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스마트(smart) 통일’을 향해서
-손광주(데일리NK 편집인)
“ 우리가 만들어가는 통일의 첫 행보는 대북전략의 전선을 북한 내부로 옮기는 일이다. 근본적인 분야는 사상전이다. 사상전의 목표는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북한정권의 주인은 김 왕조(dynasty)가 아니라 2300만 주민들"이라는 주권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 ---”
최근 우리사회의 새 아젠다로 ‘통일세(統一稅) 논의’가 등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8월 15일 광복절 65주년 경축사를 통해 “통일은 반드시 온다. 이제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해야 할 때가 됐다”며 “이 문제를 우리 사회 각계에서 폭넓게 논의해주기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주어진 분단상황의 관리를 넘어 평화통일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며 ‘평화공동체?경제공동체?민족공동체’의 통일방안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는 ‘공정한 사회’ 등 여러 주제들이 언급됐으나 언론의 주목을 받은 대목은 단연 ‘통일세’ 관련 언급이었다. 대통령의 ‘통일세’ 언급이 보도되자 “먹고 살기도 힘든데 느닷없이 무슨 통일세냐?” “통일세는 흡수통일을 하겠다는 뜻인데, 북한을 자극한다”는 등 파장이 커질 조짐이 보였다. 이 때문에 이례적으로 대통령실장이 직접 기자 브리핑에 나서 당장 통일세를 걷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임태희 실장은 “올해가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 광복 65주년인데 남북통일까지 완성돼야 진정한 광복이 아니겠느냐”며 “통일세를 포함하여 지금부터 통일에 대비하여 여러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이 대통령의 발언을 자세히 보면 “통일은 반드시 온다. 그날을 대비해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할 때가 되었다. 이 문제를 우리사회 각계에서 폭넓게 논의해 주기를 제안 한다”이며, 따라서 ‘통일세’는 ‘우리가 통일을 대비하여 준비해야 할 여러 방안 중 하나’라는 맥락에서 읽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해,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발언은 포괄적으로 ‘통일 논의’를 의미한다. 다만 ‘통일세’라는 용어가 새롭게 등장하는 바람에 사람들의 뇌리에 강조된 것이다. 실제 이날 이대통령이 강조하고 싶었던 내용도 “주어진 분단상황의 관리를 넘어 평화통일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대목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의 ‘통일세’ 언급은 언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통일 비용’ 쪽으로 논란이 옮겨갔다. 이후 몇일 간 언론에 소개된 국내외 주요 연구소의 한반도 통일비용을 보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미국의 랜드연구소는 남북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각각 2만 달러와 700달러 수준이고, 남한인구 4천800만 명, 북한인구 2천400만 명으로 가정할 때 북한을 남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드는 비용은 1조7천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찰스 워프 연구원). 하지만 통일 전 북한 GDP가 향후 5~6년 내 지금의 2배 가량으로 늘어나고 남한과 같은 수준으로 맞출 필요가 없다면 통일비용은 620억 달러로 크게 낮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피터 벡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센터 연구원은 최대 5조 달러로 본다. 그는 북한 주민들의 소득을 남한의 80% 수준으로 올리려면 30년간 2조~5조 달러가 필요하고, 남한 주민들만 통일비용을 부담한다면 1인당 4만 달러라고 계산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5년 545조 8천억 원으로 추산했고, 정부 산하 조세연구원은 통일 후 20년간 GDP의 7~12%가 소요될 것으로 보았다.
찰스 워프와 피터 벡의 계산법에 따르면 최소 620억 달러와 최대 5조 달러 사이에는 무려 4조 380억 달러의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계산법이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통일비용은 통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게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통일비용을 특정하기 어렵다. 북한이 붕괴되고 남한이 흡수통일하면서 드는 비용으로 잡을지, 통일 후 갖가지 후유증에서 벗어날 때까지의 비용으로 잡을지, 남한과의 경제격차를 크게 줄인 후 통일할지에 따라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통일세’ 논의와 관련하여 외국의 전문가도 큰 관심을 보였다. 미국의 유명한 북한전문가인 마커스 놀랜드는 “드디어 한국의 대통령이 통일 비용이라는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준비가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는 것이 매우 기뻤다”(연합뉴스 8. 30.)고 언급했다.
