이 있다. 일제와 해방 이후 그리고 개벌연대에 이르는 근대사를 좌우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정확한 사실 확인을 검증하여, 이에 따른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을 재평가해야 한다. 과연 누가 오늘날의 시점에서 볼 때 나라와 민족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을 했는지를 재조명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역사의 변곡점은 정치가나 역사학자 같이 거창한 데에서 이루어 지지 않고 시내의 한 작은 골목에서 이루어진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어쩌면 우리시대에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중요한 사업이 우리 재단의 사업에서 이루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게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자랑스럽다.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해서 미력하나마 의견을 더했다. 조금이라도 참고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부디 우리의 책이 베스트셀러도 좋지만 몇 시대를 가는 스테디셀러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