예상대로 북한은 크게 반발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전면적인 체제대결 선언”이라며 비난했다. 조평통 대변인은 “역도(이 대통령 지칭)가 떠벌린 통일세란, 어리석은 망상인 ’북 급변사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불순하기 짝이 없는 통일세 망발의 대가를 단단히 치르게 될 것”이라며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북한의 이 같은 반발은 어떤 면에서 ‘솔직한’ 반응이기도 하다. 북한은 스스로 ‘급변사태’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 왔다. 그러나 2008년 8월 김정일의 뇌졸중(troke) 이후 한국 및 외국 언론에서 ‘북한 급변사태’ 관련 보도가 계속 등장했는데, 이후 북한도 남한의 ‘북 급변사태’ 주장을 비난할 목적으로 이 용어를 차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북 급변사태’라는 표현은 북한 관영매체로서는 스스로 ‘금기해야 할 용어’에 해당한다. 그리고 급변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면 남한의 ‘북 급변사태’라는 표현에 그렇게 격렬한 반응을 보일 이유도 없는 것이다. 또 ‘통일 논의’는 전통적으로 북측이 남측에 대한 ‘공세적 브랜드’였다. 그런 점에 비춰보면 이 대통령의 ‘통일세’ 발언에 북한이 그처럼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내심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그리고 이미 북한 주민들 사이에는 ‘남측에 의한 통일’이라는 현실적 인식이 미미하게나마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평통의 ‘통일세’ 비난의 배경에는 이 같은 북한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먼저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통일세’ 발언은 한반도 정세와 북한의 여러 내부적 상황을 고려하면 의미가 있다. 특히 “주어진 분단상황의 관리를 넘어 평화통일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발언은 함축적이다.
우리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여야 합의하에 최초로 국회에 보고된 것은 21년 전인 1989년 9월 11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의 대북정책은 ‘통일’보다는 ‘평화공존’에 중점이 두어져 온 편이다. 정부는 실천력 있는 통일전략을 보여주지 못했다. 햇볕정책은 ‘김정일 정권을 도와주면 개혁개방으로 나올 것’이라는 추상적인 판단에서 시작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남북간 평화공존이 곧 남북관계 발전’이라는 비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이 같은 착시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반도평화체제론’이나 ‘평화공존론’은 근본적으로 허구적 성격을 갖고 있다. 왜 그런가? 1953년 정전(停戰) 이후 한반도는 ‘긴장상태’와 ‘이완상태’를 되풀이 해왔고, 이 같은 패턴은 통일이 완결되지 않는 조건에서는 반복될 것이다. 햇볕정책이 진행된 지난 10년만 보아도 북한은 1,2차 서해교전과 미사일 발사 및 1, 2차 핵실험, 3차 서해교전(2009. 11. 대청해전)을 도발했고, 올해 3월 26일에는 천안함을 격침시켰다. 이밖에 연안호 대승호 납치, 금강산 관광객 사살 등 크고 작은 도발은 무수히 많다. 햇볕에 의한 평화공존론은 사실상 허구이며, 따라서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의 완성’은 ‘평화통일’을 의미한다.
특히 이념과 체제의 근본 속성(屬性)에서 볼 때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북한의 전체주의 수령독재체제는 공존과 양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시적으로 긴장과 갈등을 내포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평화란, 군사주의 폭력(선군)을 앞세운 전체주의 수령독재 체제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비로소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정권이 교체되어야 하는 것이다.
2008년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이 등장한 이후 ‘김정일 이후와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이는 북한이 처한 여러 내외적 사정을 고려해볼 때 근거가 있는 판단이다. 현재 김정일 정권이 갖고 있는 체제 내구력 취약 요인은 크게 4가지 정도로 보인다.
첫째는 김정일의 건강문제다. 북한은 김정일에게 모든 권위와 권력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 김정일’의 통치불능 또는 사망은 ‘체제의 유고’로 이어질 수 있는 잠재성을 갖는다. 이에 대해서는 더 췌언(贅言)을 달 필요가 없을 듯싶다.
둘째, 북한은 9월 당대표자회를 기점으로 사실상 김정일 말기체제→3대 세습 후계체제로 이동이 시작된다. 오래된 독재정권의 경우 권력이동은 점진적 또는 급격한 변화를 동반하며, 대체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권력 내부에 혼란 양상을 보이게 된다. 김정은의 경우, 아버지 김정일이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던 시기에 비해 불안정 요인들이 훨씬 많은 편이다. 만약 김정일이 10년 정도 생존한다고 가정한다면 그나마 김정일이 지도하고 김정은이 집행하면서 부자(父子) 공동 권력행사 기간을 거친 다음, 김정은이 단독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일의 건강이 나빠지고 김정은이 정치력을 보이지 못할 경우, 장성택 등 2인자와의 권력투쟁에 빠져들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신?구 권력 엘리트들 사이에 갈등이 나타날 수 있다.
또 일부 연구자들이 김정일 이후 당 정치국을 중심으로 집단지도체제를 운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현실화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북한은 60여 년 동안 지금의 중국식 지도체제를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김정일 이후 체제위기를 느끼는 후계자 및 엘리트들이 쉽게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하기는 어렵다. 김정은의 쉽게 권력장악을 못하고 김정일이 사망한 일부 소외된 군(軍), 당 엘리트들이 일시적으로 집단지도체제를 요구할 수는 있겠지만 관철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약 김정은과 장성택이 집단지도체제를 받아들일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내부 권력투쟁이 더 심해지고 북한체제가 조기에 붕괴될 가능성이 더 많다.
셋째, 북한은 핵문제, 식량?에너지?달러 부족 등으로 경제가 자생적으로 나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욱이 북한은 90년대부터 국가 시스템의 파괴 등으로 내외적 불안 요인이 가중되어 왔다. 쉽게 비유하자면, 김정은은 아버지로부터 수익구조가 건실한 회사를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부채비율을 가진 빚더미 회사를 물려받는 것이다.
넷째, 북한주민들의 의식이 변하고 있다. 길게 잡아 90년대 중반부터 주민들은 당과 국가를 믿지 않고 스스로 생존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벌써 15년이 지났다. 지금 북한주민들은 당국이 하는 말을 거의 믿지 않는다. 시장은 확대되었고 더욱이 화폐개혁의 실패로 이젠 북한당국이 더 이상 시장을 통제할 수도 없게 되었다. 60년 가까이 된 수령-당-대중의 수직체계가 와해되고 있으며, 과거 동유럽 공산권의 급격한 변화에 비춰보면 북한체제가 아무리 강고하다 해도, 북한주민들의 의식 변화에 기인한 의미 있는 변화가 한번 시작되면 매우 빠르게 체제변화가 진행될 수 있다.
게다가 김정은으로의 권력이동이 어정쩡한 상황에서 김정일이 갑자기 사망한 데 이어 우발적인 군수공장 폭발 등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식량난, 환경재난 등 복합적인 내외적 요인이 겹치면서 북한정권 및 북한사회 전체가 불안정해지는 경우, ‘북한 급변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권력투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더욱 상황이 나빠질 경우 북한 내 군(軍) 실력자들의 할거(割據) 및 무질서 상태도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북한 2300만 주민들의 생명을 담보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주민들의 집단 탈출, 핵무기(물질), 미사일 등의 유출을 예상해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의 3대 세습체제가 과거의 김일성-김정일 정권처럼 ‘지속가능한 체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우리에게 ‘통일’은 이제 어느 날 바람처럼 오는 것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로 준비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남북 평화공존론’처럼 지금까지 수세적?방어적이었던 우리의 대북전략을 ‘통일’이라는 목표를 향해 공세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북한 민주화→북한 근대화→한반도 평화통일→한반도 선진화 전략을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6.25 전쟁 때부터 북한이 도발하면 남한이 방어하는 형국이었다. 최근 천안함 사건까지도 그렇다. 지난 60년 동안 북한은 대남전략의 전선을 남한 내부로 옮겨와서, 남한 내부의 수면 위 아래에서 남북간 정치투쟁을 벌이는 대남전략을 구사해왔다. 북한은 남로당, 통혁당 등 남한 내부에 끊임없이 지하당을 구축해왔지만 남측이 북한에 남한조직을 심어본 사례는 없다. 지금도 남한에는 범민련, 진보연대 등 수면 위 친북 군소조직들이 적지 않다.
이제 우리의 대북전략은 이 잘못된 구도를 바꿔놓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물론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하자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작계 5027, 5029를 발동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군사적인 방법 외에도 동원할 수 있는 방안이 적지 않다. 이미 20년 전에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으로 우리의 대북정책의 목표가 ‘통일’로 정해진 만큼, 앞으로는 자연발생적으로 우리에게 닥쳐오는 통일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계획적이고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통일 전략으로 옮겨가야 할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통일의 방식도 미국, 중국 등 주변국의 도움을 받아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만들어가는 통일’로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만들어가는 통일’의 첫 행보는 대북전략의 전선을 북한 내부로 옮기는 일이다. 근본적인 분야는 사상전이다. 사상전의 목표는 북한에 인권· 민주주의·시장을 실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북한정권의 주인은 김 왕조(dynasty)가 아니라 2300만 주민들"이라는 주권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 첫 번째 일이다.
또 이러한 인식을 주변국에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북한지역에 대한 첫번째 주인공은 북한주민들이며, 그 다음은 한반도에 사는 7천만 남북주민이고, 세번째는 북한의 재건과 한반도평화통일을 도와주고 동아시아 평화번영을 위해 함께 손잡고 가야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 등 국제사회라는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먼저 우리 내부에서 전반적인 계획이 수립돼야 할 것이다. 따라서 민간-정부 간의 적극적인 통일논의와 협력이 긴요하며, 이어 국제사회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끌어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그렇게 해서 ‘한반도 스마트(smart) 통일’을 향해 함께 가는 것이다.
손광주(孫光柱)
데일리NK 편집인/편집국장(현재)
동아일보사 기자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이념연구센터장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외교안보통일 분과)
